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135
〈 135화 〉 견뎌야 하는 시련(2)
* * *
마법사의 몸에는 마나가 흐른다.
제 몸에 흐르는 마나를 효율적으로 다루는 것이 곧 마법사다. 마법사란, 자신이 가진 마나를 통제할 줄 알아야 한다.
‘다들 우습게 생각하지.’
나면서부터 타고나는 것.
본래부터 가지고 있어 익숙한 것.
그렇기에 많은 이들이 착각한다. 자신이 마나를 다룰 줄 안다고. 자신의 마나를 완벽하게 통제할 줄 안다고. 그도 그럴 만하다.
‘가장 기본(??) 되는 거니까.’
그야말로 기본이다.
이미 옛날 옛적에 거쳐온 길이기에 사람들은 기본이란 것의 가치를 종종 잊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기본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거야.”
당연한 이야기다.
당연하되 잊기 쉬운 사실이다.
“기본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것이고.”
턱, 하고 내가 걸음을 내디뎠다.
뒤따라 라크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라크의 걸음은 조금씩 느려지고 있었다. 결계의 안쪽에 들어선 이후부터 줄곧 그랬다.
“기본이 뭐야? 말 그대로 기반이지. 기반이 튼튼해야 그 위에 쌓아 올린 탑이 무너지지 않을 테고.”
무른 기반에 쌓아 올린 탑.
폭풍우가 몰아치면, 진창에 빠져 무너지고 마는 탑. 그렇기에, 의미가 없는 탑.
그런 탑을쌓아온 이들이 있었다. 아주 많았다. 전장에서 나는 그런 마법사들을 보았다. 마경(??)의 초입에서 무너진 그들은 핑계를 대곤 했다.
나는 그 핑계들을 하나씩 떠올렸다.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공기의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주변의 마나가 요동쳐서···.」
“사소한 것에 흔들린다면, 그것은 처음부터 잘못 다진 기반일 것이고.”
「마기가 너무 진해서, 그러니까, 숨을 쉬기가 힘들어서···.」
“이상한 것이 섞였다고 무너진다면, 애당초 그것밖에 안 되는 탑이겠지.”
「그러니까, 마나를 통제할 수가 없어···.」
나는 걸음을 멈췄다.
“기본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다만 기본 되는 것이어야 해. 절대로 흔들려선 안 된다는 뜻이지.”
뒤를 돌아보았다.
“훅, 후욱···.”
눈보라 사이로 라크가 보였다.
라크는 허리를 굽히고, 무릎에 손을 얹은 채 거친 숨을 내쉬고 있었다. 라크의 눈에 핏발이 섰다.
“여기서 멈출까?”
“···아직, 괜찮,습니다.”
라크의 말이 툭툭 끊겼다.
라크의 호흡은 불안정했고, 라크의 몸을 흐르는 마나도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무너지지는 않았다.’
라크는 아직 두 발로 서서 버티고 있었다.
한계가 아니니, 조금 더 가도 된다는 뜻이었다.
한걸음, 두 걸음, 그렇게 열 걸음.
털썩.
열 걸음째에 라크의 다리가 풀렸다.
나는 한 걸음씩 뒤로 걸어, 라크가 쓰러진 곳에서 두 걸음 뒤에 멈춰섰다.
“잡아.”
손을 뻗었다. 라크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내 손을 붙잡고 일어섰다.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여기가 지금 네 한계야.”
나는 라크가 놓아버린 말뚝을 주웠다.
“우선 여기서 버티는 것부터 시작해야겠지.”
라크의 양 팔목에 하나씩 묶인 로프.
나는 그것을 팽팽하게 당겼다. 양옆으로 늘린 로프의 끝에 달린 말뚝을 바닥에 박았다.
콱!
라크는 양팔이 뒤로 당겨진 채로 그 자리에 고정됐다. 단단한 로프는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이곳이 바깥이었으면 몰라도··· 이곳은 눈 폭풍이 몰아치는 결계의 내부였다.
마나의 흐름이 꼬이고.
몸에 힘을 넣기가 힘든 장소.
