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12
〈 12화 〉 의외의 만남(1)
* * *
아플리아 아카데미.
왕도 제일의 마학(??) 아카데미이자, 뛰어난 졸업생들을 배출해낸 명문 중의 명문.
개학 준비를 앞둔 아플리아에는 하루에도 수십 개의 학사공지가 배부된다. 그리고, 그중 조교들의 이목을 끌어모은 공지가 하나 있었다.
마나의 기초와 거래.
담당 교수 : 로셀 반 트리아스.
담당 조교 : 라니아 반 트리아스.
채워져 있는 조교칸.
언제나 공란(??)이었던 조교 칸을 채운 누군가의 이름.
‘로셀 교수가 조교를 들였다!’
그 사실에, 조교들은 경악했다.
아플리아 조교들의 태반은 결국 아플리아 아카데미의 졸업생들이다. 그리고, 아플리아의 졸업생 중 로셀 교수를 모르는 이는 없었다.
이름 높은 잿빛 마탑의 원로(??).
고대용의 마법사에게 인정받은 현인.
용사 파티의 일원 ‘잿빛 마법사’ 라니엘을 길러낸, 이 시대의 참스승.
그런 명성을 뒤쫓아, 대부분의 학생들은 호기심에라도 한 번쯤은 로셀 교수의 수업을 신청해 본 경험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가벼운’ 마음가짐으로 로셀 교수의 수업을 들은 이들은 깨닫게 된다.
무엇을 깨닫게 되냐고?
악몽을.
그리고, 지옥을.
‘아플리아의 악몽, 그 로셀 교수가!’
악랄한 과제.
악의가 느껴지는 수업 난이도.
사소한 티끌 하나 놓치지 않는 깐깐함.
마치 이 정도는 견뎌내야 ‘그런 마법사’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스파르타식 교육.
안되면? 될 때까지.
답이 안 나오면? 답이 나올 때까지.
못 하겠다? 그럼 나가던가.
연장 수업은 기본이요, 정신 나간 난이도의 과제는 덤이다. 양보다 질을 우선시하는 현시대의 흐름에 거스르듯, 양과 질을 전부 잡아내는 미친 과제를 자랑한다.
그 과제는 시험주간이라 해도 손속이 없다.
그렇게 겨우겨우 악몽 같은 과제에서 살아남는다면?
기다리는 건 지옥 같은 채점 과정이다.
다시.
예?
다시 하라 말했다.
이, 이렇게요?
다시.
날림으로 과제를 해온 학생들을 앞에 세워두고,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웃으며 ‘다시’를 외치는 로셀 교수의 모습은, 수많은 학생의 뇌리에 트라우마로 박혀 있었다.
그 악명(?名) 탓일까.
로셀 교수의 조교 자리는 여태껏 공란이었다. 지원자가 없지는 않았지만, 그들 모두가 이틀을 견디지 못하고 관뒀다.
그런데, 그 로셀 교수가 ‘직접’ 조교를 들였다고?
그 깐깐하기 짝이 없는 로셀 교수가?
애초에, 로셀 교수의 수준을 보조할만한 노예가 있을 수가 있다고?
그 소문은 빠른 속도로 퍼져나간다.
로셀 교수가 조교를 들였다더라.
그 교수가 조교를?
누군진 몰라도 불쌍하군···.
그렇게 조교들 사이를 한 바퀴 돈 소문은, 다시 한곳으로 모여든다. 소문에서 시작된 관심은 의문으로 이어진다.
라니아 반 트리아스.
로셀 교수가 들였다는 양녀.
그녀가 도대체 누구인가?
개학이 열흘밖에 남지 않았음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그녀에 대한 소문만이 나날히 그 크기를 키워갔다.
그녀에 대해 알려진 건 어느 것 하나 없지만···.
로셀 교수를 알고 있는 조교들은 추측한다.
‘분명 지옥 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그 공명정대하고 깐깐하기 이를 데 없는 로셀 교수가 양녀라고 봐주는 모습은 상상할 수도 없었으니.
2.
“아학, 아하하하학!”
“·····.”
로셀은 차게 식은눈길로 집안을 바라본다.소파에 흐물흐물해진 채 누워있는 소녀가 눈에 들어온다.
자신의 제자 겸 양녀이자 양자.
라니엘 반 트리아스이자, 라니아 반 트리아스.
그녀의 비단결 같은 잿빛 머리칼이 소파 위로 물결치듯 흘러내린다. 로브 차림으로 굴러다녔는지, 구겨지고 주름진 로브가 눈에 들어온다.
‘뭐라 한마디 해야 하는가.’
로셀은 잠시 고민했다.
