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129
〈 129화 〉 출장 왓서오, 악몽이애오(3)
* * *
북부의 전사들은 용맹하다.
눈바람이 몰아치는 설산에서 수련을 거듭하는 전사들의 육체는 식을 줄을 모른다. 북부의 전사는 달궈진 쇠와 같다. 영원히 식지 않는 뜨거운 철이다.
그들에게 패배란 다만 굴욕이 아니다.
그들은 패배로부터 배운다. 깨달음을 얻는다.
“아쉽군.”
누군가 그렇게 말했다.
“아쉬울 수밖에.”
그 말을 잇는 인물이 있다.
“상대의 수준을 잘못 보았으니까.”
오야칼이 머리를 가볍게 흔들었다.
그는 옆머리를 툭툭 치며 제 귀에 들어간 눈을 빼냈다. 주륵, 차가운 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보이는 것만을 믿었다. 상대의 수준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았으니, 방심했다. 패배하는 것이 당연하지. 사실 패배라 하기도 뭣하군.”
삐걱거리는 목을 꺾으며 그가 말했다.
“제대로 된 싸움도 아니었다.”
상대에게 모욕을 줬을 싸움이다.
무척이나 부끄러운 일이었다. 누군갈 시험하겠다며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 방심하였기에, 싸움조차 성립되지 않았다. 결례를 범했다.
“부끄러운 일이군.”
오야칼의 한마디에 전사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아직 시간은 있소, 오야칼.”
누군가 산의 깊은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최단 거리로 달린다면, 마지막 관문 앞에서 한 번 더 손님분과 마주할 수 있을 거요.”
오야칼이 고개를 끄덕였다.
“결례를 범했다면 수습해야겠지.”
그가 무기를 주워들며 뒤를 돌았다.
일어선 전사들이 있다. 아직 얼빠진 얼굴로 허공을 보고 있는 전사들도 있다. 그들을 향해 오야칼은 말했다.
“부끄러움을 아는 전사는 나를 따라와라. 나는 손님분께 재대결을 청하러 가겠다.”
전사들이 오야칼을 본다.
오야칼의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마치 타오르는 불과 같이 뜨거운 눈동자였다.
‘···패배는 부끄러운 것.’
전사들이 눈을 감았다 뜬다.
‘부끄럽고, 굴욕적이기에 패배다.’
부끄러움과 굴욕.
치욕과 분함.
그로부터 오는 감정은 하나다.
‘그렇기에, 우리는 승리를 갈망한다.’
승리를 향한 갈망이야말로 전사의 원동력이다.
“하하.”
하나둘 일어서는 전사들을 보며 오야칼은 웃음을 터뜨린다. 새하얀 치열을 드러낸 그가 제 가슴팍을 쿵, 하고 쳤다.
“이래야 북부의 전사들이지.”
그들이 두 발로 땅을 디디고 선다.
몸에 묻은 눈을 털어내며 고개를 든다. 그들의 눈동자에 두려움은 없다. 두려움에 떨던 전사들은 호승심에 눈을 빛낸다.
“먼저 가겠다.”
오야칼의 뒤를 따라 전사들을 달린다.
설산은 전사들에게 앞마당과도 같다. 발이 푹푹 꺼지는 눈밭 위에서도 그들의 걸음은 막힘이 없다. 막힘이 없어, 거침이 없다.
나무를 밟고, 튀어나온 돌무더기를 밟으며 절벽을 뛰어넘은 그들은 경사로를 타고 미끄러진다.
촤아아악!
눈발이 흩날린다.
미끄러지듯 착지한 그들이 고개를 든다.
“오.”
그곳에는 한 소녀가 있다.
백야성으로 향하는 마지막 길목을 막 지나치려던 소녀는 멈춰선 채 전사들을 바라본다.
“······.”
전사들은 말없이 자세를 잡는다.
그 누구도 방심하지 않는다. 눈밭을 사이에 두고 정적이 감돈다. 정적을 깬 건 소녀다.
턱, 하고 그녀가 한 걸음 내디딘다.
다가오는 것은 벽이다.
거대한 벽을 느끼며 전사들은 마른침을 삼킨다. 그들의 눈동자에는 흥분이 가득하다.
‘패배를 인정하되, 끊임없이 도전한다.’
전사들은 스스로에게 묻는다.
‘언제까지?’
대답은 하나다.
북부의 전사들은 하나의 생각을 공유한다.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그것이 북부의 방식이다.
“우오오오오오!”
전사들이 함성을 내지르며 땅을 박찼다.
2.
