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18
〈 18화 〉 반 배정 시험(2)
* * *
흑색 마탑주 예투알은 유연한 인물이다.
상황 판단이 빠르다. 고지식하지 않다. 형식보단 효율을 추구한다. 규율에 얽매이지 않는다.
높은 자리에 앉으며 보수적이고, 딱딱하게 변해버린 원로들과는 다르다.
예투알은 언제나 마탑의 이득만을 추구했다. 설령 그것이 도리에 어긋나는 일일지라도. 세간의 공분을 사는 일일지라도 서슴지 않았다.
‘그러니, 그 아이를 발견할 수 있었겠지.’
어스름을 궤멸시킨, 어스름의 악몽 벨노아.
예투알이 발견해낸 최고의 인재.
그 아이와 첫 만남을 떠올리며, 예투알은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예투알은 슬럼가에 머무르는 조직, 어스름에 안 좋은 인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물론 그들이 더럽다는 건 알고 있다. 불법행위를 일삼는 이들이란 것 역시,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게 어쨌다는 건가?
그곳의 암시장에선 흔히 구할 수 없는 재료들을 구할 수 있다. 돈만 지불하면 그들은 어떤 더러운 일이라도 서슴지 않고 수행한다. 예투알에게 있어, 어스름은 부리기 좋은 말에 불과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언제나와 같이 재료를 사러, 예투알은 슬럼가를 들렸다. 그날의 슬럼가는 무언가 이상했다.
슬럼가를 밝히는 마등은 깨져있다.
골목길에 짙게 깔린 어둠에는 피비린내가 섞여 있다.
안내를 나오던 조직원은 보이지 않는다.
푹.
그리고.
푸욱, 촥!
어디선가 무언가를 내려찍고, 무언가가 튀기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온다.
찰박.
그 소리의 중심으로 다가갔을 때.
예투알은 한 소년과 마주했다.
‘귀신.’
온몸에 피칠갑을 한 채, 시쳇더미 위에 홀로서 있던 소년. 마치 귀신과도 같았던 그 소년의 모습을 예투알은 똑똑히 기억한다.
이 아이라면 가능하다.
더러운 뒷골목에서조차 그 재능을 꽃피워낸 이 아이라면, 라니엘의 그림자를 쫓을 수 있다.
그날 느꼈던 전율을, 예투알은 절대 잊지 못한다.
“많이들 착각하곤 하지.”
그날을 떠올리며, 예투알은 쓰게 웃는다.
세간에선 흔히들 이렇게 착각한다. 벨노아가 어스름을 궤멸시킨 건, 흑색 마탑주의 제자로 들어간 이후의 이야기라고.
그러나, 그 실상은 다르다.
벨노아는 예투알의 제자로 들어가기 전부터, 완성된 괴물이었다. 그 소년은 아무것도 배우지 않은 상태에서 슬럼가를 궤멸시켰다.
‘괴물이었다.’
제대로 무언갈 배우지도 않은 아이가.
수십 년의 세월 동안 슬럼가를 지배했던 어스름을 궤멸시켰다. 그 귀신같은 재능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백색 마탑주는 북방의 대공자를 키워냈다 하던가.”
그 북방의 대공자가, 이번 입학생 중 최강일 거란 소문이 돈다. 실전에 들어선다면, 그를 이길 수 있는 인물이 없을 거란 이야기가 마법사들 사이에 나돈다.
“웃기는 이야기지.”
그 소문에 예투알은 비웃음을 흘린다.
벨노아를 보지 못해 하는 이야기다.
그래, 어쩌면 정면 승부에선 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실전’이라면, 죽고 죽이는 싸움이라면.
벨노아는 그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다.
“흐음.”
예투알은 자신의 턱을 매만지며, 테이블에 놓인 서류를 바라봤다. 반 배정 시험의 진행 상황. 그가 부탁했던 대로, 벨노아는 라크와 단독으로 마주한다.
‘백색의 코를 납작하게 해줄 기회로군.’
그렇게 비릿한 웃음을 흘리던 예투알의 시선에, 문득 서류의 항목 하나가 들어왔다.
“···응?”
본래 공란이었을 항목.
