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elor Degree RAW novel - Chapter 230
230화. 문사월
마두가 다른 이들의 저물대에 전혀 흥미를 보이지 않은 것이 결단기 선사들의 것이어서 인지 아니면 정말 바쁜 일이 있어서 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 덕을 자신이 본다는 점이 중요했다.
그래도 곡혼의 몸을 훔쳐 달아난 것에는 울화가 치솟았다. 상대와 겨루어 승산이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보내야 했지만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한립은 이미 땅으로 올라와 있었다. 방금 나간 현골 상인은 이미 종적을 감춘 듯 했다.
한립은 지하 동굴로 함께 들어갔던 이들을 떠올렸다. 이렇게 홀로 살아나오다니 뭔가 처량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이런 마음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수도계에서 가야 할 길이 먼데 감상에 치우칠 수는 없었다.
한립은 그 자리에 오래 머물지 않고 방향을 잡아 날아올랐다. 그가 저물대를 뒤적이자 하얀 빛이 나는 비단 손수건이 손에 들렸다.
오랜만에 꺼내 보는 물건에 한립의 마음이 조금 설ㅤㄹㅔㅆ다.
이젠 이 손수건이 현골 상인이 지니고 있던 것과 같은 물건이라는 확신을 한 것이다. 도대체 이 안에 담긴 비밀이 무엇이기에 그렇게 심계가 깊은 늙은 마두가 평정을 잃었는지 궁금했다.
한립은 자세히 천 조각을 살폈다.
이전엔 모호하게만 보이던 지도가 완전히 사라지고 빈 공간에 작은 금빛 검들이 도안을 그려내고 있었다.
어느 방향으로 비단 손수건을 돌려도 금빛은 서서히 서남쪽 어느 방향을 가리키며 검 끝에서 옅은 붉은 선이 나와 손수건 귀퉁이를 가리켰다.
한립은 미간을 좁혔다. 아무리 바보라도 이렇게 단순히 한 방향을 가리킨다면 못 알아볼 수가 없었다.
이건 분명 누군가를 검들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이끄는 물건일 터였다. 손에 지도를 든 그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현골 상인이 그리 바삐 떠나가던 것을 보면 분명 지도의 작용에는 시간제한이 있었고 목표지점에 도달하면 큰 보상이 있을 것이다.
만일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내려면 당장 방향을 틀어야 했고 조금만 늦어도 지도가 사라지거나 아니면 다른 이들이 보상을 선점하게 된다.
곰곰이 생각을 하던 그는 결국 방향을 틀어 완전히 섬을 벗어나 버렸다.
대략 일각 정도가 지나고 음산한 검은 기운을 흩날리며 누군가 섬에 당도했다. 그 빛은 지하 동굴 위를 한 바퀴 돌더니 기운이 흩어지며 핏기 없이 창백한 중년인이 되어 나타났다.
중년인은 깨진 결계와 쓰러진 봉령주를 보더니 바로 지하 동굴 내부로 사라졌다.
잠시 후 분노한 함성이 전해지며 인근의 땅이 흔들렸다.
이어 다시 검은 기운에 둘러싸인 중년인이 하늘로 솟아올랐다. 조급하게 사방을 둘러본 그가 몸에서 수십 개의 검은 빛이 분출했고 그것들이 거대한 새로 변해 사방팔방으로 날아가 주변 백리를 수색했다.
거대한 새가 돌아왔지만 아무런 수확이 없었다.
중년인은 마음이 심히 불편해졌다. 그는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더니 한동안 꼼짝 하지 않았다.
“이미 이전의 현골 마도가 아닌 것을 늙은 괴물이 도망가면 또 어떤가! 나도 네 문하에 있던 일개 결단기 제자가 아니니 일단 허천전 일을 마무리 짓고 난성해 전부를 뒤져서라도 찾아내고야 말겠다.”
그는 다시 검은 기운으로 변해 하늘을 갈랐다.
콰콰쾅!
중년인은 화풀이라도 하듯 물통 굵기의 검은 빛 기둥을 쏘아 지하 동굴 인근을 폐허로 만들어 버렸다.
벌써 섬을 떠난 한립은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그는 지도가 이끄는 방향대로 착실히 이동하고 있을 뿐이었다.
다만 혹시나 현골 상인과 다시 마주할까 경계심은 극도로 높인 채였다.
그 결과 수일을 날아갔으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한시름 놓은 한립이 묵묵히 법보를 재촉해 날아가는데 돌연 누군가 다투는 소리가 들려왔다. 들리는 폭음이나 눈을 찌르는 광채가 멀리서 보아도 선사들의 일전이었다.
한립은 강한 의식을 이용해 멀리서 슬쩍 그들을 살폈다.
