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17
〈 17화 〉 반 배정 시험(1)
* * *
입학식을 마친 후, 학생들은 교직원의 안내를 따라 기숙사를 배정받는다.
서학관, 동학관, 그리고 중앙학관.
세 개로 나뉜 기숙사 중, 올해 신설 된 중앙학관은 입학시험에서 기록한 성적을 기반으로 우선 배정권이 주어졌다.
그 과정은 철저하게 성적에 의해 이루어진다.
거기에 신분의 높고 낮음이 끼어들 여지는 없다.
아플리아는 국왕이 공인한 배움의 터다. 아플리아 안에서는 그것이 누구던 간, 누구의 자제던 간 한 명의 학생으로서 분류된다.
그리고.
설령 왕녀라 한들, 그 대원칙에는 변함이 없다.
“흐응···.”
차석으로 아플리아에 입학하며, 그 실력을 증명한 제 4 왕녀 아일라는 자신이 배정받은 방을 보고 내심 감탄했다.
‘별로 기대는 안 했는데 이건···.’
그녀는 시설에 그리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참에 서민의 삶을 체험해보자는, 나름대로 발칙한 생각을 가지고 기숙사에 발을 들였건만···.
“···좋아도 너무 좋은 거 아닌가요?”
의외로 잘 갖춰진 숙소에, 아일라는 왠지 모를 실망감을 느끼고 있었다.
*
“실피.”
부르셨어요? 주인님.
“방에 먼지 좀 걷어줄래? 환기도 좀 시켜주고.”
음, 여긴 연구실 아닌데요, 주인님? 먼지도 별로 없고, 공기도 깨끗한 거 같아요.
“그래도.”
네 그럼···.
하급 바람 정령, 실피.
민들레 씨앗을 닮은 정령이 빛을 뿜는다. 이윽고 방안의 커튼이 흔들리고, 이불이 펄럭인다.
“고마워 실피. 들어가서 쉬어.”
네, 주인님.
소환을 해제한 레스티는 침대에 걸터앉았다. 중앙학관, 소문은 들었으나 이렇게 와보니 감회가 새롭다.
‘넓네.’
본래 레스티가 지냈던 연구실의 숙소보다 넓었다. 약품 냄새가 새어 들어오는 것 같지도 않고. 창문을 열면 상쾌한 공기가 곧바로 들어온다.
“앞으론 환기 안 시켜도 되겠다.”
버릇처럼 실피를 불러냈지만, 이제는 딱히 그럴 필요도 없어 보였다. 침대에 걸터앉은 채, 레스티는 생각을 정리했다.
입학식은 끝났고.
본 수업은 삼일 뒤에나 시작한다.
그리고, 입학시험 상위권 학생들만을 모아, 반 배정 시험을 따로 친다고 했던 것 같다.
이틀 동안 충분히 아카데미를 둘러보세요.
레스티 학생은 주계열이 서머너(Summoner)였죠? 소환 마학과는 중앙학관에서 나와서 저기 보이는 큰 건물을 끼고 돌면 나올 거에요.
나중에 한번 꼭 들려주세요.
그녀에게 달라붙어 안내하던 조교의 모습이 문득 떠오른다. 다른 조교들을 견제하며, 레스티의 곁에 딱 붙어 있던 조교.
“·····.”
그 조교의 시선은 레스티가 아닌, 레스티의 가슴팍에 달린 휘장에 맞닿아 있었다. 그 시선이 떠올라, 레스티는 짧게 혀를 찼다.
“기분 나빠.”
레스티는 그런 게 딱 질색이었다.
잿빛 마탑, 잿빛, 그놈의 잿빛.
무려 그 잿빛 마법사와 같은, 차기 마탑주의 자리에 앉아있는 소녀다. 분명 대단할 것이다, 잘 보이면 마탑에 넣어줄지도 모른다···.
그따위 생각을 하고 접근하는 게 레스티의 눈에는 훤히 보인다. 그게 한두 번 있는 일도 아니었으니까.
‘나는 그 사람보다 못났고, 마탑 내에선 영향도 그리 크지 않는데.’
사실상 허울 뿐인 자리다.
잿빛 마법사가 돌아오면, 언제든지 버려질 수 있는 위치란 소리다. 레스티는 힘없이 조소한다.
“진짜, 별거 아닌데.”
그렇게 기대를 하며 접근한 이들은, 이내 멋대로 실망하고 떠나고 만다. 그 떠나는 과정에서 레스티에 대한 악담을 퍼뜨리는 건 덤이다.
그런 일에 이골이 난 레스티는, 조교들의 반응이 썩 달갑지 않았다. 당장 한 달만 지나도, 돌변할 그들의 태도가 뻔히 보였으므로.
“후우···.”
레스티는 한숨을 내쉬었다. 관심도 없는 조교들에 휘말린 탓에, 정작 보려던 사람은 보지도 못했다.
