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ek Cheo-yong, the shaman Park Soo-yeon RAW novel - Chapter 62
62
박수무당 백처용 062화
“커억…. 컥!”
백처용은 이정순의 손에 목을 잡힌 채 들려, 발버둥 치고 있었다. 목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한 채 점점 벌겋게 달아오르는 얼굴.
숨 쉬는 것조차 힘들어지는 그 와중에 백처용이 주머니 속의 옥방울을 꺼내 흔들었다.
‘제발! 제발!’
간절한 마음으로 흔든 옥방울.
옥방울은 소멸하거나 없앤 잡귀, 요물의 사기를 빨아들여 정화하는 물건이었다. 백처용 또한 그리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번 독각귀가 눈에서 붉은빛을 뿜어 임희정과 혜원이 기절했을 때, 그 붉은빛의 기운을 옥방울이 흡수했었다. 그때 백처용은 ‘옥방울’이 소멸시킨 요귀(妖鬼)의 힘만 흡수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했다.
그리고 오늘. 이정순의 머리에 옥방울을 가져다 댔고, 분명 사기를 상당량 흡수했다. 그것으로 확신했다.
‘빨아들여!’
파앗!
순간 옥방울에서 푸른빛이 일어났다.
백처용의 주변에 가득 찼던 사기들이 옥방울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고, 이정순의 손아귀에서 점차 힘이 빠지는 게 느껴졌다.
이정순의 눈에 가득 찼던 검은 그림자 같은 것이 넘실거리며 사라졌다가, 다시 찼다가를 반복했다.
“안 돼! 저것들을 죽일 거야! 죽이고…. 나처럼은 살면 안 돼…. 정혁아…. 불쌍한 내 아들….”
이정순의 목소리가 가늘어졌다, 굵어지기를 반복했다. 말 또한 횡설수설했지만, 백처용의 귀에 들어온 분명한 한 마디.
‘아들 정혁이라고?’
그때, 이정순의 손에서 완전히 힘이 빠졌다.
“흐억, 쿨럭! 켁!”
바닥에 떨어지자마자, 백처용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숨을 몰아쉬며 연신 기침을 해댔다.
이정순은 옥방울이 사기를 빨아들여서인지, 고통스럽게 몸부림치고 있었다.
“백 선생! 밖에 무슨 일이야!”
“아닙니다! 절대 나오지 마세요!”
방에서 도끼가 외쳤고, 백처용은 다급하게 대답했다.
아직 옥방울로 완전히 사기를 빨아들인 게 아니었다. 만약 지금 문을 열고 나와 저 둘이 ‘사기’를 빨아들여 혼절이라도 한다면, 그 사이 이정순이 둘에게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그러면 상황만 더 어려워지는 것이다.
백처용이 일어나며 옥방울을 바라봤다.
‘소멸시키지 않으면 힘을 흡수하는 데 한계가 있나 보군.’
옥방울은 더 사기를 흡수하지 못하고 있었다. 잠깐 빛을 발하며 상당량의 사기가 흡수됐으나, 소멸시키지 않으면 그 이상은 힘든 모양이었다.
‘아직도 아까 흡수한 사기가 정화가 안 됐군.’
거기다 맨 처음 묶여 있던 이정순에게서 흡수한 사기도 정화되지 않아 사용할 수 없었다.
그러는 사이 이정순의 눈은 다시 까맣게 물들고 있었다.
백처용은 그것을 보고 황급히 냉장고로 달려갔다.
우당탕!
냉장고 안의 물건을 아무렇게나 내팽개치며 뒤지는데, 그러는 사이 이정순이 발작을 멈췄다.
“무당…. 무당을 죽여야… 저 둘도 죽인다….”
이정순이 중얼거리며 천천히 백처용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백처용은 그러거나 말거나, 냉장고를 뒤지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제발… 제발 있어라. 제발….”
저벅, 저벅.
점점 가까워지는 발소리. 그때 백처용이 냉장고 안에서 뭔가를 발견하고 이내 표정이 밝아졌다.
투둑, 툭.
백처용이 집어든 것을 손안에서 주물렀고, 뭔가 부러지고 뭉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죽어!”
이정순은 이미 백처용의 바로 등 뒤까지 다가왔다.
그녀가 손을 내미는 순간, 백처용이 돌아섰다.
“컥!”
백처용은 손에 들고 있던 것을 이정순의 입으로 밀어 넣었다. 백처용이 손을 거두자, 이정순이 입안에 있는 것을 뱉었다.
투둑.
바닥에 떨어진 것은, 초록색 풋고추였다.
“케헥, 켁! 매워! 매워!”
