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15
〈 15화 〉 의외의 만남(4)
* * *
「기사단은 스케발에 대항할 수단을 획득했다.」
전장에 그런 소문이 돌았다.
스케발의 회로에 갇혔던 기사단이, 십 분도 안되는 시간에 결계를 해체하고 탈출한 까닭이었다.
그 전례가 없는 일에, 잿빛 마법사 라니엘이 전장에 복귀한 게 아니냐는 소문이 돌았으나, 그 뜬소문은 이내 사그라들었다.
전(?) 적색 마탑주이자.
현 기사단의 마학(??) 보좌관 리베르트.
그가 스케발의 결계를 직접 해체하는 모습을 보였으므로.
물론, 리베르트가 그 혼자만의 힘으로 결계를 해체한 것은 아니었다. 적색 마탑 휘하의 열의 마법사가 그를 보조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스케발의 결계를 해체했다.
그것도, 십 분도 채 안돼서.
그 사실이 가지는 의미는 크다.
기사단이 그 고대 리치에게 대항할 수단이 생겼다는 의미였으므로. 더이상, 그 결계에 절망을 느끼지 않아도 된단 이야기였으므로.
기사들은 방패를 들었다. 창을 들어 올렸다.
전장에 고대 리치가 나타난다 한들, 그들은 더이상 물러서지 않았다.
그날.
지난 한 달간 후퇴만을 반복했던 기사단은, 처음으로 하룻밤의 시간을 견뎌냈다.
전진하진 못했지만, 후퇴하지도 않았다.
아침 해가 떠오를 무렵. 기사들은 자신들이 지켜낸 전선을 바라보며 웃을 수 있었다.
2.
기사단의 마학 보좌관, 리베르트 반 크리피카.
아일라 왕녀님께.
기사단의 인과.
적색 마탑의 인이 함께 찍힌 편지지.
아일라는 그 봉투를 뜯어냈다.
편지에는 긴 문장이 쓰여있진 않았다.
감사합니다, 왕녀님.
적색 마탑은 이 은혜를 잊지 않을것입니다.
짧은 감사문.
이미 하인켈에게 서신을 받아 전황을 알고 있는 아일라는 그 편지에 엷은 미소를 흘렸다.
‘역시, 보내길 잘했네요.’
그 풀이를 기사단에게 보낸 자신의 직감은 옳았다.
아일라는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꼈다.
‘이걸로, 오빠의 상황도 조금은 나아지겠지요.’
이제야 한숨 돌린 기분이었다.
물론, 기사단도 아닌 제 4왕녀인 그녀가 전장에 이렇게까지 간섭할 이유는 없다. 국왕조차도 전선에는 간섭하질 않으니까.
그러나, 아일라는 자신이 타고난 재능을 알고 있다.
알고 있었기에, 그녀는 그것을 썩힐 생각은 없었다.
별에게 사랑받는 아이.
극도로 발달된, 일종의 예언에 가까운 직감.
그 직감은 때로는 마족의 편에 붙은 배신자들을 추려냈고, 때로는 흑룡(??)이 출몰한 지역을 예측하기까지 했다.
“이번에도 도움이 된 것 같아 다행이네요.”
좋은 소식을 하나라도 들을 수 있어 다행이라 여기며, 아일라는 등받이에 몸을 기대었다.
물론, 좋은 소식들만이 들려오는 건 아니다.
그리 극적인 변화가 있는 것 또한 아니었다.
전황은 여전히 절망적이다.
잿빛 마법사가 빠진 이후로 수많은 전선이 흔들렸으며, 마왕군은 더욱더 사납게 날뛴다.
전선은 여전히 위태롭다. 고대 리치 스케발의 두려운 존재임에도 변함이 없다.
그러나···.
‘그 두려움은, 과거에 비해 덜하겠죠.’
그것은 더이상 대항할 수 없는 공포가 아니다.
고대 리치가 펼치는 결계에 대항할 수단을, 기사단은 갖게 되었다.
‘라니엘님이 전장을 떠나고, 스케발이 출현한 전선은 계속 밀리기만 했지만···.’
이제는, 조금 기대해 보아도 좋을 테지.
그 잿빛 마법사만큼 존재 자체만으로, 견제가 되기는 힘들겠지만··· 그 빈자리를 조금이나마 메꿀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후우···.”
아일라는 한숨을 쉬며 천장을 올려다본다.
상황이 한차례 정리되고 나니, 남은 의문은 하나였다.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었을까요?’
그날 도서관에서 만났던 여인.
잿빛 머리칼에, 푸른 눈동자라는 누군가를 연상케 하는 특이한 외모를 가진 마법사.
