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154
〈 154화 〉 우연, 어쩌면 필연(2)
* * *
드르륵.
의자를 끄는 소리가 나지막이 울린다.
클로에는 제 의자를 들고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눈앞의 손님과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고 느낀 까닭이었다.
‘무척이나 수상한 사람.’
평소에는 둥근 클로에의 눈매가 몹시 날카로워졌다. 그녀는 눈앞의 손님을 대략 사기꾼 정도로 여기고 있었는데, 그녀가 생각하기에 썩 틀린 판단은 아닌 듯 싶었다.
‘대뜸 찾아와선 누구랑 닮았다고 들이대질 않나, 이름을 듣자마자 아는 척을 하질 않나···.’
사람을 의심하는 법이 좀처럼 없는 클로에지만, 이건 해도 너무하다. 수상한 게 한둘이 아니다. 그렇기에 경계를 하고 있긴 하지만···.
‘···생긴 건 사기꾼 같지 않은데.’
그 외모 탓에 도무지 그렇게 느껴지지가 않는다.
“으음···.”
클로에는 제 입술을 우물거리며 맞은편에 앉은 여인을 흘겨보았다.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무척이나.
행동거지에서 기품이 느껴지진 않지만··· 두른 분위기 자체가 귀족스럽다. 왜인지 모를 품위가 느껴진다. 자신이 즐겨 읽는 로맨스 소설에서 나오던 귀족 영애들이, 딱 저렇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무도회의 주인공, 귀족 영애···.’
같은 장소에 있는 것만으로도 시선을 끄는 인물.
어디를 가나, 어디에 서나 주연이 될듯한 인물.
푸르른 눈동자는 잔잔한 호수와 같다.
가지런히 땋아 내린 잿빛 머리칼은 비단결처럼 부드러워 보인다. 불어오는 바람에 머리칼이 살랑일 때마다 좋은 향기가 나는 것만 같다.
‘사기꾼, 사기꾼······.’
그렇게 클로에가 무언가에 홀린 듯이 여인을 바라보고 있을 무렵이다. 클로에의 시선을 받던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뭘 그렇게 봐?”
헛, 하고 클로에가 눈을 크게 뜬다.
클로에는 어느새 앞으로 숙이고 있던 상반신을 뒤로 확, 젖혔다. 한순간이지만 홀릴 뻔했다. 클로에는 큼, 크흠 하고 짧게 목을 가다듬었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역시 사기꾼답다.
남을 홀리고, 속이고, 꾀어내는 방법을 잘 알고 있는 게 틀림없다. 조금이라도 방심했다간 호구를 잡힐 게 분명했다.
‘이 사람은 사기꾼.’
클로에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카르디 영감님이 올 때까지만 버티는 거야···!’
클로에는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2.
‘···앤 갑자기 왜 이래?’
라니엘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로선 눈앞의 소녀의 반응을 이해하기가 어려운 탓이었다. 거리를 두자면서 물러서더니, 금새 상반신을 숙이고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질 않나··· 여러모로 종잡을 수가 없는 소녀였다.
‘용사들은 별종일 확률이 높은 건가?’
제법 합리적인 의심인 것 같았다.
라니엘은 미심쩍은 눈길로 소녀를 바라봤다.
‘차기 용사 후보, 클로에.’
이 소녀에 대한 정보를 처음 들은 것은 몇 달쯤 전의 이야기다. 칼트에게 들은 정보를 라니엘은 머릿속으로 떠올려 보았다.
각성을 앞둔 용사 후보생.
각성이 아직이므로, 그 무장(??)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특수할 것이라 예상되는 용사.
그 외에도 흑색 마탑의 비호를 받느니, 국가적 보호를 하고 있다는 등등··· 다양한 정보가 있었으나, 라니엘의 머릿속에 강렬히 남은 것은 달리 있었다.
‘최초의 위자드(Wizard) 클래스의 용사.’
이례적인 경우다.
수백 년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사례다.
‘용사가 마법을 배운 적은 있다.’
