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That Kind of Talent RAW novel - Chapter 354
354. 외전 – 죽음이 추가한 이야기(2)
데온 하르트가 마왕군으로 영입될 당시, 일부 마족들은 의문을 가졌다.
‘용사의 자폭을 제 몸에 받아들여 저지한 것은 분명 대단하지만, 그게 과연 0군단장이라는 없는 자리까지 만들어 주어야 할 정도일까?’
군단장을 죽이며 등장했으니 군단장 자리를 주는 것에는 불만이 없다. 못해도 그 정도의 수준은 된다는 말이니까. 하지만 0군단장이 아닌 13군단장이라는 자리를 제공해도 되지 않나.
과연 저 인간이 1군단장의 위에 앉을 만한 실력과 가치가 있는지.
의문은 금방 풀렸다.
***
새 군단장 ‘데몬 아루트’의 환영회가 열렸다.
연회에는 술이 함께하는 것이 정석이라, 마계의 술에 익숙지 않을 데온을 배려하여 5군단장 오엘의 창고를 털어 인간계의 술을 가져온 마왕은 싱긋 웃으며 그에게 술을 권했다.
한쪽에서 오엘이 뚱한 얼굴로 꿍얼거리고, 부관인 데르니반이 그녀를 달래고 있었으나 당연하게도 그들을 신경 쓰는 이는 없었다.
“자, 마셔.”
“아… 감사합니다.”
일단 받기는 받았는데, 혹 인간에게 탈이 나는 종류는 아닐지. 데온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술을 살폈다.
인간계의 술이라는 설명을 듣긴 했지만, 그걸 곧이곧대로 믿을 정도로 순진하진 않다. 과연 내가 아는 그 술이 맞는지 색을 살피고, 슬쩍 냄새까지 맡아보고 나서야 익숙한 술이라는 것을 확신한 그는 홀짝 액체를 마셨다.
‘오.’
이게 얼마 만의 술인지 모르겠네.
그렇지 않아도 사방이 마족뿐이라 심장이 작아질 대로 작아져 죽을 것 같았는데 딱 좋게 주어진 술이라니. 인간계의 술이라는 것도 알았겠다, 마시지 않을 이유가 없다.
데온은 부러 주변을 의식하지 않기 위해 현실을 도피하듯 술을 연거푸 들이켰고.
“잘 마시네. 더 마실래?”
“네.”
어느 순간 정신이 끊겼다.
──끊겼다고 ‘생각’했다.
‘분명 내 주량은…….’
……고작 이 정도에 취할 수준이 아니지.
데온은 표정 없는 얼굴로 잔을 기울였다.
술과 약으로 세워 둔 기억을 나누는 벽은 다시 술과 약에 약해진다. 즉, 지금 이건 그저 두 기억이 약해진 벽을 넘어 뒤섞인 것뿐이라. ‘모든 것을 기억하는’ 데온 하르트는 후에 기억해야 할 것과 기억하지 말아야 할 것을 머릿속으로 차분히 구분하며 다시 빈 잔을 채우는 액체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
분위기가 달라진 것을 느낀 듯, 술을 권하던 마왕이 멈칫했다.
이를 눈치챈 새빨간 눈동자가 스르륵 옆으로 굴러가더니 마왕을 마주하고 가늘게 휘어진다. 웃음에 꺼림칙한 기운이 묻어났다.
‘걱정 마.’
섬찟한 빛을 띤 눈이 소리 없이 말한다.
‘난 그쪽과 싸울 생각이 없으니까.’
싸워서 얻을 것도 없는 상황에서 굳이 죽을 게 뻔한 싸움을 할 이유는 없다. 게다가 어찌 되었든 결국 마왕군이 된 상황 아닌가.
아닌 척 주의 깊게 이쪽을 살피는 마왕을 향해 보란 듯이 잔을 흔들었다.
‘그냥 얌전히 술만 마실 생각이니 신경 꺼 줬으면 하는데.’
‘…….’
마왕의 눈매가 흥미를 담고 가늘어졌다.
데온은 못 본 척 고개를 돌리고 조용히 술만 홀짝였다. 이대로면 곧 주량을 넘긴다는 것을 알지만 이번만큼은 신경 쓰지 않았다.
마왕이 있으니까. 보아하니 어느 정도 눈치챈 것 같은데, 내내 옆에 있지는 못하더라도 시야 밖에 두지는 않겠지. 일이 터진다면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어련히 알아서 막아 주리라.
