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ektu Sword Zone Central Expedition Punishment RAW novel - Chapter 118
118화 살귀방(殺鬼幇). 7.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리고 나서야 석탑산 관제묘 인근에 다다른 석다물이 관제묘를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한시가 급하시다면서 무슨 생각을 그리하십니까?”
“급하다고 바늘허리에 실을 묶어 쓸 수는 없는 일이잖아.”
몹시 어려운 문제를 앞에 둔 학동처럼 한동안 관제묘를 바라보던 석다물이 방법이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불 질러.”
“예?”
“분명 저 안에 상주하는 놈이 있어. 그리고 외부와 연결되는 굴을 파놓고 드나들 거야. 저쪽 석탑산을 제외하고는 사방이 탁 트인 평지니까 아무리 굴을 팠더라도 드나드는 게 보일 테고.”
“그럼 저 석탑산 고개 쪽으로 오십 장만 파놨다면 드나드는 게 여기서는 안 보이겠군요.”
“그렇지 불 지르고 저쪽 가서 기다리자구. 나오는 놈 잡아 족치면 뭔가 나오겠지. 족치는 건 만근도가 맡아.”
“문주님 뜻은 잘 알겠습니다마는 아무리 그래도 관제묘를 태운다는 건 좀….”
관제묘에 불을 지르라는 석다물의 말에 만근도가 난색을 표했다.
중원에서 관우는 무신이자 재물을 가져다주는 재신(財神)으로 추앙받는 영웅 중의 영웅.
중원인인 만근도 입장에선 당연히 두려운 일일 수 있었다.
“나 만나기 전에 나쁜 짓 많이 했었다며?”
“그렇긴 하지만 관운장은 좀….”
“관제묘 불태우는 것보다 살아 있는 사람 괴롭히는 게 더 나쁜 짓이야. 그리구 불은 림태가 지를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관우신 나타나면 만근도는 죄 없다고 잘 말해줄게.”
듣고 있던 림태가 멋쩍게 말했다.
“문주님께서 직접 하시면 안 되겠습니까? 저도 관운장은 좀….”
“왜 천벌이라도 받을까 봐 무서워?”
“뭐 무섭다기보다는 그게 문주님이 여기서 제일 강하시니까….”
“그냥 관제묘 안을 샅샅이 뒤져서 잡는 건 어떻겠습니까?”
“개방에서도 그 방법 써 봤는데 못 찾았다잖아. 토끼 안 잡아봤어? 굴에 불 지르는 게 최고라니까.”
“그럼 문주님이 하십시오. 불 지르는 거.”
“에헤 겁들은 많아 가지구. 지금 한솥밥 먹던 식구가 당장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귀신 무서워서 못 하겠다는 거야? 너희가 그러고도 식구야? 실망이다. 진짜.”
“맞습니다. 저희는 겁쟁입니다. 그러니까 문주님이 직접 해주십시오.”
“좋아. 그럼 셋이 동시에 하자. 기름 뿌리고. 횃불 하나씩 들고 동시에 던지는 거야. 동의?”
만근도가 어이없다는 듯 탄식처럼 말했다.
“에이 문주님도 쫄았구만.”
“쫄다니? 누가?”
“아닙니까?”
“아니지!”
“실망입니다. 천하의 백두문주 석다물이 죽은 관운장 무서워서 불도 못 지르고 아랫것들한테 막 너희가 하라구 강요나 하구. 소문날까 무섭습니다.”
석다물이 멋쩍게 웃으며 대꾸했다.
“장난 한번 친 거야 장난. 먼저들 고개 너머로 가 있어. 확실하게 태우고 뒤따라갈 테니까.”
잠시 후 관제묘가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역시나 예상대로 관제묘 밖으로 불길을 피해 튀어나오는 자는 없었다.
관제묘가 채 반 시진이 지나지 않아 완전히 잿더미가 되는 걸 확인한 석다물이 석탑산 쪽으로 난 고개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쪽입니다.”
만근도가 올라오는 석다물을 보고는 손을 흔들었다.
만근도의 왼손에 뒷덜미가 잡혀 있는 낯선 사내 하나가 보였다.
‘성공했구나’ 하는 생각에 석다물이 한걸음에 고개를 뛰어올랐다.
“이놈이야?”
“예. 묻는 말에 아는 건 술술 다 불던데요.”
석다물이 잡혀있는 사내를 봤다.
열 서너설 밖에 안 돼 보이는 아이? 소년이었다.
석다물이 낮고 엄한 말투로 물었다.
“살수냐?”
“아니오.”
“그럼 뭐냐?”
“연락책이오. 관제묘에 은신해 있다가 청부가 오면 그걸 방에 전하는 일을 맡고 있소.”
“어디냐?”
“성도성 만복객잔이오.”
“거기가 본 방이냐?”
