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21
〈 21화 〉 반 배정 시험(5)
* * *
북방의 설산에는 눈보라가 몰아친다. 그 눈보라 속에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뎌도 나아가는 것 같지가 않다. 걷는 것 같지도 않다. 아니, 서 있는지조차 의문이 든다.
그 눈보라 속에선.
감각이 꼬이고.
시야가 흔들린다.
북방에서 나고 자란 라크는 그 눈보라를 경험한 적이 있었다. 그 거대한 자연 앞에 한낯 인간이 어디까지고 무력해지는지 체감한 적이 있었다.
“흐읍, 흡···.”
그리고, 지금.
라크는 그 무력감을 다시 한번 느끼고 있다.
라크는 눈동자에 힘을 줬다. 핏줄이 선다. 그러나, 눈이 크게 뜨이진 않는다. 가늘게 뜬 눈으로 흐릿흐릿한 형체만 보일 뿐이다.
몸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삼십, 이제 절반.”
라크는 라니아를 바라본다.
온몸을 쥐어짜는 듯한 이 공간 속에서도, 그녀의 목소리는 흔들리는 법이 없다. 풀숲에 놓인 바위에 걸터앉아 느긋하게 수를 세고 있다.
그녀를 바라보며.
라크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떠올린다.
눈보라를 경험하고 왔나 보군.
그래, 라크. 무엇을 느꼈느냐?
공포를, 그리고 무력감을.
그래, 공포와 무력감.
그렇다면, 그것을 이겨내는 자를 무어라 부르겠느냐?
위대한 전사.
진정한 북방의 전사.
빠득.
라크는 이를 악물고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뼈가 우득, 우드득하고 불길한 소리를 냈지만 라크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사십.”
한걸음.
“오십.”
다시 한걸음.
그가 한걸음 내디딜 때마다 시간이 흐른다. 그렇게, 라크가 세 번째 발걸음을 내디뎠을 때.
“육십.”
일 분, 약속한 시각이 끝을 맞이한다.
그게 한계였다. 1분을 버티겠단 일념으로 버티고 있던 라크의 다리가 맥없이 풀렸다.
털썩.
라크는 바닥에 엎어졌다.
엎어지면서도 라크는 손을 뻗는다. 집념이었다.
툭.
그리고, 그 집념은.
라니아의 발치에 닿는다.
“흐응.”
자신의 발끝에 닿은 라크의 손가락을 보며.
그녀는 엷은 미소를 흘렸다.
2.
‘애는··· 진짜 난 놈이네.’
나는 바닥에 엎어진 라크를 들쳐 엎고 경계선 바깥으로 나왔다. 그리곤 바닥에 눕혀두곤 팔다리에 뭉친 마나를 적당히 조율해줬다.
솔직히, 기대 이상이었다.
이건 애초부터 라크에게 불리한 영역이었으니까.
‘한 30초만 버텨도 통과시켜주려 했는데.’
그 두 배를, 그것도 움직이기까지 했다라.
그 집념에는 솔직히 감탄했다.
“이건 네가 진 것 같은데?”
나는 고개를 돌려, 아직도 경계선 안에 서 있는 벨노아를 바라봤다. 벨노아는 막 네 개 째 손가락을 꺾고 있었다.
주술, 제물 공양(Offering).
주술을 쓰는걸 난 막지 않았다.
애초에 주술을 어디까지 다룰 수 있는지 확인하려 한 의도도 있었으니까. 그래서 그냥은 버티지 못할 1분이란 시간을 걸은 거였고.
‘확실히 주술에 재능이 있긴 하네.’
이런 상황 속에서도 공양할 것을 ‘손가락’으로 한정 지었다. 어지간한 재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와. 1분 끝났으니까.”
“커흡, 컥!”
나는 벨노아의 목덜미를 붙잡고, 경계선 바깥으로 끌어내렸다.
“약, 속한 것은.”
“말한 건 지켜. 약속한 대로 제물 공양 건은 없던 걸로, 이건 무승부로 보고할 거야.”
“·····.”
거기까지가 한계였는 듯, 벨노아는 내 대답을 듣곤 그대로 풀숲 위로 쓰러졌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솔직하게 감탄했다.
“요즘 애들이 대단하긴 하네.”
내가 저 나이 때는 뭐 했더라? 열여덟이면 아마 차기 마탑주 일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애들 갈구고, 때려잡아서 결과 뽑아내고···.
‘한창 재밌을 때네.’
그리고··· 내 기억이 맞다면.
아마 딱 이 때 쯤이었을거다.
내가 이 곳, 마나의 샘에 발걸음을 들였던 것은.
마나의 샘을 견딜 수 있는가.
그 포화상태의 마나를 어떻게 견디는가?
라니엘님도 불가능 할 것이다.
마탑내에서 도는 그런 이야기를 듣고, 반쯤 오기로 도전했었다.
‘그리곤 실패했었지, 아마?’
아마 어거지로 마나의 샘 중앙까지 기어들어갔다가, 피칠갑을 하고 기어나왔던것 같다.
‘그럼 지금은 어떨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전장을 싸돌아 당기며 별의별 일을 다 경험했다. 생각해보니, 썩 어렵진 않을 것 같았다.