로셀 원로의 양녀이자, 조교.
라니아 반 트리아스.
정작 레스티가 이야기를 나눠 보고 싶었던 인물은 그녀였지만, 그녀는 입학식이 끝나자마자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래도, 못 만나는 건 아니니까···.’
마나의 기초와 거래학, 상급 분반.
그 로셀 교수의 수업을 수강할 수 있다면, 자연스레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반 배정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필요가 있었다.
“·····.”
레스티는 말없이 마탑에서 가져온 짐을 풀기 시작했다. 그녀가 사육하고, 계약한 사역마들을 봉인해둔 주문서 수십 장이 바닥에 펼쳐진다.
반 배정 시험.
반 배정이니 뭐니 해도, 일단은 시험이다.
순위가 매겨지고, 순위가 공표되는 시험.
‘잘해야 해.’
그것이 무엇이던, 순위가 매겨져 외부로 공개되는 것이라면··· 레스티는 대충할 생각은 없었다.
잘 다녀오려무나.
언제나 지켜보고 있으마.
다른 이들은 몰라도, 레스티는 잿빛 장로(??)의 기대를 배신하고 싶지 않았다. 그분의 기대에 만큼은 부응하고 싶었다.
“한다면 수석이야. 무조건 1등.”
누가 뭐라 한들.
그 누구와 비교당한다 한들, 자신은 잿빛의 차기 마탑주다. 그 사실을 되새기며 레스티는 주문을 정비하기 시작했다.
수석으로 입학시험을 통과한 이상, 그녀는 1등의 자리를 넘겨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2.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원소 마학과 조교수 세자르는 회의의 시작을 알렸다. 가장 오랫동안 조교수로 일했던 만큼, 대부분의 회의는 세자르가 주도했다.
“대부분의 조교분들은 개요를 알고 있을테지만, 이 자리에 처음 오시는 분도 있으니 간략히 설명해 드리고자 합니다.”
처음 오시는 분.
굳이 그 이름을 말하지 않아도 그것이 누구를 가리키는지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은 잘 알고 있다. 이윽고 조교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쏠린다.
테이블의 한구석.
언제나 공석이었던 ‘마나의 기초와 거래학’ 자리에 앉아있는 인물.
라니아 반 트리아스.
그녀에게 향하는 조교들의 시선을 절대로 곱지 않다. 그 시선을 의도적으로 방치한 세자르는, 조교들의 시선이 다시 자신에게로 향할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렸다가, 말을 이었다.
“아시다시피, 이번에는 입학시험으로 학생들을 정확하게 분류하지 못했습니다. 특히 상위권 학생들이 지나치게 뭉치는 상황이 발생했죠.”
작년 졸업생에 비해 학생들의 수준이 너무 오른 탓이었다. 그 탓에 지나치게 몰린 상위권 학생들을 다시 한번 분류할 필요가 생겼다.
“이에, 상위권 학생들을 대상으로 반 배정 시험을 시행, 그 수준을 조금 더 세분화하고자 합니다.”
세자르가 서류를 툭 건드리자 허공에 큼지막한 지도가 펼쳐진다.
“반 배정 시험은 아플리아 인근에 위치한 하르메인 삼림에서 시행될 예정입니다.”
하르메인 삼림.
“아시다시피, 하르메인 삼림은 대기 중의 마나가 언제나 포화상태입니다. 그 탓에 마나의 흐름이 꼬이고, 가진 마나의 통제가 어려워지지요.”
“그래서, 저희가 시험하려는 것도 그 부분이고요.”
세자르의 말을 그의 곁에 있던 조교가 잇는다.
“마나를 얼마나 잘 통제할 수 있는가, 자신이 가진 재능이 멋대로 날뛰지 않도록 억누를 수 있는가. 저희가 보려는 건 그런 거에요.”
“마나의 통제는 기초고, 그 기초가 모자란 학생이라면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가졌더라도, 처음부터 다시 가르쳐야 하니 말입니다.”
이는 조교수들이 정한 사안이 아니었다.
이번 학기에 입학하는 신입생들의 재능을 확인한 로셀 교수와, 아론 학장을 비롯한 교수들이 정해놓은 시험의 대원칙이었다.
마법사는 언제나 자신이 가진 것을 완벽하게 다스려야 한다. 다스리지 못한다면, 그건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에 불과하다.
입학시험에서 그 재능을 봤다면.
이어지는 반 배정 시험에선, 자신의 재능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또 그것을 얼마나 통제할 수 있는지를 시험하게 된다.
그리고, 그 시험을 구체화 하는 게 바로 조교수들의 몫이었다. 교수들은 시험의 큰 틀을 마련해줬을 뿐이었으니.
“그래서 저희는, 4개의 구획으로 나뉘어 분야가 비슷한 학생들끼리 경쟁을 시킬 생각이에요.”
지도가 네 개의 구역으로 나뉜다.
