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114
〈 114화 〉 뒷 이야기(1)
* * *
“야, 칼트.”
“부르셨습니까. 선배님.”
“그게 있잖아.”
“예.”
라니엘이 눈을 감은 채 말했다.
“···도시, 괜찮겠지?”
“예?”
“아니, 그 있잖아. 내가 좀 많이 부숴 먹은 것 같아서. 괜히 막 영주한테 미안해지고 그러네···.”
“아, 그거야 뭐······.”
칼트는 쓰게 웃었다.
“알아서 잘하지 않을까요?”
“···되게 무책임한 말이다?”
“사실이 그렇잖습니까. 이런 말 하기 좀 그렇긴 하지만, 저희가 어디 그런 거 신경 쓸 짬입니까? 아랫것들이 알아서 구르겠죠.”
“음···.”
“까라면 까야지 않겠습니까.”
이상한 것 없다는 말투다. 다만, 그 말투에서 묘한 기시감이 느껴져서, 라니엘은 눈살을 찌푸렸다. 어디서 들었는지 기억이 나진 않는다.
‘하지만, 나쁜 버릇이지.’
그녀가 고개를 음, 하고 끄덕였다.
‘요놈 요거 버릇이 아주 잘못 들었네.’
라니엘이 일침을 날리고자 입을 열었다.
“야, 그거 되게 안 좋은 버릇이야. 부하 입장에서 진짜 좆같은 거라고. 너, 그거 도대체 누굴 보고 배운 거냐?”
“아, 그렇습니까?”
“······너 눈을 왜 그렇게 뜨니?”
“아뇨, 뭐. 그냥. 선배님께서 하실 말은 아니지 않나? 싶어서······.”
“뭐? 맞을래?”
“······.”
라니엘은 눈을 부릅떴다.
칼트는 침묵했다.
‘제가 누굴 보고 배웠겠습니까.’
칼트는 뒷말을 속으로 삼켰다.
입 밖으로 뱉었다간 곧장 매콤한 주먹이 날아올 것을 알고 있기에.
“······새겨 듣겠습니다.”
“그래 임마. 아래 애들한테 잘 좀 해줘. 사람이 인망이란 게 좀 있어야 한다니까?”
“아, 예······.”
칼트는 적당히 맞장구를 쳤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칼트는 제법 눈치가 좋은 부하였다.
* * *
밤의 도시 카디낙에 아침이 찾아온다.
초원 너머에서 해가 떠오른다. 나른하게 내리쬐는 아침 햇살이 카디낙을 비춘다. 하루가 시작하는 아침이지만, 카디낙의 아침은 고요한 편이다.
밤새 술판을 벌인 모험가들이 술 냄새를 풍기며 여관으로 들어간다. 창관이나 도박판에서 재미 좀 본 이들은 떠오르는 아침 햇살을 맞이하며 각자의 삶으로 돌아간다.
하루가 시작된다기보단, 길었던 밤의 끝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그것이 본래의 카디낙이지만······.
“하나, 둘, 셋! 밀어!”
“거기! 균형 맞춰서! 흡!”
오늘의 아침은 무언가 다르다.
카디낙의 거리에는 힘 좀 쓴다는 모험가들로 북적거린다. 그들은 기사들을 도와 마수의 시체를 치운다. 무너진 성벽의 잔해를 치웠다.
“어우, 무거워라.”
“거기 다 치웠지? 그럼 다음은······.”
“좀만 쉬었다 가자. 죽겠다 진짜!”
아침부터 꽤나 활기가 넘치는 모습이다.
카디낙의 주민들은 슬쩍 시선을 돌려본다. 그들의 시선은 아예 무너져 내린 서쪽의 성벽에 향한다.
“···어떻게 딱 저기만 무너졌대? 다른 데는 돌 부스러기 하나 없이 말야.”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카디낙에서 밤새 펼쳐졌던 전투를 보지 못한 모험가들은 없다. 거리가 멀어 그 모습을 제대로 관찰할 수는 없었지만··· 최소한 그것이 가벼운 싸움이 아님은 알고 있다.
