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13
〈 13화 〉 의외의 만남(2)
* * *
스승님은 날 왕실 도서관에 데려다 놓고, 만날 사람이 몇 있다며 자리를 뜨셨다. 물론 도서관의 출입에만 스승님의 도움이 필요했기에,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뭔가 좀 방치된 느낌이 들긴 하지만···.’
뭐, 아무렴 어떤가.
책 읽는데 스승님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음.”
나는 주변을 쓱 훑어봤다.
왕립 도서관.
왕가에게 인정받은 마법사, 혹은 그 제자만이 들어갈 수 있는 도서관.
‘옛날에는 여기서 죽치고 살았는데.’
어렸을 적, 본격적으로 잿빛 마탑에서 실적을 쌓기 전에는 매일 같이 이곳을 들락날락했었다. 왕도 제일의 도서관이니 없는 게 없었거든.
이곳에서 마법의 역사를 배웠고.
수많은 주문들의 유래를 배웠었다.
과장 좀 보태서, 이 왕립 도서관은 내 두 번째 스승이나 다름없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들린 게 한 6년 됐었지?’
차기 마탑주가 되곤 바빠서 못 들렸으니까.
그 6년간 새로운 책들이 얼마나 들어왔을지, 기대감을 품고 나는 발걸음을 옮겼다.
가장 먼저 훑을 것은 월간 추천 서적이다.
도서관이면서 서점과 같은 구조를 띤 이곳은, 사서들이 매달 세간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서적들을 따로 분류해둔다.
분류 : 마학(??) 서적.
6년이 지나도 그 방식은 변하지 않았는지, 부유 마법으로 공중에 떠 있는 책장에 스무 개 남짓의 책이 꽂혀있다. 나는 그중 네 권 정도를 뽑아 들었다.
전투 마법의 기본체계.
배틀메이지(Battlemage)의 개념.
별의 요람, 아플리아 아카데미.
별에게 선택받은 용사, 카일.
그중 한 권은 제목을 보는 순간 책장에 도로 집어넣었다. 마학 서적에서 왜 니가 나와 씨발.
“음···.”
다른 책을 한 권 더 꺼내 볼까 했는데, 어째 그 내용이 다 거기서 거기 같아 보였다. 배틀 메이지이니 전투 마법이니 하는 것들.
‘그러고 보니 학장이나, 스승님이나 자꾸 전투 마법이 어쩌고 했던 거 같은데.’
도대체 배틀 메이지가 뭔데?
적어도 나는 그런 클래스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었다.
‘뭐, 읽어보면 나오겠지.’
나는 책을 들고 와 구석에 앉았다.
그렇게 책장을 펼치려는 순간이었다.
“·····.”
문득 테이블 구석에 붙어있는 종잇장에 시선이 갔다. 정확하겐, 그 종잇장에 붙은 이름에.
아카데믹(Academic).
열두 개의 회로.
저런 것도 있었지.
분명 다 풀어서 제출하면 약간의 보상금을 받았던 걸로 기억한다. 어렸을 적 종종 풀어봤었는데.
찌익.
나는 아직 누구도 손을 안 댄 것 같은 종이를 뜯어서, 앞으로 가져왔다. 한번 풀어 볼 생각이었다. 요즘은 어떤 문제가 나오나 궁금하기도 했고.
1번부터 12번 항목···.
12개의 문제.
이는 저번에 아론 학장이 내게 냈던, 마학회의 난제와는 조금 다른 형식의 문제였다.
이건 문제 풀이를 위해 만든 게 아니라 실전에서 등장하는 회로의 해석을 맡긴 것이었으니까.
가령 던전의 함정 술식이라던가, 유적에 남아있는 고대 주문의 해석이라던가, 그런 것들.
‘한번 풀어볼까.’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문제를 살폈다.
1번부터 7번까진 금방 푸는 문제들이다. 진짜 어려운 문제는 8번 넘어서부터 있지.
딱히 돈이 목적이 아니었으므로, 나는 8번부터 풀기 시작했다. 좁혀진 시야 사이로 회로의 전체적인 모습이 들어온다.
수많은 곡선과 직선이 얽혀 만들어진 회로.
얼핏 보면 난잡해 보일 뿐이나, 그 안에는 분명한 규칙과 법칙이 스며들어있다.
나는 그 법칙을 찾는다.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옛날이었으면 좀 걸렸을지도 모르겠지만···.’
6년 전과 달리, 나 또한 성장한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그간 쌓인 실전 경험 덕분이겠지.