……절대 오랜만의 술이 반가워서 그런 것은 아니다.
“데몬, 더 마시려고?”
“네.”
“곧 5병이 넘어가는데… 뭐, 네가 괜찮다면야.”
눈이 흥미로 번들거리고 있는 주제에 걱정하는 척하긴.
다른 곳도 둘러보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난 마왕이 즐기고 있으라는 말을 남기고 걸음을 옮긴다. 예상대로 시야가 닿는 범위 내에서만 움직이는 그를 눈으로 좇던 데온이 흘긋 새로 집어 든 잔을 내려다보았다.
‘이걸로 5병째인가.’
아무렴 어때.
그는 망설임 없이 잔을 들이켰고.
……이번에야말로 정말 기억이 끊겼다.
***
데온 하르트는 살아야 했다.
어리고 약한 것은 가장 먼저 죽는 것이 전장이다. 죽이지 않으면 죽는 공간에서, 그는 언제나 정신을 놓은 채 최소한의 이성만 붙잡고 적과 아군을 구분해 공격하는 것에 최선을 다했다.
8년 내내 그렇게 생각하고, 움직였다.
‘누가 적이지?’
그러니까.
“너어어, 적이야아아?”
마찬가지로 그때와 같이 정신이 흐려진 현 상황에서, 버릇처럼 적아를 구분하려 드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했다.
***
“너어어, 적이야아아?”
새 군단장이 술에 취해 적이냐고 묻는다.
“아닙니다.”
“그러엄… 너는…?”
“…….”
아니라고 답해도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다 잊은 듯 또다시 질문했다.
몇 번이고 반복적으로 대답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짜증이 훅 치밀어 오른다. 그러나 상대는 군단장이기에 싸워 봤자 제가 진다는 것을 아는 마족들은 상대가 몇 번을 묻든 똑같이 순순히 답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애…?”
문제는 다른 군단장들이었다.
0군단장이라고 하지만 결국은 같은 군단장이기에 숙여야 할 이유가 없다. 1군단장 제이카르처럼 실력으로 다른 이들을 몸소 찍어 누른 것도 아니라 유독 그의 합류를 탐탁지 않게 여기던 인내심 짧은 한 군단장이 끝내 버럭 짜증을 냈다.
“아 그만 좀 해!”
“너어, 적이야아?”
“이런 씨…….”
어찌 되었든 이건 ‘데몬 아루트’가 마왕군이 된 것을 반기는 의미의 환영회다. 그런 연회의 주인공과 부딪혀 봤자 이쪽의 손해일 터.
그걸 알기에 나름대로 참았다만… 이제 한계다.
애초에 내키는 대로 살던 군단장에게 인내심이 가당키나 하던가. 그는 저를 말리려는 듯 사방에서 뻗어 오는 손길을 신경질적으로 뿌리치며 상대를 향해 한껏 비꼬듯 답했다.
“그래! 적이다! 어쩔래?!”
“……그래?”
“!”
오싹.
순간, 불길한 느낌이 등골을 타고 내려갔다.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언제 술에 취했냐는 듯 또렷한 붉은 눈동자가 광기와 살기를 담고 이쪽을 빤히 쳐다본다.
이를 발견하기 무섭게 본능의 경고에 따라 주춤 뒤로 물러섰으나…… 그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푸욱!
“컥…!”
삽시간에 거리를 좁힌 ‘데몬 아루트’가 언제 꺼내 든 건지 모를 단검을 급소에 찔러 넣었다.
‘방금, 무슨…….’
이 자리에 존재하는 마족 대부분이 마족 중에서도 나름 전투에 자신 있는 이들임에도 순간 놓쳤을 정도로 빠른 움직임.
돌진한 그대로 체중을 실어 상대를 깔고 앉은 데온이 한껏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단검을 뽑는다. 취한 와중에도 사방이 경계해야 할 대상이라는 것과 눈앞 상대의 전력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한 본능은 현 상황에서 기선을 제압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을 사용했다.
난도질이 이어졌다.
최소한의 도의조차 내다 버린 듯 더 움직이지도 못할 이를 향해 단검이 내리꽂힌다. 얼굴, 목, 가슴팍 구분 없이 마구 내리찍는 움직임에 지켜보던 마족들조차 학을 떼고.
어느덧 옷깃 스치는 소리조차 들릴 정도로 고요해진 공간에서, 한발 늦게 그를 말리기 위한 손길이 뻗어 왔다.
촤악!