“본 방은 총 네 개요. 만복객잔은 백살귀 방주가 맡고 있소.”
“살수는 몇이나 있나?”
“점원이 총 오십. 그중 살수는 스무 명 정도요. 주로 주방과 여관 객실에서 일하오.”
“주루와 식당에서 일하는 자들은?”
“그들은 그냥 점원일 뿐이오.”
“왜 이리 순순히 알려주는 것이냐?”
“묻는 자가 있으면 알려주라 했소.”
“누가?”
“방주가.”
순간 살아남은 백살귀가 자신과 마치 놀이를 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에 석다물의 표정이 굳어졌다.
사로잡은 사내를 어찌 처리할지 고민이 되는지 물끄러미 사내를 보고는 물었다.
“이름이 뭐냐?”
“귀추요.”
“귀추? 중원인이 아니냐?”
“변방에서 태어나긴 했으나 중원인이오.”
“알았다. 가거라. 만복객잔으로는 가지 말고 다른 곳으로 가거라.”
석다물이 스무냥 짜리 은자 몇 개를 꺼내 귀추 앞으로 던졌다.
석다물의 가라는 말에 은자를 챙긴 귀추가 고맙단 인사도 없이 일어나 터덜터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성도성 반대쪽으로 길을 잡고 산을 넘어 다른 지역으로 가려는 듯했다.
“그냥 보냅니까?”
“살수도 아니라잖아. 우리가 알고 싶어 하는 건 다 알려줬고. 나름 도움이 제법 큰데 보내야지.”
새벽이 되어서야 성도로 돌아온 석다물 일행이 다시 개방 사천총타를 찾았다.
“만복객잔이 어디요?”
“성도성 북쪽 끝에 있소. 여기서 걸어서 세 시진쯤 걸리오.”
걸어서 세 시진이라면 약 백 리쯤 되는 거리.
“말을 좀 구해주실 수 있겠소?”
“공짜로?”
“설마 공짜겠소?”
말을 구해달란 말에 림태가 의아한 듯 물었다.
“성내에서 말을 타고 달리기엔 불편한 것이 많습니다. 경공을 쓰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백살귀가 우릴 기다리고 있다. 내공을 아껴야지. 청살귀, 흑살귀, 적살귀가 관리하던 살수들까지 모두 불러 모았을 거야. 각오들 단단히 하고.”
“예.”
본의 아니게 대화를 듣게 된 총타주 전진봉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석다물 일행을 봤다.
“설마 살귀방을 찾으신 게요?”
“찾았소.”
“거기가 만복객잔이오?”
“그렇다는군.”
“살귀방의 사살귀와 살수들을 세 분이 상대하기엔 버거울 텐데?”
“셋은 며칠 전에 묻었소. 남은 건 백살귀 하나요.”
전진봉이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 표정으로 석다물을 보다가는 혼잣말을 했다.
“살문을 세상에서 지웠다는 게 허풍이 아니었나 보구만.”
“아 무기 좀 구해주셨으면 좋겠는데. 질 좋은 놈으로.”
“무기라면 어떤?”
“일단 각궁 세 개. 거기에 화시로 꽉 채운 활통. 아! 화시의 화통 대신 벽력탄 좀 달아 주시고. 그리고 사슬 없는 철퇴 각각 인원수대로 네 자루씩. 총 열두 자루.”
“벽력탄? 벽력탄이 뉘 집 개 이름인 줄 아시오?”
“못 구하오? 실망이구만. 천하제일방이라는 개방이 겨우 벽력탄 몇 개를 못 구한단 말이오?”
“끄응. 돈은 있소?”
“어음을 써 드리겠소. 백하루 만금각 어음이면 되겠소?”
“언제까지 구하면 되오?”
“세시진 후에 오겠소.”
“이런! 진짜 제정신이 아니구만. 벽력탄 하나 구하는 데 몇 달이 걸릴지 모르오.”
“실망이구만. 천하제일방이라는 개방이….”
“아 됐소. 거 말끝마다 실망 타령은. 일단 구할 수 있는 것만이라고 구해 놓을 테니 세시진 후에 오시오.”
문을 나서려는 만근도가 멋쩍게 말했다.
“저는 활을 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 그럼 옆에서 불이나 잘 붙여.”
석다물이 전진봉에게 구해달라는 무기의 수량을 정정했다.
“활은 두 자루면 되겠소.”
사천총타를 나서자 림태가 물었다.
“세시진 동안은 뭘 합니까?”
“자야지. 사흘 동안 한숨도 못 자지 않았나? 이대로 붙으면 싸우다 잠들어 죽을 수도 있다.”
“양미가 중독된 지 이틀이 지났습니다. 최대한 빨리 해약을 구해 돌아간다 해도 나흘입니다. 어쩌면….”
“입 다물어라. 백살귀를 잡아 해약을 구하는 것만 생각해라.”