전장에서 수천, 수만 개의 회로를 매일같이 마주하다 보니 회로를 흘겨보는 것만으로 대충 감이 잡혔다.
‘이런 형태의 중심은 이곳.’
‘곡선과 직선이 교차하는 부분을 중심으로.’
‘사선은 눈속임용. 실선은 이것.’
다년간의 경험을 통해 단련된 직관(??)은 회로를 보는 족족 그 풀이법을 도출해낸다.
늘 가지고 다니는 펜을 꺼내 마나를 먹였다.
이윽고, 종이 위로 펜이 미끄러진다.
사각.
펜촉에 마나를 먹여 간단한 증명과정과 답을 써넣는다. 답을 적음에 막힘은 없다. 그렇게 8번 9번의 답을 적어넣고 10번으로 넘어가려는 순간이었다.
찌익.
펜촉이 종이를 긁었다.
종이 위를 부드럽게 미끄러져야 할 마나가 묻어나오지 않은 까닭이었다.
“…?”
펜촉에서 마나가 묻어나질 않는다.
살짝 구겨진 종이를 보며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고장이라도 났나?’
펜을 이리저리 돌려보고, 몇 번 툭툭 쳐보기도 한다. 그리고 깨닫는다. 펜 자체에는 이상이 없었다. 이상이 있는 건 내 마나였다.
꼭 마나 이터에게 물렸을 때와 같은 감각이다.
마나가 제대로 끌어올려 지지 않는다. 뭉쳐지지 않는다. 허공에 흩어지는 마나에,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어디서 마나 차단 실험이라도 하나?
이런 건 전언으로 경고를 날리고 하는 게 정상일 텐데.
“후우···.”
흐름이 끊긴 것에 약간의 불쾌함을 느끼며, 나는 짧게 숨을 내뱉었다. 내뱉으며, 호흡을 가다듬는다.
1초, 2초, 3초···.
속으로 수를 세며 흐르는 마나에 집중한다. 내 마나를 옭아매고 있는 무언가를 잡아 뜯는다.
뚝, 뚜욱.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펜촉에서 마나가 묻어나오기 시작한다. 팬을 고쳐 잡고 나는 다시 문제에 집중했다. 아까 어디까지 했더라, 분명 여기서···.
“저기요.”
그렇게 문제에 집중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누군가 내 어깨를 건드린다. 두 번이나 연속하여 집중이 끊기니, 짜증이 치밀었다.
“후우···.”
나는 한숨을 내쉬곤 팬을 내려놓았다. 그렇게 뒤를 돌아본 나는, 그곳에 서 있는 의외의 인물에 딱딱하게 굳고 말았다.
“무얼 그리 보고 계신가요?”
한쪽으로 땋아 내린 백금 발의 머리칼.
가늘게 뜬 금색의 눈동자.
격식을 차린 복장은 아니었으며, 신분을 드럴낼만한 복장도 아니었지만, 애초에 이 소녀에겐 그런 복장 따위 필요가 없었다.
왕가의 일원임을 드러내는 금빛 눈동자.
그 눈동자가 모든 걸 설명해주고 있었으므로.
제 4 왕녀 아일라.
별에게 사랑받는 아이(Stella).
그녀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2.
내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제 4왕녀는, 6년 전 그녀가 열두 살 남짓이었을 때의 모습이다.
아직은 어렸으나 총기가 있던 소녀.
당시, 별에게 축복받은 아이라며 왕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소녀.
나는 그녀에게 마법을 가르친 적이 있었다.
물론 공식적인 자리에선 아니었다.
내가 도서관에 들릴 때마다 왕녀가 찾아와 가르침을 청했었으니까.
‘…많이 컸네.’
나를 바라보는 소녀.
어느새 성숙해진 그녀를 바라보고 있자니, 새삼 시간이 많이 흘렀음을 느꼈다.
“제 얼굴에 뭐라도 묻었나요?”
“···아뇨.”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좀 전의 무례에 용서를 구하고자.
“고귀하신 분을···.”
“그런 거 하지 말아요. 별로 안 좋아하니까.”
그러나, 아일라 왕녀는 가볍게 손을 내저으며 내 행동을 제지했다. 그런 것에 질색이란 듯한 표정이었다.
“집중하고 계셨잖아요. 제가 끊었으니 한숨이 나오는 것도 당연한 일이겠지요. 죄송해요?”
그리곤 의자를 빼 자리에 걸터앉는다.
