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elor Degree RAW novel - Chapter 88
88화. 비사(飛蛇)
중심부에서 남쪽, 도처가 모래인 지역에 일남일녀의 엄월종 제자들이 그 거대한 지역을 빙추술을 이용해 들쑤시고 있었다. 보아하니 무언가를 찾는 것 같았다. 그러나 한참이 지나도 어떤 수확도 없었다.
“이 년이 도대체 어디에 숨은 거야! 잡기만 하면 눈알을 뽑아 버리겠어!”
여제자가 생긴 것은 곱고 아름다워 한 떨기 꽃 같았는데 입은 험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것을 듣고 있는 사내도 등골이 서늘해졌다.
“사매, 일단 놔두자! 사문에서 정한 시각이 거의 다 되어서 지금 출발하지 않으면 늦을 거야.”
사내의 어투로 보아 그 사매라는 여인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 같았다.
“흥! 다 쓸모없는 네 녀석 때문이잖아! 겨우 공법 십 성에 이른 계집을 간수 못해서 도망가게 하다니. 누가 알기라도 하면 나와 언니의 엄월쌍교(掩月雙嬌)라는 명성에 금이 갈 거라고! 정말 사문은 어찌 너 같은 멍청이와 수련 반려를 맺어 준거야!”
여인이 그나마 사내가 입을 떼기 전까지는 괜찮다가 그의 말을 듣고는 노기가 탱천해 사내를 질책했다. 그걸 듣고 있는 사내는 얼굴이 붉어져 어찌 할 바를 몰라 했다.
여제자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더 찾아다닐 생각은 버렸다. 사문의 대사를 그르치면 아무리 신분이 특수하고 기댈 구석이 있는 그녀라도 감당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기가 죽어 여길 떠날 그녀가 아니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그녀는 이를 악물고 남색 부적 한 장을 꺼내 들었다. 부적을 내려다보며 자신의 뒤편으로 그것을 쏘아 보냈다. 이어 자신은 그곳에서 멀리 벗어났다.
남 제자 역시 울상을 지으며 지체하지 않고 그녀를 따랐다. 그때 부적은 이미 초대형 먹구름으로 변해 그곳을 확실히 막아버렸다. 그러자 부근의 온도가 급격히 떨어지며 극한의 추위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먹구름에서 무수히 많은 얼음 창이 쏟아져 내려 그 근방을 메워 버렸다. 일다경쯤 지나고서야 먹구름이 점차 흩어지니 얼음으로 인해 얼음사막 전체가 반짝였다. 멀리서 그곳을 샅샅이 살펴보았지만 그래도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고 있었다.
표독스런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남제자를 소리쳐 부르곤 씩씩거리며 그곳을 떠나갔다. 소위 수련 반려인 남자 역시 자연히 그녀의 뒤를 바짝 쫓았다.
이미 떠나버린 엄월종 여제자는 발견하지 못했지만 그 외진 지역의 얼음사막 한쪽에 은은하게 붉은 액체가 번지고 있었다. 다만 멀리서 보기엔 너무 희미해서 그녀의 눈길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반각이 지나고 그 검붉은 색이 짙어 질 때쯤 그곳의 모래가 갑자기 솟구치더니 원형의 작은 주머니처럼 점차 크기를 키워갔다. 결국엔 그 모래주머니가 터져나가며 안에서 녹의를 입은 여인이 굴러 나왔는데 그녀의 어깨는 얼음 창이 꽂혀 선혈이 낭자했고 이미 피로 온 몸을 적신 상태였다.
손엔 노란 손수건을 꼭 쥐고 있었는데 빛이 찬란한 것이 보통 물건이 아니었다.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어깨의 상처를 확인하더니 그녀의 미간이 좁아졌다.
“윽!”
이를 악물고 그것을 뽑아내자 통증이 심한 듯 그녀에게서 신음이 터져 나왔고 동시에 아름다운 눈가엔 눈물이 상처에선 핏물이 쏟아졌다.
그녀는 눈물을 훔칠 겨를도 없이 저물대를 뒤적거려 꽃문양이 그려진 병을 꺼내 노란 약 분말을 상처에 발라 지혈을 마쳤다.
모든 일을 끝나자 녹의 여인은 무릎을 감싸고 모랫바닥에 주저앉아서는 돌연 얼굴을 가리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
그래도 다른 사람이 자신을 발견할까 그 울음소리마저 억누른 채였지만 말이다. 한참이 지나서야 이 영수산 여제자가 울음을 그치고 고개를 들어 아무것도 없는 사막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감정을 주체하기 힘든지 몸서리치고 있었다.
그녀가 입술을 깨물며 힘겹게 일어나 다시 한참을 주저한 후에야 중심부가 있는 방향으로 비척비척 걸어가기 시작했다.
여인의 얼굴엔 아직도 옅은 눈물자국이 남아있었지만 표정에서만은 강한 고집이 드러났다. 그 여인은 놀랍게도 한립에게 금축필을 팔았던 그 소녀였다.
