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121
〈 121화 〉 끝이 다가올수록 주의해라(3)
* * *
아플리아의 총학장, 아론.
아론은 오랜 기간 교육자로서 살아왔다.
지금이야 아플리아의 총학장이란 무거운 자리에 앉아있지만, 종종 자신에겐 이런 자리보단 교육자로서의 자리가 더 어울리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여간, 쉽지 않은 일이다.
아플리아 아카데미를 기획할 때만 해도, 아플리아가 이렇게 커질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저 약속을 지키려 한 것 뿐인 것을.’
아론은 쓰게 웃었다.
아플리아는 본래, 아론이 아주 어렸을 적 마주했던 은사와의 약속을 지키고자 차린 아카데미에 불과했다.
‘분명 그러했거늘.’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알고 지내던 교육자들에게 연락을 돌린 것 까진 좋았지만··· 그 이름 높은 로셀마저 섭외하다 보니 판이 너무 커지고 말았다.
왕도 최고의 아카데미.
마학의 꽃.
재능있는 마법사의 요람.
하나같이 무거운 이름들 뿐이다.
그래도, 그것이 좋은 교수들을 섭외한 대가라 한다면··· 기꺼이 감내해야 할 일이겠지.
‘좋은 교수, 재능있는 교수···.’
그것 하니 떠오르는 인물이 하나 있긴 하다.
“······.”
아론은 감았던 눈을 떴다.
눈을 뜨고 집무실 안을 둘러보자면, 어느새 찾아온 손님이 하나 있다. 멀뚱멀뚱 서 있는 손님은 방금까지 아론이 머릿속으로 그리던 인물이다.
독특한 인물.
생전 처음 보는 유형의 교육자.
그녀를 바라보며 아론은 입을 열었다.
“그래서.”
피곤함이 묻어나오는 목소리로 아론은 한숨이 뒤섞인 말을 뱉었다.
“이게 도대체 무엇인가? 라니아 교수?”
라니아 반 트리아스.
집무실에 찾아와 대뜸 계획서를 내민 젊은 교수는 눈을 깜빡인다. 그리곤 천천히 고개를 기울이며 답하는 것이다.
“종강 전에 기억에 남을 사건을 만들어 주고 싶어서, 한번 기획해 봤어요.”
몹시 순진해 보이는 인상이다.
몸짓 하나하나에서 순수함이 묻어나온다. 그것이 꼭 악의라곤 눈곱만큼도 없이, 순수한 선의에서 이루어진 행동이라 말하는 것과도 같다.
‘어? 내가 착각했는가···?’
무심코 그런 생각이 든다.
아론은 눈을 깜빡이며, 제 앞에 놓인 계획서를 다시 확인한다. 검은 글자가 춤추는 계획서는 마치 악몽을 보는 것 같다.
‘···아무리 봐도 잘못 본건 아닌 것 같군.’
순간이나마 혹할 뻔했다.
아론은 고개를 가로저어 정신을 차린다.
“아니, 그으··· 이 계획서 말일세.”
저 소녀의 내면에 숨은 것은 악몽이다.
학사 내를 나도는 소문에 빠삭한 아론으로선, 저 한없이 무해해 보이는 외견에 낚인 학생들이 어떠한 시간을 보냈는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도를 넘은 과제.
학생의 수준이 아니다.
과제로 마탑을 쌓을 기세다.
살려주십시오.
펜을 꾹꾹 눌러 쓴 편지.
게시판에 붙어있던 편지지에 남아있던 학생들의 눈물 자국을 떠올리며, 아론은 각오를 다진다.
‘이곳에서 막는다.’
아플리아의 악몽을.
‘지켜낸다.’
학생들의 수면 시간과 그들이 즐겨 마땅할 청춘, 그리고 최소한의 여가 시간을···!
“흐읍.”
한번 숨을 삼킨 아론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아무래도 이건 좀 그렇지 않은가······?”
그렇다. 아무래도 좀 그렇다.
