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ek Cheo-yong, the shaman Park Soo-yeon RAW novel - Chapter 98
98
박수무당 백처용 098화
민철은 팔로 눈가를 몇 번이나 훔쳤다. 지윤은 자신보다 어린 동생의 그런 모습에 안타까운 듯, 밥도 먹지 못한 채 가만히 앉아 있었다.
백처용 역시 어린아이의 사정이 안타까웠다. 그러나 정작 아버지가 저리 나오니, 무슨 수가 있겠는가.
“민철아. 미안한데, 아버지께서 저렇게 말씀하시고… 우리는 이만 가보는 게….”
“제발 부탁드릴게요. 이번 주말 동안만 여기 계시면 안 될까요?”
민철이 백처용 쪽으로 무릎까지 꿇으며 간절히 말했다. 백처용은 난감한 표정으로 아까 김 씨가 들어간 방문 쪽 눈치를 봤다.
“우리도 그러고 싶은데, 아버지께서 허락하시겠냐?”
백처용의 말에 민철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옆집이… 지난주에 이사 갔거든요. 그래서 아직 깔끔하니까… 거기서 잠시만 지내시면….”
민철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옆집이라는 말에 백처용은 아까 여기 오며 봤던 옆집을 떠올렸다. 담쟁이 넝쿨과 이끼가 잔뜩 낀 돌담. 으스스한 분위기의 낡은 목조 건물이었다. 제법 큰 이층집이긴 했지만, 어딘지 일본 공포영화 같은 데 나올 것 같은 곳.
“거기서 자라고…?”
“예…. 거기가 지금 빈 집 중에서 제일 깔끔해요.”
“아니. 전기도 안 들어오고, 아무것도 없을 텐데. 거기서 어떻게….”
백처용이 어이가 없다는 듯 말하는데, 식사에 열중하던 비형랑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동생. 우리 하룻밤만 좀 지켜봐 주자. 애가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동생은 피도 눈물도 없는 거야?”
백처용과 지윤, 민철의 시선이 모두 비형랑에게로 쏠렸다.
백처용과 지윤의 시선에도 비형랑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름으로 반들반들한 입가를 손으로 대충 닦은 뒤, 비형랑은 민철에게 다가가 등을 토닥였다.
“아가야. 걱정하지 마. 저기 무당 아저씨랑 이 형이 오늘밤에 너희 아버지 무슨 일 생기시나 지켜 드릴 테니까.”
“저, 정말요? 감사합니다. 진짜 고마워요. 제가 이불 가지고 올게요.”
민철은 언제 울었냐는 듯 신이 나서 방 밖으로 뛰쳐나갔다.
흐뭇한 표정으로 그것을 바라보는 비형랑의 뒤에서, 백처용이 주먹을 들락 말락 움찔거렸다.
‘그냥 한 대 칠까? 그래도 저승에서는 높은 놈인데, 쳤다가 나중에 죽은 다음에 지옥 가는 거 아니야? 하…. 마음 같아서는 한 대 치고 싶은데.’
백처용이 자신의 오른손 주먹을 왼손으로 꼭 감싼 뒤, 크게 심호흡했다.
겨우 마음을 진정시키고, 백처용은 젓가락을 들었다. 밥이나 먹자는 생각이었지만, 밥상을 보는 순간 백처용은 더 울컥했다.
“…….”
세 마리나 있던 민어구이는 뼈만 앙상히 남아 있었다. 남은 것은 지윤의 밥그릇 위에 있는 반 마리뿐.
백처용의 시선은 다시 비형랑에게로 향했다.
“…다 처먹었냐?”
“동생. 내가 말을 편하게 하라 했다지만 ‘처먹었냐’가 뭔가.”
비형랑이 짐짓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지만, 당연히 씨알도 안 먹혔다.
백처용이 젓가락을 꾹 쥐며 움직이려는 순간, 비형랑이 갑자기 방문 밖을 바라봤다.