눈이 내렸다. 하염없이 내리는 눈은 하늘에서만 내리지 않았다. 바닥에 깔린 눈발이 위로 튀어 올랐다. 사방에 흩날렸다.
촤아아악!
전사가 휘두른 대검에 눈발이 흩날린다. 만약을 위해 날을 무디게 해둔 시험용 대검이나··· 육중한 무게가 담긴 대검은 그 자체로도 위협적이다.
콰직.
그러나, 라니엘은 그것을 맨손으로 붙잡는다. 한 손으로 대검을 붙잡고선, 그녀가 몸을 빙글 돌았다. 잿빛 머리칼이 나부꼈다. 나부끼는 머리칼 사이로 새하얀 손아귀가 튀어나온다.
콱.
전사의 머리를 움켜쥔 라니엘이 땅을 박차고 튀어 올랐다. 무릎이 전사의 관자놀이를 찍는다.
“커흡···!”
전사의 동공이 흔들린다.
그러나, 그는 기절하지 않는다. 팔을 뻗어 눈앞의 소녀를 붙잡으려 든다. 라니엘이 전사를 발로 걷어차며 공중으로 도약한다.
‘공중.’
틈이 만들어졌다.
“오야칼!”
전사들은 그 틈을 놓치지 않는다.
촤아아악!
오야칼이 눈밭 위를 미끄러지며 거리를 좁힌다. 그와 함께 거리를 좁힌 전사가 여럿 있다. 모든 전사가 힘으로만 밀어붙이진 않는다. 오야칼과 같은 민첩한 전사들도 존재한다.
그들은 소녀가 착지할 위치를 계산한다.
공중에서 빙글, 몸을 돌리는 소녀의 움직임을 읽으며 무기를 휘두른다. 소녀를 향해 내던진다.
후웅!
라니엘은 공중에서 고개를 살짝 튼다. 그녀의 머리 옆으로 도끼가 스쳐 지나간다. 도끼와 전사 사이에는 기다란 사슬이 이어져 있다.
콱.
라니엘은 그것을 움켜쥔다.
촤라라락!
공중에서 사슬을 붙잡은 라니엘이 몸을 회전한다. 잿빛 머리칼이 나부끼고, 사슬을 잡은 전사가 라니엘에게 끌려온다.
발밑에 온 전사.
“커흑!”
라니엘은 착지함과 동시에 전사의 등허리를 발꿈치로 찍었다. 전사의 몸이 들썩였다. 하나의 전사를 무력화 시킨다.
‘하나, 앞으로는 셋. 뒤로는 다섯.’
라니엘은 수를 가늠한다.
코앞까지 거리를 줄인 오야칼의 팔목을 붙잡는다. 메치려는 순간, 오야칼이 자세를 비튼다. 뚜둑, 소리를 내며 어깨뼈를 탈골 시켜 벗어난다.
같은 수에 두 번은 안 당한다.
마치, 그렇게 말하는 것만 같다.
오야칼이 이를 악문 채 주먹을 내지른다. 그 또한 막힌다. 그러나, 시간을 버는 당초의 목적은 성공했다. 오야칼이 미소 짓는다.
촤아아악!
눈밭이 솟구친다.
흩날리는 눈사락 너머로 다섯의 전사가 동시에 라니엘을 덮친다. 그들의 포위에 빈틈은 없다.
‘막으려면, 동시에 다섯을 쳐야 할 거다.’
큰 사냥감을 궁지에 몰아넣기 위해 전사들은 때때로 협력한다. 그들은 훌륭한 사냥꾼이었고, 사냥감을 몰아넣는 방식을 잘 알고 있었다.
후웅!
전사들의 무기가 일제히 소녀를 향한다.
거의 동시에 휘둘러진 무기는 촘촘한 그물과도 같다. 그것을 전부 쳐내기란 불가능하다.
오야칼은 그렇게 생각했다.
라니엘은 아니었다.
“커흑!”
오야칼의 명치를 팔꿈치로 찍은 라니엘이 옆으로 한 걸음 내디딘다. 내디딘 발을 축 삼아 돈다.
빙글.
그녀의 발과 발이 눈밭 위에서 어지러이 얽혔다. 어찌 보면 춤을 추는 것 같기도 하다. 빙글 돌던 그녀가 팔을 휘두른다.
콰직!
검 하나를 쳐낸다.
남은 것은 넷이다. 거의 동시에 떨어지는 검답게 빈틈이 없다. 그러나, 빈틈은 만들면 그만이다.
촤아악.
