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elor Degree RAW novel - Chapter 45
45화. 아름다운 부인들
이미 엄 씨는 안정을 찾아 겉으로는 어떤 표정도 드러내지 않고, 그가 던져 넣은 용의 형상을 한 반지만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그 뒤에 선 문채환은 새까만 눈동자를 빛내며, 한립을 호기심 가득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고, 전신에서 묘하지만 영민한 분위기가 풍겼다.
한립은 차분히 엄 씨 앞에서 예를 올렸다.
“사모님께 인사 올립니다.”
엄 씨의 눈에서 의아함이 스쳤는데, 한립의 평범한 외양이 의외였던 것이었다.
그녀는 바로 한립의 인사에 대답하지 않고, 조용히 왼손을 들어 자신이 지닌 반지와 한립이 가져온 반지를 살피기 시작했다.
엄 씨가 자신이 낀 반지를 빼서 다른 하나와 맞추어보니, 두 반지의 용 문양이 절묘하게 하나가 되어 흠잡을 곳이 없었다.
“그래, 진품이로구나. 부군의 친필 서신을 가지고 있느냐?”
그제야 엄 씨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지며 온화하게 물어왔다. 이에 한립도 대답 대신 준비한 서신을 건넸다.
그리고 한 쪽으로 물러나 일언반구도 없이, 고요히 엄 씨 부인의 표정을 살폈다.
* * *
서신의 내용은 한립이 이미 여러 번 살펴보았듯 간단했다.
이 서신을 가져온 한립이 문 대인의 관문제자이니 완전히 믿어도 되며, 문부가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던, 그가 해결할 것이라는 글이었다.
그리고 그가 문부의 평안을 되찾은 후에는 세 딸 중 하나를 골라 한립을 사위로 맞으며, 혼수로 난양보옥(暖陽寶玉)을 그에게 넘기라 했다.
끝으로 문 대인 본인은 중한 일을 처리하느라 아직 문부로 돌아올 수 없으니, 걱정하지 말고 있으라는 내용이었다.
비록 한립이 여러 번 서신의 내용을 살펴보았어도, 문 대인이 다른 방법을 통해 숨겨진 의미를 담아 놓았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래도 그가 남긴 서신을 가져온 것은, 하루 빨리 문부의 신임을 얻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지금 엄 씨의 일거일동을 살피며 이 넷째 부인이 서신을 읽다가, 갑자기 돌변해 문 대인의 복수라도 하려 하는 것은 아닐지 경계하는 중이었다.
다행히 엄 씨가 서신을 모두 읽고는 그저 얼굴을 찌푸리며 근심에 빠져들었다. 마치 결정하기 어려운 일을 앞둔 표정이었다.
“환아, 가서 둘째, 넷째 그리고 다섯째 어머니를 모시고 오거라. 어르신의 소식이 왔다고만 하고!”
살며시 고개를 돌린 엄 씨가 문채환에게 분명한 어조로 명령했다.
“예, 어머니! 바로 다녀오겠습니다.”
채환도 이 일의 심각성을 아는 듯, 얌전히 명을 받들었다. 다만 방을 떠나기 직전 한립을 향해 작게 웃음 지었는데, 그에게 흥미가 생긴듯했다.
“한립이라고?”
엄 씨가 고개를 돌리자, 다시 점잖고 우아한 표정으로 돌아와 있었다.
“예, 사모님.”
“내게 어찌 부군의 제자가 되었는지 말해 줄 수 있겠느냐.”
한립이 얌전히 답하자 엄 씨도 미소를 머금고 물었다.
한립은 찰나의 순간 머뭇거릴 뻔 했으나, 문 대인이 자신을 제자로 거둔 과정이야 딱히 숨길 이유가 없었기에, 천천히 자신이 선별된 사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8년 전 사부님께서는, 오래 전에 입으신 부상을 완쾌하지 못하신 채, 월주의 칠현문이 있는 노을산에서 은거 중이셨습니다. 그 때 마침 문파에 들어간 제가 사부님을 뵙게 된 것이지요…….”
한립은 자연스럽게 자신이 문 대인의 제자가 된 과정을 7할의 진실과 3할의 거짓을 섞어 설명했다. 결코 엄 씨가 알아선 안 될 정보는 빼거나 각색을 했다.
엄 씨는 그의 이야기에 이미 흠뻑 빠져들어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이렇게 되어 세 달 전, 사부님께서는 급한 일로 몸을 빼낼 수 없게 되셨습니다. 그러나 어르신이 문부를 비운 지 너무 오래 되어, 다른 세력들의 압박에 사모님들이 고생할 것을 염려해, 저를 먼저 하산시켜 문부로 가게끔 하신 것입니다.”
“부군에게 무슨 일이 생기셨기에 문부에 들리실 수 없었단 말이냐.”
한립의 긴 이야기를 들은 엄 씨의 입에서 한숨처럼 원망이 섞여 나왔다.
