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19
〈 19화 〉 반 배정 시험(3)
* * *
반 배정 시험 당일.
하르메인 삼림의 초입에 열댓 명의 학생이 모여있다. 그들 전부가 명문 중의 명문, 아플리아 아카데미의 입학시험을 높은 성적으로 통과한 이들이다.
다만 성적이 비슷하다 하여, 그 취급이 전부 같은 것은 아니다.
모여있는 학생들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흐른다. 그 기류를 만들어 내는 건 툭 떨어져 나온 네 명의 인물이다.
스텔라, 아일라.
배틀 메이지, 라크.
서머너, 레스티.
샤먼, 벨노아.
비록 ‘학생’이란 신분으로 한데 묶여있다 한들, 그 속에서도 그들의 존재는 돋보인다.
흑과 백색 마탑주의 수제자 벨노아와 라크. 그 이름 높은 잿빛의 차기 마탑주, 레스티. 거기에, 태생부터 고귀한 왕녀 아일라에 가서는 말 할 것도 없다.
어느 학생은 그들을 선망의 눈길로 바라보고.
또 어느 학생은 그들에게 질투의 시선을 보낸다.
“크흠.”
짧은 기침 소리.
그 기침 소리에 학생들의 시선이 앞으로 향한다.
“시험의 간략한 개요를 설명하겠습니다.”
단상에 선 조교수가 시험의 규칙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사전에 예고된 시험인지라 규칙의 이해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나, 배정된 구획에서 벗어나지 말 것.
둘, 구획마다 놓인 ‘마력석’에 접촉해 있는 시간으로 점수를 매길 것.
셋, 견제와 전투행위는 일정 허용하되, 도를 넘지 말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넷, 하르메인 삼림의 중심으로 절대로 들어가지 마십시오.”
조교수의 목소리는 엄중하다.
“아시다시피, 하르메인 삼림의 중심에는 ‘마나의 샘’이 놓여있습니다. 절대로 들어가선 안 됩니다. 이유는 설명하지 않아도 알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 이유를 설명하진 않는다. 않았음에도, 그곳에 들어가면 안 될 이유를 모르는 이들은 없었다.
‘···도대체 왜?’
딱, 한사람만을 제외하고.
라니엘은 영문을 모르겠단 눈치로 조교를 흘려본다. 그녀가 생각하기에, ‘마나의 샘’을 사용하지 않을 거면 하르메인 삼림에 온 이유가 없었으니까.
‘아꼈다 나중에 쓰려 그러나?’
라니엘은 그냥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조교들 나름대로의 계획이 있을 테니까.
“그럼 시험을 시작하겠습니다.”
조교수들은 학생들을 각 구획으로 텔레포트 시키기 시작한다. 지면에서 달구어지는 회로를 지켜보던 라니엘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 라니아 조교수님 어디 가세요?”
“먼저 가 있으려고요.”
“텔레포트 해드릴 텐데 안 쓰시고?”
“음··· 그냥요?”
‘제가 탔다간 그 회로 망가질걸요.’
속으로 그 말을 삼키며, 라니엘은 숲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이 있다.
“어?”
연금학 조교수, 엘렌은 라니엘이 향하는 곳을 바라보곤 고개를 갸웃거렸다.
‘라니아 조교수님이 맡은 곳은 북쪽 구획일 텐데?’
그러나, 그녀가 향하는 곳은 남쪽 구획의 입구다.
“어···라니아 조교수님? 그쪽으로 가면 한참 돌아가야 할 텐데요?”
“네? 그냥 쭉 가로질러 가면 되지 않아요?”
“···네?”
···마나의 샘을 가로질러 가겠다고?
“그럼 먼저 가볼게요.”
“아, 네···.”
엘렌은 멀어져 가는 라니엘의 뒷모습을 묘한 눈길로 쳐다볼 뿐이었다.
2.
벨노아는 슬럼가 출신의 고아다.
슬럼가 출신의 아이들이 으레 그러하듯, 벨노아는 자신에게 부모가 있었는지, 무얼 하는 사람이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애초에, 기억할 필요가 없었다.
살아남기에 급급한 인생이었다.
골목길에 나뒹구는 시체가, 언제 자신의 것이 될지 모르는 삶이었다.