이건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어지간해선 교수들의 부탁을 들어주는 아론이지만, 이건 좀 아니다.
“종강이 다가오긴 하나, 일단은 시험 기간이지 않은가. 시험 기간 전에 시행하기는 무리고, 그렇다고 끝나고 나서 하자니, 학생들에게 심리적 부담이 좀 있지 않겠···는가?”
나름대로의 거절 의사다.
말을 마친 아론은 슬쩍 라니아를 흘겨봤다. 그녀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답했다.
“그런가요? 작은 이벤트 겸 생각해봤는데.”
···이벤트? 이게?
아론은 종이에 적힌 것들을 본다.
「하르메인 삼림 인근에서 학생들과 함께 ‘짙은 마나 농도에 익숙해지는 시간’을 가짐. 버틴 시간대별로 나누어 상점을···.」
「극한의 상황에서 회로의 해체, 분석, 재조립 과정의 이해, 빠른 순대로 상점을 부여···.」
「육체의 마나 순환, 보호 주문에 깃든 기초 주문의 강도 이해. 한대를 버티면 상점 3점, 두 대를 버티면···.」
이딴 게··· 이벤트?
이건, 이벤트라기보단 차라리 ‘훈련’에 가깝다.
‘그것도, 최전선의 기사들이나 할 법한 훈련.’
막말로 구르라는 것이다.
눈물 콧물, 어쩌면 핏물마저 쫙 뺄 때까지.
“라니아 교수? 이걸 지금 이벤트라 말한 건가?”
“네? 네. 나름 괜찮지 않나요? 경쟁의식도 붙을 거고. 학습에도 도움이 되고.”
소녀가 고개를 끄덕인다.
이상할 것 하나 없다는 듯한 말투다. 그 목소리는 평소와 다를 바가 없다. 당연하지 않은 것을,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말하고 있다.
‘···새삼스럽지만.’
정말로 새삼스럽지만, 참으로 사고방식이 다르다.
“후우···.”
아론은 이마를 탁, 하고 친다.
내뱉은 한숨이 깊다. 그렇게 아론이 한숨을 내쉬고 있자니, 라니아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좀 그런가요?”
좀 그렇다.
아니, 좀 많이 그렇다.
반사적으로 그렇게 대답하려다 말고 아론은 입을 다물었다. 소녀의 얼굴이 시야에 들어온 까닭이다.
축 처진 눈꼬리.
아래로 향한 눈동자.
어딘가 시무룩해 보이는 얼굴이다.
실망한 듯한 눈치긴 하지만 내색은 하지 않는다. 만약 자신이 안 된다고 말 한다면 어쩔 수 없지··· 하고 체념하며 물러날 것 같다.
“······.”
소녀의 축쳐진 어깨를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를 죄책감이 든다. 마음 한구석이 결린다. 딱 잘라 말하기가 뭣한, 굉장히 미묘한 기류가 감돈다.
“음, 으음···.”
아론은 신음하며 시선을 내렸다.
소녀의 저런 반응을 한번 보고 나니, 마냥 기괴하던 계획서도 좀 달라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깔끔한 계획서긴 하군.’
사고방식이 남다르긴 하나··· 계획서 자체는 굉장히 잘 만들어져 있다. 서식도 잘 지켰고, 나름의 규칙도 세밀하게 정해져 있다.
‘꽤나··· 정성이 들어간 계획서긴 하지.’
그 방향성이 좀 잘못되었을 뿐, 나쁘지는 않다. 나름 깊게 생각한 티가 난다. 적어도, 하루 이틀 사이에 만들어진 계획서는 아닌 듯 싶었다.
정성이 들어간 계획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기획한 이벤트.
‘그것을 단칼에 거절하는 것이 맞는가?’
아론은 으음, 하고 침음을 흘렸다.
“···그래도, 이건 괜찮아 보이는군.”
이러니저러니 해도 잔정이 많은 아론이다.