그런 장소였기에 이런 구식의 도구가 유용한 것이다. 나는 말뚝에 발을 얹은 채 말했다.
“한계, 극한의 상황에서 기본을 유지하는 것. 내가 지금부터 가르칠 건 바로 그거야.”
라크가 핏발선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무엇을 말하는지 이해가 잘 안 간다는 듯한 눈치였다. 그래서, 나는 설명해줬다.
“흐트러진 마나의 흐름을 붙잡아. 붙잡아서, 몸에 강화주문을 걸어. 이 로프를 끊어내 봐.”
그게, 내가 북부에 머무르는 동안의 목표였다.
“···예?”
라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말도 안된다는 듯한 눈치였다. 아무래도, ‘버티는 것도 고작인데···.’ 따위의 생각을 하고 있겠지.
나는 쓰게 웃으며 말했다.
“단순히 버티기만 해선 도움이 안 되지. 언젠간 이런 데서 뛰놀아야 할 텐데··· 그때도 이 악물고 버티고만 있게? 마수들이 너한테 달려드는데?”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니까, 버티면서 움직여야지.”
“그, 게 가능···.”
“왜 불가능해?”
내가 어깨를 으쓱였다.
“너 앞에 있잖아. 가능한 사람.”
“······.”
“나라고 하루 이틀 사이에 된 줄 알아? 나도 이렇게 수행했어. 악으로 버티다 보면 대체로 어떻게든 돼. 그리고, 너는 사정이 나은 편이지.”
마경의 최심지.
마법사에겐 모든 것이 다만 독으로 받아들여져서, 모든 마법사가 도망친 곳. 그렇기에, 누구보다도 마법사의 존재가 간절했던 곳.
내가 머문 곳은 그런 곳이었다.
‘지금이야, 내가 가르쳐준 대로 버티는 마법사들이 늘어서 괜찮겠지만··· 그때는 아니었지.’
마경의 최심지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나는 포화상태의 마나에 코피를 쏟으며 바닥에 엎어졌었다. 내가 쌓아 올렸던 마학의 탑은, 지식은 마경의 최심지에서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그러니, 처음부터 쌓아야 했다.
기반부터 다시 다져야 했다.
그때, 내 곁에 있는 인물들은 다 특출난 무언가를 타고난 이들이었다. 그들이 내게 가르쳐줄 수 있는 건 없었고, 결국 나는 맨몸으로 들이 받으며 답을 찾아야 했다.
몇 번이고 토했다.
몇 번이고 피를 토하고, 몇 번이고 기절하며 날뛰는 마나를 통제했다. 나는 그런 식으로 기반을 다졌다. 어느 상황에서도 무너지지 않도록.
‘설령, 마왕의 앞에 서는 한이 있더라도 말야.’
나는 그런 무식한 방법을 썼지만···.
“나는 혼자 배워야 했지만, 너는 아니지.”
라크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잘 보고 따라 해. 그거면 돼.”
내가 있었으니까.
먼저 같은 길을 걸어본 내가 있었고, 방법을 아는 내가 있었으므로, 라크는 조금 더 쉬운 길을 선택할 수 있었다.
“······.”
라크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박수를 쳤다.
“그럼 시작해볼까.”
전장에서 지금과 같은 것을 마법사들에게 가르쳐 본적이 몇 번 있었다. 내 가르침을 받은 그들은 이 과정을 ‘이렇게’ 표현하곤 했다.
「다시 태어난 기분입니다.」
과연, 참으로 옳은 표현이었다.
그들의 말을 떠올리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태어나려면, 뭐부터 해야겠어?’
일단 한번 뒤질 필요가 있었다.
나는 손을 뻗었다. 검지를 라크의 이마에 붙였다. 검지 위로 잿빛의 마나가 피어올랐다.
“하나.”
잘못 다져진 기반.
그 위로 쌓아 올린 탑.
“둘.”
우선은, 그것을 부술 필요가 있었다.
“셋.”
설령 마법사로서의 죽음을 의미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
각인(Engrave).
화악!