요컨대, 자신의 과거가 어쨌느니, 출생이 어쨌느니 하는 것을 고민할 여유 따위 없었단 소리다. 그런 사치를 부릴 시간에 벨노아는 쓰레기 더미를 한 번이라도 더 뒤졌다.
그런 삶이었다.
쓰레기를 뒤지고, 사람의 사체를 뒤져 살아남는 삶.
본래대로라면, 끽해봐야 슬럼가의 살수에 불과할 벨노아가 이런 아카데미에 올 이유는 없었다. 자격이 있다 한들 거부했을 것이다.
‘어울리지 않으니까.’
사람에겐 주어진 무대가 있다.
그리고, 이곳은 자신의 무대가 아니라 생각했다.
그 아이의 보호?
백색의 콧대를 납작하게 해준다면야··· 뭐, 못 들어줄 것도 없지.
그 노인네와 한 거래만 아니었다면.
벨노아는 아플라이에 오지 않았을 것이다.
네가 말했던 그 아이의 건, 내겐 어려울 것도 없는 이야기다.
이건 거래다, 벨노아.
또는 의뢰라고 볼 수 있겠지.
벨노아는 천천히 눈을 뜬다.
눈을 뜨면, 그곳은 숲의 한복판이다. 그늘진 나무들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을 가늠했다.
백색의 수제자를 압도해라.
흑이 백보다 우월함을 보여라.
높은 것들의 추잡한 자존심 싸움.
자신은 그를 위한 도구에 불과할 뿐이다.
‘그 노인네의 말대로, 이건 의뢰다.’
그러니, 언제나처럼 수행할 뿐이다.
“후우···.”
짧게 숨을 내뱉고선, 벨노아는 한 걸음 앞으로 내디딘다. 그가 발을 내디딤과 동시에 그림자가 물컹, 일그러졌다.
주술, 그림자 직조.
얇은 실로 펴진 그림자가 벨노아의 몸을 휘감는다. 나무와 나무 사이에 드리운 그늘. 그것이 벨노아가 움직일 통로였다.
그렇게 한걸음, 다시 한걸음.
기척을 죽인 채 걷다 보니, 벨노아의 귓가에 발걸음 소리가 잡혔다.
저벅.
그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바라본다.
백색의 머리칼, 자신과 함께 이 구획을 배정받은 라크의 모습이다.
“·····.”
벨노아는 말없이 그에게 다가간다.
굳이 정면에서 싸울 필요는 없다. 벨노아는 주술사이기 이전에 암살자였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끝낼 수 있다면, 그게 최선의 수다.
그늘과 그늘 사이를 건너며, 벨노아는 손 끝에 스톡(Stock)된 주문을 뽑아 든다.
그림자 비수(Shadowneedle).
둘렀던 그림자가 한 움큼 빠져나간다.
벨노아가 날카롭게 벼려진 주문을 겨눈 순간.
휙, 하고.
라크가 고개를 돌렸다.
가늘게 뜬 그 눈동자가 그늘에 숨은 벨노아를 정확하게 포착한다.
“거긴가.”
라크는 허리춤에 매여있던 손도끼를 뽑는다. 그 동작에는 걸림이 없다. 부드럽게 뽑혀 나온 손도끼를 쥔 채, 라크는 어깨를 젖힌다.
“숨어 있지 말고 나와라. 전사는 숨지 않는다.”
젖힌 팔이 휘둘러짐과 동시에, 벨노아의 주문 또한 사출된다. 허공에서 주문과 손도끼가 맞부딪친다. 이긴 쪽은 라크였다.
콰직, 손도끼가 그림자를 으깬다.
손도끼는 멈추지 않고 벨노아를 향해 날라간다.
카앙!
몸에 두른 그림자를 휘둘러 도끼를 쳐내려던 벨노아는, 도끼와 맞부딪친 순간 당황했다.
‘뭐 이렇게 무겁…?’
충격(Shock).
“윽!”
콰앙! 도낏자루에서 방출된 충격파에 떠밀려, 벨노아가 두르고 있던 그림자가 흩어진다. 밀려난다.
바닥을 한 바퀴 굴러 일어선 벨노아는 흩어진 그림자를 수습했다. 수습하며 고개를 들었다.
‘없다?’
