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16
〈 16화 〉 입학식
* * *
아플리아 아카데미로 들어가는 길에는 가로수가 놓여있다. 길을 따라 양옆으로 쭉 늘어진 가로수의 꽃잎은 연한 분홍빛을 띤다. 벚꽃이었다.
불어오는 바람에 벚꽃이 흐드러진다.
가로수길을 따라 쭉 깔린 꽃잎들을 보다 보니, 문득 내 신발이 눈에 들어왔다.
반들반들 윤이 나는 감색의 단화.
아카데미에 가는데 신발이 그게 뭐냐며 스승님이 어느샌가 사 오신 신발이었다. 나는 그 신발이 낯설어서, 자꾸만 내 발등을 살폈다.
‘뭔가 더럽히면 안될 것 같은 기분이야.’
원래 내가 신던 신발은 군화였다.
마계의 늪을 건너기 위해 수십 개의 주문을 박아넣었고, 전투에서 조금이라도 이득을 보고자 철판을 덧대어놨던 군화.
그 군화에 비해 이 단화는···.
“···그렇게 조심조심 안 걸어도, 안 구겨지고 안 닳아진다. 빨리 걷기나 하려무나.”
“아하하···.”
나는 쓰게 웃으며 스승님의 뒤를 따라 걸었다. 뭔가 기분이 묘하다. 이 평화로운 분위기에 목덜미가 근질거리는 것만 같다.
‘왜 시발, 자꾸 마왕군이 튀어나올 것 같지.’
그런 상상이 자꾸만 든다.
그 미친놈들은 아름다운 걸 보면 무조건 부숴야 성이 풀리는지, 이런 축제때마다 급습하곤 했으니까.
물론, 그럴 일은 일어나지 않으리라 머리로는 확신을 한다.
여긴 왕도의 한복판이었으니까.
수많은 기사들이 대기하고 있으니까.
이런 곳에 마왕군이 나타날 리가 없다. 없음에도, 나는 그런 쓸데없는 긴장감에 사로잡혀 있다.
버릇처럼 손가락에 스톡(Stock)된 주문을 매만진다. 손가락을 비비며, 저장된 주문의 양이 충분하다는걸 확인해야만 마음이 좀 놓인다.
‘이것도 병이야.’
나는 쓰게 웃었다.
전장을 떠돈 건, 5년 정도다.
내 인생의 5분의 1 정도에 불과한 세월이다.
그러나, 그런 5년이 내게 새겨 넣은 감각은 익숙해야 할 것들을 낯설게 느끼게끔 한다.
‘뭔가 여기 있음 안될 것 같은 느낌인데.’
그렇게 한숨을 내쉬며 발걸음을 옮기고 있자니, 어느새 아카데미의 정문에 도착해 있었다.
“잠깐 멈춰 보거라.”
정문에 바로 선 스승님은 뒤를 돌아보신다.
나는 스승님과 눈을 마주한다. 이윽고 스승님이 입을 여신다.
“나와 함께 단상에 서게 될 테니, 대기실에 가서 기다리고 있거라. 이름 불리면 나오고.”
“네.”
“나는 학장과 만나 준비하고 있을 테니···.”
말을 하다 말고, 스승님은 턱을 매만지셨다.
그리곤 나를 바라보며 툭 내뱉으신다.
“목덜미가 휑해 보이는구나.”
“네?”
“로브도 흐트러진 것 같고.”
그런가? 분명 확실히 정리하고 온 거 같은데.
그래도 스승님의 눈에는 썩 만족스럽지 않았는듯, 스승님은 내게 손짓하셨다.
“가까이 오거라.”
내가 한 걸음 다가서자, 스승님이 손을 뻗었다.
“라니엘.”
“네.”
“저 문을 넘으면, 당분간은 네 이름을 부를 일은 없을 거다. 라니아로 부르겠지. 그에 맞는 취급을 할 테고.”
주름진 스승님의 손가락이 구겨진 옷깃을 편다. 대충 묶어놓은 로브의 끈을 풀어서 다시 묶는다.
“그러니까, 라니아.”
스승님이 날 바라보신다.
“어깨 펴라. 왜 벌써부터 움츠리고 지랄이느냐?”
툭, 내 어깨를 건드리는 손길에 나는 쓰게 웃었다.
