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22
〈 22화 〉 사고 방식이 다릅니다(1)
* * *
반 배정 시험의 결과가 나왔다.
1등은 서쪽구획의 레스티였다.
그녀는 시험의 개시부터 종료까지 마력석에 손을 대고 있었다. 서쪽 구획에서의 합격자는 그녀뿐이었다.
2등은 남쪽구획의 아일라다.
그녀는 절반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마력석에 접촉했다. 남은 절반가량의 시간은 양보했다.
‘남은 건 알아서 가져가세요.’
그리곤 그녀는 남은 시간 동안은 치고받고 싸우는 마법사들을 구경했다. 그렇게 아일라가 속한 남쪽 구획에서 3등, 4등이 결정 났다.
동쪽구획에서도 합격자가 나오긴 했다.
그들이 마력석에 접촉한 시간은 엇비슷했기에, 그 순위를 가리기 힘들었지만··· 상급반의 전원은 5명이었으므로, 그들 중 가장 많은 시간을 차지한 학생이 5등으로 선출됐다.
그리고, 북쪽구획에선.
단 한 명의 합격자도 나오지 않았다.
“이를 어떻게 할 겁니까?”
조교수들이 모인 회의실에 불온한 기류가 감돈다. 회의를 주도하는 세자르가 언성을 높였다.
“라니아 조교수님, 이게 어떻게 된 일이라고 물었습니다.”
그 시선이 라니아에게로 향한다.
“아니, 그 둘을 다 실격 처리를 만들어버리면 어쩌자는 겁니까? 싸움이 과열되면 중재하라 했지, 누가 실격처리를 하라 했냔 말입니까.”
계획이 틀어졌다.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 이곳에 모인 모든 조교수가, 그 사실을 직감하고 있었다.
흑색과 백색 마탑의 수제자.
그 둘 중 한 명이 시험에서 떨어지는 건 상관이 없었다. 흑과 백은 경쟁 관계고, 한쪽이 떨어졌다면 다른 한쪽에서 이 시험의 정당성을 옹호해 줄 테니까.
그러나, 둘 다 실격처리를 받았다면.
그때부턴 이야기가 조금 복잡해진다.
‘어떻게 막았는지, 애초에 막았다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되긴 하지만···.’
둘이 싸우다가 지치기라도 했나?
차라리 그쪽이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지금 세자르에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이렇게 되면, 책임을 지는 건 이 시험의 총괄자인 내가 된다.’
자칫했다간, 이 자리에서 내려올지도 모른다는 것. 그게 세자르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이를, 어떻게 책임 지실 거냔 말입니까.”
어떻게든 그 책임을 돌리고자 세자르는 라니아를 물어뜯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라니아는 눈을 깜빡일 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네?”
그리곤,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 둘, 실격 아닌데요?”
그녀가 툭, 내뱉은 말에 회의실에 정적이 찾아온다.
실격이 아니라고?
그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이미 시험의 결과는 보고됐고, 반 배정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세자르는 눈살을 찌푸렸다.
‘막 나가기로 했다 이거지?’
세자르는 같잖다는 듯, 비웃음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그게 라니아 조교수님 마음대로 되는 문제가 아니잖습니까? 이미 시험의 결과는 나왔는데, 그걸 누구 마음대로···.”
“내 마음대로 했네만.”
서늘한 목소리.
“문제 있는가? 세자르 조교수.”
그 목소리에 조교수들의 시선이 회의실의 문으로 향한다. 언제부터 그 문이 열렸는진 모른다. 중요한 건, 그 문에 기대어 서 있는 인물이다.
로셀 반 트리아스.
그가 세자르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학생들을 분류하는 이유야 간단하지 않은가? 분별력 있는 수업을 위해서지. 그 수업을 하는 내가 그 아이들을 상급반에서 가르치겠다고 결정했다.”
그가 묻는다.
“이 사안에 불만이 있는가?”
“···어, 그… 그것이···.”
“물론 시험을 치른 이상, 그 공정성이 의심이 될 만도 하지. 자네의 걱정은 이해하네. 그래서, 라니아 조교수가 직접 경위 보고서를 올렸다고 하더군.”
···보고서를 올렸다고?
세자르에게로 조교수들의 시선이 쏠렸다. 세자르는 꼴깍, 마른침을 삼키며 자신의 자리를 살폈다.
쌓여있는 보고서.
그러나, 아직은 다 읽지 못한 보고서들이다.