정면에 있어야 할 라크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그 순간, 벨노아의 직감이 경고한다. 벨노아는 직감이 시키는 대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허공에 맴돌던 도낏자루를 붙잡고.
양손에 한 자루씩 손도끼를 쥔 라크가 낙하하고 있다.
‘저게 뭔 마법사야, 시발.’
벨노아는 입가를 비집고 나오는 욕설을 참았다. 그리고, 그 의문에 답하듯 라크는 주문을 해방한다.
가속화(Haste).
중량화(Weight).
손도끼를 쥔 라크의 손가락이 빛난다.
간단한 주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초인적인 육체능력과 합쳐졌을 때, 그 위력은 결코 가볍지 않다.
콰앙!
굉음과 함께 모았던 그림자가 다시 흩어진다. 이번에는 그림자 너머까지 충격이 전해진다. 그림자를 다루던 손가락 하나가 부러진다.
‘검지 손가락.’
검지가 완전히 꺾이기 전에, 벨노아는 검지에 스톡(Stock)된 주문을 해방했다.
강타(Smite).
가장 기본이 되는 타격계 주문.
그 위력은 크지 않다. 그러나, 기세가 충분히 죽은 도끼를 쳐낼 만한 위력은 됐다.
캉!
라크는 몇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 모습을 흘겨보며 벨노아는 생각한다.
‘트롤을 찢어발겼다는 게 뜬소문은 아닌가보네.’
확실히, 정면으론 이기기 힘들다.
그리고 지나치리만치 감이 좋다. 숨어서 뒤를 노리는 방식은 힘들 거란 것을 깨닫는다. 벌써 사용할 수 있는 수가 확 줄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기기 힘드냐고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야.’
“후우.”
다시 도약할 준비를 하는 라크의 모습에 벨노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별로 쓰고 싶진 않았으나, 확실하게 의뢰를 수행하기 위해선 써야만 했다.
주술.
벨노아는 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 손가락이 기이한 방향으로 꺾이기 시작한다.
‘그 노인네는, 들킬 거라고 쓰지 말라 했지만···.’
애초에 벨노아가 쓰는 주술은 그리 알아보기 쉬운 것이 아니다. 최소한 별과 거래를 할 줄 아는 마법사가 아니라면, 사전에 눈치챈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 마법사가 어디 흔하겠어?’
적어도, 그런 마법사가 있다면 아카데미의 조교로 일하고 있진 않겠지.
‘제물 공양(Offering).’
뿌득, 뿌드드득.
비틀린 손가락을 대가 삼아, 그림자가 물결친다.
3.
“오···.”
요즘 애들은 잘 싸우네.
나는 나무에 걸터앉아 라크와 벨노아의 싸움을 관전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그 수준이 높았다.
‘당장 전장에 던져놔도, 어지간한 데선 먹힐 거 같은데.’
특히 라크 쪽의 전투 감각은 혀를 내두를 만 했다. 지나치리만치 감이 좋다. 전장에서 사선을 몇 번이나 넘나든 기사들이나 가질만한 직감을 벌써부터 가지고 있다.
‘오히려 그보다 더함 더하지, 덜하진 않네.’
과연, 백색이 수제자라고 내놓을만한 인물이다.
카페에서 마주쳤을 땐 어디 좀 아픈 앤가 싶었는데.
“음.”
그런 생각들을 하며,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젠 슬슬 말려야 할 것 같았으니까.
‘저 벨노아란 애가, 뭘 숨기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주술사(Shaman).
그 클래스는 수가 워낙 적은지라 밝혀진 게 얼마 없지만, 전장에서 마주친 적은 종종 있었다.
리자드 주술사.
동족을 제물로 바쳐 재해를 일으키던 정신병자들. 손에 꼽을 정도로 까다로웠던 그 놈들을 나는 아직 기억하고 있다.
‘좆같은 주술사 새끼들.’
솔직히, 나는 주술사가 별로 마음에 안 들었다. 놈들이 악질인 이유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꼭 뭔갈 숨기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 바로 지금처럼.
뿌득, 뿌드득.
나는 벨노아의 손가락이 기이한 방향으로 비틀림을 보며 혀를 짧게 찼다. 저건 주술의 기본, 제물 공양(Offering)의 징조다.
‘훈련을 실전처럼 하는 건 좋은데.’
저건 좀 선 넘었지.
“그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