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119
〈 119화 〉 끝이 다가올수록 주의해라(1)
* * *
쨍하니 햇살이 내리쬔다.
벨노아는 왕도의 한 카페의 의자에 걸터앉은 채, 고개를 뒤로 젖혔다. 날이 뜨거우니 뭘 한 것도 없는데 벌써부터 지치는 기분이다.
달그락.
얼음을 띄운 커피를 쭉 들이켜며 벨노아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불어오는 바람은 뜨겁다.
쨍하니 내리쬐는 햇살에 땀방울이 맺힌다.
날씨가 이 모양이니 복장이 가벼워질 수밖에 없다. 햇빛을 싫어해 꽁꽁 싸매다시피 옷을 입는 벨노아지만··· 결국 날씨 앞에 굴복하고 말았다.
“그게 하복이야? 세상에, 너무 예쁘다!”
···사실, 날씨에 굴복했다기보단 클로에의 닦달에 시달린 탓이 더 크다. 클로에는 눈을 반짝이며 벨노아의 하복을 쭉 잡아당기고 있었다. 무척이나 흥분한 듯한 눈치였다.
“여자애들 교복은 어때? 예뻐?”
“자세히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는데.”
“나한테 어울릴 것 같아?”
“글쎄다.”
클로에가 방긋방긋 웃으며 고개를 기울인다. 벨노아는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며 턱을 괬다.
납치, 그리고 구출.
그로부터 꽤 시간이 흘렀지만··· 그 사건은 벨노아에게 경각심을 심어두었다. 왕도라고 해서 마냥 안전하지만 않다는 경각심을.
“나도 아플리아에 빨리 가보고 싶다.”
“···그러냐.”
물론 클로에는 아니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헤실헤실 웃고 있는 클로에를 보고 있자니··· 한숨만 나온다. 머릿속이 꽃밭인 소녀의 몫만큼 자신이 더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후우···.”
그렇게 벨노아가 몇 번째인 지 모를 한숨을 내쉬고 있자니, 클로에가 나지막이 벨노아의 이름을 불렀다. 그녀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벨노아.”
소녀의 새하얀 머리칼이 흘러내린다.
그녀가 눈웃음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부드러운 미성이 벨노아의 귓가에 맴돌았다.
“이번에도 고마워.”
“······뭘 새삼스레.”
“이번에는 특히나 더 위험했다면서.”
“위험했지.”
벨노아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정말로 위험했다. 그때, 그 순간에 라니아 교수님이 오지 않았다면··· 아마도 그대로 끝이었을 테니까.
‘라니아 교수님인가, 라니엘님인가···.’
거리감을 종잡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 교수님을 생각하다 보니, 벨노아는 무심코 그곳에서 마주쳤던 재앙의 모습이 떠올랐다.
배교자(?者), 글레투스.
재앙이라 불리는 연금술사.
조금의 거리를 두고 마주쳤던 그 재앙의 모습이, 벨노아에게는 어째서인지 익숙하게 느껴졌다.
‘백발에, 녹 빛의 눈동자.’
벨노아는 눈앞을 본다.
맞은편에서 방긋방긋 웃고 있는 클로에 역시, 백발과 녹 빛의 눈동자를 가지고 있다. 단순히 색만이 겹치는 것은 아니다.
‘꼭, 클로에가 어른이 된 듯한 모습이었어.’
놀랍도록 닮아있었다.
광기를 여인의 형상으로 빚어낸 듯한 재앙의 모습과, 눈앞의 클로에의 모습이 자꾸만 겹쳐 보인다.
“벨노아, 혹시 오늘 기분 안 좋아? 아니면 내가 뭐 잘못··· 했어?”
“뭐?”
“아까부터 인상 팍 쓰구 있길래··· 내가 뭘 잘못했나 싶어서.”
“아니, 그냥 생각할 게 많아서.”
눈꼬리를 축 내린 채,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클로에를 보며 벨노아는 쓰게 웃었다. 그제야 클로에는 한숨을 돌렸다는 듯, 가슴팍을 쓸어내리는 시늉을 했다.