“그보다 동생. 무당이라면서 아직 못 느꼈나?”
“…뭘 못 느껴요.”
“이 동네와 산. 수호신이라고는 하나도 없어.”
비형랑이 멀리 펼쳐진 산세를 보며 중얼거렸다.
* * *
밤이 깊은 가운데 백처용과 지윤, 비형랑은 민철이 말했던 폐가에 와 있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아 어두운 가운데, 백처용의 휴대폰 플래시 불빛이 주변을 비췄다.
“진짜 아무것도 없네.”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만 보일 뿐, 집 안에는 싱크대조차 보이지 않았다.
백처용이 중얼거리는데, 뒤뚱거리며 비형랑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비형랑의 품에는 세 사람이 깔고 잘 이불과 베개가 한가득 들려 있었다.
비형랑은 그것을 바닥에 아무렇게나 팽개쳐 버렸다.
“동생! 아무리 내가 객식구라지만, 이걸 나 혼자 들고 온 건 굉장히 불합리하다고 생각되는데!”
“민어를 그렇게 먹었으니까 힘 좀 써도 되잖아요. 나는 아까 밥도 제대로 못 먹어서 힘이 안 나요.”
“하…. 동생이 그리 쪼잔한 자일 줄은 몰랐어.”
비형랑이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며 이불을 바닥에 폈다. 그리고 거기에 대 자로 누워 버렸다.
백처용과 지윤 역시 이불 위에 앉았다.
“비형 아저씨. 아까 수호신이 하나도 없다는 게 무슨 뜻이에요?”
지윤이 비형랑을 향해 넌지시 물었다. 비형랑은 베개까지 베고 편안히 누운 채 입을 열었다.
“동생이 대별상을 소멸시킨 후 두 달 동안, 나는 전국을 돌아다녀 봤지. 그런데 산이나 마을. 강을 지키는 수호신들이 많이 사라졌더군. 여기도 역시 수호신이 없어.”
“설마 신돈…?”
“수호신이 없는 게 요귀들로서는 더 활동하기도 편하고, 힘을 기르기도 좋겠지.”
비형랑의 말에 지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 앉아 있던 백처용 역시 심각한 얼굴이었다.
“그러면 민철이 아버지 일도 신돈과 관련이 있을까요?”
이번에는 백처용이 물었다.
비형랑은 잠시 생각하다가 미소를 지었다.
“글쎄. 그럴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수호신이 없을 뿐 이번 일과 신돈의 상관관계는 아직 모르겠는데. 굳이 저 양반 괴롭혀서 걔들이 얻는 게 있는지도 모르겠고.”
“그건 그렇지만….”
비형랑의 말대로였다.
하지만 신돈이 직접 관여된 게 아니더라도, 원인이 될 수는 있을 거라는 게 백처용의 생각이었다.
신돈 쪽에서 수호신들을 죽였고, 그로 인해 마을로 뱀 귀신들이 나타나 민철의 아버지를 괴롭혔을 가능성. 김 씨가 땅꾼이라는 점을 생각해볼 때,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백처용이 그렇게 생각하는데, 비형랑이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동생. 무슨 생각하는지 대충 알 것 같은데.”
“무슨 관심법 써요? 내 생각을 어떻게 알아.”
백처용이 퉁명스럽게 반응했지만, 비형랑은 마치 다 안다는 표정이었다.
“동생. 잘 생각해 봐. 김 씨가 꿈을 꾼 건 언제부터지?”
“그거야 작년….”
“내가 알기로 이승의 사기가 높아진 건 올해부터일 텐데. 당연히 신돈이 나타난 것도 그때부터일 테고.”
“아….”
즉, 수호신이 사라지기 전부터 김 씨는 악몽을 꿨었다. 이번 일은 신돈 쪽과 아무 관련이 없다는 뜻이면서, 수호신이 있을 때에도 뱀 귀신이 김 씨를 괴롭혔다는 뜻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저씨들.”