……아니, 뻗어 오다가 다시 뒤로 빠졌다.
길게 베인 옷소매를 보던 마왕이 흥미 어린 눈으로 데온을 내려다본다. 어느덧 데온은 앉은 자리에서 마왕을 향해 단검을 겨누고 있었다.
살기에 물든 새빨간 눈동자가 섬뜩하게 번들거렸다.
“너어, 적이야아?”
“그럴 리가.”
“적이라고오?”
“아니.”
“그럼 방해하지 마.”
또렷한 목소리로 경고한 그가 이미 죽은 시체를 향해 다시 무기를 들어 올린다.
마왕은 잠시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흘긋 데온의 다리를 내려다보고는 뚜렷한 의도를 담아 입을 열었다.
“환영회는 일단 여기서 끝내야겠네.”
다음번에 술 없이 다시 해야겠어.
말뜻을 알아들은 이들이 하나둘씩 물러간다. 뒷정리를 해야 하는 사용인까지 모조리 자리를 뜨고. 줄곧 침묵한 채 모두 물러가기를 기다리던 마왕은 둘만 남고 나서야 다시 데온에게 손을 뻗었다.
데온이 마주 단검을 휘두르지만, 앉은 상태에서 휘둘러지는 범위는 거기서 거기인지라. 어렵지 않게 단검을 잡아채 내던진 그는 데온의 팔을 부축하듯 잡아 올렸다.
“역시…….”
무미건조한 음성이 울렸다.
“다리가 망가졌구나.”
어쩐지, 인간으로서는 낼 수 없는 속도를 냈다 했어.
‘그’ 기술을 사용한 것이다. 전쟁터에서도 위험할 때마다 사용했던, 몸에 오는 과부하를 무시한 채 순간적으로 육체의 한계를 초월하는 기술.
직접 보니 신기하긴 하다. 이 정도면 조금 긴장 놓고 있는 내게도 한 방은 통하겠는데.
“확실히 부상을 감추는 것에 능하긴 하네.”
엉망인 다리 상태와 대조적으로 고통 한 점 느끼지 않는다는 듯 이쪽을 노려보는 눈길이 제법 인상적이다.
그러고 보니 기술을 사용한 직후 자연스럽게 상대를 깔고 앉아 다리를 다친 것을 티 내지 않았지. 아마 저 외에는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으리라.
“……재밌어.”
진심으로 발악하지 않는 것도 재밌다.
정말 이쪽을 적으로 규정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벗어나기 위해 난동을 부렸을 텐데, 가만히 노려보고만 있는 것을 보라. 발칙하게도 무의식은 이미 상대의 적아 여부를 구분한 것이다.
아마 이미 죽은 저 녀석이 ‘적의’를 보이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주변에서 미심쩍은 시선을 보내지 않았다면 이렇게 기술까지 사용하며 필사적으로 공격하지는 않았겠지. 생존에 특화된 본능이 마왕성에서 살아남기 위한 최선의 길을 고른 것이다.
“일단… 치료부터 해야겠지?”
기껏 얻은 장난감이 망가지는 꼴은 못 본다.
마왕은 손가락을 튕겨 벤을 소환했다. 약초를 만지고 있었던 듯 양손에 풀을 꽉 쥔 벤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더니 그를 발견하고는 기겁하며 펄쩍 뛰었다.
“마왕님?! 어디 다치셨습니까?”
“아니, 나 말고 새 0군단장이 다쳤지.”
“예…?”
그런데 왜 저를…….
벤의 얼굴이 잠시 멍해졌다.
“저는 마왕님을 전담하는 주치의입니다.”
군단장 전용 주치의는 따로 있을 텐데…….
“알아.”
마왕은 데온을 치료하기 수월하게 제압하며 말했다.
“나 때문에 다친 거라 네가 치료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제 기술에 다쳤다는 것보다는 마왕과의 충돌로 다쳤다고 알려지는 편이 훨씬 낫겠지. 이곳은 강자를 존중하는 마계니까.
장난감이 쉽게 죽지 않을 만한 배경을 조성한 마왕은 데온을 붙잡은 채 그의 다리를 치료하는 벤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이내 싱긋 웃었다.
“그냥 네가 아예 데몬의 전담 주치의가 되면 되겠네.”
“예?”
“어차피 난 다칠 일이 없으니까. 반대로 데몬은 앞으로도 주치의를 자주 필요로 하게 될 것 같고.”
“예??”
“그동안 일이 없어서 심심했지?”