“나도 만나보고 싶은걸.”
그리곤 대뜸 말하는 것이다.
“라니아 교수님 이랬나? 이번에 도와주셨구, 벨노아가 배울 게 많다고 한 교수님.”
“···독특하신 분이지.”
“벨노아가 그렇게 말하는 것 보면 좋은 교수님이신 가봐?”
좋은 교수님.
“······.”
그 말에 벨노아는 잠시 침묵했다.
“음······.”
좋은 사람은 맞다. 배울 게 많은 사람인 것도 맞다. 무려 잿빛 마법사라 불리는 인물이다. 존경해 마땅한 인물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좋은 ‘교수님’ 이라고 묻는다면··· 쉽사리 대답이 나오진 않는다. 그 말에는 좀처럼 긍정하기가 어려웠다.
“글쎄···.”
결국 벨노아는 오묘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좋으신··· 분이지. 훌륭하신 분.”
“벨노아, 표정이 왜 그래?”
클로에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벨노아는 클로에를 보며 딱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얼마 전, 라니아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네 소꿉친구, 클로에라고 했나?
그 애는 입학 언제 하니?
꼭,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와도 같은 말이었다.
벨노아는 속으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만나보면 알 거야.”
당장은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이래저래, 말로 설명하긴 힘든 분이었으니까.
2.
“엣취!”
갑자기 나온 재채기에 나는 코끝을 문질렀다.
여기까지 오는 길에 먼지를 뒤집어써서 그런 걸까? 코끝이 근질거렸다.
“하여간.”
나는 한숨을 내쉬며 턱을 괬다. 주변을 둘러보면, 낡은 마도구 용품이 한가득이다.
먼지가 쌓인 플라스크.
아무렇게나 꽂혀있는 마학 서적들.
그런 것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 가게의 주인이 얼마나 청소를 안 하고 사는지 얼추 짐작이 가는 것이다.
“넌 진짜 왜 이런 데에서 사냐?”
“찾아오지 말라고 이런 데에 지어놨다만, 꼭 한 명씩은 손님이 있더군.”
툴툴거리는 내 말에 가게의 주인이 답했다.
“또 무슨 일이냐, 라니엘?”
은발의 엘프, 카르디.
그는 참 새삼스럽다는 눈치로 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드르륵, 하고 내 앞에 찻잔을 내밀었다.
“···뭐냐 이거?”
“지난번에 녹차()를 좋아한다고 하지 않았나. 그래서 끓여봤다.”
“너 차 존나게 못 끓이잖아.”
“내가 못 끓이는 게 아니다. 요즘 어린 것들이 차를 잘 끓이는 거지. 쓸데없을 정도로 잘.”
매우 구차한 핑계였다.
‘그래도, 차를 타 준 성의가 있으니 한 모금 정도는 마셔야겠지···?’
그런 생각으로 나는 찻잔을 기울였다.
녹차라 부르기에는 심히 괴이한 액체가 입술에 닿은 순간, 나는 말없이 찻잔을 내려놨다.
“퉷.”
도저히 마실만한 게 아니었다.
“더 안 마시나?”
“마셔? 이걸?”
나는 눈을 부릅뜨고 카르디를 노려봤다.
이건, 마시기보단 차라리 ‘씹는다’ 혹은 ‘억지로 삼킨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무언가였다.
내 대답에 카르디는 턱을 매만졌다.
진지하게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눈치였다.
“이상하군. 그녀는 좋아했는데.”
“그게 누군진 몰라도, 미각이 정상적인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혀에 문제 있는 거 아냐?”
카르디는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언제나처럼 얄미운 미소를 흘린 그가 내가 밀어놓은 찻잔을 치우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이번엔 무슨 일이지?”
“물어볼 게 있어서.”
“궁금한 것도 참 많군.”
“네가 뭘 제대로 알려주기나 해야지.”
나는 확장, 보관 주문이 걸린 케이프에 손을 짚어 넣었다. 한참을 뒤적거린 끝에 손에 무언가 닿았다. 닿은 것만으로도 소름끼치는 무언가였다.
휙.