손가락 위로 피어오른 마나가 라크의 뇌리를 관통한다. 스쳐 지나감은 한순간이다. 그러나, 관통의 순간 남긴 흔적은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커흡!”
라크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코피가 줄줄 흘렀고, 라크의 눈에 핏발이 섰다. 뻘겋게 충혈된 눈동자로 라크가 나를 보았다.
“버텨.”
나는 말했다.
“버텨서 기억해.”
라크의 뇌리에 각인시킨 것.
그것은 내가 가진 마나의 배열이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흐트러지지 않는, 내가 찾아낸 답.
“그리고 따라 해.”
답안지를 머리에 때려 박았다.
남은 건 따라 하는 것뿐이다. 나는 부들부들 떠는 라크의 앞에 서서 미소 지었다.
“시간 많아. 천천히 해.”
이제 막 해가 중천에 떴을 뿐이다.
라크가 첫 번째 기절을 경험한 건, 그로부터 고작 10초 남짓이 흐른 뒤의 이야기였다.
2.
성인식을 치르는 성역에 몰아치는 눈 폭풍.
라크는 그 눈 폭풍을 어렸을 적, 한번 경험해본 적이 있었다. 아버지를 따라 들어갔던 성역에서 라크는 무력함을 느꼈다.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았다.
감각은 꼬였다. 시야는 흔들렸다. 어렸던 라크가 거품을 물고 쓰러지는 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것이 첫 번째.’
그리고, 얼마 전 라크는 그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 반 배정 시험 당시의 일이었다. 한 교수에 의해 마나의 샘의 영역에 끌려간 라크는 성역의 눈 폭풍과 유사한 환경을 경험했다.
그러나, 그때 느낀 것은 무력감이 아니다.
처음에는 무력감을 느꼈지만··· 이를 악물고 1분을 버텨냈을 때 라크는 달성감을 느꼈다.
‘그것이 두 번째.’
시간은 흘러 지금이 된다.
라크는 세 번째 경험을 맞이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한 교수와 함께.
“컥, 커흡.”
라크는 숨을 뱉으며 눈을 떴다.
잠시 정신을 잃은 모양이었다. 그것이 몇 번째인지 라크는 수를 세기를 포기했다.
기절하고, 깨어나고, 다시 기절하고.
그것의 반복이었다. 반복할수록 깨어있는 시간은 길어졌지만··· 그래도 2분을 넘기진 못했다.
‘과거에 비하면 엄청난 성장이다.’
마나의 샘에서는 1분을 버티는데도 목숨을 걸어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떻지? 그와 유사한, 아니, 그보다 더한 환경에서 2분을 버티고 있다.
‘성장이지. 성장이긴 하나···.’
라크는 고개를 든다.
몰아치는 눈보라에 가려진 길이 있다. 그 길은 길게 이어져 있다. 멀고도 또 멀다. 라크는 그 길의 초입(??)에 서 있을 뿐이었다.
‘멀다.’
라크의 눈동자에 핏발이 섰다.
그 눈동자는 그 길을 아무렇지도 않게 걸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여인에게 향했다.
“1분.”
그녀가 수를 셌다.
라크가 눈을 뜬 지 1분이 흘렀단 뜻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몰아치는 눈보라 속에서도 선명했다. 그녀의 호흡은 전혀 흐트러지지 않았다.
‘경지.’
라크는 멍한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닿고 싶은 곳. 머나먼 곳.’
생각을 잇는 와중 1분이 더 흘렀다. 툭, 하고 라크의 정신이 잠시 끊어졌다. 라크가 다시 눈을 떴을 때도 그녀는 여전히 라크의 앞에 서 있었다.
마치, 조금의 시간도 흐르지 않았단 것처럼.
“···얼마나.”
라크가 입을 열었다.
“제가, 기절한 지, 얼마나 흘렀습니까?”
“대충 30분?”
그런가.
라크는 고개를 푹 숙였다.
새하얀 눈밭 위로 툭, 투둑 하고 코피가 떨어지고 있었다. 흐르는 피는 뜨거웠으나, 바깥으로 빠져나온 피는 차가웠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라크는 끊어지는 생각을 이어붙이며 입을 열었다.