“스승님도 입이 험해지셨네요.”
“난 원래부터 험했다.”
“하긴, 제가 누굴 보고 배웠겠어요.”
“하여간, 한마디를 안 지는구나.”
스승님이 쓰게 웃으신다.
이윽고 스승님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 손에 쥐여주었다.
“그거 놓고 왔더구나.”
“·····.”
“목덜미가 휑하던데, 그거라도 달지 그러느냐?”
나는 말 없이 손바닥에 쥐어진 것을 바라봤다.
익숙한 감촉, 익숙한 무게, 익숙한 크기.
내가 레페에게서 도로 뺏어왔던 휘장이었다.
“어깨나 펴고 다녀라, 이 못난 제자야.”
정말인지.
나는 쓰게 웃으며 휘장을 꾸욱 쥐었다.
“네, 스승님.”
2.
별의 요람, 아플리아 아카데미.
그곳에 입학할 시대의 천재들을 감상하고자 모여든 인물들로 아플리아는 북적거린다.
저게 바로 북방의···.
학장이 적극적으로 추천한 어스름의 아이도 보이는···.
그런 소음들에서 한 발짝 떨어진 곳.
저기 봐.
적색 마탑주, 청색···. 그냥 다 모였는데?
그만큼 이번 입학생들이 대단하단 소리겠지.
고위 인사들을 위해 준비해둔 귀빈석.
그곳에 앉은 이들에게 역시 시선이 쏠린다. 그 자리에 앉은 인물들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적색, 청색, 백색, 녹색, 흑색.
왕가에게서 색(色)을 받은 마탑의 주인들.
잿빛을 제외한 모든 색의 마탑주들이 귀빈석에 앉아, 단상에 선 입학생들을 눈여겨 바라보고 있다.
입학생들을 대표하여, 네 명의 학생이···.
단상에 선 학생들은 넷뿐이다.
입학하기 전부터 소문이 널리 퍼진, 희대의 천재들.
북방의 공자, 배틀 메이지 라크.
잿빛의 차기 마탑주, 서머너 레스티.
슬럼가의 악몽, 샤먼 벨노아.
그리고, 그 들을 대표하듯 가장 앞에 서 있는, 이 나라의 왕녀. 스텔라(Stella) 아일라.
그들을 바라보는 마탑주들의 시선에는 흥미가 가득하다. 저들이 가진 재능 하나하나가, 그들의 눈에는 아름다운 꽃처럼 보였으니까.
인재들을 감상하던 와중, 문득 적색 마탑주가 입을 열었다.
“저게 백색이 말한 북방의 공자님이신가 보군.”
“예에, 어렸을 적부터 대공의 기사들과 함께 설산을 뛰노셨죠. 전투 감각만큼은 베테랑 기사들에게도 밀리지 않을거에요?”
백색 마탑주, 셀리는 미소짓는다.
북방에 위치한 백색마탑의 특성상, 그녀는 대공의 외동아들인 라크와 마주할 기회가 많았다. 그러니, 그녀가 라크의 마법 교사가 되는 것도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물론 처음에야 북방 대공께 잘 보이기 위한 수단이었지만···.’
지금에 와선 아니다.
라크는 그녀가 키운 마법사 중, 단연코 제일이라 부를만한 인물이었으니까.
“후후.”
단상에 선 라크를 바라보며, 셀리는 자랑스러움 마저 느끼고 있었다. 그 야만인 같던 공자님을 저렇게까지 키워낸 게 그녀 자신이었으니.
셀리는 한껏 어깨를 편 채 입을 열었다.
“감히 말씀 드리건대, 실전에 투입한다면 저 넷 중 가장 우수한 건 라크 공자님이라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글쎄?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만, 백색.”
셀리는 눈살을 찌푸린다.
그녀의 옆에 앉은 흑색 마탑주. 그는 엷은 웃음을 흘리며 단상의 한편을 가리킨다.
“슬럼가의 악몽, 어스름을 궤멸시킨 저 아이를 보지 못했으니 그런 소리가 나오는 걸세.”
“그게 무슨 소릴까요? 흑색.”
“말 그대로일세. 아무리 전투 감각이 좋다 한들, 사람을 죽여본 수라보다 더하겠는가?”