결국 전부 거절하진 못한 채, 그는 그나마 온건한 계획서 하나를 짚었다.
“이건 허락해 줄 수 있을 것 같네.”
“정말요?”
그 대답에 소녀가 미소 짓는다.
꽃이 피는듯한 미소다. 환히 미소 짓는 소녀를 바라보며 아론은 그만 허허, 하고 손주를 보는 노인 같은 웃음을 흘리고 만다.
“아무쪼록 잘해보게나.”
“네, 감사합니다.”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한 그녀가 집무실을 빠져나간다. 아론은 열린 문이 닫히는 순간까지 소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문이 닫히고 나서야 참았던 숨을 뱉었다.
“······.”
홀로 남은 집무실에 침묵이 감돈다.
···옳은 선택이었겠지?
아론은 식은땀을 흘린다.
소녀가 나가고 나서야, 무언가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굳게 다졌던 각오는 이미 박살 나고 없다. 아론은 이마를 짚으며 중얼거렸다.
“성의를 무시할 순 없지 않은가······.”
정성 들여 짜온 계획서다.
그것을 어찌 단칼에 쳐낼 수 있겠는가.
‘나도 아직 덜되었군.’
이 무른 성격이야말로, 아론이 학장 자리를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주된 원인이었다.
하여간, 쉽지 않은 일이었다.
2.
학장실을 빠져나오고 잠시.
나는 복도를 거닐며 무심코 중얼거렸다.
“역시 하루 만에 만든 계획서는 안되는구나.”
하긴, 되는 게 이상하지.
당장 생각나는 것을 다 적고··· 형식만 맞춰서 정리한 계획서였다. 빈말로도 최선을 다했다곤 할 수 없다. 하루 만에 대충대충 만든 계획서였다.
‘그걸 눈치채신 거겠지.’
역시 학장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내심 아론 학장의 안목에 감탄하며, 나는 계획서를 이리저리 뒤집어 보았다. 결재 사인을 받은 건 여러 항목 중 단 하나뿐이었다.
‘계획한 이벤트 중, 가장 싱거운 것.’
그게 좀 아쉽긴 하다.
하지만 하나라도 통과한 것이 어딘가? 들인 정성에 비하면 이 정도는 충분히 만족할만했다.
‘어찌어찌 가다듬으면 괜찮아질지도.’
종강 직전.
한 학기의 마무리를 장식할, 제법 근사한 이벤트가 될 것이다. 나는 만족스레 미소 지었다.
‘기대되네.’
하루빨리 학생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걸음을 옮기던 순간이다. 문득 시야에 누군가의 모습이 잡혔다.
“으음···.”
공원의 벤치에 홀로 앉아, 인상을 팍 쓴 채 학습지를 들여다보고 있는 남학생. 그의 허리춤에는 상징이라 할만한 손도끼가 매여있다.
전투 마학과의 라크였다.
‘맷집 하나는 튼튼한 학생.’
나는 무심코 계획서를 들어 올렸다.
기획해둔 이벤트와 라크를 번갈아 바라본다.
‘···임상 실험.’
좋은 기회였다.
나는 발걸음을 틀어 라크를 향해 다가갔다.
3.
어렵다. 도무지 답을 모르겠다.
라크는 인상을 팍 쓴 채 학습지와 씨름을 하고 있었다. 풀이법은 얼추 감을 잡았으나, 정답이 자꾸만 틀린다. 계산과정에 오류가 있는 것 같긴 한데··· 쉽사리 찾을 수가 없다.
“후우······.”
라크는 짧게 숨을 토하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벤치의 등받이에 뒷목이 걸렸다.
‘머리가 어지럽다.’
여러 과목을 동시에 공부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머릿속에서 계산식이 뒤섞인다. 뒤죽박죽이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우니 공부가 제대로 될 리가 없다.
한 번쯤은 환기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뒷산이라도 올라갔다 올까.’