그것도 바로 내 옆자리에.
“책 읽으러 온 거지, 대접받으려 온 건 아니니까요. 하던 일마저 하세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 왜 옆에 앉는 건지.
그런 은근한 시선을 왕녀에게 보내봤으나, 그녀는 내가 풀고 있던 문제지를 뚫어져라 바라볼 뿐이었다.
“아카데믹이네요?”
흥미롭다는 시선이다.
그녀는 나와, 내가 풀고 있던 학술지를 번갈아 바라보며 헤에 따위의 감탄사를 내뱉었다.
“마법사신가 봐요?”
“네.”
“마법 잘 쓰세요?”
“쓸 만큼은 씁니다.”
무심코 성의 없이 건성건성 답하던 도중, 나는 문득 내 잘못을 깨달았다.
‘아차.’
이건, 라니엘로서 왕녀를 대하는 태도였다.
생판 모르는 마법사가 이런 식으로 왕녀를 대했다간 모욕죄로 잡혀가도 할 말이 없었다.
“·····.”
나는 왕녀의 눈치를 살폈다.
다행히도 기분 나쁜듯한 눈치는 없었다.
“흐응.”
오히려 그녀는 눈웃음을 흘리며, 의자를 조금 더 내 쪽으로 끌고 와 앉았다. 그리곤 손가락을 뻗어, 내가 풀고 있던 문제를 가리켰다.
“왜 처음 문제들은 놔두고 8번부터 풀고 계신가요?”
“네?”
“혹시 어려워서 그런 건가요? 하긴, 1번 문제는 확실히···.”
“이게요?”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1번부터 7번은 간단한 문제잖습니까. 나중에 풀려고 놔뒀는데.”
“…간단하다구요?”
“음, 간단하긴 한데 귀찮죠?”
나는 힐끗, 1번을 살펴봤다.
확실히, 풀기는 쉬운데 귀찮은 부류다. 이건 답이 아닌 ‘풀이 방식’을 물어보는 문제였으니.
“좀 설명하기 귀찮은 식의 문제라서.”
“네?”
“그런 거 있잖아요? 풀라 하면 풀 수 있는데, 그 과정을 설명하라 하면 좀 귀찮아지는 거.”
“아… 마나의 거래학 같은 거요?”
“그것과 비슷하겠네요.”
적당히 흘려넘기고 문제를 푸려는데, 아무래도 이 공주님께선 날 놓아줄 생각이 없는듯싶었다.
“그럼 말이에요?”
왕녀가 1번을 가리켰다.
“이 자리에서 한번, 풀어주시면 안 될까요?”
“···예?”
“저는 1번부터 푸는데, 이 문제에서 막혔었거든요. 한번 푸는 거 보여주심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왕녀가 살짝 고개를 기울인 채, 나를 올려다보았다.
“안될까요?”
계속 물어보는 게, 어째 풀기 전에는 놔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나는 마지못해 1번 문제로 펜을 옮겼다.
정교하고, 난해하게 펼쳐진 회로.
하나가 아닌 ‘여러 개’의 회로가 짜 맞춰진 회로다.
‘또 그 해골바가지가 쓰는 회로네.’
요즘 들어 어째 자주 보는 것 같다.
이건 마왕군의 사천왕, 고대 리치 스케발이 쓰는 ‘결계’ 주문에 사용되는 회로다.
‘도대체 이게 왜 난제야?’
아론 학장이 보여줬던 마학회의 난제도 그렇고, 아카데믹의 1번 문제도 그렇고 다들 왜 이렇게 스케발의 회로를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툭 건드리면 빠개지는 등신 같은 회로인데.’
일단 문제가 요구하는 것을 확인했다.
[1. 해당 회로에 숨겨진 ‘진짜 회로’를 찾아내는 과정과, 기존 풀이법을 ‘단축’ 할 수 있는 풀이 방법을 서술하시오.]하필이면 또 풀이 과정에 집중한 문제다.
답만 적으라 하면 금방 푸는 건데, 풀이 과정을 서술하라니 심히 귀찮다.
“…?”
꼭 풀어야 하냔 식으로 왕녀를 바라봤건만, 왕녀는 싱긋싱긋 웃고 있을 뿐이다.
‘에휴···.’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곤 펜 촉을 움직였다. 일단 답을 먼저 적고, 그 위로 풀이 과정을 덧붙였다.
굳이 모든 회로를 해체할 필요는 없다.
회로의 해체 대신···.