‘마왕 앞에서 천칭(Balance)까지 써댔는데, 안될 게 뭐 있겠어?’
어차피 시험 종료까진 시간이 꽤 남았다.
나는 경계선을 넘어 숲속 안으로 들어갔다. 어차피 북쪽 구획의 감독은 나 혼자뿐이다. 누가 지켜볼 걱정도 없으니 나는 마음 놓고 걸었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마나의 농도가 짙어져 간다.
포화상태의 마나가 허공에서 스파크를 일으킨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거대한 고목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이 하르메인 삼림이라 불리는 이유.
고대 용의 마법사가 선물한 하르메인이란 이름의 고목의 밑에는 그 크기만큼 많은 물이 고여있다.
‘마나의 샘.’
정순하고, 포화 상태의 마나.
그 자체가 액체로 고여있는 저것은 굳이 말하자면 샘이라기보단 마나 덩어리에 가까웠다.
나는 신발을 벗고 샘에 발을 담갔다. 찰박. 물이 발목 언저리까지 잠긴다. 나는 달라진 몸을 감안하여 그 깊이를 쟀다. 그렇게 샘의 안으로 나아갔다.
종아리까지 차오른 물.
옛날에는, 여기가 한계였다.
이 지점을 넘으면 슬슬 숨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더 들어가면 혈관이 터지기 시작했지.’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나는 과감하게 샘의 중앙으로 들어갔다. 물이 하반신까지 차오르고, 아랫배를 살짝 적신다. 조금 더 발걸음을 옮긴다.
샘의 중앙.
나는 그곳에 바로 선다.
포화 상태의 마나가 대기 중에 만연하다.
차오른 물은 포화 상태의 마나 그 자체다.
포화 상태의 마나는 체내의 마나와 공명한다. 그렇게 공명하기 시작한 마나 들은 진동하며 육체에 압박을 가한다. 그것은 단순한 압박에 그치지 않는다.
‘혈관이 조이고, 심장을 압박하고, 호흡을 가파르게 한다. 흐트러진 마나의 배열은 정신에 착란을 주고, 환각까지 보이게 하지.’
열여덟 살.
‘그래서, 그 누구도 이 마나의 샘을 제대로 다루지 못했던 거고. 너무 위험했으니까.’
그때는 이 중앙에 섰을 때 피를 토했었다.
그에 비해 지금은 어떤가.
“음.”
나는 들어 올린 내 팔을 바라봤다.
매끈했다. 핏줄이 도드라진 것 같지도 않았고.
‘멀쩡하네.’
아무렇지도 않았다. 호흡은 그대로였고, 체내를 흐르는 마나도 전혀 흐트러지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때로부터 벌써 7~8년이 흘렀으니까.’
게다가, 나는 그 중 5년을 주로 전장과 마계에서 보냈다. 전장을 넘어 마왕군의 영지에 쳐들어 갈 일이 많았으니까.
마계. 그 오염받은 땅에 가장 큰 특징을 뽑아보자면, 단연코 마기일 것이다.
마기(??).
오염된 마나.
마나를 다루는 마법사들에게 극독으로 여겨지는 것.
마계에선 마기로 물들지 않는 곳을 찾는 게 더 어렵다. 그 농도의 차이는 있을 테지만, 내가 모험한 곳은 마계의 깊은 곳, 마경(??)이라 불리는 곳들이었다.
마기가 넘쳐 흐르다 못해 포화 상태로 존재하는 곳.
그 곳을 서 있는것 만으로 피가 검게 물든다. 마나가 오염된다. 처음 마경에 들어섰을 때 나는 제대로 서 있지 조차 못했다.
물론, 모두가 그 마기에 애를 먹은 건 아니다.
나와 함께했던 동료들 중에선, 나만이 마기에 취약했다.
사라는 성녀다.
그녀의 마나 자체가 신성을 띈다.
마기가 지닌 독기에 완전한 면역을 가진다.
레미아는 엘프다.
세계수의 숲에서 나고 자란 그녀의 마나의 배열은 견고하다. 세계수의 축복이 자리 잡은 마나는, 마기 따위로 흐트러지지 않는다.
카일은 용사다.
별에게 선택받은 육체를 가졌다.
애당초, 마기 같은 게 통할 리가 없다.
그리고 나는.
나는, 그냥 인간이었다.
마법을 잘 다룰 뿐인 인간.
물론 재능이 없는 건 아니었다. 자랑할만한 재능은 있었다. 많았다. 타고난 마나의 양은 많았고, 그것을 조율하는 재능도 타고났다.
그러나, 태생적인 특별함은 없다.
나는 성녀니, 용사니, 축복을 받은 엘프 같은 특출난 무언가가 아니었다. 나는 그냥 인간이었고, 마기를 독으로 받아들이는 마법사였다.
그런 내가 여행을 계속하기 위해선,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물론 그 사실 자체에 불만은 없었다.
‘마법사란 언제나 답을 갈구하는 존재이므로.’
그렇게 배웠으니까.
그럴 각오를 하고 여행에 올랐으니까.
