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elor Degree RAW novel - Chapter 231
231화. 허천전
잠시 머릿속을 정리한 한립이 문장의 눈을 보며 입을 뗐다.
“문 형도 묘음문 사람이니 아시겠지만 전 그저 명의상 장로에 불과합니다. 사월 선사가 고초를 겪는 것이 분명하다면 자령 선자에게 언질은 할 수 있겠지만 그녀가 말에 따를지는 알 수 없습니다.”
문장은 조금 실망했다.
하지만 그도 자신과 한립의 교분이 깊지 않으며 오늘도 옛정을 생각해 나서준 것이란 것을 알고 있었기에 원망하는 마음은 들지 않았다.
문장은 고마운 마음을 표했고 동시에 문사월도 한립에게 예를 취하려 했으나 한립이 웃으며 제지했다.
“사월 선사가 탁 우사의 제자라면, 어찌 그녀에게 이 일을 말하지 않은 것 입니까?”
의혹이 담긴 한립의 물음에 문사월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번 일을 분부한 것은 사부님의 친족입니다. 사부님 역시 제가 그 분과 혼인하길 원하셨기에 제게 화가 많이 난 상태시고요.”
말을 하는 여인의 얼굴이 너무 처량하고 고운 터라 한립도 잠시 시선을 빼앗겼다. 그는 더 쳐다보지 못하고 문장에게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럼 전 다른 일이 있어 함께 돌아가지는 못하겠습니다.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한립의 말에 문장은 몇 마디 감사의 말을 더했다. 그에게 미소를 지어준 한립은 바로 푸른 빛 줄기로 변해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가 사라진 지 한참 후에도 부녀는 말이 없었다. 그러다 문사월이 불만에 찬 얼굴로 문장을 보았다.
“아버지, 어째서 한 장로님과 아는 사이라고 이야기 안 해주셨어요? 들어보니 결단에 성공하시기 전부터 아는 사이인 듯 한데 이야기 좀 해주셔요.”
문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와 한 선배는 지나가다 몇 번 마주친 사이라 교분이랄 것도 없었다. 게다가 내가 만났을 때는 나와 수행이 비슷했었지. 그런데 공봉당에 돌연 한 선배의 화상이 걸렸으니 얼마나 놀랐겠느냐? 내가 알던 그 선사가 결단에 성공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아 나도 며칠 동안 마음을 다 잡을 수 없었다. 게다가 본 문의 장로가 되다니 더욱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문장은 한립과 마주쳤던 기억이 떠올라 말을 멈추었다. 문사월은 생각에 잠긴 아비를 보며 묵묵히 기다렸다.
말소리가 없어지니 바람 부는 소리만이 주위를 채웠다.
1개월 후, 끊없이 펼쳐진 광활한 해역에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시간을 두고 선사들이 날아와 신이 나서 하늘 높이 치솟았던 것이다.
공중엔 놀랍게도 웅장한 규모의 궁전이 떠 있었는데 백 장은 될 법한 높이에 전체가 하얀 옥으로 지어진 정교한 궁전은 은은히 광채를 뿜어냈다.
또한 그 주위를 두꺼운 금색 보호막이 뒤덮여 천 장 높이에 떠 있었는데 어떤 선사든 가볍게 보호막을 통과해 궁전 안으로 들어갔다.
푸른빛이 날아들어 궁전 아래의 해역에서 멈춰 섰다. 푸른빛이 사라지자 지도를 들고 있는 한립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는 의혹에 찬 시선으로 지도와 주변을 번갈아 보았는데 바다 위에는 텅 비어 있었다. 아무리 지도를 뚫어져라 쳐다봐도 아무런 수확도 없었다.
한립의 의문은 더욱 커졌다. 그때 돌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그는 고개를 들어 위를 쳐다보았다.
“허!”
그제야 하늘 높이 떠있는 궁전을 발견하고는 그는 깜짝 놀랐다. 넋을 잃고 궁전을 바라보던 한립이 결국은 정신을 차리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다가 돌연 안색이 변해 푸른빛을 번뜩이며 종적을 감추었다. 잠시 후, 붉은 구름 같은 것이 빠르게 날아오르더니 한립이 종적을 감춘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멈춰 섰다.
붉은 구름이 흩어지자 붉은 머리의 노인이 나타났고 그 역시 같은 비단천을 쥐고 있었다.
노인은 지도를 보더니 주저 없이 하늘로 시선을 옮기고는 희색을 드러냈다. 그는 생각할 것도 없이 붉은 구름으로 변해 하늘로 치솟았다.