짧게 두세 줄의 풀이를 덧붙이려다, 나는 잠시 고민했다. 그래도 공주님께서 보시겠다는데, 알아먹게는 써놔야 하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이거 설명한 적이 있었는데.’
하인켈 아저씨의 부탁으로 기사단의 마법사들을 상대로, 스케발의 결계를 푸는 방법을 설명했던 적이 있었던 것 같다.
‘그때 거의 다 못 알아들었던 것 같은데.’
그럼 더 풀어서 써야 하나.
귀찮은데···.
나는 슬쩍 왕녀를 흘겨봤다.
그녀는 더이상 장난스럽게 웃고 있지 않았다. 내가 답을 적은 순간부터, 그녀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다음은요?”
내 펜촉이 움직이지 않자 그렇게 물어온다.
“···생각을 정리 중입니다.”
왕녀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더니, 이내 내 풀이로 다시 시선을 옮겼다.
나는 말 없이 펜을 움직였다.
이렇게까지 세세하게 풀이를 쓰는건 나로서도 처음이라, 조금 어색했다.
결국 나는 한참동안이나, 왕녀의 시선을 받으며 그녀가 만족할 때까지 해설에 해설을 덧붙여야만 했다.
이상하다.
분명 이러려고 온 게 아닌 것 같은데.
3.
“말이 안 되네요.”
마법사가 떠난 자리.
도서관에 홀로 앉은 아일라는 턱을 괸 채, 그 정체불명의 마법사가 풀어놓고 간 문제를 바라봤다.
아카데믹의 1번 문제.
그 자리를 3년 전부터 굳건하게 지키고 있는, ‘고대 리치’ 스케발의 회로 해석 문제.
“간단, 하다고요?”
아일라는 헛웃음을 흘린다.
“그 간단한 문제를 풀지 못해, 몇 개의 전장이 붕괴하였는데···.”
고대 리치 스케발.
그 괴물이 친 결계는 외부와의 접촉을 단절시킨다. 내부의 인원을 완전히 고립시킨다.
그 결계 하나를 해체하는 데 필요로 하는 시간은, 최소 여섯 시간이다. 그것도 수십의 마법사가 방해를 받지 않고 결계 해체작업에만 몰두할 수 있다는 가정 하에서 여섯 시간.
그리고, 여섯 시간은.
고립된 기사단이 전멸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그 시간을 1분 1초라도 줄이려고, 몇명의 마법사들이 머리를 맞대었던가. 그러고도 답을 찾지 못한 난제가 바로 스케발의 회로였다.
그러나, 조금 전 그 여인은 이 문제를 푸는 데 얼마의 시간을 소비했지?
‘삼십 분.’
그것도, 해설을 덧붙이는 데 든 시간이 태반이다. 그 여인은 문제를 본 순간 답을 적어넣었다. 답을 적는 데만 걸리는 시간을 계산하자면···.
‘삼십 초 남짓.’
아일라가 아는 한.
그런 게 가능한 인물은 한 명뿐이었다. 당장 그 인물의 부재로, 스케발의 결계를 해제해줄 인물이 없어 전선이 밀리고 있었으니까.
“·····.”
아일라는 말없이, 그 여인이 남겨두고 간 정답을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어쩌면, 엉터리 풀이일지도 모른다.
단순히 왕녀인 자신에게 관심을 받고 싶어, 내키는 대로 끄적였을 뿐인 풀이일지도 모른다.
‘저는 이 회로를 해석할 수 없으니까요.’
아일라는 ‘별의 아이’로서의 직감으로, 회로가 품은 주문이 무엇인지는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달리 말하면 딱 거기까지다.
아일라는 회로가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떻게 해야 해체할 수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 풀이가 정답인지 아닌지, 아일라는 알 수 없다.
맞는 풀이인지 아닌지 역시, 알 수 없다.
‘그런데, 어째서 일까요···.’
그 여인이 써놓고 간 풀이에는 묘한 설득력이 있었다. 회로의 해석에 대해 잘 모르는 자신이 보아도, 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하인켈에게 보내는 게 맞을까요?’
어쩌면 괜한 혼동만을 줄지도 모른다.
신원도 불분명한 마법사가 남기고 간 해답이니.
이성은 보내지 않는 게 좋다고 답한다.
그러나, 한편으론 그녀의 직감이 경종을 울리고 있다.
이걸 전장의 기사단에게 보내야 한다고.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고.
“···흐응.”
아일라는 고개를 기울였다.
오늘따라 검지가 유난히도 시큰거린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