흑색 마탑주 예투알은 어깨를 으쓱인다.
“벨노아 저 녀석은 괴물이야, 괴물. 가르치면서 그렇게까지 꺼림칙한 기분이 드는 건 처음이었다.”
“흐응? 그래요?”
“북방의 전사들과는 전혀 다른 거침을 가진 아이란 소릴세.”
셀리와 예투알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흐른다.
두 시선이 허공에서 맞부딪치며 불온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그 모습을 보며, 곁에 있던 마탑주들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또 시작이군.’
흑(?)과 백(白)이란 색의 차이 때문일까, 아니면 서로의 상성 때문일까. 저 둘은 이런 자리에 모일 때마다 저렇게 묘한 신경전을 하곤 했다.
‘잿빛이 있었다면 이러진 않았을 텐데.’
적색 마탑주 루리안은 짧게 혀를 찼다.
흑과 백의 사이에 놓인 자리.
지금은 비어있는 그 잿빛 자리의 주인이 있다면 흑이나 백은 고사하고, 마탑주들은 하나같이 벙어리가 됐을 테니까.
‘물론, 그게 좋다는 건 아니지만···.’
저렇게 꼴사납게 신경전 벌이는걸 보고 있는 것보단, 벙어리마냥 입 닥치고 있는 게 훨씬 낫다고 생각되는 법이다.
“자네들이 키운 제자가 대단한 건 알겠으니, 조용히 하고 마저 봅세. 애초에 우리가 이곳에 모인 게 제자들 자랑을 하기 위해서는 아니지 않은가?”
“그건···그렇지.”
루리안의 말에 흑과 백이 입을 다문다.
“본 목적을 잊지 말게.”
마탑주들이 이 입학식에 모습을 드러낸 건 인재들을 보기 위함도 있었으나, 본 목적은 따로 있었다.
‘잿빛의 원로, 로셀 반 트리아스.’
그 깐깐한 마법사가 들였다는 양녀.
라니아 반 트리아스.
그녀가 아플리아 아카데미의 조교수로 내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마탑주들은 입학식의 참관을 결정했다.
대외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는 그 소녀를 볼 수 있는 기회였으니까.
‘그리고, 그 자질을 확인할 기회지.’
그리고, 만에 하나라도 그 자질이 잿빛 마법사, 라니엘에 비견될 정도라는 판단이 선다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설령, 폐인으로 만드는 한이 있더라도 다른 마탑에 가게 두어선 안 된다.’
루리안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다른 마탑주들 역시 그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으리라 확신했다. 과거, 라니엘에 의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던 마탑간의 격차를 그들 역시 기억하고 있을 테니까.
잿빛과 어깨를 나란히 하던 흑과 백은 무너졌다.
언제나 가장 높은 곳에 있던 적색은 추락했다.
그 높고 낮음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절대적 우위라는 것은 없던 마탑간에 서열이 생겨났다.
그 모든 게.
잿빛 마법사, 라니엘. 그가 차기 마탑주를 맡은 2년 남짓의 시간 동안 이루어진 일이었다.
‘차라리 용사파티에 들어가고, 그 이후엔 은퇴했기에 망정이지···.’
그가 잿빛 마탑에 조금 더 오래 머물렀다면, 막말로 잿빛을 제외한 다섯 마탑 중 하나가 사라졌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니, 절대로 같은 참사가 일어나게 둘 순 없다.’
마탑주들은 눈에 불을 켜고 단상을 바라봤다. 학생들의 소개가 끝나고, 교수진들이 단상에 올라오기 시작한다.
차례로 전투 마학, 연금술, 마도 공학, 소환 마학등등의 특정 클래스(Class) 담당하는 교수와 조교수들이 올라온다.
그 뒤를 이어, 가장 기본이 되는 학문을 담당한 교수의 이름이 호명된다.
로셀 반 트리아스 교수.
담당 과목은 마나의 기초와 거래.
모든 마학(??)의 기초가 되는 과목.
단상의 한편에서 초로의 남성이 걸어 나온다. 그 나이가 50을 넘었음에도, 세월에 깊어진 주름마저 날카롭게 느껴진다. 그 날카로운 눈빛에 몇몇 마법사들이 숨을 죽인다.
담당 조교수, 라니아 반 트리아스 양.