‘껴들기만 해도 죽는 싸움.’
휘말릴까 봐 거리를 두고 보았다.
그곳은 이미 별세상이었다. 그만한 경지에 이른 이들이 전투를 벌였거늘, 피해는 서쪽 구획에 한정돼있다. 인명피해도 최소한이었다.
“도대체 뭐랑 뭐가 싸운 거야?”
“몰라 나도. 애초에 제대로 본 사람이 있어야지. 흙먼지가 피어오르고, 눈 깜빡할 사이에 뭐가 펑펑 터져대는데 그걸 어떻게 봐?”
“기사들은 뭐래?”
“지들도 모른대. 왕도에서 온 로얄 가드한테 명령만 받았댔나.”
“허, 참······.”
결국에 제대로 된 목격담은 없다. 전황을 제대로 이해한 이들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그나저나 말야.”
모험가의 어깨가 축 처진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모험가도 길게 한숨을 쉰다. 그가 무슨 이야기를 꺼낼지 얼추 짐작이 간 까닭이다.
“왜 하필이면 서쪽 구획이냐······.”
“그 덕에 인명피해가 없잖아. 서쪽 구획은 마수 출몰과 동시에 대피가 이뤄졌으니까.”
“저기 단골 가게가 몰려있었는데.”
“이참에 좀 끊어.”
“쩝······.”
괜스레 입맛을 다시며 모험가는 서쪽 구획을 본다. 평소에 애용했던 가게들이 몰려있는 거리다. 밤의 도시의 이름에 걸맞은 골목길이었다.
‘10회 채워서 1회 무료였는데.’
모험가는 속으로 눈물을 삼킨다. 그가 축 처져 있자니, 보다 못한 동료 모험가가 입을 열었다.
“···내 단골 가게 추천해줄게.”
“단골 가게?”
“거긴 무사하다더라. 오늘은 내가 쏠게.”
모험가의 눈이 빛난다.
우울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모험가란 언제나 오늘을 사는 이를 의미한다. 어제의 슬픔은 묻어둔다. 오늘 밤에는 또 다른 쾌락을 좇아 발걸음을 옮기리라.
‘그것이 모험가니까.’
음, 하고 고개를 끄덕인 모험가가 걸음을 옮긴다. 그 걸음걸이는 가볍고 경쾌하다.
밤의 도시 카디낙.
아직 밤이 찾아오지 않았지만, 카디낙의 거리에는 온갖 모험가들로 가득하다. 잔해를 치우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2.
“카디낙의 영주가 피눈물을 흘리더군요.”
왕도로 돌아가는 마차(??)의 안.
문득 칼트가 입을 열었다. 칼트는 붕대를 둘둘 감아 꼭 벙어리 장갑을 낀 듯한 손으로 서류철을 잡았다. 그리곤 이빨로 종이장을 한 장씩 넘겼다.
‘···재주도 좋네.’
칼트가 서류에 적힌 것들을 읊었다.
“공을 들여 건축한 시계탑이 박살. 덤으로 종탑도 박살. 서부 구획은 궤멸. 밤의 도시의 자랑이라 불리는 홍등가 ‘여름꽃’ 거리 가게의 단체 폐점.”
“오······.”
“심지어 서쪽 구획에는 축제를 개최할 예정이었다더군요. 1년에 한 번씩 여는 축제인데, 그것도 망했다면서 아주 눈물 콧물을 질질 흘리지 뭡니까.”
나는 머릿속으로 영주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영주가 바뀌었단 소리는 못 들었으니, 레페를 잡겠답시고 건물 여럿 날렸던 그때 그 영주겠지.
‘되게 신사 같은 사람이었지, 아마.’
하지만 일이 터지면 눈물 콧물 쏟으며, 내 다리를 붙잡던··· 조금 반전이 있는 사람.
라니엘님, 이게, 이게 무슨!
눈을 감으니, 머릿속에 울먹이는 영주의 목소리가 자동재생 됐다. 몇 년 전의 일인데도 그 목소리가 생생했다.