그것을 잡아당겨 케이프 바깥으로 빼냈다.
테이블 위에 그것을 올려두는 순간, 카르디의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이건···.”
“배교자의 팔.”
이계와 연결된 배교자의 왼팔.
내가 테이블에 올려둔 것은 그것이었다.
뻗는 것만으로 이계(??)로 통하는 문을 여는 팔. 배교자의 상징이자, 사실상 그 미치광이의 토벌에 있어 핵심이 되는 요소.
그것을 가리키며 나는 말했다.
“뭔가 이상하더라고.”
꼭 밤하늘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팔이다. 만지면 피부와 뼈가 느껴지기보다는 물속에 손을 집어넣는 느낌이 들곤 한다.
“그년한테서 떨어져 나왔는데도 썩거나 바스러지지도 않아. 별빛으로 지져봤는데 통하긴 커녕··· 별빛을 빨아들이는 느낌이야.”
온갖 방법을 다 써봤다.
분명 무언가 쓰임새가 있을 것 같아서, 내가 아는 모든 지식을 동원해 이 팔을 연구했다.
“근데, 아무것도 모르겠더라고.”
그리고, 그 결과는 지금과 같다.
모르겠다. 정말로,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그나마 밝혀낸 건··· 카르디가 저번에 말해주었던 ‘그늘’과 연관이 있다는 것 정도일까.
내 말에 카르디는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누런 금빛의 눈동자는 조금이지만 흔들리고 있었다.
“···그래서 나를 찾아온 건가.”
“그냥, 생각나는 게 너뿐이더라.”
내가 모르는 것.
재앙에 관련된 것.
그걸 알만한 인물은···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엔 이 정체 모를 엘프밖에 없었다.
“그녀와 마주했나 보군.”
“왕도로 쳐들어왔더라고.”
“대충 들어서 알고 있다. 그 아이를 이용해 틈새를 파고들려 했던 것이겠지.”
짧게 숨을 뱉은 카르디가 나를 바라봤다. 그 눈동자에는 조금이지만, 놀라움이 담겨 있었다.
“···대단하군, 정말로.”
그가 배교자의 팔을 건드리며 말했다.
“성검도 없이, 하물며 별의 축복도 없이 델로힘의 팔을 뜯어낸 건··· 정말 예상치 못한 결과야.”
“···델로힘의 팔?”
“이 팔의 명칭이다. 예전에는 그렇게 불렸지만, 지금은 뭐라 부를지는 잘 모르겠군.”
이제 와서 명칭이 중요한 건 아니지.
그리 중얼거린 카르디가 소매를 걷어붙였다.
“···뭐 하려고?”
“조용히 해봐라. 집중해야 하니.”
배교자의 팔을 더듬던 카르디가, 어느 지점에서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푸욱, 하고 손가락이 구정물 사이로 파고들었다.
“···어?”
이계(??)에 통하는 문.
카르디는 어떠한 주문도 쓰지 않고 그 문을 열어젖혔다. 그에 놀랄 틈도 없었다.
꾸욱.
처음에는 엄지, 다음은 검지··· 그렇게 카르디는 다섯 손가락을 차례로 배교자의 팔에 꽂아 넣었다. 카르디의 팔뚝에 핏줄이 도드라졌다.
“······.”
카르디가 눈살을 찌푸렸다.
힘을 주어 무언갈 쥔 듯한 모습이었다.
촤악.
이윽고 그가 이계에 담갔던 자신의 손을 뽑아냈다. 그 손아귀에는 무언가 쥐어져 있었다.
“···열쇠?”
그건 열쇠였다.
낡고, 녹이 슬었지만, 별빛을 간직한 열쇠.
“···역시, 아직 가지고 있었군.”
카르디는 열쇠를 바라보며 쓰게 웃었다.
아련한 눈길로 잠시 열쇠를 바라보던 그가, 잠시 눈을 감았다. 생각을 정리하는 듯 싶었다.
“라니엘.”
그가 눈을 뜨고, 나의 이름을 불렀을 때, 그 눈동자는 더는 흔들리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깊이를 알 수 없는 눈동자로 그가 나를 바라봤다.
