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23
〈 23화 〉 사고 방식이 다릅니다(2)
* * *
주문의 스톡(Stock)은 실용성이 높다.
작금에 들어선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주문의 스톡은 보편화된 개념이다.
그러나, 그런 주문이 ‘있다’ 라는 것을 알고 있을 뿐, 그 원리를 이해한 마법사는 손에 꼽는다. 배틀 메이지의 태반은 주문의 스톡의 원리를 모른 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예투알은 아니다.
예투알은, 그가 속한 흑색 마탑은 주문의 스톡(Stock)이 잿빛 마법사의 손을 거쳐 재정의되기 이전부터 그 개념에 관해 연구해 왔다.
스톡(Stock) 주문의 원본.
최상급 주문.
주문 각인(SpellEngrave).
그 주문을 연구하는데 예투알은 한평생을 바쳤다. 그렇기에, 그는 잿빛 마법사가 완성 시킨 스톡(Stock)의 개념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니.
적어도 예투알 만큼은 소녀가 두른, 은폐된 주문들의 정체를 알아 볼 수 있었다.
“당신이 무슨 낯짝으로 여기에···.”
“·····.”
따져 묻는 백색을 무표정이 내려다보고 있는 소녀.
‘라니아 반 트리아스.’
예투알은 그 소녀의 손가락을 바라봤다.
끼긱, 끼기긱.
오롯이 그의 귀에만 들리는 소리.
스톡된 주문이 삐걱거리며 풀려나려는 소음.
그곳에 담긴 주문은 결코 가볍지 않다.
‘설마 쏘지는 않겠지?’
흑색은 소녀의 얼굴을 살폈다.
그 표정은 아직은 무표정을 가장하고 있다. 그러나, 그 무표정에 금이 가는 것도 시간문제일 것 같았다.
“이렇게 나온다 이거죠?”
“감독을 했고, 저 아이들이 원한대로···.”
백색이 따박따박 말을 붙여대고 있다.
그 모습에, 예투알은 조금 초조해졌다.
‘뭐라 한마디 해야 하는가?’
여기서 자신이 나서서 막는 게 맞나?
그러나, 섣불리 그 발길이 떨어지질 않는다. 본능적으로 저 소녀에게 다가가길 거부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도 백색은 조금씩 소녀를 몰아붙인다.
“뭔가 수상한걸요.”
백색이 꾸욱, 하고 소녀의 단화를 짓밟았다.
“계속 대답을 안 하겠다면, 뭐 좋아요.”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을 들어 올린다.
“딱 보니까, 실전경험은 하나도 없는 마법사 같은걸요? 어떻게 마법사가 아티팩트를 하나도 안 들고 다녀요? 보나 마나 연구실에만 틀어박혀 있었겠죠.”
그 손가락에 번개가 튄다.
“그 눈동자가 마음에 들지 않네요. 이곳이 아무리 아플리아라 한들, 저는 백색 마탑주랍니다.”
그 번갯불이.
“당신도 마법사인 이상, 마탑주에게 최소한의 존경은 표해야 하지 않을까요?”
소녀의 어깨로 향한다.
‘이 미친년이.’
예투알은 기겁하며 소리를 질렀다.
“백색!”
“그렇게 소리를 지르지 않아도, 적당히 조절…?”
콰릉!
백색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어?”
“···아.”
백색은 천장을 바라보았고.
흑색은 소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게 무슨?”
백색은 얼빠진 소리를 냈다.
자신의 손끝에서 파직 거리던 번갯불이 사라져 있었다.
‘…위?’
소리가 들려오는곳은 천장이다.
파직, 파지지직.
천장을 기어 다니는 주문.
그것은 본래 그녀가 일으키려던 번갯불보다 위협적이다.
‘주문의 …강탈?’
백색은 고개를 돌렸다.
“···흑색, 당신이 했나요?”
“···그…런걸로 해두지.”
“이게 무슨 짓인가요? 왜 이렇게···.”
“백색.”
흑색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만 가도록 하지.”
“예?”
“나나, 자네나 피차 바쁜 몸 아닌가? 이곳에서 낭비할 시간은 없지. 무사한 걸 확인했음 된 것 아닌가?”
“···갑자기 왜 그래요?”
턱, 하고.
흑색은 백색의 어깨를 붙들었다.
“아플리아에서 난동을 피워도 좋을 것 없다. 나가도록 하지.”
“당신 왜 이래요? 미쳤…”
“따라 나오라고!”