그 둘이 순위권에 집계되지 않았을 때, 일이 수틀렸음을 느끼고 회의를 소집하느라 바빴으니.
“찾는 게 어려워 보이는군. 내 도와주겠네.”
로셀 교수가 손가락을 까딱인다.
이윽고 보고서들이 허공에 촤라락, 넘어간다. 그 중 한 장의 서류가 빠져나와 세자르의 책상 정 중앙에 놓인다.
북쪽 구획 감독관 : 라니아 반 트리아스.
제 2조항, 과열된 경쟁으로 한 쪽이 큰 부상을 입으리라 여겨짐. 시험의 일시적 중지 이후, 학생들의 요청에 따라 시험을 재개함.
학생들이 요청한 규칙은 아래와 같다.
하나, 서로 간의···를 원칙으로 두되···.
있었다.
보고서가, 확실히 있었다.
“어, 어어음···.”
세자르는 삐걱거리는 고개를 들어 올렸다. 로셀 교수의 싸늘한 시선이 자신을 향하고 있다. 그 이름 높은 로셀 교수가 혀를 찰리가 없음에도, 세자르는 쯧 하고 혀를 차는 환청을 들은 것만 같았다.
“···시험이 끝났으니, 빠르게 회의를 열어 상황을 정리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네만.”
로셀 교수의 손가락이 세자르의 자리에 쌓인 보고서를 가리킨다.
“일부 정보만을 토대로, 성급히 결론을 내리는 것은 마법사라면 언제나 주의해야 할 일이지.”
로셀 교수가 툭 내뱉는다.
“그렇지 않은가? 세자르 조교수.”
세자르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2.
회의가 끝난 후.
로셀은 라니엘과 함께 학사 내를 걷고 있었다.
“회의실에는 웬일이세요, 스승님?”
“···지나가는 길에 들렸다.”
“오···.”
로셀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상황이 이렇게 될 거 같아서 들린 것이었다. 로셀이 기억하는 라니엘은 잿빛 마탑에서도 저런 식으로 회의를 이끌어 나갔으니까.
‘다 보냈는데요?’
‘···예?’
‘서류, 확인 안 하셨어요? 다 보냈는데.’
‘예, 예에? 아니 서류가..그게…’
‘이상하다. 다 확인하고 여신 거 아닌가? 할 말 없으십니까? 전 질문할 게 좀 많은데.’
읽기도 싫을 만큼 많은 양의 서류를 준비한다.
그리고 그 사이 사이에 한 장씩 끼워 넣은 증거를 토대로 ‘나는 말했는데?’를 라니엘은 매 회의마다 시전했다.
그리곤, 진짜로 있는 보고서를 보고 숨이 턱 막힌 마법사들이 울먹일 때까지 라니엘은 몰아붙이곤 했었다.
더 놀라운 점은, 그 행동에 악의가 없다는 점이다. 정말, 놀랍게도 없다. 그러니까 왜 꼼꼼히 안 읽었느냐는 식이다. 그 사고방식 자체가 다르다.
‘내가 나섰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더라면, 아마 그 세자른가 뭔가 하는 조교수는 눈물을 훔치며 아카데미를 퇴사했을 것이다. 로셀은 몇 없는 인력을 낭비할 생각이 없었다.
“후우···.”
“왜 갑자기 한숨을 내쉬세요?”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서, 그 아이들은 네 눈에는 어떠하더냐?”
라니엘은 음, 하고 턱을 매만졌다.
고민은 길지 않다. 라니엘은 이내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잘만 키우면 용사 파티 하나도 만들 수 있겠던데요?”
“···그 정도더냐?”
“벨노아란 그 아이, 주술 제물 공양(Offering)을 썼어요.”
“···그건 의외로군. 대가는 잘 다루더냐?”
“마나의 샘에 밀어 넣었는데도 손가락만 끊고 있더라고요. 주술에 재능이 타고난 것 같아요. 좀만 손보면 천칭을 쓸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로셀은 흥미롭다는 듯한 눈치로 라니엘의 말에 귀 기울였다. 라니엘은 잿빛 마탑 시절부터 평가가 박하기로 유명한 아이였다.
‘그런 이 아이가 이렇게까지 말할 정도라면···.’
그 재능은 확실하다고 봐도 되겠지.
“특히, 라크 그 아이는 당장 전장터에 던져놔도 제 몫 할 것 같더라고요.”
“라크라면··· 북방 대공의 아들?”
“네. 직감, 직감에서 비롯된 빠른 상황판단, 거기에 집념까지. 가르쳐 보고 싶긴 하던데요?”