“각 구획에는 중심이 되는 ‘마력석’이 있습니다. 그 마력석에 얼마나 오래 접촉해 있는가. 그 시간에 따라 점수를 매길 예정입니다.”
세자르는 고개를 살짝 끄덕인다.
“다소의 방해와 경쟁은 인정하겠단 뜻입니다.”
물론, 하고 세자르는 덧붙인다.
“과한 경쟁으로 학생들이 다쳐서는 안될 말이죠. 각 구획에는 저희 조교들이 감독으로서 파견 나갈 예정입니다.”
한 번 더 손가락을 움직이자, 4개로 나뉜 구획에 붉은 점이 떠오른다. 조교들이 파견 나갈 위치를 표시한 점이었다.
그러나, 비어있는 곳이 하나 존재한다.
네 개로 나뉜 구획 중, 북쪽에 있는 구획. 그 구획에는 어떤 붉은 점도 찍혀져 있지 않았다. 마치, 그 누구도 그곳에는 가기 싫다는 것처럼 노골적으로 비어있는 구획이다.
“저희는 감독할 구획을 이미 선택을 마쳤지만, 선택하지 못한 분도 여기 한 분 계시지요.”
세자르는 눈을 가늘게 뜨고, 자신의 맞은편에 앉은 여인을 바라본다.
“라니아 조교수님?”
“네.”
“뭐, 뒤늦게 조교로 들어오신 데다가, 최근에는 입양식이니 뭐니··· 바쁘셨을테니 이해는 하지만요?”
그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걸린다.
“기왕 조교로 들어오셨으니, 맡으실 구획을 선택해 주심 좋을 것 같네요.”
“그럼···.”
“아, 그런데 남은 자리가 한 자리 밖에 없어서.”
세자르는 북쪽 구획을 가리킨다.
“이 구획을 감독해주심 될 것 같은데.”
북쪽 구획.
모든 조교들이 저 자리를 피하는 이유가 있다. 바로, 저곳에 배정되는 학생들 때문이다.
백색 마탑주의 수제자, 북방의 대공자 라크.
흑색 마탑주의 수제자, 어스름의 악몽 벨노아.
저곳은 양 마탑주들의 요구로, 그 둘 만을 위해 준비된 무대다. 저곳에서 펼쳐질 싸움은 조교들이라 한들 간섭하기가 쉽지 않다.
트롤을 찢어발긴 북방의 전사.
슬럼가를 핏빛으로 물들인 암살자.
그들이 격돌한다면 분명 어느 한쪽은 크게 다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 책임을 무는 건 해당 구획을 감독하던 조교다.
‘마탑간의 경쟁에 휘말려, 쓸데없는 책임을 지기는 싫죠.’
세자르는 속으로 웃음을 흘리며, 맞은편에 앉은 잿빛 머리칼의 여인을 흘겨봤다. 솔직히 말해서, 세자르는 그녀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 자리는 본래 세자르의 것이었다.
적어도, 세자르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는 재작년에도, 작년에도 계속해서 로셀 교수의 조교 자리에 지원했다. 그러나 번번이 거절당했다. 무시당했다.
‘그런데, 어디서 굴러온 지도 모를 년이 그 자리에 앉아? 그것도 양녀까지 돼가면서?’
겉으로 티를 내진 않는다.
그러나, 대부분의 조교들도 저 라니아란 여인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건 마찬가지였다.
‘꼴 좋다, 낙하산년.’
다들 그런 식으로 비웃고 있을 테지. 분명 그러리라 여기며 세자르는 친절한 미소를 흘리며 입을 열었다.
“아, 그래도 저곳에 배정된 학생은 둘밖에 없습니다. 괜찮으시겠죠?”
그 질문에.
“네, 뭐.”
라니아는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3.
‘저 새끼는 왜 쳐 쪼개고 지랄이지?’
회의가 끝나자마자 제일 먼저 든 생각이 그거였다. 뭐가 그렇게 재밌는진 몰라도, 날 볼 때마다 웃어대니 기분이 좀 묘했다.
‘내가 그렇게 재밌게 생겼나?’
그러진 않았던 것 같은데.
“그나저나, 별난 방식으로 진행하네.”
하르메인 삼림은 나도 알고 있다. 예전에 들려본 적이 있었으니까. 분명, 고대용의 마법사가 왕국에 선물하고 간 삼림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근데 왜 여기서 하지?’
나는 전달 받은 지도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알기로, 하르메인 삼림의 진가는 그 중심에 있다. 고대용의 마법사가 선물한 ‘마나의 샘’. 그게 하르메인 삼림에 방문하는 목적일텐데···.
굳이, 외곽에서 시험을 진행할 필요가 있나?
그냥 중심에 다 던져놓고 사지 멀쩡히 걸어 나오는 애들 골라다가 상급에 넣으면 될 거 같은데.
“···뭐, 다 생각이 있겠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