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20
〈 20화 〉 반 배정 시험(4)
* * *
주술의 골자는 거래에 있다.
대가를 바치고, 그에 합당한 현상을 일으킨다.
그것이 주술의 기본, 제물 공양(Offering)이다.
그런 면에서 주술은 별과의 거래와 일맥상통한 면이 있다. 다만,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주술은 별과의 거래를 흉내 낸 행위에 가깝다.
주문, 천칭(Balance)에 근간을 둔 술식.
별을 다루지 못한 주술사들이, 별을 흠모하여 천칭을 모방하여 만들어낸 그들만의 저울.
주술, 제물 공양(Offering).
그 과정은 천칭에 비해 단순하다. 복잡한 연산 과정이 필요 없다. 높은 기량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그 모든 것 대신에, 한가지의 지불 방식만을 허락한다.
육체.
제물 공양(Offering)의 지불 방식은, 살아있는 생명의 육체다. 그러나 어느 부위가, 얼마만큼 사라질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
그것을 통제하는걸, 주술계에선 재능이라 부른다.
그런 의미로, 벨노아는 주술에 재능이 있었다.
뿌득, 뿌드득.
공양된 벨노아의 손가락이 꺾이기 시작한다.
“·····.”
벨노아는 말이 없다. 그 표정에도 변화가 없다.
물론 그 역시 고통을 느끼긴 한다. 그러나, 견디지 못할 수준은 아니다.
몇 번이고 반복된 공양.
그 과정에서 익숙해진 고통이었으므로.
벨노아는 차분히 그 수를 가늠했다.
‘다섯 개.’
공양된 손가락은 다섯 개다.
경험상, 벨노아는 이 정도 제물이면 무엇을 일으킬 수 있을지 본능적으로 깨닫는다.
이윽고 벨노아는 확신한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경험에서 비롯된 직감.
직감대로 벨노아는 움직인다.
“…!”
벨노아를 향해 뛰어들던 라크가 움찔하고 멈추어 선다. 초인적인, 짐승의 영역에 맞닿은 직감이 경고한다. 물러서라고.
탁.
그러나, 라크는 물러서지 않는다.
오히려 한 걸음 더 파고들며 어깨를 젖힌다. 그 손에 들린 도끼에 주문이 발린다.
가속화(Haste).
그 도끼가 향하는 곳은 벨노아의 목덜미다.
‘진짜 야만인이 따로 없네.’
그 모습을 보며, 벨노아는 혀를 찬다.
‘몸 성히 이길 생각은 안 했지만··· 이건 좀 심하네.’
팔 한쪽 정돈 내줄 각오를 다진다.
이윽고, 거래가 끝을 알린다.
투확!
벨노아의 손가락이 완전히 꺾이며, 그가 두른 그림자가 폭발한다. 손가락 다섯 개 분량의 공양. 그 공양에 별이 답한다.
폭발하는 그림자는 라크의 목덜미를 향한다.
가속된 손도끼 역시, 벨노아의 목덜미를 향한다.
그리고.
“그만.”
구속(Restriction).
찰칵, 하고.
무언가 채워지는 소음과 함께 모든 게 정지한다.
“거기까지.”
서늘한 목소리와 함께, 도끼가 멈추어 선다. 그림자가 허공에 붙들린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그 정적 속에서,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온다.
또각, 또각.
벨노아는 고개를 돌려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바라보려 했다. 그러나, 몸이 움직이질 않는다. 주술도 마찬가지다. 그림자 역시 미동도 하지 않는다.
‘이게 무슨···.’
고정된 시야로 벨노아는 라크를 바라본다.
라크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다. 그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다. 그 시선의 끝에는 한 여인이 서 있다.
잿빛 머리칼에, 푸른 눈동자.
벨노아는 그녀의 이름을 기억해낸다.
‘라니아 반 트리아스.’
단상에서 보았던 조교수.
그녀는 라크를 벨노아에게서 떨어트렸다. 그리곤, 그 자리를 대신하듯 벨노아의 정면에 바로 섰다.
“이거.”
벨노아의 정면에 뭉쳐진 그림자.
그것을 가리키며 그녀가 입을 연다.
“도 넘은 경쟁 행위는 시험 중지 사유라고 경고 했던 것 같은데?”
그 눈동자만큼이나 서늘한 목소리다.
그녀는 손을 뻗었다. 그림자를 움켜쥔다. 날카롭게 벼려진 그림자였지만 그녀의 손에 상처 하나 내지 못한다.
파삭.
이윽고, 그림자가 허물어진다.
그림자는 허물어지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그녀가 손짓하자 허공에 하나의 저울이 떠오른다. 벨노아는 그것이 무엇인지 한눈에 알아봤다.
‘천칭(Balance)···?’
그 저울의 한쪽에 그림자가 담긴다.
남은 한쪽에는 저절로 움직인 벨노아의 오른손이 담긴다. 위로, 아래로 몇 번 기울었던 저울이 이윽고 수평을 이룬다.