눈밭 위로 미끄러지듯 라니엘이 자세를 낮춘다. 허리를 뒤로 젖히며 검을 아래까지 끌어들인다. 동시처럼 보이지만 칼과 칼 사이에 미묘한 간격이 있다. 그 간격을 라니엘은 붙잡았다.
휙!
그녀가 젖혔던 허리를 튕기며 일어선다. 뻗은 양 손으로 칼 두 개를 쳐낸다.두 개의 검이 박살 난다. 그렇게 틈이 만들어진다. 틈을 향해 라니엘이 몸을 비집어 넣어 틈을 벌렸다.
“크헙!”
“컥!”
남은 둘마저 박살 난다.
협공에서 완전히 벗어난 라니엘이 손목을 털었다. 그녀가 짧게 숨을 뱉으며 고개를 들었다.
“후우···.”
그녀의 시선은 남은 전사들을 향한다.
그 수가 많다. 심지어 이미 무력화 시켰다고 생각한 전사들마저 비틀거리며 일어서고 있다.
‘진짜 질기네.’
라니엘은 내심 혀를 내두른다.
손속에 사정을 뒀다곤 하나··· 어지간한 기사들이라면 한방에 기절할만한 위력이다. 그런 공격을 몇 대나 얻어맞고서도 전사들은 일어섰다.
‘하긴, 옛날부터 근성 하나는 끝내줬지.’
전장에서도 북부의 전사들은 그랬다.
팔을 잃고, 발목이 부러지고,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그들은 마지막까지 싸웠다. 마치 광전사처럼.
“······.”
라니엘은 문득 자신의 팔뚝을 매만졌다.
붉게 손자국이 남아있었다. 팔꿈치로 명치를 후리기 직전까지 오야칼이 붙잡고 있던 흔적이었다.
‘어지간해선 안 되겠네.’
라니엘은 결정을 내린다.
어지간한 마음가짐으로 전사들의 의지를 꺾을 생각은 버리는 것이 좋았다.
꾸욱.
그녀가 장갑의 끝을 잡고 끌어내렸다.
장갑의 주름이 쫙 펴졌다.
“···!”
몇몇 전사들이 어깨를 움찔 떤다.
그들은 이변을 느낀다. 이변을 느낀 건 오야칼도 마찬가지다. 그가 반사적으로 입을 연다.
“당장 고개 숙···!”
그 말은 완성되지 못한다.
따악, 하고 손가락을 튕기는 소리가 울린다. 그 순간 오야칼은 보았다. 매의 눈이라 불리는 오야칼이기에 찰나에 번뜩인 빛을 볼 수 있었다.
번뜩이는 빛.
그리고 설산을 뒤흔드는 무형의 충격파.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굉음이 설산을 후려쳤다.
설원이 뒤집혔다. 쌓인 눈더미가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내리는 눈보다 솟구치는 눈이 더 많았다.
“······.”
한 번의 충격이 지나갔다.
충격은 전사들을 노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 일부러 빗맞힌 것에 불과함을 전사들은 알고 있다.
그제서야 전사들은 깨닫는다.
그들은 잠시나마 잊고 있던 사실을 떠올린다.
‘···저분은 전사가 아니었다.’
아플리아 아카데미의 교수.
‘마법사였다.’
전사가 아닌 마법사였다.
하나둘 전사들이 무기를 놓는다.
한 번의 주문, 그것이면 충분했다.
압도적인 차이를 깨달은 전사들은 패배를 받아들인다. 그러나, 처음처럼 굴욕적인 패배는 아니다. 전력을 다해 부딪쳤고, 패배했다.
남은 것은 결과를 인정하는 것이다.
“시험은 끝났습니다.”
오야칼이 말했다.
“백야성으로 모시겠습니다.”
환영 인사는 끝났다.
전사들은 북부에 찾아온 귀빈(??)에게 최대한의 경의를 표한다.
3.
북방의 주인.
북부 대공, 에랴흘 반 그레이스.
그는 턱을 괸 채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환영 인사를 시작한 지 시간이 제법 흘렀다. 슬슬 도착할 시간이 되었다.
“걱정되시나요?”
곁에 앉은 부인의 질문에 에랴흘은 피식, 웃음을 흘린다. 그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전혀.”
“그런가요? 저는 조금 걱정이 되는군요.”
그녀가 걱정스레 말했다.
“수도에서 오신 손님분이잖아요. 혹시라도 설산에서 다치기라도 하셨다간···.”
“그럴 일은 없다.”
에랴흘이 턱을 괸 채 말했다.
“라크가 추천한 인물이다.”
무표정한 얼굴로 그가 말을 이었다.