노인의 몸에서 하얀 빛이 분출되고 금색 보호막이 사라지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한립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립은 눈썹을 끌어올렸다. 그가 7, 8일 정도 끈기 있게 기다리니 두 명의 결단기 선사가 동일한 지도를 쥐고 궁전으로 들어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제 한립이 나설 때였다. 그는 바로 금빛 보호막으로 다가가 그 앞에서 지도를 손에 쥐었다. 그가 지도에 영력을 주입하자 하얀 빛이 일어나며 한립을 감싸 안았다.
이후 가볍게 앞으로 걸어가자 마치 아무 것도 없다는 듯 보호막을 지나갈 수 있었다. 그는 곧바로 다시 궁전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입구에 다다르자 십여 장 높이에 허천전(虛天殿)이란 글자가 고대 문자로 적혀 있었다. 그 글자는 거대할 뿐만 아니라 한 획 한 획이 날카롭기 그지없었다. 조금 오래 올려다보고 있자니 눈이 다 얼얼했다.
그는 이를 악물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니 더욱 어안이 벙벙해졌다. 눈앞에 아주 곧은 통로가 있었는데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었고 협소한데다가 옥으로 만들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폭은 좁았으나 높이는 높아 그 안을 지나는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미간을 찌푸린 한립이 의식을 퍼뜨리려다 안색이 변했다.
의식이 곳곳의 벽과 맞닿는 순간 어김없이 튕겨 나와 궁전 전체는커녕 통로조차 탐색할 수 없었다. 그는 다시 옥으로 된 벽을 자세히 관찰했다.
벽에는 미세한 빛이 번들거렸는데 금제가 걸려 있는 듯 했다. 한립은 손을 뻗어 옥으로 된 벽을 더듬어 보았다. 금제의 종류나 용도는 알 수 없으나 거기에 담긴 헤아릴 수 없는 영력이 그를 놀라게 했다.
“……”
한립은 손을 거두고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다시 걸음을 옮길 때 그의 두 눈은 조용히 사방을 살피고 있었다.
금제가 걸려 있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숨어 습격할 걱정이 없다는 말이 었으니 대담히 앞으로 향한 것이다. 이 통로는 정말 한참을 지나서야 끝이 보였다.
출구에서 푸른빛이 새어 나왔다. 한립은 번뜩 정신이 들어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이후 놀라운 광경이 나타났다. 푸른 빛 속에 뜻밖에도 거대한 대청이 있었던 것이다.
대청의 면적은 거의 삼, 사백 장은 되어서 수천 명이 들어가도 여유가 있을 것 같았다. 더욱 기이한 것은 대청에 균일하게 세워진 수십 개의 거대한 옥기둥이었다.
옥기둥은 여러 명이 팔을 벌려야 겨우 감싸 안을 정도의 굵기였고 진귀한 요수들이 정교하게 조각돼 살아 움직이는 듯 했으며 수십 개가 같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 기둥에는 수십 명의 선사들이 모여 있었는데 몇몇을 제외하고는 1인당 한 개의 기둥을 차지하고 다른 이와 대화도 나누지 않고 각자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
이때 한립이 들어오자 일부 선사들이 지겹다는 시선을 보냈는데 그 중 몇몇은 놀란 기색을 드러냈다.
한립 역시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 몇몇이 모두 아는 얼굴들이었다.
다른 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헤어진 지 얼마 안 된 현골 상인도 있었다. 그도 대청 한 쪽에 가부좌를 하고 한립을 쳐다보는 것이 조금 놀란 듯 했다.
다른 기둥 뒤에 서있던 여인도 한립을 보고 넉시 나간 듯 했다. 그녀는 바로 묘음문의 자령 선자로 곁에 청삼을 걸친 사내와 함께 있었다.
사내는 자령 선자의 기색을 보고 자령 선자가 보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 대상이 젊은 사내라는 것을 알고는 눈에 한기가 돌며 자령 선자에게 무언가를 묻는 듯 했다.
사내의 물음에 자령 선자는 웃으며 무언가를 속삭였다. 아마 한립의 신분을 밝히는 듯 했다. 한립은 그런 남녀의 행동에 신경 쓰지 않고 다른 쪽을 바라보았다.
어딘가에서 악의를 지닌 시선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주위를 살펴보자 어떤 노인의 분노한 눈빛과 마주했다.
한립도 상대를 알아보고 몰래 움찔했다. 상대는 여섯 전각 묘 장로였다.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그가 아직도 자신에게 이를 가는 모습을 보니 아마 죽은 고 장로와 교분이 깊었던 모양이었다.
뜻밖의 조우에 한립의 가슴이 뛰었으나 그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를 바라보던 시선을 거두고 고개를 돌려 다른 선사들을 살피니 나머지는 모두 낯선 인물들이었다.