성녀님이 성상을 박살냈다고요? 이게, 이게 말이나 되는 일입니까! 제가 그 성상을 세우는데 예산을 얼마나 끌어다 쓴······!
델로힘 교단은! 델로힘 교단의 추기경께서는 뭐라 하십니까? 성녀님께서 벌인 일이니, 성교회에서 지원이 나올 게 분명하지 않습니까······!
···진짜 미안한 일이지만.
그때도 지원은 오지 않았다. 오히려 불쾌한 도시라며 사라가 낙인을 찍어버린 바람에··· 지원도 뚝 끊겼던 거 같은데.
“내가 웬만하면 이런 거로 잘 안 미안해하는데, 카디낙 영주한텐 좀 사과하고 싶네······.”
“하하. 그래도 뭐, 이 정도면 피해가 적은 편 아니겠습니까?”
칼트가 어깨를 으쓱였다.
“무려 넷의 재앙 중 하나, 배교자와 전투를 벌였는데 도시가 통째로 안 날라간 게 어딥니까.”
“그건··· 그렇지.”
“선배님도 다 계산하시고 서쪽 성벽으로 날리셨잖습니까. 이 정도면 싸게 먹힌 편이죠.”
“생각해보면 그렇긴 하네.”
무려 배교자 글레투스다.
그녀가 약화된 채로 들어왔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용사 파티 전원이 달려들어도 못 잡았으니까.’
첫 번째 싸움에선 쿤텔 아저씨의 힘을 빌렸다. 그때는 토벌의 직전까지 갔지만··· 죽음의 칼의 개입으로 실패했다.
‘두 번째나, 그 이후로도 계속 한 명 정도는 초인이 붙었던 거 같은데.’
검귀드라카.
광인 켈르할름.
그 두 사람이 전선을 어느 정도 묶어 놨기에 싸움이 성립됐다. 다른 용사 파티의 힘을 빌리기도 했지만··· 썩 도움이 되진 않았다.
“그러고 보니 다른 용사들은 어떠냐?”
“하인켈 기사단장님이 관리를 하는 것 같긴 한데, 그리 통제가 잘 되는 것 같진 않습니다.”
“그야 그렇겠지.”
“애초에 괜히 용사하면 카일 님의 이름만 나오는 게 아니잖습니까. 아, 성창(??)의 갈라할 용사님은 그럭저럭 활약하고 있는 것 같긴 합니다.”
“실력은 둘째치고 성격은 완성된 놈이니까.”
성창의 갈라할.
몇 번 마주친 적이 있긴 하다. 실력은 별로지만 용사로서의 마음가짐만큼은 완성된 녀석이었다.
‘다른 용사들보단 훨씬 낫지.’
머릿속으로 마주쳤던 용사들을 떠올리려 봤다. 그러다 보니,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좀 이상한데.”
“예? 뭐가 말씀입니까?”
“이번 대 용사가 유난히 폐급 비율이 높지 않아?”
“폐급이요?”
“어. 카일 이전 대의 용사들은 꽤 괜찮았던 걸로 기억하고 있거든? 그 왜, 불굴의 리하트 같은 용사들 말야.”
카일이 용사가 되기 이전의 세대.
그때 전선을 유지하던 용사들은··· 쿤텔 아저씨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는 됐다. 존경할만한 인물도 꽤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근데, 지금 대 용사들은?’
카일을 빼고 써먹을 만한 녀석이 없다.
내가 카일을 오랫동안 붙잡고 있던 이유기도 했다. 다른 놈들에게선 가능성을 못 느꼈으니까.
“카일을 제외하면 용사들 수준이 확 떨어지잖아. 저번 세대랑너무 비교 되는거 같지 않아?”
“···생각해 보니까 그렇긴 하군요.”
칼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그 문제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보려는 순간이었다. 덜컹, 하고 마차가 크게 흔들렸다.
“악!”
충격이 엉덩이를 타고 등골을 울렸다.
