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elor Degree RAW novel - Chapter 38
38화. 악명을 떨치다
“이리 성의를 보이시니, 저도 체면 불구하고 받겠습니다.”
눈앞의 난쟁이가 손을 뻗어 부적을 잡으려는 순간, 한립의 안색이 돌변하여 난쟁이의 뒤를 향해 큰 소리로 소리쳤다.
“아니, 어르신께서 어쩐 일이십니까!”
이 소리에 난쟁이가 깜짝 놀라 부적을 쥘 겨를도 없이 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는 잠시 어리둥절했는데, 그의 뒤편에서 아무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제길!’
난쟁이가 속은 것을 깨닫고 고개를 돌리려는데 명치 부근이 뜨끈했다. 이어서 눈앞이 붉어지며, 온몸이 순식간에 거대한 불길에 사로잡혔다.
순식간에 난쟁이는 불에 타, 재로 변하고 말았다. 한립은 길게 숨을 내쉬며, 방금 화구를 발사한 손을 거둬들이고 있었다.
화탄술은 고도의 정신력을 요구하는데다, 압박감도 크기 때문에 절대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방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한립과 난쟁이의 대화는 너무 멀리 떨어진 탓에 정확이 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쟁이가 한립을 보자 두려워하며 무언가를 사정하는 기색을 보였다는 것, 그리고 최후에는 난쟁이가 고개를 돌린 틈을 타, 공중에서 화구를 만들어 그를 불태웠다는 것만 알 수 있었다.
가천룡은 속이 쓰리다 못해 죽을 지경이었다.
‘이게 도무지 무슨 일인가? 별 볼일 없는 칠현문 제자가 금광상인을 태워버리다니!’
안 문주는 자신의 허리에 찬 장검을 꽉 붙들고는 흥분된 눈빛으로 한립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립도 마음은 몹시 들떴다.
잿더미를 뒤적거리자 불길에 타지 않고 남아있는 물건들이 발견되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모두 세 가지였는데 부적, 영패(令牌) 그리고 서책 한 권이었다.
이 부적은 난쟁이가 금광조를 방출할 때 쓰던 것이었다. 비록 아직 법술의 구결은 몰랐지만, 한립은 속으로 기뻐 날뛰고 있었다. 이것이 지금 그에게 가장 필요한 물건이기 때문이다.
영패는 칠흑색의 삼각형 모양이었다. 한 쪽 면에 승선(升仙)이라는 글자가 금색으로 새겨져 있고, 다른 면에는 ‘령(令)’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었는데, 그 용도를 알 수 없었다.
서책은 화탄술에서도 타지 않고 남아 있는 것이, 보통 물건이 아닌 것이 분명했다. 한립이 그것을 펼쳐 몇 장을 넘겨보는데, 뜻밖에도 그건 족보였다.
진(秦) 씨 성을 가진 일족의 족보로 금광상인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난쟁이가 엽가의 사람이라더니, 족보는 진 씨 것을 가지고 다니네. 설마 엽가 누군가의 사생아라도 되는 것인가? ’
* * *
한립은 그것들을 잘 챙겨넣고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몸에 묻은 먼지를 털며 묘한 표정으로, 가천룡과 아랑단 방원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너희가 스스로 경맥을 끊겠느냐, 아니면 이 몸이 나서서 모두를 저승으로 보내주어야겠느냐?”
말투는 아주 점잖았지만, 그 속의 담긴 의미는 분명하게 전해졌다. 이 말은 들은 가천룡은 가슴이 서늘해 지면서 온 몸이 얼어버리는 듯했다.
그는 스스로에게 쉼 없이 냉정을 찾으라고, 방법이 있을 거라고 외쳤지만, 이마에는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그가 사방을 돌아보니, 다른 이들도 이미 안색이 하얗게 질려서, 공포에 떨고 있었다.
이미 죽음을 목전에 둔 표정으로, 어찌 할 바를 모르는 꼴들을 보니, 투지라고는 하나도 남아있지 않아 보였다.
낙담한 가천룡이 다시 한립이 서있는 칠현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죽일 놈의 안 문주가 이미 자신을 죽은 사람 보듯이 비웃고 있었고, 다른 사람들도 불구대천의 원수라도 보는 듯한 눈빛들이었다.
‘이렇게는 안 돼. 절대 여기서 이렇게 죽을 순 없어! 반드시 살아남아서 대계를 완성할 것이야.’
그들을 보고 정신이 번쩍 든, 가천룡의 얼굴에 광기가 어리기 시작했다.
“여봐라! 철위들은 석궁을 준비하고, 나머지는 암기로 그들을 엄호한다!”