윽박을 지르다시피 하는 흑색의 모습에, 백색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로선 무엇이 흑색을 이렇게 겁에 질리게 만들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 * *
“신발은 왜 밟고 지랄이야, 미친년이.”
나는 신발 끝에 묻은 먼지를 털어냈다.
사실, 주문을 튕겨낼 생각은 없었다.
뭐 제자가 쓰러졌다니, 화가 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으니까. 사실 내가 마나의 샘으로 끌고 간 거니, 내 책임이 없지는 않았다.
‘그래서 한발 쯤이야 그냥 맞아줄까도 했는데···.’
새끼가 꼴 받게 하잖아.
왜 신발을 밟고 지랄이야.
스승님이 처음 사준 신발이라 매일같이 광나게 닦아내며 관리하던 신발이었다. 그곳에 찍힌 먼지 자국이 무척이나 심기에 거슬렸다.
“백색 마탑주.”
그 년 이름이 뭐더라.
2.
라크는 어렸을 적부터 설원을 좋아했다.
그곳에서 북방의 전사들과 사냥을 하고, 야영을 하다 보면 어느새 밤이 찾아온다. 그 설원의 밤을, 라크는 특히나 좋아했다.
눈이 내리지 않는 날이면.
전사들은 그들의 어깨 위에 라크를 태워 한밤중의 설원을 돌아다니곤 했다. 그날 올려다보았던 반짝거리는 하늘을 라크는 기억한다.
별빛.
아름다운 별빛.
“·····.”
그 별빛을 떠올리며, 라크는 눈을 떴다.
정신이 몽롱했다. 몸은 무거웠다. 라크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곤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잠이 덜 깬 것인가?’
분명 눈을 떴음에도, 별빛은 사그라들지 않는다. 라크는 몇 번이고 눈을 깜빡였다. 한참을 깜빡이고 나서야 라크는 제대로 앞을 볼 수 있었다.
사락.
그 시선이 항한 곳에.
의자에 기대앉은 여인이 책을 읽고 있었다. 라크는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봤다.
가느다란 속눈썹이 깜빡인다.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는 머리칼을 쓸어넘기는 손길은 부드럽다. 그 가느다란 손가락이 책장을 넘긴다.
무언가에 홀린 듯, 라크는 그 옆모습을 바라봤다. 그 모습이 낯설다. 북방에선 경험하지 못한, 신비한 인상을 주는 인물이었다.
‘지적여 보이는 군. 책이 무척 잘 어울려’
과연, 저런 여인이라면 그 쓰디쓴 검은 물과 어울릴 것 같았다.
음, 하고 라크가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자니, 그 여인이 고개를 돌린다. 그 눈동자가 라크를 비춘다. 그 순간, 라크는 눈을 크게 떴다.
남아있던 잠기운이 확 달아난다.
직감이 날카롭게 곤두섰다.
“흐읍!”
라크는 숨을 헛삼키고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이미 눈을 마주친 뒤다. 맹수는 눈을 마주친 사냥감을 놓치지 않았다.
“어? 일어났어?”
“일,일어났습니다.”
라크는 벌떡 상반신을 들어 올렸다. 튀어 오르듯 일어난 라크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생각보다 빠르네.”
신기하다는 듯 눈을 깜빡이는 라니아가 그곳에 있었다. 라크는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여전히 그녀가 두렵긴 하나, 처음 만큼 두렵지는 않았다.
두려움보단, 동경이 앞섰다.
그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마나의 영역에 흔들리지 않고 서 있던 그녀의 모습이 아직도 라크의 눈앞에 어른거렸다.
‘멋진 전사의 모습이었다.’
그렇게 눈을 깜빡이고 있자니.
문득, 라니아가 입을 열었다.
“라크라 했었나?”
“아, 예.”
“네 스승 이름이 뭐였더라?”
“예?”
고개를 갸웃거리며 라크는 그녀와 눈을 마주쳤고.
“쿨럭.”
사레에 들린 듯 기침을 내뱉었다.
“그, 그건 왜···.”
“그냥, 좀. 기억해 두려고.”
“백색 마탑주, 셀리 드벨라··· 이십니다.”
흐응, 하고 라니아가 고개를 끄덕인다.
“셀리 드벨라.”
그녀가 그 이름을 곱씹는다. 그 모습이 라크의 눈에는, 마치 사냥감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시는 맹수와 같아 보였다.
“쿨럭. 습.”
라크는 연신 기침을 해댔다.
3.