한창 대화중인 백처용과 비형랑 쪽으로 지윤이 말했다.
“그 개 짖는 소리는 뭘까요?”
“그냥 동네 개 짖는 소리 아니야?”
백처용의 말에 지윤이 고개를 저었다.
“생각해 봐요. 우리 차 타고 오는 동안 개 짖는 소리 들었어요?”
“그러고 보니 그렇네.”
백처용이 턱을 만지작거렸다.
결국,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는 않았다. 제대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김 씨가 악몽을 꾸는 모습을 직접 보는 수뿐.
그게 아닌 지금으로서는 그저 아내의 사망으로 심약해진 김 씨가 악몽을 꾸는 것. 그 외의 것은 생각하기 힘들었다.
“그런데 아저씨.”
지윤이 다시 한번 백처용에게 말했다.
백처용이 바라보자, 지윤은 슬쩍 주변을 둘러봤다.
“여기 좀 무서운데…. 그냥 차에 가서 자면 안 돼요?”
지윤의 말에 백처용도 주변을 훑어봤다. 휴대폰 플래시까지 끄니 정말 귀신이라도 나올 것처럼 주변은 음침했다. 마을의 수호신까지 없으니, 동네의 음기가 강해진 탓도 있을 것이었다.
백처용도 지윤의 말에 동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그럼 나랑 같이 차에 가서 자자.”
백처용의 말에 지윤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베개를 챙긴 후 나가려는 백처용의 다리를 붙잡는 손.
백처용이 돌아보니, 비형랑이 반쯤 누워 불쌍한 눈빛으로 올려다보고 있었다.
“…동생. 그럼 나는…?”
비형랑의 측은한 표정과 울먹이는 목소리. 묶었던 머리까지 풀고 이러니, 마치 아름다운 미녀가 떠나는 남자를 붙잡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런 모습에도 백처용의 감정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차는 좁으니까 여기서 자요.”
오히려 단호했다. 백처용의 말에 비형랑이 다리를 더 꽉 붙잡았다.
“나 혼자?”
“…왜요.”
“그게… 여기 좀 무서운데….”
비형랑이 수줍은 표정으로 볼까지 살짝 붉히며 말했다.
백처용은 어처구니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아니, 무슨 비형랑이 귀신을 무서워해! 형님, 진짜 비형랑 맞긴 맞죠?”
“아니, 그 뭐야. 신돈 애들이 습격할 수도 있잖아….”
“그러면 우리가 도와주러 올게요. 됐죠?”
백처용은 비형랑의 팔을 뿌리치고 지윤과 함께 문으로 향했다.
“안 돼! 가지 마! 동새앵!”
비형랑은 엎드린 채 백처용 쪽으로 손을 뻗으며 절규했다.
“내가 저주할 거야! 반드시 저주해서 동생 평생 결혼도 못 하고, 돈도 못 벌고, 친구도 없이 살게 할 거야!”
절규와 함께 저주까지.
“하….”
“딱히 저주를 안 해도 저거야 뭐.”
백처용이 한숨을 내쉬는데, 옆에 있던 지윤이 시큰둥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백처용이 노려보자 지윤은 모른 척 시선을 회피했다.
백처용은 결국 뒤로 돌아서 원래 누워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 * *
새벽 3시를 넘어가는 시간.
빈 폐가 안에서 백처용과 지윤, 비형랑. 세 사람이 쌔근쌔근 자고 있었다.
가벼운 숨소리만 들리는 와중에, 갑자기 비형랑이 번쩍 눈을 떴다.
월! 왕, 왕!
“개 짖는 소리.”
비형랑이 그렇게 중얼거리는데, 지윤도 뒤척이다가 일어나 앉았다.
“강아지 짖는 소리 맞네요. 진짜 어디서 강아지 키우나.”
지윤이 눈을 비비며 중얼거렸다. 이에 비형랑이 고개를 저었다.