가천룡이 돌연 내력을 실어 웅장한 함성을 질러 명을 내렸다. 역시 가천룡은 일방의 주인다웠다. 그의 내력이 실린 함성이 사투장 내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던 이들을 일깨웠다.
아랑단의 방원이든 중소문파의 고수들이든 할 것 없이, 다시 한 번 심기를 다지고 사생결단의 각오를 보였다.
한립이 가볍게 콧방귀를 뀌고는 두 손을 뒤로 한 채, 가천룡을 향해 천천히 다가섰다.
‘아직 쓴 맛을 덜 봤구나.’
한립이 씁쓸히 중얼거렸다.
“쏴라!”
상대가 석궁의 사정거리 안에 발을 들이자, 가천룡이 주저 없이 명을 내렸다. 동시에 수 백 개의 강철로 된 화살들이 한립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런데 그 때 깜짝 놀란 만한 일이 벌어졌다. 가천룡이 볼 때 그 청년은 날아드는 화살비에도 전혀 두려운 기색이 없이 빙그레 웃더니, 이어서 모습이 흐릿해진 것이다. 그리고 그를 향했던 화살들이 마치 아무것도 없는 듯이 그를 통과해 나갔다. 그리고는 모두의 눈앞에서 종적을 감추어 버렸다.
가천룡이 안색이 파리해져 수하들에게 조심하라 소리를 치려고 하는데 , 그 앞에 한립이 나타났다. 이제는 가천룡의 명을 기다릴 것도 없이 화살을 내뿜었다.
거기다 각종 암기들이 더해져 엄청난 수의 무기가 한립에게 쏘아졌다. 그 결과 이들은 또 다시 어안이 벙벙해질 수밖에 없었는데, 그들의 눈앞에서 또 한 번 상대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가천룡의 공포심이 극에 달했을 때, 등 뒤에서 처절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니, 자신의 심복이나 같았던 철위 둘이 불덩이가 되어 있었고, 순식간에 사라졌던 청년이 그들에게 손을 대고 있었다.
그가 손을 떼는 순간, 그들은 이미 재가 되어버렸다. 가천룡이 청년의 손에서 어렴풋이 홍광이 번뜩이는 것을 보았으나, 어떤 무공인지 알 수 없었다.
한립이 쥐고 있는 홍광은 당연히 ‘화탄술’의 화구였다.
한립의 몸에서 법력이 흘러나오자 다소 작아졌던 화구가 원래의 크기를 되찾았다. 그러고는 다시 사라졌다가 군중들 틈에 나타났다.
그가 이리 번쩍, 저리 번쩍하는 동안 계속 희생자가 나왔다. 그가 상대의 몸에 손을 대기만하면, 바로 불길이 치솟아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져버렸다.
가천룡은 생기를 잃고 죽은 사람처럼 서 있었다.
짧은 시간에 그의 수하 중 절반이 죽어나갔다. 남은 이들도 모두 겁에 질려 사방팔방으로 도망쳤으나, 상대의 유령 같은 신법 앞에 모두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 이제 마지막 수하마저 몸에서 불길이 솟구치자, 가천룡의 온몸이 굳어버렸다. 이제는 자신 밖에 남지 않았다.
한립은 마지막 수하를 처리한 후 주저 없이 화탄술을 이용해 가천룡 마저 조용히 보내주었다. 그의 몸이 재로 돌아간 후 한립은 두 손을 털며 중얼거렸다.
“그러게 진작 알아서 했으면, 고통스러울 일도 없고 서로 좋잖아! 내가 나서게 하니까 화염에 당하는 거 아니야.”
* * *
한립이 고개를 들어 사투장 밖을 보니 모든 사람들이 핏기 없는 표정으로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그가 비검을 가로채는 것이나 금광상인을 기습한 것, 그리고 순식간에 가천룡을 포함한 수십 명을 재로 만들어 버렸다는 것은, 한립이 금광상인과 같은 선가의 고인(高人)이란 것을 알려줌과 동시에, 그가 인자하고 선량한 부류가 아니라는 것을 명백히 말해주는 것이었다.
그런 가운데 한립의 시선이 향하니 모두가 슬금슬금 시선을 피하며 감히 그를 똑바로 보지 못했다.
“아직도 안 꺼지고 뭐 하는 게냐. 설마 너희도 보내주길 기다리고 있는 게냐?”
한립이 아랑단을 향해 꾸짖었다. 그의 음성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낙일봉에 올라온 수천의 인파의 귀에는 천둥번개가 치는 듯했다.
