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116
〈 116화 〉 뒷 이야기(3)
* * *
벨노아는 땀을 흘렸다.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이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게 느껴졌다. 날씨가 덥지는 않았다. 그러니, 이건 분명 식은땀이었다.
식은땀을 흘리며 벨노아는 생각한다.
‘이게··· 맞나?’
머릿속에 가득한 건 의문이다.
벨노아는 눈앞을 본다. 눈앞에는 언제나와 다를 바 없는 라니아 교수가 침대에 등을 기댄 채 앉아 있었다.
그러나, 이전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잿빛 마법사, 라니엘 반 트리아스.’
그것이 라니아 교수의 정체였다.
무언가 수상쩍고, 기행을 즐기는 인물이긴 했지만··· 설마 그 정체가 잿빛 마법사일 거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어쩌다 저렇게 됐는지 상상조차 가질 않는다.
그러나, 그건 벨노아가 신경 쓸 부분이 아니었다. 당장에 벨노아가 신경 써야 할 것은··· 지금 라니아 교수가 뱉는 말들이었다.
“벨노아, 듣고 있니?”
“아, 넵. 듣고 있습니다.”
“응, 생각해보면 배틀 메이지의 근본이라는 게, 결국 별거 없거든. 진짜 죽기 직전까지 구르다 보면 시야가 좀 확 트이는 느낌이 든다?”
그녀가 웃는다.
“아, 이거 잘못하면 뒤지겠다. 그 생각이 들면 사람이 살려고 뭐라도 하게 돼. 그 깨달음을 하나씩 쌓아서 정립한 게 내 전투법이고.”
예쁘게도 웃는다.
“극한의 상황에서의 깨달음.”
웃으면서 뱉는 말은 전혀 예쁘지 않다.
“이게 곧 배틀 메이지의 근본인 거지.”
마치 꽃이 피는듯한 화사한 미소다. 너무나도 화사해서, 순간 말뜻을 잘못 이해할 뻔했다.
‘요컨대, 죽기 직전까지 굴러라?’
이게··· 정말로 맞는 건가?
아무리 봐도 농담을 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벨노아의 안색이 새파래졌다.
‘아니, 분명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라니아 교수가 곧 잿빛 마법사다.
잿빛 마법사가 누구인가? 현재 벨노아의 클래스인 배틀 메이지(BattleMage)의 창시자 되는 인물이다.
배틀 메이지의 창시자가, 배틀 메이지의 근본(??)에 대해 논한다.
그것은 분명 옳은 말이다. 당장 노트를 꺼내 필기해야 할 중요한 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벨노아는 쉽사리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결국 입 밖으로 빠져나온 건 어중간한 긍정이다.
“그, 그렇습니까.”
“그런 셈이지.”
그녀가 속이 시원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얼마나 답답했는 줄 알아?”
“답답··· 하셨다뇨?”
“전투 마학과 교수, 그 누구였더라···.”
“맥하트 교수님 말씀이십니까?”
“그래, 그 교수. 그 교수가 말하는 것도 틀리진 않는데, 듣다 보면 좀 답답하지 않겠어? 육탄전이 기반이 되어야 한다니 뭐니······.”
라니아가 한숨을 푹푹 내쉰다.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젓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문득 벨노아의 머릿속에 몇 달 전의 일이 떠올랐다.
‘아마도, 시기상으로 한두 달 전.’
라니아 교수가 전투 마학과 수업을 참관차 들렸던 시기의 일이다. 그때 열변을 토하던 맥하트 교수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육탄전이 곧 배틀 메이지의 기본이네!
에잉, 기본도 이리 알아듣지 못하니······!
‘···그럼 맥하트 교수님은.’
창시자 앞에서 근본을 논한 것인가.
‘어지럽네.’
라니아 교수의 정체를 알고 나니 지난날의 기억들이 전혀 다르게 비춰 보인다. 특히, 온 힘을 짜내 덤벼들었던 실습 시험의 기억은···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웃음만 나올 뿐이다.
‘진짜, 한계까지 제한하신 거구나.’
그런 일들을 떠올리자면 끝도 없지만··· 일단은 덮어둔다. 어찌 됐든, 그건 흘러간 일들이다. 벨노아는 당장 할 말을 떠올리며 짧게 숨을 뱉었다.
해야 할 말이 있었다.
묻고 싶은 말이 있었다.
