Bachelor Degree RAW novel - Chapter 188
188화. 남궁병
하늘에 떠있던 여인도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그녀가 비록 후배들에게 추격당하긴 했어도 그들이 이런 강한 공격을 막을 것이라곤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방금 전 마도의 결단기 수사와 일전을 벌여 법력이 소진된 것은 물론이고 부상이 심해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가장 최악은 원신과 긴밀한 연계가 되어있는 법보가 아까의 일전 중 망가져 잠시 이용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런 연유로 비술을 이용해 강제로 체내의 잠재력을 끌어내 간신히 여기까지 왔는데 저 세 명의 추적자는 떨쳐낼 수가 없었다.
결국엔 저들을 먼저 죽이지 않으면 비술의 효과가 떨어진 순간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그러던 차에 그곳에서 다른 수사의 존재를 느꼈다. 그 수사는 분명 수도가문의 사람이거나 동맹을 맺은 문파의 수사일 것이다. 바로 그 수사의 존재를 고려해 그녀는 이곳에서 일전을 벌이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이곳에 당도하자마자 그 수사가 모든 기운을 숨기고 이 상황을 관망하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제 정말 홀로 버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세 명의 마도인이 생각보다 강한데다 강력한 방어 법기를 지녀 그녀의 남은 영력을 끌어낸 공격으론 멸할 수가 없었다.
거기다 몸에 지니던 고급 부적이나 법기도 이미 일찍이 소진한 지 오래였다. 몸에 남아있던 영력까지 고갈되는 것이 느껴지자 그녀의 마음이 가라앉았다.
겨우 공격을 막아내던 상대도 산사태라도 난 듯 쏟아지던 공격이 점차 약해지며 결국엔 사라지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했다. 세 사람은 잠시 우두커니 서서 법기 위에서 말없이 서있는 여인을 지켜보았다.
왕선과 사내는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기뻐했으나 방금 여인의 함정에 걸렸던 것을 기억하며 함부로 움직이진 못했다.
그때 갑자기 땅에서 돌연 하얀 빛이 솟구치더니 순식간에 복면 여인 앞에 나타나 허리를 낚아채서는 사라지려 했다.
왕선과 수려한 사내는 힘겹게 잡아놓은 사냥감을 직전에 빼앗긴 맹수들처럼 분노했다. 그들은 최대한 속도를 내 하얀 빛을 따라 아래로 하강했다.
그러나 동훤인은 제자리에서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녀는 하얀 빛이 너무 익숙해 놀란 눈으로 종적을 쫓을 뿐이었다.
하얀 빛이 순식간에 수풀 속으로 내려서자 청년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났다. 청년은 한 손에 여인을 안고는 무표정하게 그를 뒤쫓는 왕선과 수려한 사내를 바라보고 있었다.
복면 여인이 힘없이 그의 품에 안겨서는 민망한 듯 사내를 꾸짖으려 했으나 그녀를 신경 쓸 틈이 없었다.
“넌!”
“네 놈이었구나!”
청년의 얼굴을 확인한 왕선과 사내의 입에서 동시에 큰소리가 났다. 둘은 꼭 죽이겠다 다짐한 한립을 발견하고는 바로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왕선의 몸을 휘감은 혈무는 순식간에 기세를 올려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또한 수려한 사내도 냉소를 짓더니 손에 든 피리를 들어 불었다. 그 맑은 소리와 노을빛이 호응하여 그 안에서 분홍색 공작새가 튀어나와 한립을 향해 날아갔다.
두 사람이 흉흉한 기세로 달려들자 한립도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그는 바로 신풍주에 올라 당장이라도 다시 달아나려 했다.
그러나 왕선과 사내의 공격이 그의 활로를 막았다. 그들은 원래 당당하기 그지없던 복면 여인의 눈빛에 공포가 어리는 것을 확인했다.
결단기 여수사도 반항할 힘을 잃은 것이다. 그런데 당황해 어찌할 바를 모르던 한립이 돌연 기이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미소에 왕선 등의 가슴이 서늘해졌고 순식간에 한립과 복면 여인이 연기처럼 사라지며 거대한 암석으로 변하는 것을 목격했다.
둘의 표정이 급변했다.
그들이 환영 진법 속에 갇혔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주위가 빽빽한 밀림으로 변해 버린 후였다.
비록 진법이 그리 강하지 않아 조금만 지나면 깨버릴 수 있지만 한립이 여인을 데리고 달아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마도의 소주인 둘은 모두 머리 끝까지 화가 차올랐다.
수려한 사내가 무언가 떠올랐는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왕선을 바라보았다.
“왕 형, 어서 진을 깹시다. 밖에서 동 사매가 지키고 있으니 우리가 나가기 전까지 그들을 붙잡아 둘 수 있을 겁니다.”
