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elor Degree RAW novel - Chapter 31
31화. 담판과 화기(火起)
한립은 심도 깊은 관찰과 각종 자료 그리고 법술에 관한 전술 등이 담긴 서책을 찾아보고서야 알 수 있었다. 수도자들이 사용하는 법부는 보통의 종이나 안료로 쉽게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수도자들은 어떤 재료를 이용해 특수한 방법으로 법부를 만들기 때문에 그것 없이는 주술이나 수결에 결점이 없어도 법술이 성공할 리 없었던 것이다.
구물술 역시 같은 원리였다. 이 구물술 역시 수도자들이 사용하는 특정한 물품이 있어야 가능했다.
그래서 한립은 문 대인의 방에서 인혼종(引魂鐘)이나 칠귀서혼대법(七鬼噬魂大法)에 쓰인 일곱 자루의 은색 검과 같은 희귀하고, 괴상한 물건들을 사용했지만 역시 술법은 실패하고 말았다.
한립은 이에 크게 실망했는데 보아하니 구물술에 다른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정신부나 구물술에 필요한 물건들이 준비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나자, 한립은 더 이상 마음을 크게 쏟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이 익힌 무공의 비술과 법술을 결합해 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립은 바로 수련에 매진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느 정도의 성과를 이룰 수 있었다.
그는 결국 어풍결을 자신의 몸에 펼쳐 다시 라연보를 운용하는 법을 배웠다.
이 둘 사이의 균형과 조화가 중요했는데 빠른 전환이 어려워 회피능력이 부족한 어풍결과 이동시 체력 소모가 심한 라연보의 결점을 서로 보완할 수 있었다.
이동하는 동안 전광석화같이 움직여 다른 사람은 그림자조차 쫓기 어렵도록 몸놀림이 신출귀몰 해졌다.
두 술법이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한립은 화탄술(火彈術)에도 자신의 독창적인 수법을 가미했다.
화탄술은 작은 화구(火口)가 나타나면 자신의 법력을 이용해 그 화구를 쏘아 적을 죽이는 수법이다.
그는 법력에 의지해 화구를 발사하는 것은 속도가 너무 느리다고 생각했다. 강호에서의 싸움에서는 화려하지만 현실에 맞지 않았다. 그래서 한립은 불꽃이 자신을 태우지 못한다는 특성을 이용해, 손에 쥐고 날카로운 칼처럼 사용하려 계획했다.
그는 이제 극한의 경공법과 고온의 화구를 동시에 활용하면, 어떤 고수라도 해치울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들었다.
이제는 정말 남주로 독을 해독하러 가도 될 듯했다.
이 때 한립의 장춘공 역시 매일 삼켜대는 영약 덕분에 겨우 칠성에 올라 그의 법력을 크게 증진되었다. 하지만 법술을 행하는 것이나 법력을 이용해 상대와 싸우는 기술을 따진다면 임자동에 비할 바는 못 되었다.
어쨌든 임자동은 일족에 속해 있을 때부터 법술 수련을 체계적으로 받아 위로는 장년배들이 지도를 해주고, 아래로는 동문들끼리 서로 논의를 하였으니, 주먹구구식으로 독학을 하는 한립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그는 원래도 이런 저급한 법술 몇 개를 익힌다고 진짜 수도자의 상대가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게다가 지금 그가 상대해야 할 적들은 모두 속세의 강호인들이 아닌가. 그가 구실을 찾아 칠현문을 떠나려는데, 아랑단이 갑자기 평화 교섭을 하자는 제안을 해왔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칠현문 내에서는 혹시라도 어떤 음모라도 꾸미는 것은 아닌지 의심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최근 얼마 동안 아랑단과의 전투에서 칠현문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유리한 정황에서 어찌 갑자기 교섭을 청한단 말인가?
칠현문의 사람들은 교섭에 동의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으로 나뉘어 서로 목소리를 높였다. 려비우는 단호히 교섭을 반대하는 인물 중 하나였다.
양쪽의 의견이 팽팽했기에 결론나지 않았다. 결국에는 일단 교섭에 나가 상대방의 조건을 들어보고 너무 과분하지 않으면 교전을 멈추고, 만약 너무 지나친 조건을 들고 나오면 투쟁을 계속하자는 결정이었다.
이런 모호한 결정에 양쪽으로 갈라졌던 사람들은 만족하지 못했지만, 가장 합리적인 절충안이었기에 그렇게 결론이 났다.
* * *
칠현문과 아랑단이 몇 번이나 협상을 한 끝에 낙사파(落沙坡)란 곳의 경계 부근에서 담판을 짓기로 정해졌다.