벨노아의 분위기가 바뀜을 느낀듯, 라니아 또한 말을 끝맺고는 잠시 침묵했다. 벨노아가 입을 열기를 차분히 기다려 주었다.
잠깐의 침묵 후 벨노아가 입을 열었다.
“교수님, 아니 잿빛 마법사님께···.”
“그냥 교수님이라 불러. 그게 더 편해.”
“···교수님께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그녀가 말하라는 듯 고개를 까딱였다.
벨노아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날, 카디낙의 골목길에서 말입니다.”
그가 입을 열자 라니아는 엷은 웃음을 흘렸다. 벨노아가 무엇을 말할지 어느 정도 예상을 했다는 듯한 눈치였다.
“교수님께선 말씀하셨습니다. 잘 봐두라고, 보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될 거라고.”
“그렇게 말했었지.”
“···예, 그리고 저는 보았습니다.”
빛을.
눈이 멀 정도로 찬란한 빛을.
“전부 보지는 못했지만, 볼 수 있는데 까진 봤습니다.”
“그래서?”
뭘 느꼈는데, 라고 그녀가 묻는다.
그 물음에 벨노아는 답했다. 몇 번이고 되새겼던 답이다. 입 밖으로 내뱉는 문장에 결림은 없었다.
“종착점을 보았습니다.”
내뱉은 문장은 담백하다.
담백하기에, 문장에 담긴 뜻을 이해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종착점이라······.”
벨노아의 답을 곱씹은 라니아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벨노아를 보았다. 그녀가 질문했다.
“배운 건 있었고?”
“···별에게 ‘그런 것’까지 바칠 수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여쭤보고 싶은 것도 그 부분입니다.”
벨노아는 잠시 자신의 팔을 보았다.
아직 낫지 않은 팔은 비틀려있다. 회복까진 조금의 시간이 더 필요로 할 것이다.
‘쓸 수 있는 전부를 썼으니까.’
손가락을, 팔을, 근육을, 피를.
바칠 수 있는 전부를 공양했다. 그 대가는 결코 가볍지 않다. 어느 부상은 평생 낫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닿지 않았다.’
벽을 마주했다.
힘이 필요할 때, 힘이 없었다. 자신보다 강한 적을 뚫을 무기가 벨노아에게는 필요했다.
“어떻게 하면.”
벨노아는 고개를 들었다.
자신보다 훨씬 강한 존재에게서, 승리를 따낸 마법사를 보았다. 자신이 아는 한 가장 강한 마법사를 보며 벨노아는 질문했다.
“수명을 천칭에 올릴 수 있는 거죠?”
몇 번이고 생각해 보았지만 벨노아는 그 답을 알 수 없었다. 수명 또한 육체의 일부라 생각해보았으나, 거래 식이 그려지지 않았다.
‘수명을 바칠 줄 안다면.’
그 흑기사를 이길 수 있었을 것이다.
클로에를 지킬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방법을 벨노아는 알고 싶었다.
강적에게서 승리를 점칠 방법.
감당할 수 없는 것을, 감당하는 방법.
벨노아는.
그것을 알아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클로에는 앞으로 더 많은 이들에게 노려질 것이다. 그중에는,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존재도 있을 것이다.
‘어떻게든, 배워둬야 한다.’
그렇기에, 벨노아는 질문한다.
“어떻게 하면······.”
“벨노아.”
부드러운 목소리가 벨노아의 말을 끊었다.
“그건 생각하지 마라.”
“···예?”
“수명을 바치는 건 어지간하면 생각하지 말라고. 천칭을 약식으로만 배운 네가 수명을 천칭에 올리면···.”
그녀가 자신의 머리를 툭툭 건드렸다.
“미쳐버릴 거거든.”
“···미친다뇨?”
“광인 켈르할름에 대해 알고 있니?”
망국(?國)의 마법사.
‘한때 현인이라 불리던 광인, 켈르할름.’
그 이름은 들어 알고 있었다.
벨노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라니아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수명을 바친다는 건, 미래의 가능성을 끌어오는 거야. 네가 다루지 못할 힘을 네 영혼에 강제로 안착시키는 거지. 휘발 적인 힘이라곤 하나······.”
그녀가 쥐고 있던 주먹을 쫙 펼쳤다.
“간혹가다 있거든. 영혼이 못 견디고 박살 나 버리는 경우가.”