진지하게 그런 고민을 하고 있자니, 문득 발소리가 들려왔다. 라크는 젖혔던 고개를 다시 들었다.
뚜벅.
다가오는 걸음걸이는 가볍다.
라크는 발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보았다. 그곳에는 익숙한 인물이 있었다.
‘···라니아 교수님?’
너울치는 잿빛 머리칼.
머리칼 사이로 드러난 푸른 눈동자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그 눈동자에서 라크는 왠지 모를 섬뜩함을 느꼈다.
움찔.
본능적으로 자리를 피하고자, 라크가 몸을 일으켜 세우려는 찰나다.
“라크.”
맹수가 먹잇감의 이름을 입에 담는다. 사냥감으로 지정 당한 라크의 몸이 딱딱하게 굳고 만다.
턱.
결국 맹수가 코앞까지 다가온다.
라크는 파르르 떨리는 눈동자로 눈앞에 선 라니아 교수를 보았다. 그녀의 푸른 눈동자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무, 무슨 일이십니까. 라니아 교수님.”
“나 부탁 하나만 하자.”
“예? 부탁이요?”
그녀가 손가락을 까딱였다.
“일어나 볼래?”
“예, 예에······.”
라크는 머뭇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라니아는 툭툭 라크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기며 말했다.
“마나 보호막 주문 알지?”
“···예?”
라크는 얼빠진 소리를 냈다.
물론 마나 보호막 주문이야 알고 있다. 그런데도 얼빠진 소리를 낸 것은, 그것이 무척이나 뜬금없는 요구사항이었기 때문이다.
“그거, 최대한 단단하게 굳혀볼래?”
“어, 어어···.”
라크는 당황하면서도 시키는 대로 했다.
이윽고 라크의 앞에 단단하게 굳어진 보호막이 생겨났다. 그것을 툭툭, 손등으로 두들겨 본 라니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하네.”
그리곤 세 손가락을 쫙 펼쳤다.
“자, 간다.”
“네? 뭘, 뭘 말씀이십니까?”
“자, 따라 해봐.”
그리곤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며 말하는 것이다.
“하나, 둘, 셋. 아아.”
“하나, 둘, 셋···?”
라크가 셋을 발음하는 순간이다.
그녀가 주먹을 말아쥔다. 어깨를 뒤로 젖히더니 가볍게 앞을 향해 뻗었다.
후웅.
주먹의 끝이 보호막에 닿는다.
와장창, 하고 뭔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라크의 눈이 동그랗게 뜨인다. 라크의 마나는 단 1초도 라니아의 주먹을 붙들어 놓지 못했다.
‘아.’
주먹이 다가온다.
느려진 체감시간 속에서, 라크는 직감한다.
‘이거 위험······.’
주먹을 맞고 고개가 뒤로 젖혀지는, 혹은 코피를 거하게 뿜을 미래가 훤히 그려진다. 라크가 기겁하며 고개를 틀려는 순간이다.
뚝.
코앞에서 주먹이 멈췄다.
뒤늦게 후웅, 하고 몰아닥친 바람에 라크의 앞머리가 흔들렸다.
“허읍···.”
뒤늦게 숨을 헛삼키며 라크가 몸을 뒤로 뺀다. 라니아는 팔을 내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음.”
그녀가 주먹을 쥐었다 피기를 반복하더니 툭, 하고 내뱉었다.
“역시 이건 안되나? 다른 걸 생각해 봐야겠네.”
···그러니까, 대체 뭘?
“도와줘서 고맙다, 라크.”
그녀가 툭툭, 라크의 어깨를 두들겼다.
그리곤 빙글 발걸음을 돌려 어딘가로 향한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라크는 눈을 깜빡일 뿐이었다.
“···어, 음.”
머릿속이 깔끔해졌다.
전혀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환기에 성공했다. 라크는 멍한 눈동자로 학습지를 들여다봤다.
“아, 풀었다.”
금방 답이 나왔다.
라크는 답을 적어 내리면서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꼭 한바탕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듯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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