왕선의 얼굴에 희색이 돌더니 의심스럽다는 듯 물었다.
“그걸 잊을 뻔 했군. 그러나 그 계집은 황풍곡 제자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들을 막겠소?”
“합환종에서의 지위가 있는데 당연히 나설 것 입니다. 황풍곡에서 보통 제자로 지낼 때보다 얼마나 좋은 대우를 받고 있는데요.”
복면 여인을 안고 신풍주에 오른 한립 앞에 동훤인이 나타났다. 그 모습을 본 한립이 잠시 탄식하더니 유감스럽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동 사매, 꼭 이렇게 해야겠어?”
“한립, 가야겠다면 날 쓰러뜨리고 가봐! 도대체 얼마나 뛰어나길래 홍불 사부님이 너에게 시집을 보내지 못해 안달이셨는지 늘 궁금했으니까!”
싸늘하게 말하는 동훤인의 시선이 복면 여인에게로 향했다.
“게다가 엄월종 수사를 데리고 있으면서 내가 보내주길 바라는 거야?”
그녀의 얼굴에 흉흉한 기세가 드러났다. 상대가 이렇게 나오는데 한립도 옛정 운운하며 시간을 끌 필요가 없었다.
그가 설치해놓은 진법은 간단한 환영진에 불과해 귀령문 소주를 오래 붙잡아 둘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립의 표정이 굳었다.
“그렇다면 동 사매도 날 원망하지 말라고.”
한립의 말이 끝나자마자 한 쌍의 검은 빛과 다섯 줄기의 백광이 분출되며 구각 법기가 한립 앞을 막아서고 그 옆엔 네 개의 꼭두각시 요수들이 등장해 빛기둥을 발사했다.
일단 싸우기로 했으면 전력을 다해야 하는 법이다. 동훤인은 순식간에 몰아치는 공세에 안색에 변했다.
그러나 곧 이를 악물고 손을 휘두르자 분홍색 면사가 날아올랐고 두 손이 끊임없이 움직이며 수결을 맺자 분홍 기운이 넘실거리며 면사가 찬란한 빛의 보호막을 형성했다.
동훤인은 한립의 공격이 아무리 강해도 화봉건(火鳳巾)과 마공이 융합된 보호막은 뚫을 수 없을 것이라 믿었다. 그녀가 자신만만해 있는 찰나 한립은 신풍주를 전속력으로 출발시켜 자신의 법기들과 함께 그녀를 지나쳐 버렸다.
동훤인을 향해 흉흉하게 날아들던 빛줄기들도 한줄기 백광으로 변한 한립을 쫓아 사라져 버렸다.
한립은 그녀와 손속을 겨루지 않고 바로 달아나는 길을 택한 것이다. 이 광경에 너무 놀란 동훤인의 얼굴은 달아올랐다.
분노한 그녀가 한립을 쫓으려는 순간 꼭두각시 요수들이 발사한 빛기둥이 보호막에 부딪혔다. 공격이 끝나고 그녀가 보호막을 거두었을 때 한립은 이미 검은 점으로 변해 하늘 저편으로 사라졌다.
그에게 놀아난 것이 억울해 한립을 쫓았으나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분노한 그녀는 결국 원래 있던 방향으로 돌아갔다.
이때 한립은 여인을 꼭 끌어안고 흙더미 속에 파묻혀 있었는데 그 주위로 노란 보호막이 쳐져 흙이 덮쳐오는 것을 막아주고 있었다.
그가 만든 하계 부적 함지부(陷地符)가 이렇게 유용하게 쓰일 날이 올 줄은 몰랐다.
잠시 후 동훤인이 사라지는 것을 느끼고는 의식을 넓혀 근처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후 조용히 흙 속에서 나와 한립은 법기를 타고 날아올랐다.
* * *
얼마 후, 한립은 어느 동굴 속에 들어갔다.
조심스레 여인을 내려놓은 그는 손목을 잡고 미세하게 영력을 흘려 넣었다. 그녀의 부상 정도를 파악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바로 자신이 무언가 실수를 했음을 알 수 있었다.
미세한 영력이 흘러 들어가자마자 그녀의 몸에서 엄청난 흡입력이 느껴지더니 한립의 영력을 빨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깜짝 놀란 그가 손을 때려 했으나 마치 여인의 몸에 붙은 것처럼 떨어질 생각을 안 했다. 어쩔 수 없이 다른 손을 들어 여인의 몸을 밀어내려던 그는 두 손이 모두 붙어 엄청난 영력을 잃어갔다.
고된 수련을 통해 간신히 쌓은 법력과 진원이 점차 여인에게 빨려 들어가는 것을 느끼며 한립은 당황스러웠다.
그는 축기기 중기였던 법력이 초기로 다시 연기기 수준으로 떨어지는 것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속이 쓰려오는 것을 느끼며 곧 그의 눈앞이 깜깜해졌다. 기절한 한립이 여인에게로 쓰러진 것이다.