뜻밖에도 남녀가 몸에서 사악한 기운을 뿜어대는 금의인 셋과 격렬히 싸우고 있었다 그들의 수준은 겨우 축기 초기에 불과했고 남녀가 지고 있는 듯 보였다.
한립은 코를 긁적였다.
어차피 자신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 수준임을 알았으니 길을 돌아갈 필요 없이 그냥 지나치기로 결정한 것이다.
다만 무슨 일인지 관여하지 말고 갈 길을 갈 생각이었다. 속도를 높인 한립이 금세 그들 가까이까지 도달했다.
한참 서로 다투던 이들이 놀라 약속이라도 한 듯 물러섰고 법기를 회수했다. 게다가 한립은 그곳을 지나치려다 자기도 모르게 속도를 줄였다.
“어?”
동시에 남녀 선사 중 여인이 한립의 얼굴을 알아봤다.
“한 장로님! 저는 묘음문 탁 우사님의 직전제자이니 부디 도와주십쇼. 저 세 명은 본문의 적인 독룡회(毒龍會) 선사들입니다.”
그녀의 외침에 한립의 시선이 여인에게로 옮겨졌다.
“묘음문 제자라고?”
대략 스무 살 정도의 여인은 하얀 피부의 옥 같은 얼굴로 요염하기 그지없었다. 사람의 시선을 끄는 어여쁜 여인이 서둘러 한립의 곁으로 와 예를 올렸다.
“제자 문사월, 한 장로님을 뵙습니다.”
탄력 있는 가슴과 풍만한 엉덩이에 이어 아름다운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고 사내를 취하게 할 듯한 그윽한 향기마저 풍기는 여인이었다.
말없이 그녀를 살피던 한립이 유유히 물었다.
“어찌 날 알아보았지? 날 본 일이 있더냐?”
한립은 이 여인을 난생 처음 본다고 확신했다. 그러자 여인이 공손히 답했다.
“제가 한 장로님을 뵌 일은 없으나 문주님께서 화상(畫像)을 공봉당에 걸어두셨기에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 말에 한립은 멍해졌고 속으론 기가 찼다. 분명 그 세 여인이 외부에 자신을 장로로 속이려 벌인 일일 터였다.
한립은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겉으론 어떤 내색도 하지 않고 고개를 여인 옆의 중년인에게 돌렸다.
“문 형, 오랜만입니다. 그간 잘 지내셨는지요!”
중년인은 한립이 나타난 이후로 줄곧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이 말을 듣고는 심경이 복잡해졌다. 그의 눈길에서 약간의 선망과 또 약간의 열등감이 전해졌던 것이다.
그는 약간 씁쓸하게 답했다.
“한 선배님께서 저를 기억해 주실 줄 몰랐습니다. 문 모는 묘음문에서 선배님의 화상을 보고도 믿지 못했을 정도니까요. 늦었지만 금단에 성공하신 것을 축하 올립니다.”
중년 사내는 뜻밖에도 처음 괴성도에서 한립과 마주쳤던 청년 선사 문장이었다. 지금 그는 어렴풋이 옛 모습이 남아있을 뿐 백발이 희끗희끗 보이며 환갑을 앞둔 듯 보였다.
한립이 미소를 지었다.
“문 형, 선배라 칭할 것 없습니다. 서로 안면이 있는 사이인데 편하게 교류하시지요.”
아직도 축기 중기의 수준이니 상대는 이번 생에 결단할 것이 분명했다. 한창나이였던 청년을 이런 모습으로 다시 만나니 한립은 탄식을 금할 길이 없었다.
사실 문사월이 소리치지 않았더라도 멈췄을 것이다. 엄청난 안력을 지녔으니 이미 한눈에 문장을 알아보았다.
당초 좋은 인상을 남겼던 상대기에 눈앞에서 죽게 놔두고 싶지는 않았다. 문장은 한립의 말에 연달아 그럴 수 없다 고개를 숙이니 그의 뜻대로 둘 수밖에 없었다.
옆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여인은 크게 놀랐다.
그녀가 초롱초롱하게 눈을 빛내며 무언가 물으려는데 한립의 고개가 꺾이며 서늘히 소리쳤다.
“너희 셋은 어딜 가려는 게냐? 내가 너희를 가만히 보내줄 듯싶더냐?”
문장과 문사월을 공격하던 선사들은 결단기 선사의 등장에 당황하고 있었다. 한립이 그들을 신경 쓰지 않고 한담이나 나누니 슬그머니 내빼려 한 것이다.
그러던 중 한립의 불호령이 떨어지자 그들은 안색이 창백해져 각기 다른 방향으로 솟구쳤다.