이정순이 자신의 혀를 손으로 벅벅 문지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데다 눈물까지 찔끔 고여 있었다.
‘다행히 매운 고추였나 보네. 이걸로 시간은 번 건가.’
백처용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일반적으로 귀신이 싫어한다고 알려진 것이 몇 가지 있다.
적색과 황색, 북소리와 쇳소리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매운 것 또한 그중 하나였다. 거기다 고추는 양기가 강하니 더욱 귀신에게는 효과가 클 터였다.
‘저 악귀가 오말자 씨라면…. 왜 하늘로 가지 않고 악귀가 돼 다시 돌아온 거지? 이유가 있을 텐데.’
백처용이 바닥에 뒹구는 이정순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어제 천도재에서 오말자가 하늘로 가는 것을 지윤이 분명 목격했다.
그런데 어째서 지금 악귀가 돼 돌아왔는지, 도저히 가늠이 되지 않았다.
지이잉~
그때 백처용의 휴대폰이 울렸다.
-아저씨. 무슨 일이에요?
받자마자 지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학교 언제 끝나냐?”
-학교는 왜요. 무슨 일 있어요?
“오말자 씨가 악귀가 됐어.”
-네? 어제 하늘로 간 거 아니었어요?
“일단 길게 말할 시간 없어. 학교 끝나자마자, 임정혁 씨 찾아가. 임정혁 씨 아르바이트하는 데 주소. 아직 가지고 있지?”
-네. 제가 보내드린 거잖아요. 찾아가서 어떻게 할까요?
“임정혁 씨 만나서 어떻게든 여기, 이정순 씨 집으로 데려와. 알겠지? 그때까지 버텨볼 테니까.”
-알겠어요.
“최대한 빨리. 학교 끝나자마자 나한테 문자 남기고.”
-학교 지금 끝냈어요.
“응…?”
-하여튼 얼른 갈게요! 끊어요!
지윤은 그대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백처용은 잠깐 휴대폰을 바라보다가 얼른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지금은 학교를 자기 멋대로 끝냈다는 것 따위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일반 천도재로는 이제 어림도 없어. 임정혁 씨를 불러 어느 정도 원한을 달랜 뒤에 다시 천도재를….’
“크악. 무당 놈….”
그러는 사이, 이정순이 비틀거리며 일어나고 있었다.
다시 주위에 사기가 들어차는 것 또한 느껴졌다. 보이지 않는 사기가, 백처용의 온몸을 짓누르며 눈과 귀를 먹먹하게 만들었다.
‘일단 묶어 둬야 하는데.’
백처용이 침침해진 눈을 비비며, 이정순에게 집중했다.
지금쯤이면 다는 아니더라도, 맨 처음 옥방울로 흡수한 사기의 정화가 끝났을 것이다.
그러나 저승사자의 포박 주문에는 약점이 하나 있었다.
‘쓸 물건이… 없어. 아무리 봐도….’
백처용이 주위를 훑어보며 생각했다.
저승사자의 포박 주문은, 주문 외에 따로 물건이 필요했다. 그것도 뭔가 영적인 힘이 깃든 물건이.
아이 물귀신을 봉인했을 때는 부적을, 창귀들을 봉인할 때는 호식총을 사용했듯, 영적인 물건이 있어야 그것을 매개로 삼아 묶을 수 있는 것이다.
저승사자는 본인들이 늘 지니고 다니는 포승줄을 쓴다지만, 백처용은 이제 부적도 없었다. 이 집 안에도, 영적인 물건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허억…. 이거, 그 시간도 못 버틸지 모르겠는데….”
중얼거리는 백처용의 안색이 점점 창백해졌다.
사기에 너무 노출됐다. 이제 옥방울도 더 사기를 흡수 못 하는 상황.
덜컹, 덜컹!
그때 싱크대가 덜컹거리더니, 문이 휙 열렸다. 이어 싱크대 문에 꽂혀 있던 식칼 몇 개가 흔들흔들 허공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위험하군.’
사기를 이용해 물건을 움직일 정도의 힘. 아직 미숙해 보였지만, 일반적인 원귀를 능가하는 힘이었다.
식칼은 허공에서 떨어질 듯, 말 듯 휘청거렸다.
이대로라면 꼼작 없이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 당연히 도망가거나, 부딪혀 보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텐데.
백처용은 그 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태상왈. 황천생아 황지재아 일월조아 성신영아….”
천천히 백처용이 경문을 읊어나갔다.
그때 식칼 세 개의 칼날이 백처용 쪽으로 향했다.
“죽어!”
이정순의 목소리와 함께, 칼이 백처용에게로 날아들었다.
* * *
사거리 G 편의점.