“어서 가자고! 타 죽고 싶어?”
누군가 소리를 치자 아랑단과 나머지 중소 문파의 인물들이 정신이 번쩍 나서 앞다투어 산 아래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낙일봉을 벗어나는 길은 하나뿐이니, 인파로 인해 도망가다 밟혀 죽어간 이가 허다했다.
시간이 지나자 낙일봉이 텅텅 비었다. 칠현문의 제자들을 제외하면, 다른 어느 방파의 인물도 눈에 띄지 않았다.
안 문주는 이 놀랄 만한 상황에서도 기쁨이 찼다가. 불안감이 엄습했다. 한립이 손쉽게 칠현문을 구해 주었지만, 그의 엄청난 신술(神術)을 이용해 칠현문을 손에 넣을 수도 있는 일 아니겠는가.
그렇게 된다면 한립의 존재가 아랑단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런 생각을 하자, 가슴이 두근거리며 자기도 모르게 한립을 찾아 사투장의 중앙으로 시선을 던졌다.
“엇! 한 신의님께서는?”
안 문주는 또 다시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누구 한 의원님을 뵌 이가 있느냐?”
“전 모르겠습니다!”
“뵙지 못하였습니다!”
모든 이들이 고개를 저었다. 다들 이미 한립이 산 사람을 태워 죽이는 모습을 본 뒤라, 화를 입을까 감히 그를 쳐다보지 못하고 있던 탓이다. 게다가 그의 신출귀몰한 신법이라면, 그들 앞에서 감쪽같이 사라지는 일쯤은 누워서 떡 먹기나 마찬가지였다.
“찾을 것 없다. 방금 인파에 섞여 산을 내려가는 것을 보았으니.”
그때 안색이 좋아진 회색 의복의 사숙이 열려주었다.
“하산이요? 어디를 간단 말입니까?”
안 문주는 복잡한 심경으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가 심란한 마음으로 주위를 둘러보는데 시선이 한 사람에게 가 닿았다.
안 문주의 눈이, 반짝이며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는 것이 교활한 표정을 드러났다. 기이한 일을 겪고 흥분한 려비우는 이와 관련해 장수아와 이야기를 나누느라, 누군가 자신을 주시하는 것도 알아채지 못했다.
* * *
아랑단과 다른 중소방파 사람들은 노을산을 탈출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달려 칠현문의 영역을 벗어났는데, 안 문주는 문파의 일인자로서 칠현문을 지켜야하기 때문에 그들을 쫓지 못했다. 그날 이후 꽤 오랜 기간 동안 칠현문은 몸을 사리고 내실을 기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번 칠현문과 아랑단 간의 파란만장한 대전은 머지않아 수 천리 밖까지 퍼져나갔다. 강호의 정사에서도 의견이 분분했으며, 심지어 일반 백성들도 이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전해지는 이야기 속에서 한립은 불의 마귀로 등장해, 모두를 불태워 버리고 자신도 신선의 벼락을 맞아 죽어버렸다는 것이다. 신수곡에서 려비우에게 이 이야기를 들은 한립은 자신이 악귀로 여기는 것에 어이가 없어 한참 동안이나 말을 잃었다. 당연히 려비우는 너무 웃느라 허리를 펴지 못할 정도였다.
* * *
벌써 5일이나 지난 일이었다. 그날 밤 사람들 틈에 섞여 유유히 낙일봉을 빠져 나온 한립은 곡혼을 데리고 신수곡으로 돌아왔다.
그는 도착하자마자 신수곡 앞에 손님을 사양한다는 팻말을 내걸었다. 누구도 봐주지 않아 그날 밤에만 여러 명의 칠현문 고위 인사들이 그를 찾아 왔다가 그냥 돌아섰다.
지금은 한립의 위세와 명성에 불만을 표할 수 없는 일이니, 그저 얼마간 기다리다가 풀이 죽어 돌아간 것이었다.
그 후 며칠 간 한립은 검이 그려진 부적으로 구물술을 연습했다.
그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한립은 매일 해만 떴다 하면 구물술을 펼쳐 한 줄기 회광(灰光)으로 변한 부적을 공중에 빙글빙글 돌며 날아다니게 했다.
그의 전신의 법력이 떨어지면, 눈을 감고 운기조식을 하여 서서히 법력을 회복했다. 그리고 법력이 일정 수준 이상 차오르면 다시 구물술을 펼치는 일을 반복한 것이다.
3일간이나 쉼 없이 수련한 끝에 구물술을 운용하는데 필요한 요령을 어느 정도 깨우치고는 훈련을 마무리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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