“···교수님.”
“어.”
“머리에, 뭔가 떠오릅니다.”
“그러겠지.”
“복잡합니다. 이해하기, 어렵, 습니다.”
몽롱한 정신으로 라크는 말했다.
말하던 도중 정신이 끊어졌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라크는 입을 열었다. 라니아는 여전히 라크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이게, 무엇입니까?”
“답이지. 내가 찾아낸 답.”
그녀가 웃었다.
“이런 상황이니까 어렴풋이 보이기라도 하는 거야. 원래 사람은 눈앞에 닥쳐야지 깨닫는 법이거든.”
라크는 머릿속을 떠다니는 것을 보았다.
‘배열, 얽힌 문양.’
복잡한 무언가였다.
머리가 본능적으로 그것을 거부한다. 아니, 본능은 아니었다. 여태껏 라크가 쌓아온 것들이 그것을 거부하려 했다.
‘오답이다.’
그런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하다.
저것은 오답이다. 라크가 배워온 것들에 반(反)하는 것이다. 저것을 받아들이려면 라크가 상식이라 생각한 것들을 부숴야 한다.
‘답.’
그러나 라니아 교수는 말했다.
그것이 답이라고 단언했다.
“······.”
라크는 라니아를 보았다.
눈보라 속에서 뚜렷하게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그녀뿐이었다. 흐린 시야 속에서 뚜렷한 그녀를 라크는 보았다.
“이걸, 받아들이면.”
힘겹게 라크가 언어를 짜냈다.
“이걸 몸에 새기면, 제 것으로 만들게 되면.”
라크가 질문했다.
“어떻게 됩니까?”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그 물음에 라니아는 미소 지었다.
“많은걸 할 수 있게 되지.”
그녀가 말했다.
라크가 목표로 하는 경지에 서 있는 여인이, 머나먼 곳에 있는 여인이 말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마나가 흐트러지지 않아. 네가 가진 것들을 완벽하게 통제하게 돼. 완벽한 통제는 완벽한 계산을 가능케 하지.”
그녀가 손가락을 까딱였다.
틱, 하고 눈보라 속에서 불꽃이 피어올랐다.
“네 주문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흐트러지는 일이 없을 거고.”
라크가 정신을 잃었다. 그가 눈을 뜨기를 기다렸다가, 라니아는 마저 말을 이었다. 그녀의 손가락에선 여전히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다.
“주문의 위력도 훨씬 상승하겠지. 눈보라 속에서 간단한 점화만 30분을 유지할 정도로.”
그녀가 손을 휘둘러 불을 꺼트렸다.
그리곤 다시 손가락을 튕겼다. 손가락 위로 이전의 것보다 거센 불길이 타올랐다.
“주문의 위력, 정확도, 정교함, 그 모든 게 올라갈거야.어디 그뿐일까?”
그녀가 쫙 팔을 펼쳤다.
눈보라 속에서 그녀는 웃고 있었다.
“어디서든 싸울 수 있어. 어디서든, 전력을 다할 수 있지. 네게 불리한 장소는 없어지는 거야.”
그녀는 눈보라 속을 거닐었다.
라크는 걷지 못하는 그곳을, 마치 산책이라도 하듯 가볍게 걸어 다녔다. 그녀의 걸음걸이는 성역의 바깥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저 안에 뭐가 있는지 궁금하지 않아?”
궁금했다.
“네 눈으로 직접 보고 싶지 않아?”
보고 싶었다.
라크가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라크의 눈동자를 보며, 라니아가 웃음을 흘렸다. 그녀는 짧게 숨을 뱉으며 입을 열었다.
“어때.”
그녀가 물었다.
“매력적이지?”
매력적이었다. 무척이나.
“그럼 해.”
단호한 어조가 라크의 귓가에 맴돌았다.
라크는 눈을 감았다. 감았던 눈을 다시 떴을 때, 그 눈빛은 조금 전과는 달라져 있었다.