“영혼이··· 박살 난다고요?”
“어. 미쳐버리거나, 죽거나. 둘 중 하나지. 켈르할름은 미친 쪽이었고. 운이 좋았지, 그 양반도.”
···그걸 운이 좋다고 해도 되는 건가?
벨노아가 눈을 깜빡거리고 있자니, 라니아가 벨노아의 이마에 딱밤을 먹였다.
딱!
“나도 상황 봐가면서 하는 건데, 너 같은 애송이가 뭔 벌써 수명을 바쳐? 꿈 깨라, 애송아.”
“···하지만.”
“그런 거 안 써도 돼.”
그녀가 말했다.
“내가 방금 말하지 않았나? 너희를 좀 더 굴릴 거라고. 너, 내 말 듣기는 했어?”
벨노아는 이마를 문지르며 라니아를 보았다.
“너는 이제 알잖아. 내가 누군지. 그 많은 학생 중에, 너만이 알고 있지.”
“······.”
“그런 내가 가르치겠다고, 널. 직접.”
그 뜻을 아직도 모르겠어?
그녀가 못 말리겠다는 양 벨노아를 본다. 그 시선은 강의실의 단상에 서 있을 때의 그녀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너희를 위한 커리큘럼도 전부 준비해뒀고, 그걸 조금씩 앞당길 생각이야. 왜, 궁금하면 말해줄까?”
그녀가 손가락을 펼치며 말했다.
“우선 1학년 때 천칭의 초입은 달게 해야지. 그것 외에도, 최상급 회로의 해체도 노려볼만 할거고······.”
그녀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는 계획을 벨노아는 잠자코 들었다.
‘천칭의 초입에 발을 딛게 한다니.’
첫 단추부터가 터무니없었다. 전제조건으로 깔아둔 것들을 듣자니 헛웃음이 나왔다.
“또···.”
그녀는 말을 계속했다.
학습의 목표를 말했고, 1년의 대략적인 계획을 말했다. 그중에는 이미 이룬 것도 있었다. 그녀가 말을 하면 할수록 벨노아의 눈빛도 달라졌다.
“그리고, 2학년 1학기부터는 본격적으로···.”
1년에 그친 계획이 아니었다.
언제 저기까지 짜두었을지 모를 계획을 그녀는 계속해서 말했다. 터무니없는 계획들이었다. 그러나, 어째서일까.
“3학년부터는 슬슬···.”
그녀가 잿빛 마법사인 까닭일까.
아니면, 그녀가 지난 몇 개월간 보여준 수업 때문일까. 그도 아니라면, 둘 다일까.
“그렇게 졸업할 때쯤에는 말야.”
왜인지 모르게, 벨노아는.
“최소한, 스케발은 잡아 족칠 수 있게 되겠지.”
그 계획에서 가능성을 보았다.
정말로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든 길이다. 과할만큼 거친 길이었다. 하지만, 그 길을 제대로 걸어 종착점에 도달하게 된다면······.
어쩌면, 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벨노아는 무언가에 홀린 듯 물었다.
“정말로 그게 가능할까요.”
“가능하게 해야지.”
잿빛 마법사가 단언했다.
“내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
흔들림 없는 말에는 확신이 느껴진다.
벨노아는 침묵했다.
···생각해보면.
무척이나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말도 안 되는 기회를 잡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앞에 있는 사람이, 이렇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
잿빛 마법사다.
하나의 상징이 된 마법사다.
그녀가 이루어낸 업적을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밑도 끝도 없다. 한 권의 역사서를 그녀의 업적으로 가득 채울 수 있을 정도다.
그만한 인물이 말했다.
‘나를, 가르쳐주겠다고.’
그만한 인물이, 단언한 것이다.
‘나를 그 영역까지 끌어올려 주겠다고.’
벨노아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하겠습니다.”
결심이 선 눈동자로 라니아를 바라보며, 한 글자 한 글자에 힘을 주어 발음했다.
“노력하겠습니다.”
그 대답에 만족한 듯 라니아가 미소 지었다.
“알겠으면 가 봐. 슬슬 피곤하다.”
벨노아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의자에서 일어서, 방 바깥으로 나가기 직전 벨노아는 잠시 뒤를 돌아보았다. 피곤한 듯, 눈을 게슴츠레 뜬 그녀가 안 나가고 뭘 하냐는 듯한 눈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
벨노아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허리를 숙이고 또 숙였다.