아일라는 그 정체 모를 인물을 떠올린다.
왜인지 모를 익숙함이 느껴지는 여인. 그녀에게선 꼭 오랜 지인을 만나는 것만 같은 반가움 마저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꽤 민폐를 끼친 것 같기도 하네요.’
문제의 풀이를 강요한 건 필요했던 일이라 쳐도, 아일라는 그녀에게 한가지 실수를 저질렀었다.
“경고도 하지 않고, 다가갔었죠.”
그 실수를 떠올리며 아일라는 쓰게 웃는다.
아일라는 나이를 먹고 성장함에 따라, 별에게 몇 개의 축복을 받았다. 그중에는 마법사들이 극도로 꺼리는 축복 역시 존재했다.
‘별의 속박, 마나의 통제권 상실.’
그녀를 기점으로 한 일정 반경 내에서, 그녀가 허락하지 않는 한 마법사들은 마나의 통제권을 잃는다. 통제권을 잃고 폭주하는것은 아니고, 마나를 끌어 올릴 수 없게 된다는 표현이 옳았다.
마치, 마나이터에 물린 것과 같습니다.
심장을 둘러싼 서클에 자물쇠가 잠기는듯한···.
창백한 표정으로 왕실 마법사들이 말했던 것을 아일라는 기억한다. 매우 불쾌하고,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은 감각이었다고, 그들은 말했다.
마나의 통제권 상실.
마나를 끌어 올릴 수 없게 되는 것.
그것이 마법사들에게 얼마나 큰 충격으로 다가오는지는, 숱한 마법사들의 창백하게 질린 얼굴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여인은 어떠했는가.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죠.’
뒤늦게 아일라가 축복을 거두려 했으나, 그보다 먼저 여인이 별의 속박을 끊어냈다.
한 번의 호흡.
몇 번의 눈 깜빡임.
고작 그것만으로 별의 속박을 끊어낸 것이다.
왕가의 마법사 중, 그 누구도 끊어 내지 못한 별의 속박을 말이다.
“흐음···.”
아일라는 턱을 괸 채, 검지로 입가를 툭,투욱하고 건드렸다.
그 마법사는 분명 비범한 인물이다. 별의 속박을 단박에 끊어냈고, 스케발의 결계에 대한 해답마저 내놓았다.
요직에 앉혀라.
왕가의 가까이에 두어야 한다.
그렇게 하인켈은 첨언했다.
붙잡을 수 없는 바람이다.
바람을 속박하려 하는 것은 멍청한 일이다.
그렇게, 별은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흐응.”
잠시 고민하던 아일라는 손을 들어, 자신의 호위 기사를 불렀다.
“하벨, 있나요?”
“예, 왕녀님.”
이윽고 문이 열리고 기사 하나가 들어온다.
아일라는 일전에 그려두었던 초상화를 기사에게 건넸다. 미술에 일가견이 있는 그녀답게, 초상화에 그려진 그림은 기억 속의 여인과 같은 모습이었다.
“이 초상화 속 인물의 신원을 파악해 주실 수 있겠어요?”
곁에 두진 않더라도, 누구인지는 알아봐 두는 건 나쁘지 않겠지요.
그리 생각하며 아일라는 입을 열었다.
“대략 열흘쯤 전에 만난···.”
“아, 이분이라면 알고 있습니다.”
“···네?”
그러나, 그녀가 채 설명을 마치기도 전에 하벨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알고 있다는 듯한 눈치였다.
“알고 있다고요?”
“예, 일전에 로셀경과 함께 다니는 걸 본적이 있습니다. 아마 로셀경이 들였다는 양녀분이신 것 같군요.”
로셀 경의 양녀라면···.
“···라니아 반 트리아스?”
“예, 듣기로는 아플리아 아카데미의 조교수로 내정됐다 하더군요.”
“·····.”
아일라는 잠시 침묵했다.
그 침묵이 오래가진 않았다.
“흐응.”
아일라는 눈을 가늘게 뜨고 자신의 검지를 바라본다. 얼마 전 시큰거리는 통증과 함께 별이 내렸던 예언. 그 예언이 떠오른 아일라는, 무심코 웃음을 터뜨렸다.
‘기대하던 만남이라더니.’
“···.그게 이런 뜻이었군요.”
“예?”
“아니에요. 그보다, 하벨?”
아일라는 서류 한 장을 꺼내 자신의 이름을 휘갈겼다.
“이것을 로셀경께, 그리고 그 제자분께 전해주시겠어요?”
“이건···.”