부드럽고 향기로워…….
이 후 한립은 달콤한 꿈에 빠져 들었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그의 영력은 쉼 없이 여인에게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 * *
새벽 동이 틀 무렵 한립이 깨어났다. 몽롱한 정신 속에서 그는 아름다운 여인이 동굴입구에 서있는 뒷모습을 보았다.
잠시 후 한립은 비명이 나오려는 것을 겨우 참았다. 그녀는 남궁완과 많이 닮았으나 갸름한 얼굴과 동그란 눈을 가진 전혀 낯선 여인이었다.
“당신은 누구요! 말도 안 돼. 분명 그들이 남궁 선배라 칭하는 것을 들었는데, 거기다 그 목소리…….”
한립이 극도로 당황해 중얼거렸다. 그러나 곧 얼굴이 창백하게 변한 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밤중에 들었던 목소리는 그녀가 부상을 당해 그런 것이 아니라 아예 다른 여인의 목소리였단 사실을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이 착각이 10년이 넘는 고된 수행을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는 자신이 운이 없음을 탓하며 울상이 되었다.
자신을 남궁완의 사촌 동생이라 소개한 여수사가 한립의 모습을 살피더니 돌연 웃음을 지었다.
“네가 황풍곡의 한립이구나!”
“선배님께서 어찌 제 이름을 아십니까?”
상대가 자신을 해칠 마음이 없다는 것과 어차피 법력을 없애고 다시 수련해야 하는 삼전중원공(三轉重元功)의 수련 방식을 떠올리며 격동했던 마음을 가라앉혔다.
“언니와 난 친 자매처럼 가까운 사이라 서로 비밀이 없지. 네 이름도 언니에게 들은 것이다.”
여인은 놀라면서도 한편으로 화가 나 보였다.
“아느냐? 내 이 이야기를 듣고 처음 한 생각이, 당장 너를 잡아다 난도질을 해 개밥으로나 던져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돌연 싸늘히 얼굴을 굳히며 살기를 드러냈다.
온화한 그녀의 모습에서 그런 독한 말이 나오자 한립은 흠칫 몸을 떨었다. 그러나 곧이어 한숨을 내쉰 그는 의외라 여길 만한 말을 내뱉었다.
“허나 지금은 마음이 바뀌셨고요.”
“보아하니 머리는 잘 돌아가는구나.”
“선배님께서 절 죽일 생각이셨다면 정신을 차릴 때까지 기다릴 이유가 없으셨겠지요.”
“날 남궁병이니 선배니 뭐니하며 늙은이 취급하지 말거라.”
그녀가 무표정한 얼굴로 트집을 잡자 한립은 속으로나마 반박했다.
결단에 이를 정도면 나이를 엄청 먹었을 텐데 할망구가 아니면 뭐란 말이야?
영력을 상대에게 모두 빨렸으니 악감정이 쌓여 있었으나 상대의 손에 목숨이 걸린 마당에 큰 소리로 욕을 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한립을 등지고 유유히 입을 열었다.
“비록 날 언니라 생각해 구한 것이나 어쨌든 넌 남궁병의 은인이라 할 수 있겠지. 게다가 무의식중에 네 법력을 이용해 부상이 악화되는 것을 막았으니 보답을 할 수밖에 없구나.”
“됐습니다. 어차피 남궁완의 사촌 동생이시니 그냥 제가 운이 없었던 것으로 치지요.”
이후 그는 곧 바로 몸을 일으켰다.
파팍!
그러나 곧이어 여인이 일으킨 향기로운 바람에 얼굴을 두들겨 맞아 다시 바닥으로 고꾸라질 뻔 했다.
“이게 무슨……!”
한립은 얼얼한 뺨을 부여잡고 말을 잇지 못했다.
“어제 내 허락도 없이 내 몸에 손을 댄 것! 또 어제 밤 내내 나를, 나를 눌러 기절시킨 것! 이 두 가지에 대한 벌이다.”
서늘하게 그를 훈계하던 그녀가 어제 밤 이야기에는 얼굴을 붉혔다가 다시 찬바람이 쌩쌩 부는 모습으로 돌아왔다.
할 말은 많았으나 한립은 입을 다물었다.
남녀관계에서 특히나 여자 쪽이 결단기 수사인 경우 괜히 입씨름을 해봐야 좋은 일이 없었다. 게다가 자신은 상대의 도마 위에 놓인 생선이나 마찬가지니 뭘 어쩌겠는가?
게다가 한립이 생각할 때 남궁병이 이리 구는 것은 어제 일때문은 아닌 듯 했다. 남궁완을 대신해 그를 혼내주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이런 판단이 서자 열은 받았으나 묵묵히 침묵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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