그는 더이상 라니엘을 단순히 가르쳐야 할 대상으로만 바라보진 않았다. 라니엘은 이미 경지를 이룬 마법사였으니까.
무려 5년이다.
자신의 품을 떠나 완성되어 돌아온 아이였으므로, 로셀은 라니엘을 동등한 한 명의 마법사로서 존중해 주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그래서 어지간한 잔소리는 참아왔건만···.
‘이건 경고를 주는 게 옳다.’
일단은 아비 된 자로서 저 꼴은 못 보고 있겠다. 로셀은 헛기침을 한번 하고선 입을 열었다.
“라니엘?”
“아,아하핫.. 네? 부르셨어요?”
라니엘은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로셀을 바라본다. 무엇이 그리도 재밌는지, 눈물마저 찔끔 흘린다. 도대체 무얼 보고 있나 싶어, 로셀은 라니엘이 쥐고 있던 책을 흘겨봤다.
‘방랑 검객 활극담?’
어째 제목이 낯이 익다.
자네, 이 소설 좀 읽어보게나. 희대의 명작일세! 중원 출신의 무림인이···.
…무림이 뭔가?
아, 무림이란 무와 협을 숭상하는···.
분명 아론이 즐겨 읽으며 로셀에게 자꾸만 권하던 소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재밌느냐?”
“네? 스승님 서고에 있던 건데, 안 읽어 보셨어요?”
“아론, 그 친구가 빌려준 책이지. 읽어보지는 않은 것 같구나.”
“아론이면···. 아, 저번에 뵀던 학장님이시구나? 취향 좋으시네. 다음에 좀 추천해달라 해봐야겠네요.”
···그 친구 취향은 쉰내 난다고, 학생들에게 놀림 받았던걸로 기억하는데.
목구멍까지 차오른 그 말을 삼키며, 로셀은 라니엘에게 다가가, 그 로브에 묻은 먼지를 털어주었다.
“5년 동안 고생했으니 쉬고 싶은건 알겠다마는···. 내가 맡긴 서류처리는 어찌했느냐? 분명 내일까지 마무리 하겠다 하지 않았더냐.”
“아, 그거 저기 있어요.”
라니엘이 테이블의 한편을 가리킨다.
그곳엔 가지런히 정리된 서류철이 쌓여있다.
“···손도 안 댔느냐?”
“네? 다 했는데요?”
“뭐? 그렇게 빨리 끝낼 수 있는 양이 아닐 텐데?”
뭐라도 하고 있으라고 조금 많이 업무를 맡겼으니, 그리 빨리 끝낼 수 있을 리가 없을 텐데.
“스승님.”
그런 로셀의 미심쩍은 눈동자에, 라니엘은 미소지었다.
“저 떠나기 전까지 차기 마탑주였잖아요?”
“···그렇지?”
“그 자리에 앉아서 제가 뭘 했겠어요.”
서류 결재다.
미친 듯이 올라오는 연구자료의 정리와 매 분기의 연구 결과를 통합하여 결산하는 작업.
비서도 안 두었던 라니엘은 그 모든 걸 혼자서 처리했었다. 서류처리 속도가 안 늘래야 안 늘 수가 없는 환경이었단 소리다.
‘그리고 말씀은 안 드렸지만···.’
로셀은 모르겠지만, 라니엘은 용사파티에 있을 적 온갖 서류작업을 떠맡아서 했다.
개인적인 편지를 쓰거나, 자신의 추종자들이 보내온 팬레터에 답하는 일은 드물었지만, 서류작업이라면 질릴 정도로 해본 것이다.
카일은 애초에 서류작업을 해본 적이 없었고.
사라와 레미아는 귀찮다는 이유로 라니엘에게 떠넘겼었으니까.
‘참가한 전장마다 상황 요약하고, 우리 파티가 어딜 갈 것인가, 경비는 또 어떠하고, 무얼 할 것인가···.’
그걸 매번 정리해서 올렸던 라니엘이다.
그 업무에 비하면, 지금 자신의 스승이 내주는 아카데미의 업무쯤이야 뭐···.
“그래도, 방에만 박혀있지 말고 아카데미에라도 가보는 게 어떠하느냐?”
“개학하면 어차피 매일같이 출근할 텐데요?”
“굳이 아카데미가 아니어도 좋으니 바깥에 좀 나가보거라. 이리 방에만 박혀있는 꼴을 보자니 왠지 모르게 속이 답답하구나.”
일은 다 끝냈으니 방에서 뒹굴거리며 놀게 내버려 둬도 될 것 같긴 하지만···. 로셀은 왠지 그래선 안 될 것 같단 느낌이 들었다.