서류의 내용을 확인하곤 당황하는 하벨을 보며, 아일라는 미소짓는다.
“과한 선물이 아닙니까, 라고 생각하고 계시죠?”
“·····.”
“전혀 과한 선물이 아니에요. 오히려 그분의 공에 대한 보상으로선 부족하겠죠.”
“그렇…습니까.”
하벨은 조금 떨떠름한 눈치였지만, 이내 서류를 쥔채 집무실 바깥으로 나갔다. 혼자남은 아일라는 괜스레 테이블을 툭툭, 건드렸다.
‘뭔가 아쉽긴 하네요.’
이 일의 전말을 모르는 하벨은 과한 선물이라 여기는 듯 싶지만, 아일라는 그마저도 아쉬운 심정이었다.
사실 더 좋은 것을 약속하고 싶었다.
그녀의 공을 알리고, 공표하여 요직에 앉히고 싶다. 그리하여 자신의 곁에 두고 싶다.
그만한 재능을 가진 인물은 흔치 않다.
놓쳐서는 안 될 인물이란 소리다.
심지어 아일라가 접한 건 그 마법사가 가진 재능의 편린에 불과할 가능성이 컸다. 기사단이 수년을 머리 싸맨 문제를 ‘간단’ 하다고 말한 인물이니까.
‘마음 같아선 당장 왕가로 부르고 싶지만···.’
그러나, 아일라는 알고 있다.
그것이 욕심이며, 해선 안 될 일이라는 것을.
‘라니엘님이 괜히 왕가의 자리를 거부한 게 아니죠.’
아직 이곳은 좋은 자리라 할 만한 게 못 된다.
탐나는 인재긴 하지만, 불러들이는 건 조금 더 나중의 이야기가 되겠지. 섣불리 행동하다 망쳐버리는 것보단 훨씬 낫다.
‘왕가의 피비린내 나는 권력 경쟁에 휘말리게 두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심지어 별조차 그녀에게 말하지 않았는가.
잡히지 않는 바람을 잡으려 들지 말라고. 별이 그렇게까지 말하는 데는 마땅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게다가 아플리아 아카데미 정도면 뭐···.’
나쁘지 않다. 오히려 학생으로서 자연스럽게 접점을 가질 수 있을 테지.
“후우···.”
생각을 갈무리한 아일라는, 문득 창밖을 바라봤다.
눈이 내리던 겨울이 가고, 어느새 봄이 와 있었다.
따스한 햇살이 내리쬔다.불어오는 바람은 따스하다.
겨울이 가시고, 봄이 온다.
그 시작의 계절에, 아일라는 숨 막히는 왕가를 잠시 떠나, 아플리아에 들어가게 된다.
그날이 머지않았음을 느끼며, 아일라는 바람에 흔들리는 머리칼을 쓸어넘겼다.
“기대되네요.”
특히나, 그 라니아란 마법사와의 만남이.
3.
“···이걸 꼭 입고 가야 하나요?”
“무려 왕녀님께서 선물해주신 것 아니더냐. 심지어 입학식에는 왕녀님이 계실 텐데, 네가 그걸 안 입고 가면 왕녀님의 체면이 뭐가 되겠느냐?”
“그건···. 그렇네요.”
나는 결국 주섬주섬 로브를 갈아입었다.
기장이 짧은 로브는 아니다. 그리 화려하지도 않다. 입어본 적이 없는 로브···도 아니었다.
‘문제는, 내가 이걸 입고 다녔던 시기상의 문제이지.’
왕실 도서관에서 아일라 왕녀를 가르칠 때.
그녀가 내게 선물했던 옷과 똑같은 옷이었다. 왕실의 마법사들이 주문을 떡칠해서 만든 값비싼 옷.
‘받은 순간 기겁했었지···.’
이걸 주섬주섬 입고 있는 지금도 좀 꺼림칙하다. 설마 눈치챈 건 아니겠지. 같이 온 편지를 보면 눈치챈 건 아닌 것 같긴 한데···.
애초에 알아볼 만한 요소가 없지 않았나?
···아니,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에휴···.”
이제 와서 생각해봐서 뭐하겠냐.
“다 입었느냐?”
“네, 나갈게요.”
나는 로브의 소매를 정리했다. 로브에 각인된 회로를 조절해 사이즈를 맞춘다. 옷안에 말려 들어 간 머리칼을 빼내어 정리한다.
거울에 비춘 낯선 소녀의 모습에, 어색한 웃음을 지으면서도 나는 현관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어서 가자꾸나, 이러다 늦겠어.”
“네, 스승님.”
3월의 첫날.
오늘은 아플리아의 입학식이 있는 날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