그러나, 용사가 마법사로서의 재능을 타고난 적은 없었다. 애초에 용사의 체내에 축적되는 마나는 주문의 사용에 용의치 않다. 육체를 강화하는 쪽으로 발달되어 있는 까닭이다.
초인을 뛰어넘는 육체 능력.
별의 축복을 받은 무장.
그것을 앞세워 전장을 헤집고 다니는 게 용사라는 존속들이다. 수백 년간 줄곧 그래왔다. 그러나, 눈앞의 소녀는 라니엘이 봐왔던 용사들과는 다르다.
‘···육체는 유약하다.’
손에는 굳은살이 없다. 눈에 띄는 버릇도, 신체의 기울임도 없다. 무기를 다룬 적이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를 대신하듯··· 이 소녀는 그 어떤 용사도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다.
‘낯선 마나.’
소녀의 주위에는 이질적인 마나가 흐른다.
카일이 태우는 별빛과 닮은 것 같으면서도 다른, 굉장히 이질적인 마나다. 라니엘 조차 저걸 어떻게 다뤄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왜 자신이 이 소녀의 교육 담당이 되었는가?
저 마나를 보고 있자니, 라니엘은 어째서 흑마탑주가 그런 선택을 내렸는지 알 것 같았다. 저건 ‘통상의 방법’으론 다룰 수 없는 마나다.
‘그렇기에, 연구 가치가 있는 거지.’
라니엘의 푸른 눈동자가 번들거렸다.
“···재밌네.”
“네? 뭐라 하셨어요?”
“별거 아냐. 신경 쓰지 마.”
‘신경 쓰일 부분밖에 없는데···.’
눈앞에서 입맛을 다시는 라니엘의 모습에, 클로에는 영문 모를 섬뜩함을 느낀다. 잠깐의 침묵 후 클로에가 입을 열었다.
“···방금, 저를 아신다고 하셨죠?”
“응.”
“저는 손님분을 오늘 처음 보는 것 같은데.”
“그렇겠지. 나도 초면인 걸.”
“그런데, 저를 어떻게 아세요?”
라니엘이 짧게 답했다.
“너, 아플리아에 입학한다며?”
“그걸 어떻게···.”
클로에의 눈이 조금 커졌다.
라니엘은 제 얼굴을 가리키며 말했다.
“내가 아플리아의 교수니까.”
그녀가 제 양복 주머니를 뒤지더니, 무언가를 꺼내 테이블에 올려놨다. 그것을 본 클로에의 눈이 동그래졌다.
‘···아플리아 출입증.’
벨노아의 것과는 다르다.
학생의 것이 아닌, 교수에게 나눠주는 출입증이다. 클로에는 출입증과 라니엘을 번갈아 바라봤다.
‘사기꾼이··· 아니야?’
아무래도 아닌 모양이었다.
클로에의 동공이 심히 흔들리는 와중, 라니엘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2학기 때 입학한다며? 편입생 이름 정도는 귀에 들어오는 법이거든. 그러니 네 얼굴은 몰라도, 이름 정도는 알고 있는 거고.”
“어, 어으음···.”
“그래서.”
라니엘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아직도 거리를 좀 두고 이야기할까?”
“아, 아뇨···.”
클로에는 의자를 끌고 다시 앞으로 왔다.
드르륵, 의자 끌리는 소리가 요란스레 울렸다. 클로에는 조심스레 질문한다. 그녀가 생각하기에도, 때가 좀 많이 늦은 질문을.
“교수님께서 이런 곳은 왜···?”
방문 목적이 무엇인가?
그렇게 묻는 클로에에게 라니엘이 답했다.
“만날 사람이 있어서.”
“벨노아를 만나러 오셨나요?”
“그 애 말고, 이 가게 주인.”
“카르디 영감님이요?”
“응, 어디 간 줄 알아?”
클로에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디 나가신 줄은 모르지만··· 잠깐 가게 좀 봐달라 했으니까 곧 오실 거예요.”
“그럼 됐고.”
“······.”