부상을 당한 그녀는 홀로 조용히 모래사막을 걸어 나갔다. 그 모습은 누가 보아도 처량하고 동정을 불러일으킬만 했다. 상처를 누르고 있는 그녀의 뒷모습이 점점 멀어져 갔다.
* * *
한립이 반나절 정도 걸음을 재촉하자 결국엔 중심지역의 외곽에 다다를 수 있었다. 놀라운 일은 그동안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으며 아무도 자신을 공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이 방향으로 먼저 서둘러 온 이들이 모두 그 정예 제자들에게 살해당했던 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보다 늦게 오던 이들은 바로 백의여인과 봉악에게 깨끗이 죽어나갔고 말이다.
이렇게 되니 겨우 그물망을 빠져나간 제자들은 희망이 없음을 깨닫고 몸을 숨겨버렸다.
거북이처럼 꽁꽁 숨어버리니 혈금시련에서 약자가 살아남는 최고의 비결이라 할 수 있었다.
한립이야 축기단의 세 가지 주요 약재를 가지고 나가야 했으니 자연히 그들처럼 행동하지 않았다. 그는 지금 석벽 앞에서 자세히 그것을 살피고 있었다.
그가 있는 석벽에서 멀지 않은 곳에 고색이 찬란한 청동대문이 있었는데 거기에 새겨진 언어는 한립으로 서는 알아 볼 수 없는 무늬나 다름없는 고어(古語)였다.
그 청동대문이 활짝 열려있으니 누군가 이미 안에 들어갔다는 뜻이었다. 머릿속에 담아 온 자료에 따르면 이런 청동대문은 네 개가 있어서 그것들이 중심부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입구였다.
만일 누군가 이 청동대문이 아니라 요령을 피워 석벽을 넘어 금지에 진입하려 한다면 석벽 위에 걸린 풍인금제에 온 몸이 갈기갈기 찢기는 액운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한립이 담을 샅샅이 살피는 이유는 이 석벽이 다른 담들과는 남달랐고 그 위에 심지어 이상한 ‘것’들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석벽 위에는 의복이 각기 다른 세 사람이 굵직한 얼음차에 사지가 뚫려 대자 형으로 매달려 있었다. 호흡이 없는 것이 이미 죽은 지 오래였다.
그들의 팔과 다리에서 흘러내린 피는 이미 굳어 검붉게 변했는데 석벽의 위에서부터 이어지는 지면까지 곳곳에 핏줄기였다. 한립의 추측에 따르면 이들은 벽에 꽂히기 전까지 아직 살아있었고 이런 대량의 출혈로 인해 저 위에서 절명한 것이다.
세 구의 시체 부근에는 어떤 단서나 글도 적혀 있지 않았지만 머리를 조금만 굴리면 누구나 그 의미를 알 수 있었다. 누군가 일부러 이런 시신을 남겨 감히 저 문을 들어오지 말라 경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고통스런 표정으로 죽어간 시신들을 살핀 한립은 마른 입술을 핥고는 청동대문을 향해 걸어 나갔다. 사실 모든 것을 파악한 후 한립은 소름이 돋았다. 저 시신들을 보니 저들을 저리 만든 이는 분명 미친 자였다. 그 자의 손에 떨어져 최후를 맞느니 자결을 하는 것이 나을 정도였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저런 사소한 일에 놀라 도망갈 수야 없었다. 이제 눈앞에 도검의 산과 불바다가 기다리고 있으니 단단히 마음을 먹고 들어가야 한다.
한립은 불안감을 가득 안고 문을 들어섰다. 그러나 그럴수록 그의 겉모습은 더 차분해져 평안한 모습이었다.
막 발을 들이자마자 꽃이 지저귀고 꽃들이 만발해 신선도에서나 볼 풍경이 펼쳐졌다. 각종 기이한 꽃과 풀들이 널려 있었고 이름 모를 나무가 시선을 끌었다. 선홍색의 수목이나 이상한 향을 발산하는 화초, 보통사람 허리 굵기만 한 황죽 등 모든 것들이 외부 세계 에선 볼 수 없는 귀한 것들이었다.
그 진귀한 초목들 사이로 놀랍게도 조약돌을 깔아 만든 오솔길이 구불구불 나있었는데 무성한 수풀에 가려 아무리 자세히 보아도 그 끝이 어디로 나 있는지 드러나지 않았다.
이 광경에 잠시 놀란 한립은 무의식중에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정말 짙은 영기였다. 이 신비한 초목들이 내뿜는 농염한 영기가 몸속에 스며들자 한립의 정신이 맑아졌다. 정말 신선이 나올 것 같은 곳이었다. 그러니 천지 영초가 자랄 만했다.
“녀석아 구경할 만큼 했느냐?”
“누구냐.”
찢어지는 듯한 목소리가 갑자기 들려왔다.
“히히! 구경할 만큼 했으면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겠구나!”