* * *
석다물 일행이 밀린 잠은 자고 든든히 먹고 무기를 받아 출발해 해가 완전히 져 어둠이 깔리고 나서야 만복객잔 인근에 다다랐다.
석다물 일행이 말을 멈추고 객잔을 바라봤다.
점원이 오십 명이 넘는다는 객잔에 드나드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객잔의 형태만 겨우 알아볼 정도의 작은 불 몇 개만 켜진 채로 문을 굳게 닫은 것으로 보아 그들 역시 싸움을 준비하고 있는 듯했다.
“살문과의 기둥봉 싸움보다는 쉬울 게야.”
“제가 몇 번을 말씀드립니까? 그때는 달랑 셋이 아니었지 않습니까? 태장장로도 계셨고 사신사령도 있었다구요.”
“그 대신 지금은 벽력탄이 있고 광혈시마는 없고 삼살귀도 없지 않으냐?”
“…….”
“그뿐이냐? 혼자남은 백살귀는 무공이 강하지도 않고. 살수 백 명이 모여 있다고 해 봐야 덜떨어진 것들뿐이다.”
“뭐 그건 그렇지만 저들에게는 만독신수가 있지 않습니까?”
“해약도 있지 않겠느냐?”
만근도와 림태가 해약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살문의 살수들은 살수라기보다는 군사훈련 같은 전투 훈련을 제대로 받은 군인에 가까운 자들이었다.”
“살귀방은 다릅니까?”
“이놈들은 그저 돈 받고 사람 죽이는 진짜 살수일 뿐이다. 살수는 훤히 드러난 평지에선 힘을 쓰지 못한다.”
“이놈들도 살문 놈들 같지 않을 거라는 건 어찌 장담하십니까?”
“지금 내 말을 못 믿겠다는 거야?”
“그런 게 아니라.”
“겁먹지 마라.”
“겁 안 납니다. 그보다 이제 어찌 싸우시렵니까? 그 말씀만 해주십시오.”
림태의 말에 석다물이 다 생각이 있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벽력탄 다섯 개에 화시 사십 발 있지?”
“예”
“잘 봐 여기서 객잔까지는 약 오십 장쯤 되는 것 같은데 아마도 중간중간 함정과 매복이 있을 거야. 벽력탄은 한 개만 객잔에 날리고 나머지는 저 앞 땅에다 날린다.”
“예? 어디에 매복해 있는지도 모르는데 그냥 땅에다 마구잡이로 날립니까? 기껏 구한 벽력탄을 그렇게 버립니까?”
“마구잡이로 날리면 벽력탄을 충분히 가지고 있는 줄 알겠지.”
“설마 그러기야 하겠습니까?”
“벽력탄 하나 날리고 나면 스물까지 세고 다음 거 날려.”
“왜요?”
“당하는 입장에서는 스물까지 세는 시간이 절대 길게 느껴지지 않을 거야. 그리고 벽력탄 네발이 마치 마흔 발처럼 느껴질 거야.”
림태가 일리 있다는 듯 석다물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날리면 은신해 있던 놈들이 못 참고 튀어나올 거야. 기둥봉에서도 그랬잖아.”
“화시는 요?”
“화시는 객잔에 벽력탄 하나 날린 후에 내가 객잔으로 날린다. 아마 벽력탄 네 개 날리는 시간보다 화시 사십 발 날리는 시간이 더 짧을 거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 다음에는요?”
“저놈들 튀어 오면 우린 철퇴 들고 맞는다.”
철퇴를 들고 싸우라는 말에 림태와 만근도가 갸우뚱하며 물었다.
“왜 굳이 철퇴를 씁니까? 손에 익은 무기가 있는데.”
“패싸움은 기세지. 기세엔 철퇴가 최고다. 그리구 저것들은 숨어서 독침이나 날려봤지 제대로 전투를 해본 적이 없잖아. 생각보다 쉬운 싸움이 될 테니까 걱정말고 시작해!”
“잠깐만요.”
“뭐?”
“전문 살수들입니다. 독이나 암기에 대한 대비는 안 합니까?”
만근도가 뭔지 모를 불안에 계속 망설이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석다물이 이해한다는 듯 말했다.
“할 필요 없어.”
만근도가 아무리 석다물 말이지만 믿기지 않는다는 듯 석다물을 봤다.
“해 보면 안다. 나를 믿어. 믿지 못하겠으면 끝날 때까지 여기서 기다려 돼”
“알겠습니다.”
“믿겠다는 거야? 못 믿고 기다리겠다는 거야?”
“믿습니다.”
“좋아 시작해.”
만근도가 홰에 불을 붙여 횃불을 만들자.
석다물과 림태가 벽력탄이 매달려 있는 화살을 시위에 먹였다.
만근도가 벽력탄 심지에 불을 붙이자 석다물과 림태가 동시에 화살을 날렸다. 쏘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