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14
〈 14화 〉 의외의 만남(3)
* * *
기사단 소속의 마법사.
전(?) 적색 마탑의 마탑주, 리베르트는 한숨을 내쉰다.
절망적인 전황이 한숨의 이유다.
고대 리치 스케발.
그 가증스러운 언데드에 의한 피해가 나날이 커져만 간다. 고작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리베르트는 그 해골이 문제가 되리라 여기지 않았다.
‘다 라니엘님 덕분이었지.’
그 잿빛 마법사가 전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하면, 스케발은 꼬리를 말고 도망쳤다. 라니엘의 앞에서 스케발의 결계는 종잇장 마냥 찢겨 나갔으니까.
그런 초인적인 존재는, 같은 전장에 서는 이로 하여금 긴장을 잃게 한다. 그 안일함은 리베르트에게도 예외 없이 찾아왔었다.
‘그분께 너무 기대었어.’
언제나 최전선에 서 있던 마법사.
그 한 명의 초인에게 기대었던 결과는 참담하다.
언제까지고 그 자리에 있을 거라 생각했던 잿빛 마법사가 은퇴함으로써, 기사단은 스케발의 결계를 뚫을 방법을 잃고 말았다.
‘쪽팔린 일이지···.’
그 사실에 리베르트는 부끄러움을 느낀다.
누구보다도 답을 찾아야 하는 위치에 있음에도, 도저히 답을 찾을 수가 없어 그분에게 모든 걸 맡기고 말았다.
물론, 그가 잿빛 마법사에게 가르침을 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가르침을 구했으나, 이해하지 못했다.
그에게는 너무나도 어려운 이야기였으므로.
그저 ‘잿빛 마법사’ 이기에 가능한 마나의 활용법이다, 과거의 자신은 그렇게 단언하고 포기했었다.
‘그때 왜 조금 더 물어보지 않았던 것일까.’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가르침을 구했어야 했거늘.
쉽게 포기했던 과거의 자신이 한심하다.
“후우···.”
지금에 와서 후회해봐야 늦을 테지.
잿빛 마법사와 연결할 수 있는 통신망은 하인켈 기사단장만이 갖고 있지만, 그마저도 일방통행이다.
보내온 서신에 답장을 보낼 수는 있지만.
기사단 쪽에서 직접 서신을 보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게 리베르트가 한숨을 쉬고 있을 무렵.
천막의 바깥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리베르트, 안에 있나?”
“하인켈 기사장님? 무슨 일로···.”
“들어가겠네.”
막사로 찾아온 하인켈은, 리베르트에게 대뜸 편지 한 장을 내밀었다.
“이 서신을 조금 봐주겠나?”
리베르트는 하인켈이 건네는 편지를 받아들었다. 왕가의 인이 찍힌 편지였다.
“이건···.”
“제 4 왕녀님께서 보내신 서신이지.”
“왕녀님께서 무슨 일로···.”
“일단 뜯어보게나.”
리베르트는 고개를 끄덕이고선, 편지지를 뜯었다. 그 안에는 한 장의 종이가 담겨 있었다.
“이건···. 아카데믹 아닙니까?”
“왕녀님께서, 1번 문제에 해답을 내놓은 인물이 있다고 서신을 보내오셨다네. 그건 그 해답이고.”
아카데믹의 1번 문제라면 리베르트도 잘 알고 있는 문제였다. 스케발의 회로에 대한 문제.혹시나 하는 마음에 리베르트가 울려둔 문제였다.
“…그것을 푼 이가 나왔단 말입니까?”
“왕녀님의 말에 의하면 그렇다네. 그러나, 냉철히 봐달라고 부탁하더군. 왕녀님께서도 확신이 안 서시는 모양이야.”
“흐음···.”
리베르트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제 4왕녀 아일라, 별에게 사랑받는 아이인 그녀가 마법에 재능을 타고났음은 익히 들어 알고 있다.
그러나, 회로의 해석은 재능과는 다른 영역이다.
수많은 이론의 암기와, 숱한 실전 경험을 통해 ‘학습’하지 않으면 회로의 해석은 늘지 않는다.
‘그분께선 회로를 배운 적이 없을 텐데.’
그런데 무얼 믿고 이런 서신을 보내왔단 말인가.
고대 리치 스케발이 전장에 등장한 이래, 한 명을 제외하고선 그 누구도 풀지 못한 난제가 그리 쉽게 풀릴 리가 없지 않은가.