“북방으로 가라.”
그가 말했다.
“자세한 지도는 그려주도록 하마. 북방의 쿠락트 산맥에 내가 만들어 둔 작은 연구 시설이 하나 있다. 안개가 자욱하게 낀데다, 눈 폭풍이 부니 그냥은 찾기 어려울 테지만······.”
카르디가 열쇠로 배교자의 팔을 가리켰다.
“이 팔과, 이 열쇠가 있다면 쉽게 찾을 수 있을 거다. 마나의 흐름을 읽는 너라면 가능하겠지.”
나는 질문했다.
거기에 무엇이 있냐고.
“너 스스로 여기까지 왔으니, 이젠 말해줄 수 있겠군.”
내 물음에 카르디는 답했다.
“순교자, 글레리아 벨 아르미아스.”
그가 쓰게 웃었다.
“한때 델로힘의 화신이라 불렸던 그녀에 대해 알 수 있을 거다.”
그리고, 라고 말하며 카르디가 덧붙였다.
“배교자 글레투스를 죽일 방법까지도 말야.”
3.
서부 최전선, 마경(??) 크렘펠리아.
카일은 새벽의 공기를 맞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불과 몇 주 전까지만 해도, 배교자의 마수로 들끓었던 고성이지만··· 지금은 한적하기만 하다.
“······.”
주변을 돌며 카일은 생각한다.
이번 전투는 위험했다. 배교자의 마수는 거셌고, 사상자도 평소의 곱절은 나온 전투였다. 물론, 자신이 위험한 것은 아니었다.
고작 이 정도에 죽지는 않는다.
하지만, 전선이 붕괴될 뻔했다.
“···제때 지원군이 와줘 다행이군.”
지원군이라 해도 한 명밖에 없긴 했다.
사실, 그 지원군은 어느 정도 예상에 있던 인물이었다. 배교자와 관련된 장소에 그는 항상 제 모습을 드러내곤 했으니까.
검귀(?), 드라카.
배교자에게 모든 것을 잃은 귀신.
···이번엔 잿빛 마법사가 없나 보군.
병사의 입장에서 아쉽긴 하지만, 나 개인으로선 환영할 일이지. 비켜라. 그 괴물의 마수는 그렇게 잡는 게 아니다.
배교자의 마수를 잡는 것에 한해서는, 그 누구보다 유능한 인물이다. 그가 마수 무리를 맡아 준 덕분에 그나마 크렘펠리아가 점령당하는 사태는 피할 수 있었다.
카일은 문득 그와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너는 당분간 서부전선에 머물 예정인 것 같군. 나는 북방으로 다시 돌아갈 생각이다.
어째서, 북방으로 향하는가.
그것은 쓸데없는 질문이었다. 검귀의 행동 방침은 전부 ‘배교자’에 의해 결정되곤 했으니까.
드라카가 북방에서 배교자의 흔적을 쫓던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다. 그러니, 딱히 이상할 건 없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무언가 달랐다.
눈 폭풍 탓에 힘겹긴 하겠지만··· 그곳의 감시병에게 안개가 흐려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번에야말로 그 유적을 조사할 기회겠지. 이번에는 마무리 지을 생각이다. 너무 오랫동안 묶여있었으니까.
이번에야말로.
그 말에선 섬뜩함마저 느껴졌다.
난 반드시 찾아낸다.
배교자를 사냥할 방법을.
일평생을 배교자를 쫓는데 보낸 인물이다.
광기마저 느껴지는 집념 하나로 초인의 반열에 오른 인물이 ‘반드시’ 란 단어를 입에 담았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테지.’
배교자를 사냥하기 위해, 영지 하나를 통째로 날려버리려 했던 인물이다. 라니엘이 그것을 막지 않았다면··· 드라카는 정말로 그 미친 계획을 시행했을 것이다.
증오와 집념.
오직 그것만을 원동력 삼아 살아가는 인물이다.
“···당분간 북방은 피해야겠군.”
그런 인물과는 거리를 두는 게 상책이다.
적어도, 카일은 그렇게 생각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