동시에 온갖 빛의 방어법기와 법술을 펼쳤다.
“흥!”
한립의 얼굴이 싸해지며 손가락을 튕기니 눈부신 푸른 검 세 개가 튀어나가 그들 뒤를 쫓았다.
그들 몸을 가린 법기나 보호막이 종잇장처럼 찢어지며 주인의 비명과 함께 종적을 감추었다. 선사들은 물론이고 법기마저 깨끗이 사라진 것이다.
여인과 문장은 한립이 손짓 한번으로 흑룡회 선사를 멸하는 것을 보더니 눈에 경외감이 어렸다.
이때 한립도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하고 있었다.
청원검망들이 겉보기엔 별 것 아닌 듯 해도 상당한 내력을 품고 있었기에 축기기 선사들을 한 번에 처리한 것이 상당히 흡족했다.
보아하니 수행이 늘수록 청원검망의 위력도 쓸 만 해지는 듯 했다. 한립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돌연 문장을 향해 물었다.
“그러고 보니 이 소저와 같은 성 씨인데 설마….”
“예, 제 딸아이 됩니다.”
한립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럼 저도 축하드립니다. 사월 선사가 어린 나이에 벌써 축기기에 이렀으니 훗날 금단을 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겠습니다.”
문장도 자부심을 드러내며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사월은 저의 자랑입니다. 겨우 스무 살에 축기에 성공했으니 저도 딸아이에게 거는 기대가 큽니다. 전 더 이상 진보가 전혀 없으니 딸아이라도 더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랄 뿐이지요.”
그가 문사월을 보는 눈빛에 애정이 넘쳐흘렀다. 한립은 다시 한 번 여인을 살펴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자질이 남달랐던 것이다.
이후 한립과 문장은 서로의 지난날에 대해 간략히 이야기했다.
비록 상대와 깊은 인연은 아니었지만 오래 전에 알던 지인을 만나는 것은 유쾌한 일이었기에 한립은 기분이 좋았다.
문장은 평범한 자질을 지닌 수도자로서 난성해를 살아온 이야기를 했다.
그는 한립과 만나고 얼마 후 사부가 고령으로 세상을 떠나고 홀로 괴성도에서 수십 년을 지내며 간신히 축기에 성공했다고 한다. 이후 온갖 섬을 떠돌며 경험을 쌓다가 묘음문 제자였던 여인을 마음에 품어 결국엔 묘음문 외문 제자로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묘음문의 온갖 업무를 맡아 처리하던 나날이 지나고 문사월이 태어났으나 그의 부인은 얼마 지나지 않아 큰 병으로 죽었다. 그리고 다시는 혼인을 하지 않고 혼자서 문사월을 키웠다. 그렇게 문사월도 자연히 묘음문 제자가 된 것이다.
이야기를 들으며 한립은 몇 번이나 탄식했다.
자신의 이야기는 상대의 것에 비해 너무 단출했던 것이다. 열심히 수련을 한 것 외에는 말할 것이 없었으니 쓴 웃음이 지어졌다.
마지막으로 한립은 두 부녀가 이곳까지 나와 다툼을 벌인 이유를 물었다. 그 물음에 문장은 크게 분노를 표했고 문사월의 얼굴도 어두워져 버렸다.
문장은 잠시 주저하더니 결국엔 입을 열었다.
알고 보니 문사월은 성인이 되어 전도유망한 청년 선사와 혼인을 해 함께 수련을 하는 반려가 되었다.
그런데 청년이 혼인 후 얼마 되지도 않아 결투 중에 죽으니 순식간에 문사월은 과부가 된 것이다.
이렇게 아리따운 문사월이 혼자가 되니 수많은 사내들이 눈독을 들였고 당장 남편이 죽었는데 다시 혼인을 서두를 마음이 없던 그녀는 연달아 여러 사내의 청을 거절하게 되었다.
그러자 어쩔 수 없이 묘음문 고위층 일부의 눈밖에 나버렸고 문사월은 항상 본 문과 맞서던 흑룡회 영역을 지나야 하는 위험한 화물운송을 임무를 맡게 된 것이다.
아비 된 입장에서 이를 두고 볼 수 없었던 그는 그녀의 임무에 따라나선 것은 당연했다.
그런데 분명 극비여야 할 운송 소식이 새어나가 흑룡회 선사들에게 쫓기게 되었고 방금 전의 일전이 벌어진 것이다.
만일 우연히 한립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어찌 되었을 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한립도 문장이 은연중 자신이 나서주길 바란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묘음문에 깊게 관여해 문파 내부의 일에 끼어드는 수고를 감수하기에는 상대와의 교분이 그리 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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