앞으로 많이 바빠지겠어, 벤.
***
‘뭐지.’
환영회 때 기억이 끊긴 이후, 마족들이 날 피하기 시작했다.
대체 왜? 내가 술 처먹고 사고라도 저질렀나? 아니, 아니지. 적이었던 데다 사고까지 친 인간 하나 죽이지 못할 이유도 없다. 사고 쳤다면 진즉에 죽였을 테지.
‘그럼 왜…….’
똑똑.
“데몬 님, 벤입니다.”
“어… 들어오세요.”
“오늘 몸 상태는 어떠십니까?”
“괜찮은 것 같습니다만…….”
그래, 사실 이것도 이상하다.
네가 왜 내 전속 주치의가 된 건데? 대체 왜 마왕이 제 귀한 주치의를 내 전담으로 붙여 준 거냐고.
뭔가… 나와 아주 긴밀한 연관이 있는 중요한 무언가가… 나만 빼놓은 채 제멋대로 돌아가고 있다. 이상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야.
‘진짜 뭐지?’
데온은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마왕성 생활의 시작이었다.
작가후기
안녕하세요, 작가 덴피입니다.
드디어 정말 끝이 났네요. 감회가 새롭습니다.
예전에는 과거로 돌아갈 기회가 생긴다면 망설임 없이 그러겠노라 답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러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이 소설을 처음부터 다시 쓸 생각을 하니 가정이라지만 앞이 깜깜해지더군요.
우선 여기까지 따라와 주신 독자님들께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생각보다 더 많은 분들께서 이 소설을 좋아해 주셔서 정말 놀랐고 기뻤어요. 꿈을 꾸는 것 같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는 첫 작품인 만큼 작가의 욕심이 듬뿍 들어간 글입니다. 쓰고 싶은 글을 쓴 탓에 호불호가 강하게 갈릴 거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사실 완결이 난 지금도 어안이 벙벙합니다.
‘욕심이 듬뿍 들어간’ 작품답게 는 본래 다른 작품의 주인공이나 그에 준하는 조연급으로 쓰려고 했던 등장인물들까지 허무하게 스러지는 엑스트라 조연들로 갈려 들어간 소설입니다. 작가가 이 한 작품에 모든 것을 쏟아붓겠다는 일념으로 메모장을 탈탈 털어 몰아넣었거든요. 그 탓에 주인공과 관련이 별로 없는 인물들마저 저마다의 사연과 생각을 갖게 되었고, 세계관이 방대해졌습니다. 등장인물들은 왜 죄다 만만한 애들이 없는지, 주인공이 돋보일 틈이 없더군요. 글을 쓰다가 머리를 쥐어뜯었습니다.
그래도 쓰고 싶은 것을 쓴 덕분에 미련은 없습니다. 제 작품을 사랑해 주신 여러분들 덕분에 후회하지 않을 수 있었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물론 아쉬운 점은 있긴 합니다. 어쩔 수 없이 남더군요. 몇 가지만 뽑아 보자면, 하나는 각국 군주들의 매력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것이 되겠네요. 본래 계획은 세 나라가 한 번에 무너지는 것이 아닌 순차적으로 무너지는 것이라 군주들과 책사들의 존재감을 어필할 틈이 있었는데, 그렇게 된다면 글이 늘어질 것 같고 쓰는 저도 지칠 것 같아 중간에 계획을 변경했습니다. 그 탓에 나름대로 무언가 있을 것 같던 인물들이 다소 허무하게 간 느낌이 있었죠.
그리고 ‘2대’들의 존재감이 묻혔다는 것도 너무 아쉽더군요. 제국의 황제도 그렇고, 혁명군 수장도 그렇고 ‘1대’의 존재감이 너무 강렬해서 그 뒤를 이은 후대들이 상대적으로 묻힌 느낌입니다.
그 외에도 정치 분야나 전투씬 등의 아쉬운 기억이 많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했고, 하얗게 불태웠습니다. 부디 독자님들께는 아쉬운 부분에 관한 기억보다 그저 즐겁게 읽은 기억이 더 컸으면 좋겠습니다.
댓글은 언제나 열심히 보고 있습니다. 믿지 않으실 수도 있지만 정말 하나도 빠짐없이 다 봤어요. 울고 웃으며 작품에 몰입해 주시는 여러분들 덕분에 글을 쓰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제 글을 읽어 주신 모든 분들과 끝까지 따라와 주신 분들께 사랑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가시는 걸음마다 행운이 따라붙길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