‘어찌 들르겠어! 문 대인이 죽인 지 벌써 이 년이나 지났는데.’
속으로는 중얼거리면서도, 겉으로는 황송한 표정으로 엄 씨의 물음에 답했다.
“저 같은 어린 제자에게 이야기를 해주시진 않았지만, 분명 매우 중요한 일일 것입니다.”
“흥! 네 사부가 우리에게 비밀을 지키라 명한 것은 아니더냐.”
한립의 모호한 답변에 엄 씨가 미묘한 표정으로 불만을 토로했다.
“절대 아닙니다!”
정말 의심이 많은 여인이었다. 그녀가 달갑지 않은 표정으로 다시 입을 떼려는데, 밖에서 소란스럽게 발소리가 울리며 방문이 열리기도 전에, 교태 가득한 목소리가 들렸다.
“사 매, 부군의 소식이라니 정말이야? 이 죽일 놈이, 한번 나가더니 십 년이나 우리 자매들을 독수공방을 시켜!”
한립은 그 간드러지는 목소리에 일순 멍해졌다가 깜짝 놀랐다.
“삼 매, 말조심 좀 해. 방 안에 다른 사람도 있잖니.”
다른 또 한 명이 조용히 화를 냈다.
“알죠, 어차피 서신을 가져온 이도 또 부군의 제자라면서요! 설마 또 사기꾼은 아니겠지. 오 매 네 생각은 어때.”
“그럴 리가요. 저희를 불렀다는 것만 봐도 거의 확실할 거예요.”
교태가 가득한 목소리가 웃으며 묻자 또 다른 음성이 들렸다.
“그도 그렇지! 사 매의 눈썰미야 나도 인정하는 바니!”
목소리에는 역시 웃음기가 어려 비꼬는 것인지 정말 상대를 칭찬하는 소리인지 알 수 없었다.
한립이 여인들이 대화를 들으며 슬쩍 엄 씨를 보니, 그녀도 이마의 손을 얹고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보아하니 저 요염한 목소리의 주인공이 엄 씨의 머리를 아프게 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방문이 열리며, 드디어 문 대인의 여러 부인들이 들어왔다. 그 뒤를 바짝 쫓아 문채환이 들어섰는데, 붉은 입술을 삐죽거리는 것이 화가나 보였다.
가장 앞서 들어온 이가 가장 용모가 수려하며, 두 눈에는 문인의 기운이 풍겼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 한립이 다음 젊은 부인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녀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한립은 충격을 받았다. 어찌나 화려하고 아름다운지, 그녀 외에는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였다. 심지어 낮에 본 문옥주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 문옥주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농염함이 있었다.
한립이 얼이 빠져있는데 자기도 모르게 차가운 기운이 단전에서부터 빠져 나와, 그의 머릿속을 휘돌며 그를 일깨웠다.
그렇게 정신이 번쩍 난 한립은, 크게 놀라 다시는 그 젊은 부인 쪽으로는 시선을 주지 않으며, 고개를 푹 숙여 상대의 눈을 피했다.
‘저 젊은 부인의 용모는 정말 나라와 백성을 도탄에 빠뜨릴 만 하구나. 보기만 해도 사람이 미혹되다니. 허나 저것이 미모 때문인지, 아니면 유혹의 기술을 익힌 것인지는 두고 봐야겠어.’
한립은 놀란 와중에도 냉철히 분석했다.
그 젊은 부인은 한립이 자신을 보고 처음에만 흐리멍덩해지더니, 바로 정신을 차려 길을 트는 모습에 놀랐다.
* * *
한립은 슬쩍 장춘공을 일으킨 후에야 마음의 안정을 찾고 고개를 들어 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이어서 들어오는 다른 젊은 부인에게 시선을 옮겼다.
이번에는 미모는 수려했으나 표정은 얼음장처럼 차가워, 다른 사람이 함부로 다가설 수 없게 만드는 인물이었다. 게다가 방에 들자마자, 서늘하게 한립을 주시하는 눈빛에서 높은 수준의 내력임을 알 수 있었다.
엄 씨는 그들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바로 의자에서 일어서 예를 갖추었다.
“이 제, 삼 제 오셨습니까. 오 매도 왔구나.”
“사 매, 너무 예를 차리네. 모두 한 가문 사람들인데 그럴 것 있어?”
가장 나이 많은 부인이 입을 떼기도 전에, 여우같은 목소리의 주인공이 붉은 입가를 가리며 웃음을 흘렸다. 그 모습에 한립이 다시 한 번 흔들릴 뻔 했다.
“제가 어찌 소홀히 하겠습니까. 먼저 상석에 앉으시지요.”
엄 씨가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자리를 먼저 들어온 여인에게 넘기고, 뒤로 물러나 다른 부인들 옆에 앉았다. 그리고 오 매라 불린 여인이 고요히 엄 씨의 맞은편에 자리했다.