그 말을 끝으로 침묵이 찾아왔다.
달리 더 나눌 말도 없는 데다가, 클로에가 라니엘의 눈치를 보기 바쁜 탓이었다. 클로에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뭘 물어봐도 되려나? 이름은? 담당 과목은? 아니면 아플리아에 대해서라도···.’
눈앞의 수상한 손님의 정체가 아플리아의 교수로 밝혀진 가운데, 클로에의 눈에는 눈앞의 여인이 조금 다르게 비춰 보였다.
‘···무려, 교수님.’
아플리아의 입학이 반년쯤 당겨졌던 날, 환호성을 지르며 흑색 마탑을 뛰어 다녔던 클로에다. 미리 맞춰둔 교복을 하루에 몇 번이나 거울 앞에서 입어 볼 정도로, 클로에가 아플리아에서의 생활에 거는 기대는 컸다. 무척이나.
그런데, 자신의 눈앞에 있는 것은 누구인가?
무려 그 아플리아 아카데미의 교수님이시다.
아플리아의 관계자이니, 아카데미에 대해 이것저것 알고 있는 것도 분명 많을 것이다. 그녀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산더미고,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잔뜩이다.
“음, 으음···.”
하지만 좀처럼 말을 걸기가 어렵다.
클로에는 라니엘의 눈치를 계속해서 살폈다. 클로에는 아직 눈앞의 손님에게 두려움을 느낀다. 사기꾼이란 의심은 사라졌지만, 딱 그뿐이다.
‘무척 폭력적인 사람.’
그리고 어딘가 머리에 맛이 간 사람.
가히 최악이라 불릴만한 첫인상이다. 뭐라도 말을 붙이고 싶긴 한데, 아직은 좀 무섭게 느껴지는 사람이다.
그렇게 클로에가 입술을 우물거리고 있을 무렵이다. 눈치만을 살피는 클로에가 안쓰러웠는지, 라니엘이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2학기 때 입학하면 정말 곧이겠네.”
클로에는 이때다 싶어 고개를 끄덕였다.
“한 달쯤 뒤면 입학할 것 같아요. 기숙사는 그보다 조금 더 먼저 들어갈 것 같구···.”
“교복이랑은 다 사뒀고?”
“네! 예투알 아저씨가 직접 만들어주셨어요. 뭔가 막 이상한 기능을 넣은 것 같긴 하지만···.”
이상한 기능.
최상급 마나 각인을 새겨넣은 예투알의 입장에선 눈물이 날 만한 이야기이다. 라니엘은 쓰게 웃으며 툭, 하고 테이블을 건드렸다.
“그래, 뭐.”
그녀가 미소 지었다.
“개학하면 자주 보게 되겠네.”
“···자주요?”
“내 수업은 듣게 될 테니까.”
그 말에 클로에가 움찔, 하고 어깨를 떨었다.
“저, 저는 특별 수업을 듣는다고 들었어요.”
“특별 수업?”
“평범한 수업이 아니라, 엄청 대단한 교수님한테 특별한 수업을 받을 거라고···.”
“흐응.”
라니엘이 턱을 괸 채 엷은 웃음을 흘렸다.
“그래도, 내 수업은 듣게 될걸?”
“저, 저는 교수님같이 난폭한··· 아니, 거친 분의 수업은 듣고 싶지 않아요.”
“난폭해? 내가?”
“만나자마자 때리려 하셨잖아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클로에가 중얼거렸다.
라니엘은 어깨를 으쓱이며 눈앞의 소녀에게 넌지시 물었다.
“그럼 생각해둔 수업이라도 따로 있어?”
그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클로에가 눈을 빛냈다.
“저는 무척 우아하신 분의 수업을 들을 거예요.”
“수업에 우아하고 말고가 어딨어?”
“그래도, 그분 수업은 기품이 넘치고, 우아하고, 알아듣기는 어려워도··· 깨닫는 게 있다고 들었는걸요?”
“누가 그래?”
“여기서 그랬어요.”