그리 말하며, 라니엘은 덧붙였다.
“왠지 모르게 저랑 마법 쓰는 게 비슷하기도 하고.”
“···그야, 그 아이들의 클래스가 배틀 메이지 아니더냐?”
“네, 그런데 그게 왜요?”
“응?”
“네?”
로셀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라니엘도 로셀을 따라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라니아? 혹시 배틀메이지 관련 서적을 읽지 않았느냐?”
“네? 아, 네. 재미없어 보여서요. 아니, 마법사가 마법을 써야지 뭔 육탄전을 해요? 육체는 어디까지나 보조할 뿐, 마법이 메인이 돼야 하는데.”
그 대답에 로셀은 어이가 없어 웃음을 흘렸다.
“음··· 네가 할 말은 아닌것 같구나.”
“네? 그게 무슨 소리세요? 아무튼 간, 그 배틀 메이지라는거. 저는 마음에 안 들어요. 뭐? 전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마법? 씨발, 그런게 있음 내가 이렇게 개고생을 했겠···.”
지랄이 짜구나.
로셀은 속으로 그 말을 삼켰다.
3.
“빨리빨리 걸으세요. 나이를 처먹더니 허리까지 굽었어요, 흑색? 지팡이 없음 못 걸어요?”
백색 마탑주 셀리는 온화한 인물이다.
그것이 흑색과 관련되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시끄럽다. 영약 빨로 액면가를 유지하는 주제에 말이 길다, 백색.”
흑색 마탑주 예투알은 계산적인 인물이다.
그것이 백색과 관련되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
“허! 액면가라뇨, 제가 사용하는 영약은 노화를 늦추는 것 뿐이지, 제가 원래 동안이라···.”
“지랄이 짜다, 백색. 빨리 걷기나 해라.”
아플리아 아카데미.
그 학사 내를 나란히 걷고 있는 그들에게 온갖 시선이 쏠린다. 색을 부여받은 마탑의 주인들. 수많은 마법사들이 그들을 동경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본래대로라면.
아무리 그들이 마탑주라 한들, 그들은 외부인이었으므로 아플리아에 출입하지 못했다. 그들이 아플리아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마탑주’가 아닌, ‘보호자’로서 면담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하여간, 벨노아인가 뭔가 하는 그 슬럼가의 아이가 비겁한 수라도 썼나 보죠? 라크가 그렇게 쉽게···.”
“오, 칭찬 고맙군. 비겁한 수라도 이겼으면 되는 일 아닌가?”
“안 이겼거든요? 비겼거든요? 말조심 해주실래요?”
자신의 수제자들이 실신해 있다는 양호실.
그들은 양호실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저기로군.”
얼마 안 가 그들은 양호실에 도착한다.
문을 여니, 비어있는 침대 중 두 자리만이 채워져 있다. 그리고, 그 중간에 한 여인이 앉아 있었다.
문이 열리며 불어오는 바람에 여인의 머리칼이 흔들린다. 잿빛, 그 상징적인 머리칼이 그녀가 누구인지 알린다.
라니아 반 트리아스.
그녀의 모습에 마탑주들은 서로 다른 반응을 보였다.
“흐응.”
백색은 흥미롭다는 듯 미소를 지었고.
“쿨럭.”
흑색은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돌렸다.
“당신이 왜 여깄나요?”
“북쪽 구획의 감독관이었습니다.”
“그러니까요. 당신이 무슨 낯짝으로 여기에 서 있나, 그렇게 물은 건데요?”
“쿨럭, 켁! 쿨럭!”
“···흑색, 왜 또 지랄이에요? 목이 메면 물이라도 마시러 가세요.”
예투알이 기침을 하든 말든, 셀리가 신경쓸 바는 아니었다. 셀리는 또각또각, 구두 굽 소리를 울리며 라니아에게로 다가섰다.
“제가 우습나요? 도대체 무슨 낯짝으로, 시험에서 애들 관리도 제대로 못 한 당신이 여기 앉아있는 거냐 니까요?”
따박따박 쏘아붙이는 말투.
그러면서도 요, 라고 끝나는 반존대의 말투.
꿈틀.
그 말투에 라니아의 눈썹이 움직였다.
‘왜 씨발, 사라 그년이 생각나지?’
무의식적으로 움직인 손가락에 주문이 담긴다. 셀리는 그것을 읽지 못한다. 그 주문을 읽은 예투알만이 사레들린 듯 커헉, 하고 기침을 내뱉을 뿐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