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elor Degree RAW novel - Chapter 65
65화. 잡무
엽 사숙은 한립을 데리고 이파리 모양의 법기를 딛고 날아올라 수풀이 울창한 산봉우리 중 하나에 도착했다.
그들이 법기에서 내리자 눈앞에 조밀한 단층집들이 펼쳐졌는데, 모두가 바위를 쌓아 만든 초라한 건물들이었다.
게다가 어느 방이든 사람의 그림자라고는 보이지 않아 전체가 비어있는 듯했다. 이를 본 한립은 갑자기 울적해졌다.
“놀랄 것 없다. 이 방들은 보는 바대로 비어있다. 원래는 막 입문한 제자들의 거처로 이용되어 그들이 일정 수준에 이르면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겨 주곤 했는데, 지금이 딱 10년째 되는 교체기라 아직 입문한 제자들이 없어 모두 비어있는 것이다.”
왕 사숙이 한립의 얼굴에 떠오른 의혹을 보고 담담히 설명해 주었는데, 한립의 마음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왕 사숙은 한립을 데리고 방들 사이를 이리저리 누비며 돌아다니다가 다른 건물들보다 훨씬 큰 돌집 앞에서 멈춰 섰다.
“임 사제, 문 좀 열어보게. 신입 제자를 데리고 물건을 받으러 왔어!”
‘우르릉’
커다란 왕 사숙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석문이 자동으로 들어 올려졌다. 이를 확인한 왕 사숙이 고개를 숙이고 안으로 들어가자, 잠시 망설이던 한립도 그의 뒤를 따랐다.
방의 정 가운데에는 커다란 상이 놓여있었고 그 뒤에 희색의 장삼을 걸친 머리카락이 덥수룩한 노인이 앉아있었다.
방에 들어온 왕 사숙과 한립을 신격도 쓰지 않고 온 신경을 집중해 빛나는 소도를 손에 쥐고, 손바닥만 한 황목을 조각하고 있었다.
이에 왕 사숙이 미간을 찌푸렸다가 바로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와 노인의 작업을 방해하지 않고, 다른 의자 하나를 찾아 앉아버렸다.
노인이 조각을 마치기를 기다리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이런 상황에 한립도 눈을 껌뻑이다가 그저 왕 사숙의 뒤로가 공손한 자세로 서서 노인을 기다렸다.
노인의 손이 날듯이 움직이며 톱밥이 허공을 날리자, 얼마 후 노인의 손에 마치 살아있는 듯 정교한 원숭이 한 마리가 생겨났다.
“임 사제가 조각하는 걸 본지도 꽤 되었군. 그 사이에 실력이 더 늘었어.”
“별거 아닙니다. 너무 한가롭다 보니 시간이나 좀 때우는 것이지요. 그런데 왕 사형이 어쩐 일로 이 누추한 곳에 오셨을까요?”
말은 이렇게 하지만 이미 시선이 한립을 훑고 있는 것이 사정을 대강 알고 있는 듯 했다.
“뭐 큰일은 아니고, 사제에게 신입 제자가 지녀야 할 물품을 받으러 데리고 왔을 뿐이네.”
“이미 승선대회를 통해 받은 신입제자들은 모두 다녀갔는데요. 어찌 한 녀석이 더 있는 것입니까? 게다가 자질이 이렇게 부족하다니, 설마 종 장문인의 안목이 그새 나빠진 것입니까?”
노인이 한립이 있는데도 눈 하나 깜짝 않고, 이런 말들을 쏟아냈다. 게다가 말투에서도 장문인을 공경하는 태도가 보이지 않았다. 이 이야기를 듣고 있는 한립이 난감해 어쩔 줄 모른 것이야 당연했고, 왕 사숙도 쓴 웃음을 지었다.
사실 임 사제는 예전의 일로 현 장문인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고 있음을 왕 사숙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한립처럼 한참 아랫배분의 제자 앞에서 상대의 말꼬리를 잡고 무어라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는 그저 헛기침을 몇 번 하고는 화제를 바꾸었다.
“사제, 한 사질은 승선령을 들고 황풍곡을 찾은 이일세. 자질의 문제를 떠나, 본 문이 맺은 약속을 지키느냐 마느냐의 문제인 것이지.”
“승선령!”
노인은 정말 의외였던지 다시 한 번 한립을 자세히 살폈다.
“쯧쯧, 그럼 이 녀석도 축기단을 하나 얻어먹었겠군요.”
노인이 녀석이 운이 좋다는 식으로 이죽거렸다.
“허허, 그래야 했지만, 한 사질은 엽 사형과 거래를 해서 축기단을 포기하기로 했다네.”
“축기단을 포기 했다고요?”
노인이 처음에는 멍해지더니 한참을 말을 않다가 다시 입을 뗐다.
“포기하는 것도 좋지요. 자기 자신을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지! 어린 나이에 취사선택을 할 줄 알다니, 그 점에서는 나보다 낫구나.”