“···감사합니다.”
많은 뜻을 품은 한마디였다.
2.
이른 아침, 나는 멍하니 내 계좌를 보았다.
카드에 입금된 골드를 보며 나는 눈을 깜빡였다.
“이거 뭐야 씨팔.”
무심코 욕이 튀어나왔다.
내가 잘못 본 건가? 나는 스승님께 부탁해 물 대야를 가져와선 세수를 한번 했다.
그리곤 다시 카드를 보았다.
여전히, 찍힌 숫자는 변함이 없었다.
그날 오후에 칼트가 날 찾아왔다. 나는 칼트에게 내 카드를 가리키며 물었다.
“칼트.”
“예 선배님.”
“내가 아침에 카드를 봤단 말야?”
“아, 정상적으로 입금이 된 모양이군요.”
“그, 이게 맞냐?”
자릿수가 바껴 있었다.
“그거 준비하느라고 애 좀 먹었습니다. 선배님의 개입 없이 배교자를 쓰러트렸다고 보고하긴 어렵잖습니까. 그래서,적당히 꾸며서 보고하긴 했는데···왕가에서 이젠 제가 선배님하고 모종의 관계가 있음을 눈치챈 모양입니다.”
“그래서?”
“근데 뭐, 눈치채면 뭐 하겠습니까. 당장 이런 식으로라도 잿빛 마법사가 도움을 주는 걸 고맙게 여기는 것 같더군요.”
새삼스레?
내가 그런 눈치를 보내자, 칼트가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원래 잃고 나서야 그 가치를 제대로 알게 된다고 하잖습니까. 선배님이 은퇴하고 나서, 위쪽에서도 꽤 똥줄 좀 탄 모양입니다.”
“똥줄을 타?”
“예, 선배님이 다른 나라로 가면 어떡하나··· 같은 걱정이죠. 정치적 문제가 꽤 엮인 것 같긴 하지만 자세한 건 저도 잘 모릅니다.”
“그래서 이건······.”
“대충 앞으로도 잘 부탁드린다는 느낌의 보상 같습니다. 예산을 꽤 많이 끌어다 썼다고 하더군요.”
나는 카드에 찍힌 액수를 보았다.
“야, 칼트.”
“예, 선배님.”
“나, 그냥 마탑 한 채 지을까······?”
“한 채가 뭡니까. 시원하게 한 다섯 채 정도 짓죠. 그중 하나만 저 주실 수 있습니까? 건물주 되는 게 꿈이었는데.”
칼트는 반 쯤 농담으로 받은 모양인데, 이 부분에 대해선 진지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었다. 내가 머릿속으로 마탑 건설 계획을 그리고 있자니 칼트가 화제를 돌렸다.
“그건 그렇고, 흑 마탑주와 그 제자가 다녀갔다고 들었습니다.”
“다녀갔지.”
“별문제는 없었습니까?”
“별로?”
나는 턱을 괸 채 말했다.
“의욕 넘쳐 보이고 좋던데.”
* * *
조별 과제가 코앞까지 다가온 어느 날.
벨노아가 속한 E조 학생들은 눈을 깜빡인다. 그들은 눈앞에 놓인 종이와, 종이를 내민 소년을 번갈아 바라봤다.
“그, 벨노아?”
“어.”
“이게 뭐야?”
“조별 과제.”
그가 담담히 말했다.
“저번 회의 불참해서 미안.”
대뜸 사과를 하더니, 그가 종이를 들어 올렸다. 그리곤 테이블에 올라와 있는 저항석을 향해 손가락을 까딱였다.
번쩍.
종이에 그려진 회로가 빛난다.
1 pi 만큼의 마나를 빨아들인 회로는 그림자 말뚝을 만들어낸다. 말뚝이 향하는 곳은 저항석의 귀퉁이다.
쩌억!
저항석의 귀퉁이가 박살 났다.
박살 난 파편은 아예 가루가 됐다.
“어······?”
조원들의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베껴서 옮기기만 하면 될 거야.”
벨노아가 조원들 앞에 종이를 내밀었다.
E조의 조원들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벨노아를 바라봤다. 그 시선에선 경외감마저 느껴진다.
탈주한 조장이 돌아왔다.
그것도 조별 과제를 전부 끝내서.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