클로에가 품에서 주섬주섬 신문지를 꺼내 들었다.
몇 개월 전의 신문지였는데, 아플리아의 첫 공개수업을 다룬 신문지였다.
「혜성처럼 등장한 신인 교수.」
「라니아 반 트리아스.」
「라니아 교수의 수업은 우아하고, 기품이 넘쳤으며 모든 마법사가 간과하고 하는 기초에 대해 심도 있게 다룬 수업으로···.」
우아함, 기품, 깨달음.
그런 단어들에 빨갛게 동그라미까지 쳐져 있는 신문지다. 몇 번을 접었다 폈는지 너덜너덜하기까지 한 신문지를 자랑스레 펼치며 클로에가 말했다.
“저는 이분 수업을 들을 거예요. 교수님같이 난폭하신 분의 수업이 아니라!”
라니엘의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녀는 새어 나오려는 웃음을 참다못해, 제 입가를 손바닥으로 가렸다.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떠는 그녀의 모습에 클로에가 눈을 깜빡였다.
“···왜 그러세요?”
“큼, 아냐. 그냥 잘 아는 교수라서.”
영문을 모른 채 클로에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꼭 웃음을 참는듯한 모습이다. 뭔가 놓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클로에가 제 미간을 좁혔다.
‘아, 그러고 보니까 뭔가···.’
잿빛 머리칼에 푸른 눈동자.
그리고 수상할 정도로 젊은 교수.
눈앞에 앉아있는 인물의 특징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 그것도 무척이나 가까이서. 클로에는 신문지와 눈앞의 손님을 번갈아 바라봤다.
“아.”
그 순간이다.
지금까지 생각지도 못했던 가능성이 클로에의 머릿속에 떠오른다.
‘···설마.’
클로에의 동공이 흔들렸다.
“그, 교수님? 성함이 어떻게 되시는···.”
그때였다. 짤랑, 하고 문이 열린 것은.
3.
끼이익.
벨노아는 양손에 짐을 든 채, 발끝으로 문을 쓱 밀었다. 어째 경첩이 오늘따라 유난히도 삐걱거리는 것 같긴 하지만, 어찌 됐든 문을 여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짤랑, 하고 문 끝에 매달린 종이 울렸다.
문을 밀며 벨노아는 뒤를 돌아봤다.
“영감, 이거 어디에 놔두면 돼?”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라.”
“무거운데.”
“몇 걸음만 더 가면 되는데 엄살은.”
툭, 하고 영감이 벨노아의 등을 밀었다.
벨노아는 떠밀리듯 가게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느릿느릿한 걸음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노인은 벨노아를 보며 혀를 쯧쯧 찼다.
“하여간, 빠릿빠릿하게 좀 움직일 수 없나? 젊은 놈이 그렇게 몸이 굼떠서야···.”
“영감이 뭘 너무 많이 샀잖아. 이런 걸 다 어디에 쓰려고? 하여간···.”
쿵, 하고 상자를 내려놓는다.
숙였던 허리를 펴며 벨노아가 제 등허리를 툭툭 두들겼다. 그리곤 고개를 돌리며 벨노아가 입을 열었다. 가게 안에서 자신을 기다렸을 소녀를 향해서 말을 걸었다.
“아, 클로에 미안. 영감이 심부름을 시키는 바람에 좀 늦···.”
말을 하다 말고 벨노아가 눈을 깜빡였다.
가게에 앉아있는 건 클로에뿐이 아니었다. 무척이나 익숙한 인물이 하나 더 그곳에 앉아있다. 그녀가 벨노아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오, 벨노아.”
잿빛 머리칼의 여인.
클로에의 맞은편에 앉은 여인을 바라보며 벨노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 사람이 왜 여기에?
“···라니아 교수님?”
벨노아가 그 이름을 입에 담은 순간이다.
쿵!
클로에가 책상에 제 이마를 박았다.
어찌나 세게 박았는지 울리는 소리가 제법 컸다.
‘···쟨 또 왜 저래?’
벨노아로선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