노인이 고요한 눈으로 한립을 바라보았는데, 처음의 서늘한 시선에 비해 훨씬 친밀한 느낌을 주었다. 그러나 그 소리를 듣는 한립은 답답한 심정이었다.
‘무슨 자기 자신을 알고 취사선택을 했단 말이야? 난 완전히 어쩔 수없이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축기단을 받친 거라고. 안 그랬으면 어찌 축기단을 내줬겠어? ’
이런 생각을 하는데 노인이 돌연 몸을 일으켜, 두 손을 사방의 허공을 향해 허우적거렸다. 그럴 때 마다 그의 손에는 한 가지씩 물건들이 쌓여만 갔는데, 한립은 그저 입을 벌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황사삼 한 벌, 청엽(靑葉) 법기, 일상 정련 공구들, 열양검, 냉월도 한 자루씩, 십배저물대(十倍儲物袋) 하나.”
손 안에 든 물건을 하나하나 보며 확인하더니 그것들을 탁자위로 쏟아버렸다.
“물건은 여기 있으니 녀석을 데려가시죠. 왕 사형도 바쁜 사람이니 오래 잡아두지 않겠습니다. 멀리 배웅하지 않음을 용서하세요.”
말을 마치자 노인이 다시 품 안에서 나무토막을 하나 꺼내 조각을 시작했고, 다시 한립과 왕 사숙을 상대하지 않았다.
그 모습에 왕 사숙도 한 숨을 쉬더니 대답하지 않고, 한립과 물건을 챙겨 방을 나왔다. 그리고 두 사람이 막 석실을 나서자 방금까지 열려있던 문이 다시 자동으로 닫혀버렸다.
꽉 닫힌 석문을 보고 왕 사숙이 한립을 데리고 떠날 준비를 했다
“아, 그것들을 모두 품에 넣을 필요는 없다. 모두 저물대 안에 넣으면 될 게야.”
그가 막 몸을 돌려 걸음을 떼려다가 한 무더기의 물품을 가득 품고는 바보같이 서있는 한립을 발견하고는 웃음 지었다. 상대의 말을 듣고 물건을 모두 꺼내 바닥에 놓은 검은색 보따리를 집어 들었다.
‘이게 그 저물대라고? ’
“처음 저물대를 사용해 본다면 내가 시범을 보여주마.”
왕 사숙은 자상하기 이를 데 없어서, 한립의 곤경을 눈치 채고 보따리를 가져갔다.
“일단 입구를 넣고자 하는 물건 쪽에 두고, 영기를 주입한 후 물건에 가져다 대면 자동으로 안에 담기게 된단다.”
왕 사숙이 설명을 해주면서 자신이 직접 시범을 보여주었다. 그가 보따리의 입구를 아래로 향하자 손에서 빛이 흘러나오고, 보따리에서도 백광이 흘러나와 땅에 떨어져 있던 물건들이, 그 안으로 수축해 빨려 들어갔다. 옆에서 보고 있던 한립은 너무 신기했다.
“물건을 꺼낼 때도 마찬가지로 영력을 이용하면 된다.”
왕 사숙이 한립에게 보따리를 돌려주며 말을 이었다.
“그러나 저물대를 사용하는 데는 금기가 있다. 한 사질도 꼭 기억해 두도록 해.”
엄한 목소리에 한립의 고개가 자동으로 아래위로 흔들렸다.
“첫 번째는, 저물대는 담을 수 있는 물건의 무게와 수량에 제한이 있어, 일단 너무 많은 물건을 담으면 효력을 잃어 다시는 사용할 수 없다.
두 번째는 저물대에는 살아있는 생물을 담아선 안 돼. 만일 저물대에 들어간다면 반드시 죽게 되지.”
한립은 왕 사숙의 충고를 마음에 깊이 새겼다.
“물건도 받았겠다, 이제 나와 전공제자들에게로 가자.”
말을 마치고 한립과 왕 사숙은 다시 법기에 올랐는데, 이번에는 그 거리가 비교적 가까웠다. 눈 깜짝할 새에 어느 산기슭에 내렸다.
그곳에는 산을 기대어 거대한 석루가 하나 세워져 있었고, 그 앞으로 전공각(傳功閣)이라는 세 글자가 금색으로 써진 석패가 보였다. 그 주변에는 젊은 제자들이 오고 가는 것이 활기찬 분위기가 느껴졌다.
왕 사숙이 석루 안으로 들어가자, 한립도 서둘러 그를 따라갔다. 그가 지나가자 제자들이 모두 왕 사숙이란 이를 잘 아는지 끊임없이 예를 취하며 안부를 묻는 소리가 들려왔다. 왕 사숙도 웃음을 띤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의 인사를 받았다.
석루 안으로 들어와 보니 전공각의 후반부는 놀랍게도 산맥과 이어져 있어 엄청나게 넓었다.