우득, 우드득.
시간이 되감기듯 부러진 뼈가 도로 붙는다. 무언가에 홀린 듯 벨노아는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거래를 가로챘다고?’
공양으로 ‘지불’한 육체를.
그림자를 천칭에 올리는 것으로 반환시켰다.
‘···그게 가능해?’
듣도 보도 못한 방식이다.
벨노아는 멍하니 두 눈을 깜빡였다. 그러나, 붙은 손가락은 변함이 없다. 말끔하다.
찰칵.
이윽고 그들을 묶고 있던 무언가 흩어진다. 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벨노아는 고개를 들어 올렸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그녀와 눈동자를 마주한다.
서늘한 눈동자.
적의가 깃든 눈동자였다.
* * *
그림자를 매개로 한 주술.
‘그림자 직조.’
이 주술을 쓰던 놈이 문득 머리에 떠올랐다. 지금은 사라진 상처지만, 괜스레 목덜미가 근질거렸다.
‘···이걸 쓰는 놈이 남아있네.’
일단은,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고개를 살짝 가로젓고선 입을 열려는 순간이었다.
“내가 졌다.”
내가 말하는 것보다 먼저 라크가 입을 열었다.
라크는 벨노아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피하지 못한다. 그런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파고들었다. 그림자를 조종하는 그 팔을 뜯어내면 그림자가 멈추리라 판단했다.”
“·····.”
“그러나, 아닌 것 같군. 팔을 뜯더라도 그림자는 남아있었을 거다. 내 말이 맞나?”
“맞아.”
벨노아는 순순히 인정했다.
“공양···, 아무튼 한번 대가를 지불하면 이건 무조건 적중해. 내가 어떻게 되든 간에.”
“막았어야 했군.”
“···막는다고 막히는 건 아니지만, 그게 맞는 선택이었겠지.”
음, 하고 라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역시 내 패배가 맞다. 대단하군. 패배를 인정한다.”
이윽고 라크가 나를 바라봤다.
꽤나 시원해졌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제가 진 것 같습니다, 감독관님.”
“음···.”
본인이 인정한다니 딱히 덧붙일 말은 없지만, 뭔가 좀 찝찝했다. 벨노아란 저 애도 썩 개운하진 않은 표정이었고.
‘아니, 애초에 얘네 둘을 왜 붙여놔?’
둘 중 하나를 떨어트려야 상급반의 자리가 날 만큼 아플리아의 수준이 높았나? 확실히 높긴 하지만, 그 정도까진 아니었던 걸로 기억한다.
‘상급반이 뭐야, 당장 전장에 던져놔도 제 몫 할 것 같은데.’
하나를 떨구기엔 그 재능이 아깝다.
라크의 직감이야 뭐 말 할 것도 없고··· 썩 내키지는 않지만, 벨노아가 쓴 그림자 주술은 카일 조차 까다롭게 만들었던 주술이다.
‘조금만 손보면, 당장 백인 대장 급이랑 맞먹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내가 배정받은 반은 상급반이다.
굳이 이 둘을 상급반에 올릴 필요는 없다. 어디에 두든 올라올 놈들은 올라오니까. 그러나, 조금 욕심이 생겼다.
이 둘만큼은 직접 가르쳐보고 싶단 생각이 든다.
왜인지는 모르겠고, 조잡하기도 하지만··· 이 둘은 나와 비슷한 식으로 마나를 다루는 것 같았다. 달리 말하자면, 내 눈에는 보인단 소리다.
어떤 식으로 고쳐야 할지.
어떻게 하면, 조금 더 효율적으로 마나를 다룰지.
꼭 정교한 기계에 낀 이물질을 보는 느낌이다. 조금만 고치면 더 완벽해 질 수 있을텐데. 그러니, 기왕이면 둘다 근처에 두고 보고 싶은데···.
‘그래도, 그럼 형평성에 어긋난단 말이지.’
그럴싸한 명분이 필요하다.
나는 잠시 고민했다. 분명, 조교수들은 시험의 목적을 ‘마나의 통제’라고 말했었다.
마나의 통제, 통제라···.
“아.”
문득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생각이 있었다.
생각해보니, 마나의 통제를 시험하기에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었다.
“따라와.”
나는 앞장서 걸었다.
숲의 바깥이 아닌, 숲의 중심으로.
3.
“여긴···?”
벨노아는 눈을 깜빡였다.
숲의 중심으로 들어갈 때부터 이상함을 느끼긴 했다.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어, 라며 떠올린 가능성을 외면했다.
그러나.
“여긴, 마나의 샘 아닙니까…?”
눈앞에 놓인 것을 보자니, 할 말이 사라지고 만다. 벨노아는 감독관과, 바로 앞에 놓인 경계선을 번갈아 바라본다.
고대 용의 마법사가 남기고 간 선물.
마나의 샘.
그 효과가 미치는 영역을 표시해 둔 경계선이다.
“보면 몰라?”
라니아는 뭘 묻냐는 듯, 경계선의 너머를 가리켰다.