한립은 잠시 뜸을 들이다 결국 푸른빛을 지나 대청 안으로 들어갔고 다른 사람들처럼 옥기둥을 하나 골라 그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이후 안면이 없는 선사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대청 안에서는 금제 때문에 의식을 퍼뜨릴 수가 없어 다른 이의 수행을 알아낼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대다수가 결단기 이상의 수사들이었고 심지어 원영기 노괴들도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품으니 자연히 다른 이들에게 시선이 쏠렸다. 잠시 후, 그는 원영기 수사로 판단되는 선사 둘을 찾아냈다. 한 명은 황색 장포를 입은 하얀 눈썹의 마른 노인이었다.
그는 한 손을 등 뒤로 하고 다른 한 손으로 꽤나 낡은 서책을 읽으니 정말 학자 같은 분위기를 냈다. 그리고 다른 한 명은 흰색 치마를 입은 부인으로 전신에게 뼈를 시리게 하는 한기를 내뿜어 다른 이의 접근을 차단하고 있었다.
그녀는 얼음장 같은 표정으로 검은 장검을 닦고 있었으며 한립이 들어올 때도 눈길을 주지 않았다. 다른 수선자들도 느긋한 척 하고 있었지만 이 두 사람만은 정말 긴장감이 없어 보였다.
게다가 대부분의 선사들이 그들을 두려워하는 기색으로 보아 원영기 선사일 확률이 높다. 물론 그 둘을 제외한 다른 선사들도 얕잡아 볼 수는 없었다.
그 한 예로 현골 상인이 있지 않은가!
저 마두의 수행은 겉으론 결단기 후기로 보였으나 동급 선사와 겨루면 그를 압도할 것이 분명했다. 원영기에 가깝다 볼 수 있었다.
또한 다른 이들 중에도 수행이 높은 이가 없다고 누가 단언할 수 있겠는가? 이런저런 생각을 할수록 그는 더욱 신중해졌다.
일단 이들이 여기 모인 진짜 이유도 몰랐다. 친목도모를 위해 모였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던 것이다.
어쨌든 비단 손수건과 허공에 부유하는 궁전까지 모든 것이 신비롭기 짝이 없었고 원영기 선사까지 모일 정도면 그들을 유혹할 만한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이곳에서 무슨 일이 생길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러나 한립 만이 아무것도 모른 채 이곳에 있었다.
지금은 그저 눈치를 보아 움직여야 할 듯 했다.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는데 돌연 귓가에 현골 상인의 전음이 전해졌다.
“네 녀석도 허천전 지도를 지니고 있을지 몰랐구나. 이번 보물찾기에서 나와 합심해 움직이는 것이 어떻겠느냐?”
‘보물? ’
보물이란 글자가 귓속을 파고드니 이곳에 오기로 한 것이 다행스럽게 여겨졌다. 하지만 여전히 평정을 유지한 채 반문했다.
“어떻게 합작을 하시려는 지 듣고 싶습니다만.”
그가 바로 거절하지 않자 현골 상인이 신이 나 무슨 말을 하려는데 입구 쪽에서 인기척이 들리며 두 선사가 들어왔다.
한립과 현골 상인 모두 그 둘을 보고 안색이 급변했다. 한립은 그나마 나았으나 현골 상인은 온 얼굴이 일그러져 피라도 토할 듯 분노가 어렸다.
다행히 현골 상인도 만만한 인물은 아니었다. 이런 표정은 정말 찰나에 사라져 그는 다시 원래의 평온한 얼굴로 돌아와 있었다.
막 대청에 들어온 두 선사도 현골 상인의 이런 변화를 눈치 채지 못했다. 한립은 두 사람을 보고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두 사람 중 하나는 뜻밖에도 극음도 소도주 오축이었다.
그 옆에 처음 보는 낯짝이긴 하나 늙고 눈이 찢어진 중년 수사의 신분을 짐작한 한립은 이곳에 온 것이 후회되기 시작했다.
중년수사가 오축을 데리고 대청에 들어 서늘한 눈빛으로 사방을 훑어보았다. 그의 시선이 얼굴이 노르스름한 선사에게 멈추더니 냉소를 지었다.
“큭.”
노란 얼굴의 선사는 얼굴이 흙빛이 되어 몸을 떨더니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곧게 몸을 세웠다.
“아주 잘됐구나.”
중년인은 냉소를 머금더니 이번엔 한립을 쳐다보았다. 그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하자 한립은 한기가 들었다. 겉모습은 태연했으나 좌불안석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한립의 표정이 묘해졌다.
중년인이 자신을 보는 얼굴에서 감출 수 없는 기쁨이 드러났던 것이다. 물론 순식간에 사라지긴 했으나 그를 주시하던 한립은 알아챈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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