게다가 석문이 늘어서 있어 제자들이 그곳을 통해 드나드는 것이 보였다. 한립은 내부를 자세히 살펴보고 싶었지만, 왕 사숙은 바로 왼쪽에서 세 번째 문을 밀고 들어가 버렸다.
“들거라.”
따라 들어가야 할 지 망설이는데 왕 사숙이 오래 기다리지 않고 한립을 불러들였다.
방 안에는 서른 몇 살쯤 되어 보이는 푸른 옷을 걸친 제자가 왕 사숙의 한쪽에 공손히 서서 한립을 향해 미소를 건넸다.
“이 아이가 신제자의 공법을 전문으로 담당하는 오풍이다. 앞으로 공법 수련에 문제가 생기면, 그를 찾아 가르침을 구하도록 해라. 초급 공법의 이해도로는 어린 배분의 제자들 중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아이니라.”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오 사형!”
예의 바른 한립의 목소리가 방안을 울렸다. 오풍이 앞으로 한 동안은 자신의 공법 사부가 될 사람이었기에 조금의 소홀함도 있을 수 없었다.
“하하! 사숙, 과찬이십니다. 사실 저도 저급 공법을 조금 할 뿐이니, 앞으로 한 사제와 함께 절차탁마(切磋琢磨) 하겠습니다.”
“오 사질, 네 공법이 어떠한지는 나도 잘 알고 있으니, 너무 겸손할 것 없다. 그럼 한 사제의 공법 수련은 모두 네게 맡기겠다! 그럼 다른 데도 들려야 해서 이만 가보마.”
간단명료하게 전달해야 할 말을 마치고 한립과 왕 사숙은 오 사형의 배웅을 받으며 다시 방을 나왔다.
이어서 왕 사숙은 한립을 데리고 필히 알아두어야 할 곳과 몇몇 집법제자들을 소개해주고 평상시에 주의해야 할 사항을 당부하고, 다시 회의인이 있던 산봉우리의 건물들로 돌아왔다.
그리고 한립이 마음대로 방을 골라 쓰도록 하고는 드디어 한립을 혼자 남겨두고 떠났다.
* * *
한립은 저물대에서 비행용 청엽 법기를 꺼내 뛰어 올랐다.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아 비틀비틀 거리며, 아래로 갔다 위로 치솟았다를 반복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점차 편해져서 왕 사숙처럼 뒷짐을 지고, 기품 있는 모양새로 청엽을 탈 수 있게 되었다.
이 법기는 이용하기도 쉽고 조종도 간편했지만 확실히 속도는 느렸다. 보통의 준마가 달리는 것보다 조금 나은 정도에 불과했다. 역시 곡 내의 제자에게 하나씩 나누어주는 보급품다웠다.
비록 청엽 법기가 품질은 보통이었지만, 그래도 한립에게는 처음으로 겪어보는 공중비행이었다. 한립은 신이 나서 반나절을 날아다녔다.
“하하하!”
하늘을 가르며 한립이 크게 웃었다.
비행을 하면서 몇몇 제자들을 마주칠 때마다, 한립의 얼굴이 낯선지 호기심을 갖고 쳐다보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곧 그가 겨우 9성 정도의 법력을 보유한 것을 확인하고는 시선을 돌리곤 했다.
그런 모습이 눈에 들어와도 아무런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비웃음이 났다.
속세의 강호인들나 수도계의 선파제자라는 이들이나 다를 것이 하나 없었다. 그저 강한 것이 곧 진리였다.
곧 한립은 거대한 건물들이 모여 있는 곳에 당도해 백기당(百機堂)이라 적힌 대전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 * *
전 내에는 중년의 인물이 있었는데 한립을 보고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한 사제 어찌 되돌아 온 거지? 왕 사숙님은?”
이곳은 왕사숙이 바삐 돌아다니며 한립을 데리고 왔던 곳 중 하나였다. 방금 일을 보고 나간 한립이 또 다시 찾아오자 조금 놀랐던 것이다.
“어 사형, 방금 듣기로는 이곳이 잡무를 배정받는 곳이라던 데요. 그렇습니까?”
“그렇지, 맞아. 설마 사제는 이렇게 빨리 임무를 배정받고 싶은 것인가? 규정에 따르면 한립 사제 같은 신입 제자는 한 달 정도, 문내의 사정에 익숙해 진 후, 임무를 배정 받아도 되니 서두를 것 없어.”
“하하. 한 달이나 놀다니, 괜찮습니다. 그저 할일이 있을까 해서요. 재배하는 일은 사람이 부족하지 않은가요?”
집사의 의아하단 표정에도 한립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이런, 그런 식으로는 안 되는데 어쩌나. 제자들은 어떤 임무를 배정 받든 스스로 고를 수가 없거든. 자신이 그 방면에 전문성이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면 모를까 말이야.”
눈썹이 슬쩍 올라간 한립이 곤란하다는 듯한 집법을 바라보았다.
‘정말 엽 사숙을 찾아가야지만 되는 건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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