그러기를 5년이다.
그 5년간, 내 마나는 변했다.
아니, 변했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나는 주어진 환경에 몸을 적응시켰다.
마기에 저항하는 방법을 마나에 각인시켰다. 마기에 흐트러지지 않는 배열을 만들어냈다. 마나 자체가 마기를 정화할 방법을 찾아냈다.
나는 손으로 마나의 샘을 퍼 올렸다.
그 물방울이 피부에 닿음에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
마나의 샘 중앙에 서서 상상을 해봤다.
열 여덟 살의 나와, 지금의 나를 한 자리에 세워본다. 그사이에 놓인 간극을 가늠해본다.
“아하.”
나는 문득 웃음을 흘렸다.
“쓸모없지는 않았네.”
3.
서쪽 구획.
시험받는 클래스는 서머너(Summoner).
서머너들이 모인 서쪽 구획은 정적이다. 싸우는 사람도, 싸움을 준비하는 이도 없었다. 그것이 서머너의 특징은 아니었다.
그저, 싸울 필요가 없었다.
시험의 승자는 명확했으니까.
“·····.”
마력석이 놓인 공터의 한복판.
시험의 평가 기준인 마력석이 훤히 보임에도, 그 마력석에 다가가는 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이미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주인이 있었으므로.
잿빛의 차기 마탑주, 레스티.
그녀의 손에 마력석은 들려있다. 그녀는 마력석을 들고 움직이거나, 옮기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그 자리에 서 있을 뿐.
움직이는 건 그녀를 둘러싼 사역마들이다.
열의 사역마가 대열을 맞춰 움직인다. 그 절도 있는 움직임, 흔들림 없는 사역마들의 움직임이 레스티의 경지를 대변한다.
사역마는 마나에 의해 통제된다.
그 움직임에 일말의 흔들림도 없다는 건, 사역마들을 완벽한 통제하에 두고 있단 의미다.
‘그것도 열이 넘는 사역마를.’
그 모습이, 다른 서머너들로 하여금 시험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저것을 뚫을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지 않았으니까.
그 결과, 서쪽 구획은 고요하다.
마지막까지 근처를 배회하던 경쟁자가 사라짐을 확인한 레스티는 눈을 감았다.
다만, 눈을 감았다 하여 방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눈을 감음으로써 레스티는 보다 넓은 시야를 얻는다.
시야 공유.
공중을 배회하는 사역마와 그 시야가 이어져있다.
레스티는 하늘 위에서 숲을 내려다봤다.
아직 미련이 남은 듯, 아쉬운듯한 눈치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마법사들도 있긴 하지만···.
‘신경 쓸 문제는 아니야.’
신경 쓸 만큼의 강자는 남아있지 않았다.
레스티는 사역마를 조종했다.
새를 닮은 사역마는 조금 더 높은 곳으로 치솟는다. 한층 넓어진 시야는, 이내 서쪽 구획과 맞닿은 곳까지 확인한다.
그렇게 숲을 관찰하던 레스티의 시야는.
문득 북쪽 구획에 머물렀다.
그곳에도 탁 트인 공터가 있었다. 공터의 한편에 놓인 마력석이 시야에 들어왔다. 다만, 그 마력석에 손을 대고 있는 인물은 없다.
“…?”
그 모습에 레스티가 의문을 품는 것도 잠시.
풀숲이 흔들리더니, 누군가 공터를 향해 걸어왔다. 학생은 아니었다.
축 늘어진 잿빛 머리칼.
높은 곳에서 본 모습이었지만, 그 머리칼을 보고 레스티는 단번에 그 인물이 누군지를 알아맞혔다.
‘라니아 반 트리아스.’
그녀가 눈여겨보던 인물.
그러나, 어째 그 상태가 조금 이상하다.
“젖어…있어?”
꼭 물에 젖은듯한 모습이다.
그녀는 햇빛이 잘 들어오는 그루터기에 걸터앉아, 로브의 끝자락을 꾹, 꾸욱 쥐어짜고 있다.
레스티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사역마의 고도를 낮췄다. 남쪽 구획을 넘어가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북쪽 숲을 향하도록 그 위치를 조정한다.
물에 젖은 듯 축 늘어진 머리칼.
물기를 머금어 반짝거리는 피부.
젖은 로브를 쥐어짜는 여인의 모습이 보인다.
뭔가 이상했다.
레스티는 북쪽 구획에 배정받은 이들을 떠올린다.
라크와 벨노아. 백색과 흑색 마탑주의 수제자들이었으므로, 만난 기억이 있었다.
‘…걔네가 물 마법을 쓰던가?’
레스티가 기억하기로, 벨노아나 라크가 쓰는 마법은 물과는 거리가 좀 멀었다.
그리고, 이 숲에 물이라 할 것이라면···.
마나의 샘 밖에 없을 텐데?
‘···설마.’
레스티의 머릿속에 한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 그러나, 레스티는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말도 안되는 상상이었으므로.
“···어디 나무 밑동 같은데 물이라도 고여있었겠지.”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비가 왔었던 것 같기도 하다.
레스티는 그렇게 생각하며 의심을 털어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