‘이 아이가 흥미를 가질만한 게···.’
무얼 미끼로 걸어야 이 아이가 바깥에 나가볼까. 로셀은 잠시간 라니엘이 흥미를 느낄만한 것을 떠올려 보았다.
‘…책?’
그러다 문득, 라니엘의 곁에 쌓여있는 책에 눈길이 간다. 그 책들을 보는 순간 로셀의 머릿속에 한가지 생각이 번뜩인다.
“라니엘.”
“네, 스승님?”
“왕립 도서관에 가보지 않겠느냐?”
3.
전선의 연속된 후퇴.
패퇴의 연속.
사천왕, 고대리치 ‘스케발’에 의한 광역 결계 형성, 기사단의 고립.
전장에 나타나지 않는 용사들.
“·····.”
일찍이 대승을 거두어 탈환에 성공했던 ‘카른’ 협곡이 다시 한번 마족들에게 빼앗겨.
전장의 위기.
흑기사들의 북진.
찌익.
제 4왕녀, 아일라님께.
왕녀님, 부디 제 2왕자 님께 전열에서의 이탈을 고려해달라고···.
찍.
현재 전열의 후퇴가 계속하여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는 위기입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왕자님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찍.
왕녀님.
기사단장 하인켈 입니다.
멈칫.
현재 제 2 왕자님이 머무르시는 제 4 전선에 지속적인 압박이 가해지고 있습니다. 우선하여 병력을 투입하긴 하였지만, 그리 오래 버티진 못할 것입니다.
결례를 무릅쓰고 이리 말씀드립니다.
제 4전선에 병력을 투자함으로서, 모든 전선이 밀려나고 있습니다.
아일라는 눈을 가늘게 뜨고 서신을 보았다.
다른 이들의 서신에는 음모가, 정치적 의도가 묻어나올 수도 있으나 하인켈만큼은 아니었으니.
감히 부탁드립니다.
제 2 왕자님께, 전선의 이탈을 부탁드릴 수 없겠습니까?
“제가 말을 하면 들을까요, 그 오빠가.”
아일라는 관자놀이를 짚었다.
하인켈의 마음은 십분 이해한다. 아무리 전선이 급박하다 한들, 왕자가 죽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다. 그리하여 병력을 투자는 하고 있으나···.
‘민폐겠지요.’
돌려서 말하고 있으나, 결국 요점은 그것이었다. 민폐니 전장에서 떠나 달라고.
‘저도 그랬으면 좋겠지만요···.’
아일라는 자신의 오빠가, 제 2왕자가 어떤 인물인지 잘 알고 있다. 누구보다도 정의로워서, 오히려 이 왕가에 어울리지 않는 인물.
언제나 의욕만 앞서는, 조금 멍청한 오빠.
‘분명 라니엘님의 빈자리를 채우겠다고 저리 날뛰고 계신 것이겠지요···.’
입가를 비집고 한숨이 새어 나왔다.
안 그래도 생각해야 할 것이 많은 마당에, 오빠마저 난리다. 아일라는 현기증이 이는것을 느꼈다.
“후우···.”
잿빛 마법사 라니엘의 은퇴.
그 한 명의 마법사가 빠진 것만으로 전선이 붕괴하기 시작한다. 이는 그 전조에 불과할 것이다.
앞으로 더욱더 많은 전선이 무너질 것이고.
그보다 더 많은 기사들이 죽어 나갈 것이다.
그 죽음의 행렬에, 자신의 오빠가 끼지 말란 법도 없다.
“·····.”
아일라는 입술을 꾸욱, 깨물었다.
그런 미래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속이 콱 막히는 것만 같았다.
아일라, 이것 보아라! 내가 초대 용사님의 기록을 발견했어! 무려 태초의 괴수를 사냥한···.
동화잖아요, 오빠.
동화가 뭐 어떠냐! 무릇 동화에는 음유시인들의 정수가 담긴 법이야. 같이 볼 생각 없느냐?
힘들때면 언제나 자신에게 동화를 들려주던 조금 바보 같은 오빠. 오늘따라 그 모습이 유난히도 눈앞에 아른거린다.
“조금 쉬도록 할까요···.”
편지를 보내던, 무엇을 하던.
지금 이 상태로는 손에 잡힐 것 같지 않았다. 그렇게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이었다.
따끔.
검지가 시큰거렸다.
마치 촛농이라도 떨어진 듯 따끔거리는 통증이 느껴진다. 그 독특한 신호에 아일라는 눈을 가늘게 떴다.
검지 위로 피어오르는 별빛.
그 별빛이 의미하는 바를 읽는다.
“기대하던 만남?”
아일라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