지윤이 계산대에 멍하니 서 있었다. 그 맞은편에 있는 아르바이트생은 임정혁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
“그럼 어디 갔는지도 모르는 거예요?”
“어제 급한 일이 있다고, 대타 뛰어달라는 말 말고는 안 했어요.”
“혹시 연락처는….”
“사장님은 아실 텐데. 전 온 지 얼마 안 됐고, 친하지도 않아서 몰라요.”
남자의 말에 지윤은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편의점에서 나오자마자 지윤은 휴대폰을 꺼냈다.
[갑자기 무슨 조퇴야. 무슨 일 있어? -혜원-]혜원에게 온 톡을 확인만 한 후, 백처용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
“하…. 왜 안 받는 거야. 미치겠네….”
지윤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때 갑자기 뭔가 떠오른 듯, 지윤의 눈이 동그래졌다.
“이럴 때가 아니지!”
긴 생머리가 아무렇게나 헝클어져 있었지만, 지윤은 신경 쓰지 않고 전철역을 향해 뛰었다.
* * *
도끼의 집, 거실 냉장고 앞.
백처용은 지그시 눈을 감은 채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그 얼굴 앞에는 식칼 세 개가 허공에 떠 있었다.
“…삼천육백 상재아방 집절봉부….”
백처용은 식칼이 코앞에 멈춰서 있었지만 일말의 주저도 없이 경문을 외는 중이었다.
백처용이 외는 것은 오방신장의 힘으로 자신의 몸을 보호하는, ‘태을보신경.’ 옥방울이 정화한 힘까지 사용한 터라, 악귀가 조종하는 칼은 물론이고 사기도 백처용의 몸에 감히 해를 끼치지 못하고 있었다.
“크으….”
이를 보다 못한 이정순이 직접 백처용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허공에 떠 있는 칼 중 하나를 붙잡더니, 그대로 백처용의 목을 향해 내질렀다.
따악!
둔탁하게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칼은 정확히 백처용의 목젖에 닿아 있었다. 그러나 칼은 백처용의 살을 뚫지 못한 채, 부들부들 떨리고만 있었다.
이정순이 아무리 힘을 줘도, 칼은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무당! 누가 이기나 해보자고!”
이정순이 칼을 거두며 백처용에게 소리쳤다.
이어 주변의 사기가 한층 강해졌고, 움직이지 않던 칼 두 개가 서서히, 아주 조금씩 백처용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까 힘을 제법 많이 흡수해서… 아직 버틸 수 있어.’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 턱에 맺혔지만, 경문은 멈추지 않았다.
옥방울은 계속 아까 흡수한 사기를 정화했고, 백처용은 그것으로 자기 몸의 보호를 더욱 강화했다.
‘일단 임정혁 씨가 와야 해. 악귀는 원한만 풀려도 힘이 훨씬 약해진다. 그리고 뭔가… 저승사자 주문에 쓸 만한 물건이….’
백처용이 감고 있던 눈을 떴다.
그러나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도저히 주문에 쓸 만한 영적인 물건은 보이지 않았다.
‘지윤이한테 올 때 뭐라도 가지고 오라 할걸….’
이정순의 힘은 점점 강해지는 듯했다. 주변의 사기가 무겁게 어깨를 짓눌렀고, 칼은 점점 더 가까워졌다.
그때 백처용의 머릿속에 이정순을 처음 봤을 때가 떠올랐다.
‘이불!’
이정순의 방에 있던 낡았지만 비싸 보이던, 비단 보료 이불. 그것이 머리로 스쳐 지나간 순간, 백처용이 결심한 듯 독경을 멈췄다.
“방 밖으로 이불 던져요!”
푹!
말을 끝내는 순간 두 개의 칼이 빠르게 움직였고, 섬뜩한 소리를 냈다.
* * *
한 남자가 도끼의 빌라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들어가지도, 그렇다고 떠나지도 않은 채 그 자리에 서서 걱정 가득한 얼굴을 한 남자.
‘괜히 왔나…. 천도재는 어제라고 했으니까 이미 끝났을 테고…. 여기서 한다고 한 걸 보면, 그 여자 집이겠지?’
근심 가득한 얼굴로 빌라 4층 창문을 올려다보는 남자. 그는 오말자의 아들, 임정혁이었다.
‘후, 들어가서 어떻게 살았는지만 보고 오자.’
임정혁이 결심한 듯, 걸음을 떼려는 순간.
쨍그랑!
후두둑!
“뭐, 뭐야!”
401호 창문이 깨지며, 유리 파편들이 땅에 떨어졌다.
임정혁은 그 파편들을 잠시 바라보다가 황급히 빌라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