“믿음이 안 가는 건 이해하네. 그래도 한번 확인해주게나.”
“···알겠습니다.”
리베르트는 마지못해 서신을 확인했다.
서신에는 문제를 푼 사람의 이름조차 적혀지지 않았다. 그 필체도 정갈하지 않다. 오히려 조금 꼬아 쓴듯한 난잡한 필체였다.
스케발의 회로는 수백 개의 거짓 회로 사이에, 주문의 중심이 되는 회로를 새겨넣은 형식이다.
그걸 누가 모른단 말인가.
그 수백 개의 회로를 일일이 걷어내야만, 중심에 맞닿을 수 있기에 스케발의 회로는 까다롭다.
전선의 마법사들이 고전하는 이유도 이에 있다. 수백 개의 회로는 서로 유기적으로 맞물린다. 마치 톱니처럼 맞물린 회로는 해체하기가 곱절은 어려울 테니.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풀이를 계속하여 읽어나가던 리베르트는 아래에 이어지는 문장에 눈살을 찌푸렸다.
이것은 그 점에 착안한 풀이다.
수백 개의 회로를 일일이 해체할 필요가 없다.
·····회로를 해체할 필요가 없다니?
회로와 회로가 이어져 있다. 톱니처럼 맞물린다. 이는 장점인 동시에 단점이다.
하나의 회로에서 발생한 균열은, 맞물린 수백 개의 회로로 전염된다. 굳이 수백 개의 회로를 일일이 해체할 필요가 없단 소리다.
해체하는 대신, 회로를 망가트려라.
리베르트는 눈을 가늘게 떴다.
마나를 가공해라.
날카롭게, 핏줄을 타고 전신으로 퍼지는 ‘마나 이터’의 독과 유사한 성질을 지니도록 마나를 가공하라.
그 마나를 회로에 흘려보내라.
마치, 독을 퍼뜨리듯이.
그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스케발의 결계를, 하나의 연못이라 생각하라.
이 경우, 결계의 중심이 되는 회로는 연못의 깊은 곳에 사는 물고기가 될 것이다.
대부분의 마법사가 행하는, 회로를 해체하는 행위는 연못의 물을 전부 퍼내 그 바닥을 드러낸 뒤, 물고기를 사냥하는 방식이다.
그만큼 비효율적인 것이 없다.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 역시, 당연하다.
“·····.”
왜 연못의 물을 다 퍼내야 하는가? 구태여 그리 해야 할 이유가 없다.
연못에 독을 풀어라.
그 물고기가 스스로 물 위로 모습을 드러내게끔, 독을 풀면 그만인 이야기다.
리베르트는 어느새 숨을 삼키는 것도 잊은 채, 풀이에 몰두하고 있었다. 글자들이 살아 숨 쉬듯 그의 눈 앞에 아른거린다.
‘이게 무슨···.’
이건, 생각해본 적이 없는 방식이다.
떠올리지 못했던 방식이, 그곳에 있었다.
아래는 마나의 운용법이다.
그 밑에는 마나를 ‘어떤 식’으로 변형하는지, 변형한 마나를 어떤 식으로 다루는지까지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
리베르트는 말없이 서신을 접었다.
그리곤 고개를 들어 하인켈을 바라봤다.
“하인켈님.”
“왜 그러나, 리베르트.”
“이 문제, 풀이자가 누굽니까?”
“왕녀님께선 신원 불명의 존재라고 답하셨네. 왜 그런가, 혹시 문제라도 있는가?”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문제밖에 없었다.
“이건··· 이상합니다.”
“이상하다니?”
“이걸 어떻게 설명 드려야 할지···.”
마학(??)의 역사는 길다.
그 기나긴 역사 속에서 가장 발달한 것을 손에 꼽자면, 주문 회로와 회로의 해석이었다.
수천 년의 세월에 걸쳐 쌓아 올려진 법칙.
그 법칙을 풀어내기 위한, 체계화된 공식.
그러므로, 지금의 마법사들에게 있어 회로의 해석이란, 선조들이 쌓아 올린 지식을 상황에 맞춰 활용하는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 풀이를 쓴 마법사는 어떠한가.
‘공식에 얽매이지 않았다.’
공식에 얽매여, 다른 이들이 놓치고 있던 것을 이 마법사는 보았다.