벨노아와 라크가 배정받은 북쪽 구획, 그 구획을 담당하게 될 조교수의 칸이 채워져 있다.
‘···거길 맡을 사람이 있다고?’
조교수가 맡을 만한 위치가 아닐 텐데? 적어도 교수 정도는 와야 그 싸움을 중재할 수 있을 텐데.
‘어지간히도 간덩이가 부은 애송이인가 보군.’
그 이름이나 한번 확인해보잔 생각으로 예투알은 항목에 채워진 이름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곤.
“아?”
예투알은 짧게 경직한다.
‘라니···아…?’
라니아 반 트리아스.
그 이름을 확인한 예투알의 눈동자가 얕게 흔들렸다. 그러나 그도 잠시, 예투알은 빠르게 상황을 정리한다.
‘···계획의 실행은 가능한가?’
앞세워놨던 계획. 시험을 빌미 삼아 백색의 제자를 건드리려던 계획의 수정이 필요한가?
예투알은 머릿속에서 벨노아, 라크, 그리고 라니아란 조교수를 한 장소에 세워본다. 아니, 굳이 세워 볼 필요도 없었다.
단상에서 보았던 그 소녀의 기량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답은 쉽게 나온다.
그녀가 스톡(Stock)해둔 주문의 양.
완벽하게 통제하에 놓여있던 수십, 수백 개의 주문.
‘최소, 잿빛 마탑주에 비견될만한 기량.’
그만한 기량을 지닌 인물이다.
‘그만한 인물의 감시하에, 벨노아의 주술의 발동이 가능한가?’
아니, 불가능하겠지.
벨노아가 아무리 기고 난다 한들, 그녀의 앞에서 무언갈 할 수 있으리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무슨 상황이 벌어지든, 통제할 자신이 있는 거겠지.’
그런 자신이 있으니 저 구획을 맡은 것일 거고.
실력에서 오는 합당한 자신감이다.
“후우···.”
예투알은 관자놀이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계획을 틀어야겠군.”
시험을 빌미 삼아 백색의 수제자를 건드려 볼 작정이었다만··· 이렇게 되면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괜히 벌써부터 척을 질 필요는 없으니.’
예투알은 서신을 꺼내 들었다.
자신의 제자에게 보낼 편지였다.
2.
입학식으로부터 이틀.
나는 매일같이 여유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매일 매일이 새롭다.
아플리아 아카데미.
왕도 최고의 아카데미라는 이곳은, 내 상상 이상의 시설을 보유하고 있었다.
무슨 전(?) 궁중 요리사가 학식을 만들지 않나.
유명한 연금술 공방의 장인이 커피를 달이고 있질 않나. 그 시설의 호화스러움과 사치스러움을 입에 담자면 끝이 없을 것 같다.
세상에 식사가 제때제때, 그것도 따뜻하게 나올 수가 있는 거였어?
그것만으로도 내겐 사치스러운 일이었다. 전장에선 차게 식은 통조림 까먹는 게 일상이었으니까.
“여기 나왔습니다, 교수님.”
“아, 감사해요.”
나는 점주가 달인 커피를 홀짝이며, 턱을 괸 채 창밖을 바라봤다.
나른하게 내리쬐는 햇살이 따사롭다.
불어오는 바람에 꽃잎들이 살랑인다.
퍽 평화로운 모습이라, 낯설기만 한 이 풍경도 슬슬 적응 돼가는 것 같기도 하다.
“나른하네.”
모처럼 여유로움을 즐기며, 나는 창밖을 바라봤다. 학사 내를 돌아다니는 학생들 사이로 조교들의 모습이 드문드문 보인다.
‘···언데드가 따로 없네.’
퀭한 눈동자.
축 늘어진 팔다리로 흐느적거리며 걷는 이들을 보고 있자니, 불쌍하단 생각이 먼저 든다.
나야 뭐···.스승님이 배려해주시는진 몰라도, 딱 적당한 양의 일감만 주니 나름대로 여유로운 생활을 즐기고 있지만, 조교라 하면 저게 보통인가 싶다.
‘아, 그러니까 나만 보면 그렇게 쳐 쪼개던 건가?’