나는 허리를 붙잡은 채 몸을 푹 숙였다. 몸이 반병신이다 보니, 작은 충격에도 등골이 찌릿찌릿했다.
“아흑······.”
내가 허리를 손등으로 치며 신음하고 있자니, 칼트가 입을 열었다.
“도착한 것 같군요.”
마차의 문이 열렸다.
칼트는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선배님.”
밖을 바라보니 스승님의 저택 앞이었다.
나는 허리를 두들기며 마차에서 내렸다.
“너도 조심히 들어가라.”
“예, 연락드릴 사항이 있으면 따로 서신 넣겠습니다.”
그래, 라고 답하며 나는 손을 살짝 흔들었다.
칼트를 태운 마차는 왕성을 향해 다시 출발했다. 썩 부드러운 움직임이었다.
“···후우.”
나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문 앞에 섰다.
똑똑, 문을 두들기기 무섭게 문이 열렸다. 문 앞에는 머리가 헝클어진 스승님이 서 계셨다. 스승님의 눈가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 했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어, 스승님? 안 주무셨어요?”
“퍽이나 잠이 오겠구나.”
스승님이 길게 한숨을 뱉으셨다.
헝클어진 머리칼을 쓸어넘기며, 스승님이 입을 여셨다.
“대충 소식은 들었다.”
“벌써요? 빠르네요.”
“···몸은 좀 괜찮더냐?”
나는 잠깐 입을 다물었다.
그리곤 팔을 들어 올리며 웃어 보였다.
“멀쩡해요.”
“······.”
스승님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눈치채셨겠지.’
하지만, 스승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잠깐의 침묵 후 스승님은 팔을 들어 올리셨다.
툭.
늙어서 거칠어진 손이 내 머리 위에 얹어졌다. 스승님은 두어 번 손으로 내 머리를 두들기셨다. 그리곤 나지막이 물으셨다.
“그럴 필요가 있었더냐.”
“저밖에 없었으니까요.”
“···얼마나 남았느냐.”
“에이, 그렇게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아직 많이 남았어요. 그리고, 방법도 찾아봐야죠.”
스승님이 쓰게 웃으셨다.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툭, 하고 스승님이 내 머리에서 손을 떼셨다.
“들어오거라.”
문을 열으며 스승님께서 집 안을 가리켰다.
“네가 좋아하는 그 카페에서 간식거리를 좀 사놨다. 데워서 줄 테니 씻고 쉬고 있거라.”
“오, 정말요?”
나는 스승님의 배려에 감사하며 집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케이프를 벗고, 조끼의 단추를 풀었다. 피 묻은 붕대를 풀었다.
···조금 낯선 기분이었다.
‘돌아올 자리가 있다는 것.’
돌아와서, 휴식을 취할 곳이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묘한 안도감이 들어서 나는 그만 웃고 말았다.
썩,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3.
배교자가 엮인 사건이 해결된 지 이틀 뒤.
잠시 휴가를 내고 집에서 요양 중인 나는, 칼트에게 받은 사후 보고서를 읽고 있었다. 별달리 주목할만한 내용은 없었다.
차세대 용사, 클로에.
그녀의 신원 보호도 성공적으로 이루어졌고, 벨노아도 사지 멀쩡히 복귀 했댄다.
‘그거면 됐지, 뭐.’
참고사항이라며 적어 보내준 게 몇 개 더 있긴 했지만, 그건 나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라니엘.”
문 바깥에서 스승님이 내 이름을 부르셨다.
그 의도를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어제 스승님께 대충 이야기를 들었으니까.
‘손님이 왔다는 거겠지.’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침대의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네, 괜찮아요.”
이윽고 방문이 열렸다.
그곳에는 스승님 말고도 두 명의 인물이 더 서 있었다.
“반갑습니다, 흑탑주.”
흑탑주 예투알과, 그의 제자 벨노아.
아마도, 내 비밀을 알게 되었을 두 사람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반갑군.”
예투알이 말했다.
“잿빛 마법사.”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