‘보아서, 새로운 방식을 제시했다.’
완전히 새로운 풀이를.
‘모방이, 활용이 아닌 창조.’
이미 다져진 마도(??)를 걷는 게 아닌, 스스로 그 길을 개척해나가는 이들. 리베르트는 그런 이들을 어떻게 부르는지 알고 있었다.
‘천재.’
이 시대를 이끌어나갈 마법사.
문득, 리베르트의 머릿속에 한 마법사의 모습이 떠오른다.
“이 풀이를 쓰신 분, 라니엘님 아닙니까?”
“그건··· 아닌 것 같더군. 왕녀님께선 이런 일로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니.”
“그럼 왕녀님이 못 알아보게 변장이라도 한···.”
말을 하다 말고, 리베르트는 입을 다물었다.
스스로도 말이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음을 깨달았으므로. 제 4 왕녀의 앞에서 정체를 숨긴다는 게 가당키나 한 소리인가.
‘왕도에 비밀리에 방문하셨던 고대용의 마법사님의 폴리모프 조차 한눈에 꿰뚫어 보신 분이다.’
그런 왕녀의 앞에서 ‘변장’ 따위가 통할 리가.
결국에는, 그 잿빛 마법사에 비견할만한 재능을 가진 마법사가 하나 더 존재한단 소리겠지.
그 사실에, 리베르트는 쓰게 웃었다.
“···세상은 이다지도 넓군요.”
“갑자기 뭔가?”
“아닙니다. 왕녀님께는 이 풀이를 쓴 마법사를 찾아, 요직에 앉혀야 한다 말씀드리고 싶군요.”
리베르트는 서신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그리곤 숨을 가다듬고, 마법사가 아닌 ‘기사단’의 일원으로서 입을 열었다.
“완전히 처음 보는 방식입니다. 이론상으로는 가능하나, 실전에서의 적용이 어떻게 될지는 장담 드릴 수 없습니다.”
“·····.”
“하지만, 감히 말씀드립니다.”
리베르트는 굳은 목소리로 말한다.
“시도해볼 가치는 있다고 봅니다.”
“·····.”
대답 대신, 하인켈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 시선은 말보다 많은 것을 담는다.
오랜 기간 하인켈을 보좌한 리베르트는, 하인켈이 말하고자 하는것을 이해했다.
리베르트는 고개를 끄덕인다.
“기사단의 마법사들을 소집하겠습니다.”
2.
“스승님.”
“왜 그러느냐 라니엘?”
“제가 설명을 잘 못 하는 편인가요?”
대뜸 그게 무슨 소리인가.
로셀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라니엘을 바라봤다.
“그게 무슨 소리더냐? 네가 설명을 잘 못 한다니.”
“아니, 생각해 보니까 저한테 뭘 배우겠다고 찾아온 사람들 중에, 제대로 이해하고 가는 사람을 못 봤단 말이에요?”
라니엘은 턱을 괸 채 중얼거렸다.
“옛날에, 스케발의 회로에 대해서 마법사들이 엄청 물어봤었거든요? 그때 저 분명히 설명을 해줬던 거 같은데 이해를 못 하더라고요.”
“도대체 어떻게 설명을 했길래?”
“어, 그러니까요···.”
로셀은 한동안 라니엘의 설명을 들었다.
그렇게 삼십 분 정도가 지났을 무렵, 로셀은 자신의 관자놀이를 짚었다.
“···라니엘.”
“네?”
“누군가에게 무언갈 가르친다는 건 말이다, 상대의 수준을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단다.”
“어···.”
“너처럼 ‘하면 되던데요?’, ‘아니 왜 못해요?’, ‘아니, 안되면 될 때까지 하면 되지.’ 같은 것은 가르침이라 부르지 않는다.”
꼰대 짓이지 그건.
“오···.”
새로운걸 깨달았다는 것 마냥, 감탄하고 있는 자신의 제자를 보며 로셀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 아이에게 교수를 맡기는 건, 무척이나 잘못된 선택이 아니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로셀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아, 그래도 저 글로는 설명 잘해요.”
“별로 그럴 것 같지 않구나.”
“아니, 진짜라니까요? 이번엔 이해한 것 같은···.”
“되었다. 조금 이따 내 방으로 오거라. 가르침이란 무엇인지, 처음부터 가르쳐야 할 것 같으니···.”
“진짠데···.”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