아랑단은 꼭 쌍방의 우두머리가 참가해서 담판을 지어야 한다며 강경한 태도를 취했다. 이 조건에 대해 칠현문에서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그것은 사실 매우 정상적인 교섭조건이었기 때문이다.
칠현문 쪽에서는 기껏해야 부문주 정도를 파견할 것이고, 상대 역시 이에 걸맞게 부방주를 보내서 서로 체면치레를 할 것이란 이야기였다. 이렇게 담판의 구체적인 일자까지 일사천리로 정해지고, 당일에는 백여 명의 교섭단을 파견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상대가 회담일에 매복과 같은 일이라도 꾸밀까 봐, 칠현문 쪽에서는 회담에 참여할 인원과 그 후속조치에 대해 면밀하게 준비를 마쳤다.
교섭단은 칠현문의 2인자로 손꼽히는 오 부문자가 인솔하고 백여 명의 고수들로 이루어졌다. 대다수가 호법, 공봉 등의 핵심 인물이었으며, 몇몇 장로와 당주와 같은 인물들이 이들을 따라가 감독을 맡기로 하였다. 정말 막강한 구성이었다.
이렇게 고수들로만 꾸려진 대열이라면 아랑단의 정예집단이 나선다 해도, 그들의 걸음을 막을 수 없을 것이라 자신만만해했다.
만일 어떤 불미스런 사건이 생긴다 해도 고강한 무공을 펼쳐 신속히 적의 포위를 뚫고 자신의 진영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었다.
그 후 그곳에서 몇몇 혈인당(血刃堂)의 정예들이 대기하고 있어 퇴로를 확보할 계획이었다.
려비우는 자원하여 그 담판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위험한 장소일수록 더욱 구미가 당겼음에 분명했다. 교섭단은 담판일이 임박하자 하산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오고 가려면 적어도 수십 일은 걸릴 것이 분명했다.
한립은 담판이 성공하든 결렬되든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는 곧 이곳을 떠나 세상을 유람할 계획이었으므로, 칠현문의 흥망성쇠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다른 것에는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하여 교섭단이 떠나있을 동안, 침착하게 자신이 필요로 하는 약초들을 생산하면서, 동시에 진귀한 약초의 종자들을 거둬들여 훗날에 대비하기 시작했다.
한립은 교섭단이 돌아오면 정식으로 문주들에게 이별을 고할 결심을 굳히고 있었다.
만약 그들이 자신을 놓아주지 않으면, 그 역시 실력을 써서 그 집념을 철저히 꺾어주면 그만이었다.
사실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는 것이 가장 편한 방법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한립을 찾지 못하면, 자신의 가족들을 찾아가 귀찮게 굴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니 분명히 떠날 의사를 밝히고 자신의 실력도 한 수 드러내는 것이 필요했다. 이미 떠날 구실도 생각해 두었는데, 문 대인이 걱정돼 그를 찾아 떠난다고 할 생각이었다. 상대가 믿고 안 믿고는 상관없었다.
지금의 그라면 몇몇 문주들의 목숨이라도 원하면 쉽게 취할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한립은 이때까지만 해도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 * *교섭단이 본문을 떠난 지 나흘째 되는 저녁, 온 몸이 헤지고 먼지투성이인 녀석이 머리까지 산발을 해서는 그의 방으로 뛰어들었다. 그의 눈에는 핏발이 서있었고, 푸석푸석한 피부에 새하얀 입술로 간신히 쉰 목소리를 내었다.
“교섭단이 끝장났다. 오 문주가 죽고. 호법 공봉들도 죽었고, 장로들도 죽었어. 거의 전멸이다.”
‘삐익!’
한립이 그의 말에 일순간 멍해져 미처 반문을 하기도 전에, 별안간 산의 모처에서 날카로운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둥둥둥둥!’
이어서 둔중한 북소리가 그 뒤를 이었다.
‘댕~ 댕~ 댕~”
‘쿵쿵쿵쿵쿵쿵……’
각양각색의 경고음들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이어서 무수히 많은 함성과 비명소리가 들리더니 산 전체에서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 중에서는 병장기가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와, 노을산이 한 순간에 거대한 살육의 장소가 된 것만 같았다.
한립은 이야기를 더 듣기도 전에 몸을 날려 방 밖으로 나섰다. 사방을 훑어 발을 구르자 이미 가장 높은 거처의 지붕 위였다. 그곳에서 그는 신수곡 바깥의 상황을 살펴보았다. 그의 안색은 매우 어두웠다. 눈을 돌리는 곳마다 불길이 치솟고 있었으며, 그 아래로 사람들의 그림자들이 날뛰고 있었다. 도광이 번뜩이는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며 서로를 죽고 죽이는 소리, 경고음, 분노가 섞인 욕설이 가득 차 노을산에 울려 퍼졌다.