“강자를 파악하는 감각 하나만큼은, 내 것을 제대로 물려받은 아이다. 그런 녀석이 추천한 인물이니··· 어중이떠중이가 왔을 리가 없지.”
제 6의 감각.
그 감각 하나만큼은 자신보다 뛰어난 아이다. 에랴흘은 라크의 안목을 신뢰했다.
“아무래도 온 것 같군.”
누군가 문을 두들겼다.
이윽고 끼이익, 하고 백야성의 문이 열렸다. 홀에서 백야성의 문을 내려다본 에랴흘은 피식, 하고 미소를 지었다.
문을 열리고 들어오는 것은 전사들이다.
몸에는 피멍이 들어있고, 어떤 전사는 다리를 절뚝거린다. 또 누군가는 팔이 부러지기라도 한 듯, 축 늘어트리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입가에는 웃음이 걸려있다.
“손님분을 모시고 왔습니다.”
승자의 웃음은 아니다.
패자의 웃음이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패배를 겪은 이들의 후련한 웃음이다.
전사들이 갈라진다.
그들의 사이로 한 소녀가 백야성에 발을 들인다.
“···허.”
에랴흘은 턱을 괸 채 헛웃음을 흘렸다.
“웬 괴물이 찾아왔군.”
그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팔을 뻗는 그가 전사들을 물린다. 소녀와 눈을 마주친 채 에랴흘이 입을 열었다.
“먼 길 오느라 수고했네. 곧 연회를 준비하도록 하겠네. 자세한 이야기는 연회에서 나누도록 하지.”
백야성의 집사들이 소녀를 안내한다.
음식 준비로 한창인 연회장을 향해 에랴흘도 발걸음을 옮겼다. 아들 녀석이 거물을 물어왔다. 그 사실에 에랴흘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한 시기에 두 명의 괴물이 찾아왔다.’
전사들의 인정을 받는 귀빈(??)이다.
에랴흘은 전사들의 안목 또한 신뢰한다. 그들의 인정을 받는 손님이라면 대접할 가치가 충분하다.
“전사들도 불러 배불리 먹여라. 연회는 소란스러울수록 즐거운 법이니.”
“예, 알겠습니다.”
명령받은 집사들이 움직인다.
“···음?”
그렇게 연회장으로 향하려다 말고 에랴흘이 잠시 고개를 갸웃거린다. 무언가 잊은 듯한 느낌이 든 까닭이다.
그러나, 그도 잠시다.
‘별것 아니겠지.’
북부의 대공답게 그는 사소한 것은 신경 쓰지 않는다. 에랴흘은 연회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꼬르륵.
“······.”
셀리는 테이블에 놓인 과자를 깨작였다.
손님이 먹을 몫까지 먹으면 안되는 데다가, 이야기하며 먹을 몫은 남겨두어야 하니··· 먹을 수 있는 과자는 조금 밖에 없었다.
“좀 늦네···.”
한참을 기다렸는데 오질 않는다.
다 식은 커피잔을 매만지고 있자니, 왠지 모르게 서글픈 기분이 든다. 셀리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끼이익.
그 순간이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셀리는 허리를 바로 세웠다. 머리를 쓱, 쓸어넘기며 열리는 문을 바라봤다.
“어서 와요, 조금 늦었···.”
몇 번이고 생각해둔 대사를 입에 담다 말고 셀리는 입을 다물었다.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기다리던 손님이 아니었다.
“···어, 백색 마탑주님?”
북부의 전사였다.
전사 중에 말이 통하는 몇 안 되는 인물, 매의 눈 오야칼의 모습에 셀리가 눈을 깜빡였다.
‘왜 오야칼이 여기에?’
그 이유를 짐작해 본다.
이유의 짐작은 어렵지 않았다. 셀리는 여유로운 미소를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도착이 늦나 봐요?”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북부의 기후는 변덕스럽다. 때아닌 눈 폭풍을 만나 도착이 늦어질 수도 있는 법이다.
‘그러니 시험을 감독해야 할 오야칼이 여기에 와 있는 거겠지. 응, 그럴 수 있어.’
그럼 언제쯤 도착하는 걸까···?
그것을 물어보려고 셀리가 입을 열려는 찰나다.
“어··· 이미 도착해 계십니다.”
“예?”
“시험은 끝났고, 백야성에서 연회가 한창입니다. 저는 여길 정리하려고 들린 건데···.”
오야칼이 조심스레 질문했다.
“혹시 소식이 안 갔습···니까?”
셀리는 왠지 모르게 조금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