부인들을 따라 방에 든 문채환은 조용히 자신의 어미 뒤로 가 섰는데, 눈알을 굴리는 것이 무엇을 생각하는 모양새였다.
“이 청년이 서신을 전한 이인가?”
“예. 서신에 쓰여 있기로 부군의 관문제자라 합니다.”
상석에 앉은 부인이 묻자 엄 씨가 한립을 향해 엄숙히 명령했다.
“이 분이 너의 이 사모님이시다. 인사 올리거라.”
“이(二) 사모님을 뵙습니다!”
한립이 기민하게 분부를 받잡고, 눈앞의 부인에게 절했다.
“일어나거라. 부군의 애제자라 하니, 앞으로는 이리 예를 차릴 것 없다.”
부인이 호의를 보이며 웃었다.
“이 분들이 너의 삼 사모, 오 사모가 되신다.”
“삼 사모님, 오 사모님을 뵙습니다!”
엄씨가 나머지 부인들을 지목하자, 한립이 인사를 올리고는 잠깐 머뭇거렸다. 자신과 겨우 몇 살밖에 차이가 안나보였지만, 그래도 몸을 숙여 예를 올렸다. 한립의 얼굴에서 의문을 읽어낸 엄 씨가 온화하게 설명했다.
“너의 삼 사모께는 비결이 있어 어려 보이시지만, 사실은 이 사모와 비슷한 연배시니라.”
한립은 엄 씨의 말에 몰래 고개를 끄덕였는데, 사실 그의 예상과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저 요염한 부인은 필시 특수한 비공(秘功)을 익혀 용모를 젊게 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마음을 쥐락펴락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이 제, 이것이 부군의 친필 서신입니다. 보시지요.”
엄 씨가 한립이 들고 온 서신을 다른 부인들에게 모두 보여 주었다. 마지막으로 오 부인 왕 씨까지 서신을 모두 읽고는 잠시 침묵이 흘렀다. 한없이 가볍기만 했던 삼 부인 류 씨 역시, 표정이 가라 앉아 본래의 활발하고 교태가 흐르던 표정을 감추었다.
그런 부인들의 모습에 한립의 마음이 불편했다. 서신의 어떤 부분이 그들로 하여금 이런 표정을 짓게 만든 것인지 파악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표면적으로 한립은 시종일관 한결 같은 기색을 보여, 부인들에게는 진중하고 믿을만해 보였다.
“한립, 네 사부의 갑작스런 소식에 나와 여러 사모들이 경황이 없으니, 일단 우리가 이야기를 좀 나누어야겠구나. 먼 길 오느라 수고가 많았으니 많이 피곤할 테지. 일단 문부에서 푹 쉬고 있거라. 내일 다시 부를 것이니.”
엄 씨의 말에서 말할 수 없는 위엄이 서려있었다.
“네, 알겠습니다!”
한립이 고분고분하게 그녀의 명을 받들었다. 완전히 사문의 전배에게 순종하는 모습이었다. 다른 부인들도 엄 씨를 제지하지 않는 것이, 모두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환아, 한 사제에게 저택 뒤채의 방을 내주고 쉴 수 있도록 도와주거라.”
“헤! 알겠어요, 한 사형! 따라와요.”
문채환이 눈을 깜빡이며 코를 찌푸리는 것이 처음에는 약간 불쾌해하는 듯싶더니, 다시 무슨 생각인지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응했다.
“네 사형을 귀찮게 말거라! 안 그랬다가는 가법(家法)에 따라 벌할 것이야.”
“예. 알았다고요!”
엄 씨가 이미 딸의 속마음을 꿰뚫어 보고는 미리 경고를 하자, 소녀가 다시 입을 비죽거리며 마지못해 대답했다. 문채환이 풀이 죽어 먼저 방을 나섰고, 한립이 아무 표정 변화 없이 그녀 뒤를 따랐다. 한립과 문채환이 방을 나서고, 한참 후에야 엄 씨가 먼저 입을 떼었다.
“오 매, 미안하지만 주위를 살펴주게. 그 녀석이 몰래 다시 돌아와 있을 수 있으니.”
냉담한 표정의 왕 씨가 바로 말없이 방을 나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사 매, 그 녀석을 너무 경계하는 거 아냐? 그럴 능력이나 되겠어?”
삼 부인의 아름다운 얼굴에 의문이 어렸다.
“삼 제, 눈치 채지 못하셨나요. 부군께서 비범한 아이를 제자로 맞으신 듯합니다. 문부의 경비가 본래 삼엄한데다, 이곳은 특히 제가 가문의 중대사를 처리하는 곳이라 이곳의 경계는 더욱 치밀합니다. 지키는 이가 적어도 스무 명이 넘는 곳을 소리 소문 없이 숨어들어와 발각되지 않았으니 보통 고수가 아닌 것이 분명하지요.”
엄 씨가 담담히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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