“들어가서 1분.”
“예?”
“1분 버티면 그 주술 건, 눈감아줄게.”
그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마나의 샘은 접근한 것만으로, 혈관의 마나가 폭주, 사지가 분해된다고 들었습니다.”
“하.”
그 말에 그녀는 코웃음 친다.
“그건 중심지에 있는 샘에 몸을 담글 때 이야기고. 여긴 샘에서 한참 떨어진 곳이야. 게다가 사지가 분해되진 않아. 그냥 혈관 좀 터질 뿐이지.”
어째, 꼭 경험해 본듯한 말투다.
“라크?”
“네,네엡.”
“너도 마찬가지야. 똑같이 1분 버티면, 너도 상급반에 넣어달라고 로셀 교수님께 말씀드려볼게.”
라크는 마른침을 꼴깍 삼킨다.
그리곤 천천히 고개를 돌려 벨노아를 바라본다.
“뭐.”
“···들어 갈 거냐?”
“···나도 몰라.”
벨노아도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목덜미에 칼날을 들이밀고 ‘죽이지 않으면 네가 죽는다···.’ 따위의 훈련을 슬럼가에서 받았을 때 느낀 감정, 벨노아는 지금 딱 그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이 사람 교수 맞아?’
게슴츠레 눈을 뜨고 라니아를 흘겨봤지만, 싸늘한 시선이 돌아올 뿐이다.
“···정말 없던 일로 해주는 겁니까?”
“잿빛의 명··· 아니, 트리아스의 이름에 걸고 맹세해. 적당히 무승부로 고쳐서 보고 하는건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
“·····.”
“그래서, 할 거야 말 거야?”
벨노아는 고민한다.
만약, 자신이 승리했다 한들 저 조교수가 ‘제물 공양’을 통한 주술을 사용했다고 발언하면··· 모든 게 무효로 돌아간다.
비록 경쟁시험이라 한들, 제물 공양을 통한 주술의 발현은 엄연한 살초다. 자칫했다간 퇴학까지 이어질 문제다.
‘그럼 그 노인네는··· 클로에의 신원을 보호해주지 않겠지.’
그것만큼은 안된다.
벨노아는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
“하겠습니다.”
“···그럼 나도 하겠다.”
그 대답을 기다렸다는 듯, 라크가 덧붙인다.
그 모습에 벨노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넌 또 왜?”
“네가 하면 나도 한다.”
“그러니까 왜?”
“북방의 전사들이 말했다. 패배를 받아들이되, 뒤처지지 말라고. 뒤처지기 싫다, 나는.”
얜 뭐라는 걸까.
벨노아는 라크를 이해하길 포기했다. 경계선 앞으로 발걸음을 옮긴 벨노아는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후우···.”
크게 숨을 내뱉고선 각오를 다진다.
벨노아는 한 걸음 크게 앞으로 내디뎠다. 그 발이 경계선을 넘고, 마나의 샘의 영역에 맞닿는 순간.
쿵!
무언가, 몸을 짓누르는듯한 압박감이 엄습한다.
“커흡!”
벨노아는 숨을 헛삼켰다.
눈에 핏발이 선다. 숨을 쉬기가 괴롭다. 턱, 하고 막혀오는 숨. 호흡에 이상이 온다.
벨노아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들어 올렸다. 들어 올려, 자신의 목덜미를 붙잡았다. 내려다본 팔에는 핏줄이 도드라져 있다.
‘숨을 쉴 수가, 없다.’
그리고.
“크흡···.”
그건 라크 역시 마찬가지였다.
옆을 흘겨본 벨노아는, 코피를 흘리는 라크의 모습을 확인했다. 뚝, 뚜욱. 바닥으로 떨어지는 핏방울. 라크 뿐만 아니다. 벨노아 역시 코가 시큰함을 느꼈다.
아래를 보니, 피가 떨어지고 있다.
벨노아는 정신이 아득해 짐을 느꼈다.
눈앞이 핑핑 돈다.
밟고 서 있는 게 땅인지 하늘인지 알 수 없게 된다.
그 정신이 완전히 끊기기 일보 직전.
“십오.”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가, 그 정신을 붙잡는다.
“십육.”
목소리가 가까워진다.
“십칠.”
이윽고, 목소리는 그를 넘어 앞으로 나아간다. 또각, 또각 하는 단화가 땅을 밟는 소리가 들려온다.
“십팔.”
벨노아는 간신히 고개를 든다.
“십구.”
눈 앞에, 잿빛 머리칼이 보인다.
“이십.”
그 잿빛 머리칼은 계속해서 멀어진다.
이윽고 한참을 더 숲 안으로 들어간 잿빛이, 뒤를 돌아선다. 그 머리칼이 부드럽게 흔들린다.
“이제 3분의 1 왔네.”
그 호흡에는 변함이 없다.
그 움직임에도 변함이 없다.
“못 버티겠음 말해.”
그 목소리는, 일견 여유롭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