탈이 많았던 반배정 시험도 한차례 지나가고, 아플리아 아카데미는 본격적으로 신학기를 맞이한다.
연금학, 전투 마법학, 원소마법학···.
각 재능에 맞춰 준비된 수업들을 본격적으로 수강하게 된 학생들은, 교실에 모여 떠들곤 한다. 썩 영양가 있는 이야기를 나누진 않는다.
연금학 교수는 푸근한 인상이더라.
전투 마법학 교수는 육체를 강조한다더라, 등과 같은 교수들에 관한 이야기다.
아직 학기가 시작한 지는 얼마 안 됐기에, 교수들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대부분의 교수가 소개식이라며 첫 수업을 넘긴 까닭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교수도 존재했다.
모든 학생이 수강해야 하는 과목.
‘마나의 기초와 거래학.’
그 중 마나의 기초는 수준에 따라 분반이 이루어졌지만, 마나의 거래학 만큼은 아니다.
아플리아 아카데미에서.
아니, 이 왕도를 통틀어 거래학에 대해 수업을 할 수 있는 교수는 한 명 밖에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로셀 반 트리아스.’
잿빛 마법사를 키워낸, 이름 높은 교수는 첫 시간부터 수업을 시작했다. 그 수업이 끝났을 때.
첫 수업부터 네 시간 연강.
첫 수업부터 과제.
학생들의 입에 로셀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로셀 교수는 미쳤다.
뭐 하는 사람인지 모르겠다.
첫 주차에 이 과제량이 정상인가?
아무리 봐도 이건 아닌 것 같다.
로셀 교수에 대한 이야기 만큼은, 온 학생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됐다.
그리고.
그 소문의 중심에 서 있는 로셀은, 현재 턱을 괸채 다음 수업 일자를 확인하고 있었다.
“일정이 묘하게 겹쳤군.”
작은 문제가 하나 생겼다.
일자를 새겨놓은 달력에 두 개의 일정이 겹쳐있다.
삼 주차 수업.
잿빛 마탑 정기 회의.
“흐음.”
로셀은 턱을 매만졌다.
수업을 미뤄도 상관은 없을 테지만, 로셀은 주어진 스케줄을 바꾸는 것이 썩 내키진 않았다.
그렇다고 마탑의 정기 회의를 빠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는 아플리아의 교수이기 이전에, 잿빛 마탑의 원로였으니까.
‘이걸 어찌해야 하는가.’
그렇게 고민하던 로셀의 시선이 문득, 방구석을 굴러다니는 자신의 제자에게 향한다.
‘또 저러고 있구나.’
로셀은 속으로 한숨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라니엘?”
“네? 스승님.”
“잠깐 이리 와보거라.”
로셀은 책상에 놓인 달력을 가리켰다.
“이 날, 내가 마탑에 다녀와야 한다.”
“네, 그런데요?”
“미루기도 그러니, 네가 잠깐 수업을 맡아 보는 게 어떠하느냐?”
“제가요?”
라니엘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저번엔 저 보고 누구 가르치지 말라 하지 않으셨나요? 전 가르치는 방법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고.”
“그래서 가르치지 않았더냐.”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스승님이···.”
그 말투에 은근한 가시가 돋쳐있다.
‘···하긴, 오랜만에 가르치다 보니 조금 심하게 말하긴 했지.’
로셀은 쓰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도, 기본은 하게 되지 않았느냐.”
“···그래요?”
“게다가 뭐, 수업을 딱히 할 필요는 없을 거다. 간단한 문제를 풀게 할 예정이었으니까.”
책상에 놓인 문제지를 가리켰다.
“이걸 나눠주고, 문제를 풀게 하면 될 거다. 뭐, 질문이 오면 간단하게 받아주는 것 정돈 괜찮겠지.”
“그런가요?”
“대충 자습 시간처럼 수업하면 될거다.”
그렇게 말하며 로셀은 물었다.
“괜찮겠느냐?”
“자습이면 안 괜찮을 것도 없지 않나요? 그냥 서 있기만 하면 될 텐데.”
“···그렇긴 하지.”
간단한 것.
분명 간단한 것이긴 하다. 정말로, 그냥 서 있기만 하면 그만인 수업이다. 하지만, 로셀은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꼈다.그러나, 로셀은 이내 그 불안을 털어냈다.
‘설마 자습인데 별일이야 나겠는가.’
그가 기억하는 어렸을 적의 라니엘이 아니다.
로셀은 자신의 제자를 믿기로 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