한립이 자신의 뒤편에서 바람소리를 듣자마자 고개도 돌리지 않고 물었다.
“려비우, 아랑단의 짓인가?”
“그래, 이렇게 치밀한 모략을 꾸몄을 줄이야. 교섭단이 거의 전멸할 뻔 했어.”
한립에게 소식을 전해 준 이는 바로 나흘 전 노을산을 떠났던 려비우였다. 지금 그의 목소리에는 분노만이 가득했다.
* * *
“그런데 저 놈들이 어떻게 본산의 외곽 초소를 돌파한 걸까. 분명 우리가 돌아오면서 길을 따라 경계를 강화하라고 알렸는데.”
려비우가 의혹을 품고 중얼거렸다.
“이런 대대적인 진격은 분명 오래 전부터 준비했을 텐데, 외곽을 수비하는 곳에 간자를 심는 정도야 간단한 일이지. 거기다 이 간자들이 길을 안내하니, 초소에 있던 이들은 소리 소문도 없이 당할 수밖에.”
한립이 담담히 설명하며 말을 이었다.
“허나 아랑단도 모든 분당을 치기란 어려울 터. 내 생각에는 각 당이 있는 봉우리를 포위하고 고수들의 힘을 모아 총당이 있는 낙일봉을 공격할 것 같아. 문파의 1인자만 잡거나 죽여도 다른 당들은 칠 것도 없이 무너질 테니 말이야.”
“그럼 이제 어쩌지? 낙일봉으로 가야 하나?”
려비우가 조급하게 물어왔다. 한립은 침묵했다. 그리고 잠시 후 몸을 돌려 려비우를 향해 가라앉은 목소리를 말했다.
“일단 말해 봐. 교섭단에 무수히 많은 고수가 있었는데 어찌 괴멸한 거지? 아랑단이 그렇게 능력이 뛰어날리 없잖아.”
그 말을 듣자마자 려비우가 얼굴에 핏대를 세우더니 자조적으로 대답했다.
“저들이 거대한 연발 석궁을 썼네. 게다가 더 강하게 개조를 한 군용(軍用)이었지.”
“군용 연발 석궁?”
“그래, 당시 우리가 본산을 출발하고 이틀 뒤 어느 목초지를 지나고 있었지. 아직 우리 영역을 벗어나지 않았기에 다들 긴장을 늦추고 있었네. 바로 그때 아랑단의 무리가 지면을 뚫고 나타났는데 모두 거대한 석궁을 든 채였어. 그들의 화살이 온 하늘을 뒤덮었네. 무공이 부족한 제자들은 그 자리에서 죽어 나갔고, 소수의 고수들과 운이 좋은 사람들만이 그 공격에서 살아남았지. 허나 그마저도 모두 부상을 입어 기세가 약해졌네. 나도 운이 좋은 사람 중 하나였어. 안 그랬다면 이 자리에 오지도 못했겠지.”
려비우의 눈에 아직도 화살비가 쏟아져 내리던 공포가 남아 있었다. 그것은 그에게 큰 충격을 주었음이 분명했다.
“화살이 쏟아진 후에는 아랑단의 고수들이 달려들어 엄청난 악전고투가 벌어졌는데 남은 이들은 살 기회를 찾기 위해 흩어졌다네. 역시 운이 좋았는지 적들의 눈에 난 반드시 죽여야 할 대상은 아니었던 모양이야. 날 쫓는 이들은 수도 적었고 실력이 떨어지는 자들이었어.
그런데 도망치는 와중에 보니 원래 칠현문의 사람들이 주둔하고 있어야 할 거점들이 모두 아랑단에게 넘어가 있는 게 아닌가. 아랑단 사람들이 곳곳에 숨어서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을 죽이려고 기다리고 있었네. 나도 거기에 걸려들어 죽을 뻔 했지만, 겨우 간자 한명을 잡아 다른 이들의 상황을 들을 수 있었네. 그는 오 문주와 장로들이 상대 고수들과의 싸움에서 이미 죽었다고 말했네. 나같이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 몇만 간신히 도망쳤다더군.
이 소식을 듣고 필사적으로 이곳을 향해 달려왔지. 그러다 우연히 그 지옥에서 벗어난 다른 두 명의 공봉을 만나 겨우 본산에 오른 거야. 공봉 둘은 바로 낙일봉으로 가 교섭단이 전멸한 소식을 전하러 갔고, 난 부상을 치료해야 한다는 핑계로 네게 온 거라네. 이제는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네. 어떡하면 좋겠는가?”
려비우가 단숨에 엄청난 이야기를 쏟아 놓고는 유감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한립은 그의 이야기가 끝나자 생각에 잠겼다.
산을 울리던 교전의 함성이 더욱 격렬해 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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