관중이 숨죽인 가운데, 로셀의 뒤를 따라 한 여인이 단상 위로 올라선다.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잿빛 머리칼이 너울 친다. 조금 긴 로브의 끝자락이 바람에 출렁인다.
단아하고 수려한 소녀.
앳됨과 성숙함 사이에 서 있는 듯한 소녀다.
“······.”
마탑주들의 눈매가 가늘어진다.
마나로 강화된 그들의 시선은 단상에 선 소녀를 꿰뚫어 본다. 그녀가 가진 마나, 그녀의 자질, 그 모든 것을.
그렇기를 잠시.
‘…아무것도 없다.’
적색은 눈을 깜빡인다.
‘마나의 양은 미미하다. 특정 주문을 자주 사용한듯한 기미도 남아있지 않다.’
별 보잘 것 없는 자질이다.
그 사실에 이상함을 느낀 적색은 자신의 옆을 바라봤다. 백색, 녹색, 청색 모두 같은 반응이다.
“쿨럭, 컥. 커흡.”
오롯이, 흑색만이 다른 반응이다.
흑색은 사레라도 들린듯 헛기침을 하더니, 황급히 시선을 거두었다. 그 반응에 적색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네는 뭘 보았는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더만.”
“저도요. 마나를 통제하는 능력이 뛰어난 것 같긴 하지만··· 그 양이 보잘것없었는걸요?”
“나도 그렇네.”
“내 눈에도 다를 바 없더군.”
다른 마탑주들이 한마디씩 덧붙이는 마당에, 흑색은 여전히 말이 없다. 그 이마에는 식은땀마저 맺혀 있다.
“···아무것도 아니네.”
흑색은 그렇게 말을 아낄 뿐이었다.
“···뭐, 그럼 당장은 신경 쓸 필요는 없겠군.”
“그래 보이더군요. 그 로셀 원로가 양녀로 들인 인물이니 조금 더 지켜보긴 해야겠지만···.”
“당장 두각을 드러내진 않으니, 뭐.”
그런 식으로 이야기는 정리된다.
다른 마탑주들이 떠드는 와중, 흑색은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나만 본 것인가?’
흑색의 눈동자가 떨린다.
‘하긴, 이들은 스톡(Stock)에 대해 무시하던 이들이니, 보지 못했을 테지.’
잿빛 마법사 라니엘이 주문의 스톡(Stock)을 재정의하기 전까지, 주문의 스톡에 대해 연구하던 마탑은 흑색 마탑 뿐이었다.
그렇기에.
흑색의 주인인 예투알은 보았다.
오직 그만이 알아차릴 수 있었다.
‘스톡(Stock)된 주문.’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기에, 예투알은 마지막으로 그것을 확인했고 이내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볼 수 없었다.’
그것이 몇개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어지러이, 난잡하게 떠오른 주문 회로를 예투알은 차마 읽을 수 없었다.
“흑색?”
“···왜 부르나.”
“아무쪼록 그렇게 정리됐다는 걸세. 당분간은 조금 더 지켜보자고.”
“·····.”
“아무리 로셀이 잿빛 마탑에서 반쯤 은퇴한 상태라곤 하나, 일단은 원로다. 하물며 그 명성은 우습게 볼 게 못 돼. 그 제자를 섣불리 건드리는 건··· 아직은 시기상조이지.”
적색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게다가, 딱히 건드릴 필요도 없어 보이는군. 그 자질이 뛰어나 보이지 않으니 말야.”
“···하.”
예투알은 무심코 웃음을 터뜨렸다.
다 눈뜬장님들 뿐이로구나.
“···왜 그러나?”
“아닐세. 그저, 자네도 눈이 조금 침침해진 것 같아서 말야.”
“도대체 아까부터 무슨 반응인가 그게? 뭘 보았나? 예투알?”
보긴 보았지.
그러나, 예투알은 섣불리 그것을 알릴 생각이 없었다. 저 소녀의 진가를 알아본 건 자신 뿐 인것 같으니.
“난 먼저 가겠네.”
“···뭐, 그렇게 하게나.”
떨떠름한 반응의 마탑주들을 뒤로하고, 예투알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라니아 반 트리아스.’
흑색 마탑주는 그 이름을 기억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