까득.
라크가 이를 악물었다. 2분이 흘렀지만 라크는 기절하지 않았다. 라크의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쿵, 쿠웅.
거세게 뛰는 심장의 소리를 들으며.
투둑, 하고 무언가 끊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그렇게 쌓아온 것들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으며.
“퉷.”
라크는 입안에 들어찬 피를 뱉었다.
뱉은 것은 피였으나, 버린 것은 잡생각이다. 라크는 머릿속을 비웠다. 새하얘진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하나뿐이다.
마나의 배열.
뇌리에 각인된 그것을 더듬었다. 더듬는 것조차 고되다. 그러나, 불가능하진 않다. 라크는 어둠 속에서 길을 찾는 장님처럼 그것을 더듬었다.
틱, 티딕.
라크의 마나 배열에 금이 간다.
쪼개지고 무너지는 배열 사이로 새로운 것이 자리한다. 탈피는 아주 느린 속도로 진행됐다. 아주 작은 곳부터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몇 번이고 기절한다.
몇 번이고 일어선다.
라크는 끊임없이 흐름을 붙잡았다.
결국에 라크가 자신 있는 분야는 끈기였다. 몰아치는 눈보라조차 라크의 열기를 식히지는 못한다.
북부의 전사는 담금질 되는 쇠요.
영원히 식지 않는 뜨거운 철이리라.
쇠는 담금질 될수록 단단해진다. 북부의 전사는 쇠와 같다. 라크는 북부의 전사였다. 시련 속에서 라크는 성장한다.
투둑.
해가 저물 무렵, 라크는 오른팔의 로프를 끊어내는 데 성공했다. 라니아가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3.
“······.”
나는 말없이 라크를 보았다.
오른팔의 로프를 끊어내는 것을 마지막으로, 라크는 기절하듯 쓰러졌다. 완전한 탈진이었다.
“이건 예상 못 했는데.”
내심 혀를 내둘렀다. 예상하지 못한 속도였고,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적어도 사흘은 걸릴 줄 알았는데···.’
전장의 마법사들은 한 달가량이 걸렸다.
라크가 재능을 타고났으니, 사흘 정도로 잡긴 했으나··· 그마저 빡빡할 거라 생각했다.
‘근데, 하루 만에 한쪽을 끊었다라···.’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대단하네, 정말로.”
내 예상을 벗어난 결과였다.
좋은 의미로.
“읏챠.”
쓰러진 라크를 등에 업은 채 나는 성역을 빠져나왔다. 눈보라가 그친 곳에 라크를 눕혀두고, 곁에 작은 모닥불을 피웠다.
“후우···.”
짧게 숨을 내뱉고 나는 고개를 돌렸다.
내 시선이 향한 곳은 성역의 안쪽이다. 성역의 내부에 들어가서 직접 보니, 얼추 감이 잡혔다.
‘마나의 샘은 아니야.’
마나의 샘과 닮았으나 같지는 않다.
포화상태의 마나가 공기 중에 떠돌고 있는 것은 같다. 다른 것은 마나의 상태였다.
‘적대적이었다. 무척이나.’
마나가 날카로웠다. 몰아치는 눈보라에 섞인 마나는 침입자를 거부했다. 마치, 무언가를 지키려는 것처럼.
“흐음···.”
나는 턱을 매만졌다.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다. 그렇다면, 마나의 샘에 비견될 정도의 마나를 때려 박으면서까지 지키려 하는 게 대체 무엇인가?
“좀 궁금한데.”
호기심이 들었다.
나는 기절하듯 쓰러져 있는 라크를 살짝 흘겨보곤, 성역의 안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궁금하면 보고 오면 그만이지.’
내가 발걸음을 내디딘 순간, 이전보다 더욱 거센 눈보라가 나를 반겼다. 마치, 허락받지 않은 자를 쫓아내는 듯한 모습이었으나···.
“오.”
그건 내게 도전 욕구를 불러일으킬 뿐이었다.
“흥, 흐응.”
나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눈보라 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바람이 선선하니 썩 나쁘지 않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