저렇게 일만하고 살면 맛이 갈 만도 하네.
그으, 라니아 조교수님은 여유로우신가 봅니다?
네?
맡으신 서류, 다 하셨습니까? 최근 카페도 다니시고, 학교 내 벤치에서 자주 보이시던데. 그렇게 여유롭게···.
어제 제출 드렸는데?
···예?
나만 보면 입가를 파들거리던··· 그 이름이 뭐더라? 세자르였나?
‘걔도 참 피곤하게 살더라.’
구획의 감독은 철저해야 하느니, 부상자가 생기면 책임질 각오를 해야 한다느니 잔소리를 해대지만··· 솔직히 말해서, 썩 와닿는 조언은 아니었다.
‘애들 싸우는 거 지켜보다가, 누구 하나 죽겠다 싶으면 막으면 되는 거 아닌가?’
애석하게도.
나는 그런 싸움의 중재를 맡아본 경험이 있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카일하고 거리 안 둬요? 엘프들은 다 당신처럼 천박하고 음란한가 봐요?
성녀는 신만을 사랑하는 인간 아니던가? 신경 끄시지? 천박한 인간.
여행 초기에만 해도, 사라와 레미아가 카일을 두고 피 터져라 싸워댔으니까.
이 귀쟁이 년이 못하는 말이 없네요?
이 광신도 년이 못하는 말이 없네?
·····.
오늘 끝장을 보자는 거죠?
아하, 제대로 뛰어다닐 수나 있고?
음.
‘끔찍했었지.’
여기저기 화살이 날아다니고.
홀리 미사일인가 뭔가 하는, 맞기만 해도 팔다리가 팡팡 터져나가는 신성 마법이 하늘을 수놓는다.
‘생각해보면 사라 그년은, 마족들보다 레미아한테 홀리 미사일을 더 많이 쓴 것 같아.’
둘이 피 터져라 싸울 때마다, 그 기술의 숙련도가 늘어가는 걸 보고 어이없어했던 기억이 문득 떠오른다.
아마 여행 한 석 달 차까진 쭉 그랬었지?
넉 달 차에, 고급스러운 숙소에 카일과 사라, 레미아가 같이 들어간 이후에는 싸우는 일이 좀 없어지긴 했다마는···.
‘어? 생각해 보니까 좆같네?’
그냥 그때 한 명 뒤지게 놔둘걸 그랬나.
“에휴.”
문득 떠오른 생각에 나는 쓰게 웃었다. 보초 설 사람도 없는데 아직도 그따위로 지내는지 모르겠네.
뭐, 지들이 알아서 잘하겠지.
그렇게 실없는 생각을 하며 커피를 홀짝이는데, 문득 짤랑,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카페에 들어오는 손님이 있었다.
“·····.”
나는 그 손님을 바라본다.
그 역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새하얀 머리칼, 조금 날카로워 보이는 인상.
그리고 그 허리춤에 매어둔 도끼 자루.
어디서 본듯한 인상이었다.
‘아, 신입생 대표 4인방.’
북방 대공의 아드님, 배틀메이지 라크.
내가 그 이름을 떠올리고 있자니, 그가 대뜸 몸을 부르르 떨었다.
딸꾹.
그리곤 딸꾹질을 하기 시작한다.
체하기라도 한듯 연신 딸꾹질을 해대던 라크는 휙, 하고 내게서 고개를 돌렸다. 노골적으로 시선을 피하는듯한 모습이었다.
‘···왜 저래?’
그렇게 라크가 입구에서 멀뚱거리고 있기를 한참.
보다 못한 점주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거기 학생.”
“뭐,뭔가.”
“들어왔음 주문이라도 시키지 그래? 뭐 특별히 마시고 싶은거 있어?”
점주의 물음에 라크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돌리더니, 이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검..검은 물.”
“뭐?”
“저, 저기 저자가 마시고 있는 검은 물을 나도 마시고 싶다.”
“···커피 말하는 거야?”
“···그렇게 불렀던 것 같군.”
쟤도 정상은 아니구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3.
북방 대공의 아들, 라크.