“이거 그냥 개 짖는 소리가 아닌데.”
“네?”
지윤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비형랑은 자는 백처용을 흔들었다.
“어이, 동생. 일어나 봐.”
그러나 백처용은 깰 생각이 없어 보였다. 결국, 비형랑은 백처용의 이마를 손바닥으로 찰싹 때렸다.
“어! 뭐야! 무슨 일이야!”
백처용이 호들갑을 떨며 벌떡 일어났다.
“동생. 개 짖는 소리 들려?”
“아이, 씨. 뭐요. 자는 사람 깨워 놓고 무슨 소리예요.”
월, 워어얼. 웡! 웡!
“소리는 무슨 소리가 들려요. 조용한데.”
백처용의 말에 지윤이 놀란 표정으로 비형랑을 바라봤다.
비형랑이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갑자기 집 문이 벌컥 열렸다.
“크, 큰일이에요! 아버지가…!”
그때 문을 박차고 들어온 것은 다름 아닌 민철이었다.
백처용과 지윤 둘 다 무슨 일인지 몰라 가만히 앉아 있는 와중에, 비형랑만이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뭐해. 얼른 가보자고.”
비형랑이 앞장섰고, 백처용과 지윤도 얼른 뒤쫓았다.
바로 옆집이기에 1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였다.
“대체 무슨 일인데 그래.”
백처용이 폐가를 나서며 민철에게 물었다. 민철은 당장에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게…. 할아버지가 갑자기 절 깨우더니, 밖에서 개가 짖는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나가봤더니 개는 없고, 아버지 방 안에서 아버지 끙끙거리는 소리만 들리더라고요. 방으로 들어가려고 했더니 문도 안 열리고….”
그 말을 듣는 사이, 백처용 일행은 민철의 집에 도착했다.
대문을 들어가는 순간. 비형랑과 지윤의 시선은 한 곳에 고정됐다.
“꼬마야. 보이지?”
“네….”
비형랑의 물음에 지윤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 둘의 시선이 고정된 곳은 김 노인과 민철이 자는 방. 아까 식사를 했던 방문 앞 마루였다.
그 마루에는 하얀 개 한 마리가 가만히 앉아 헥헥거리고 있었다.
“동생. 저기 뭐 보여?”
비형랑은 옆에 서 있는 백처용에게도 물어봤다. 그러나 백처용은 개가 있는 곳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인상을 썼다.
“보이긴 뭐가 보여요.”
“…동생, 그런데 무당 아니야?”
“맞죠.”
“그런데 귀안은 없는 거야?”
비형랑의 물음에 백처용이 잠시 움찔했다.
“그게, 사정이 다 있어요. 하여튼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백처용은 대답을 회피하고 김 씨의 방으로 달려갔다. 민철은 이미 김 씨의 방 앞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백처용이 얼른 마루로 올라가 나무로 된 방문을 잡아당기고, 밀어봤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형님. 뭐 해요. 좀 도와줘요!”
백처용이 소리치자 그제야 비형랑도 그쪽으로 걸어왔다.
비형랑이 도와주려고 문고리를 잡으려는 순간.
벌컥!
“으악! 뱀! 뱀!”
갑자기 방문이 벌컥 열렸다. 백처용과 비형랑은 그 바람에 마루 위에서 뒤로 자빠져 버렸다.
방문을 열고 나온 것은 김 씨였다. 김 씨는 호들갑을 떨며 마당으로 내려와 몸부림쳤다.
백처용은 얼른 일어나 방문을 바라봤다.
“저기, 뱀!”
백처용이 손가락으로 방구석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백처용이 본 것은 벽 너머로 사라지는 뱀 꼬리였다. 그것이 완전히 사라지기 무섭게, 백처용과 비형랑은 대문 밖으로 튀어 나갔다.
“뱀이….”
그런 둘의 눈에 보인 것. 그것은 민철의 집 벽에서 나와 산으로 향하는 수많은 뱀 떼의 행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