그는 한립의 물음은 듣지 못했다는 듯 홀로 중얼거렸다. 동시에 두 개의 녹색 그림자가 꽃이 만개한 수풀에서 튀어나와 소리 소문 없이 한립의 뒤를 급습했다. 보이지 않는다고 정신을 곤두세우고 있던 한립의 의식에 걸리지 않을 수 없었다. 녹색 그림자가 앞 다퉈 그의 옆을 스쳐갔다.
바쁜 움직임 속에서도 살펴보니 젓가락처럼 가늘고 곧은 물건이었는데 전체가 녹색에 옅은 검은 줄무늬를 가지고 있었다. 이미 손쉽게 상대의 공격을 피했지만 그는 심각한 표정을 유지했다. 아직도 문 밖의 시체가 눈에 선했으니 그들의 뒤를 따를 수야 없었다.
어두운 얼굴의 한립은 두 눈을 반짝이며 곳곳에 숨어있는 적을 찾았다. 그런데 돌연 적이 쉭쉭거리는 괴이한 휘파람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 소리에 한립은 돌연 안색이 변해 불가사의한 움직임으로 튀어나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신형을 멈추었다. 그가 이런 행동을 하게 만든 것은 바로 옆으로 날아든 녹색 그림자들 때문이었는데 그것들은 몸을 꿈틀거리며 은은한 녹색의 반투명한 날개를 펼치고 있었다.
녹색 그림자의 정체는 바로 날개가 달린 기다란 뱀이었다. 조금 전까진 몸을 꼿꼿이 세워 사물로 오해 했지만, 일단 날개를 펴니 몸이 180도로 꺾이며 쾌속의 움직임을 보였고 한립의 라연보 보다 결코 느리지 않았다. 그러니 어찌 한립의 표정이 좋겠는가!
두 마리의 비사(飛蛇)가 고개를 쳐들고 네 개의 녹색 눈에서 음산한 빛을 반짝이고 있었다. 이 사이로 쉼 없이 혀를 날름거리는 것이 당장이라도 공격을 재개할 기세였다.
“꽤나 빠른 놈이구나. 허나 네 놈이 아무리 빨라도 망황산비사(莽荒山飛蛇)보다 빠르겠느냐? 고분고분히 내 귀여운 비사에게 물리면 고통 없이 죽을 수 있을 것이야.”
찢어질 듯한 목소리의 사내는 한립의 빠른 움직임에 잠시 놀랐으나 그래도 자신의 비사에 믿음이 있어 싸늘히 그를 조롱했다.
‘헛소리!’
이런 소리가 머릿속에서만 울릴 뿐 한립은 입 밖으로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 상대가 두려워 말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저 뱀들이 녹망으로 변해 잔영을 남기며 날아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간에 두 뱀은 원호를 그리며 한립의 양 옆을 치고 들어왔다. 이를 보던 한립은 자연히 입씨름 할 새도 없이 녹망보다 전혀 떨어지지 않는 속도로 뒤쪽으로 튕겨나갔다. 그리 넓지 않은 공간이라 녹망이 순식간에 몇 바퀴를 돌았고 한립은 쉼 없이 발을 놀렸다.
그는 신의 기능만을 의지해 달리고 있을 뿐 아직 라연보나 어풍결은 시전하지 않은 상태였다.
한립이 저 비사들을 경시해서가 아니라 이미 연달라 두 번이나 악전고투를 치르고 막 신발 법기를 얻고 그 기능을 실험했으니 체력이 전부 회복되지 않은 터였다. 그러니 생사가 갈릴 만한 중요한 시점이 아니고서는 라연보 등을 써 체력을 더 소모할 생각이 없었다. 어풍결이나 라연보를 마구 썼다가는 신체의 부담이 막중해 체력을 회복할 수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당연히 한립도 비사들이 계속 자신을 쫓게 놔둘 생각은 없었다.
비록 속도가 느려질까 함부로 방어 법술을 펼쳐 누가 더 강한지 비교할 수야 없었지만, 저 뱀 두 마리를 처리할 수단이야 차고 넘쳤다. 다만 아직도 몸을 숨기고 나타나지 않는 저 비사들의 주인에게 신경의 반을 내주고 있어 지금까지 뱀을 처리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이제 적이 비사를 ㅤㅂㅣㄷ고 다른 공격을 감행할 생각을 않고 있으니 손을 쓰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결정을 내린 그가 손바닥을 뒤집으니 손가락 사이에 화사술(火蛇術) 부적 한 장이 끼워져 있었다. 당장이라도 부적을 발동해 저 뱀을 통 구이로 만들 태세였다.
“답운화(踏云靴)? 잠깐, 할 말이 있다.”
사내가 한립이 신은 영기 어린 신의 정체를 알아보고는 믿기 어렵다는 목소리를 내었다. 그가 당장 대결을 멈추길 청하고는 알 수 없는 방법으로 비사들을 멈춰 세우니 비사의 몸뚱이가 움직임을 멈추고 바로 몸을 돌려 초목 사이로 종적을 감추었다. 그 소리에 한쪽 눈썹을 끌어 올린 한립이 잠시 주저했지만 결국엔 부적을 던지지 않았다.
다만 다른 한 손을 저물대에 넣고 시종 긴장을 늦추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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