17년 한평생을 북방의 설산에서 보냈던 그는, 아플리아이 입학한 뒤로 ‘문명’이란 것을 경험하고 있었다.
‘왕도는 이다지도 다채롭군.’
아버지께서 왜 왕도에서 지내다 오라 했는지, 조금 이해가 가는듯한 기분이었다.
‘과연, 나는 우물 안 개구리였던 것인가.’
모르는 것들 투성이다.
새로운 것들 뿐이다.
그러나, 라크는 그것에 즐거움을 느끼고 있었다.
어렸을 적부터 북방의 전사들에게 받은 가르침이 남은 까닭이었다.
도련님,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이런 북방에 있다 보면 머리가 딱딱하게 굳게 됩니다. 저희야 검만 휘두르면 되니 문제가 없지만··· 도련님은 더 큰 곳에 오르셔야 하지 않습니까.
호쾌하게 웃어 재끼며, 새로운 것을 보고 배우는 것을 멈추지 말라고 조언했던 전사들.
그들이 준 가르침을 떠올리며 학사를 돌아다니던 라크가, 카페에 시선이 팔린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카페라면 분명···.’
북방의 전사들이, 현명한 지식인들만이 마실 수 있는 음료라며 소개했던 ‘검은 물’을 파는 곳일 터.
“음.”
라크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곤, 당당한 발걸음으로 카페 안으로 들어섰다. 왕도 최고의 아카데미인 아플리아에 다니는 자신도, 이제는 무릇 지식인이라 부를 수 있을 터이니.
‘그 검은 물이란 걸 마셔보고 싶군.’
그렇게 카페 안으로 발걸음을 들인 라크는.
“···!”
카페의 한구석에 똬리를 튼 맹수의 모습에, 숨을 헛삼키고 말았다.
“….?”
그 맹수가 자신을 바라본다.
그 푸르른 눈동자가, 오밤중의 설산에서 마주친 맹수의 눈동자처럼 느껴진다.
“딸꾹.”
새어 나오는 딸꾹질을 참으며, 라크는 고개를 돌렸다.
‘저 자는 분명···.’
로셀 교수의 조교수, 라니아 반 트리아스.
일전에 마주쳤던 그 의문의 강자일 터.
‘이렇게 빨리 마주치다니···.’
라크는 몸을 파르르 떨었다.
황급히 카페를 나가고자 몸을 틀었으나, 그 문고리에 손을 얹은 순간 전사들의 목소리가 라크의 귓가에 울린다.
등을 보이는 것은 전사의 수치!
도망치다 죽는 것이 아닙니다, 싸우다 죽는 것도 아닙니다. 맞서 싸워서 이기는 겁니다, 도련님!
과연.
“흠!”
라크는 한번 숨을 크게 삼키곤, 고개를 들었다.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점주에게 당당히 ‘검은 물’, 지성인의 음료를 주문한다.
“여기 나왔어, 학생.”
“고맙군.”
그 음료를 받아 든 채, 라크는 맹수를 바라본다. 맹수는 자신에게 관심이 없는 듯, 창밖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두려움은 극복하는 것.’
라크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곤, 검은 물과 함께 당당히 맹수의 옆자리로 향했다.
탁!
큰 소리를 내며 그 옆자리에 앉는다.
이윽고 맹수가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안, 안녕하십니까.”
“…으응?”
“이번 학기 신입생, 라크 반 그레이스 입니다.”
학생된 자로서 교수를 존중할 줄 알아야 하는 법.
라크는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했다. 눈을 마주치는 데만 해도 엄청난 심력을 소모해야 했지만, 어찌 됐든 인사를 마쳤다는 것에 라크는 만족했다.
긴장해서 그런 걸까, 목이 자꾸만 탔다.
라크는 검은 물을 벌컥벌컥 삼켰다.
‘뜨겁군!’
그러나 견딜 만 하다.
한 번에 그 3분의 1을 비운 라크는 입안 가득 도는 쓴맛에 인상을 찌푸렸다.
“으엡.”
맛이 없다.
왕도의 지성인들은 이런 맛 없는 걸 마신단 말인가?
‘이 또한 미지로군.’
라크는 음,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