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Corporation: Joseon RAW novel - Chapter (1185)
1185화 그가 남긴 과제. (5)
“흠흠….”
가벼운 헛기침으로 사람들의 주의를 모은 향은 다시 말을 이어 갔다.
“앞에 앉은 이들의 모습을 보니 많은 분들이 이해를 하지 못한 것 같소. 조금 더 풀어서 이야기해 보겠소.”
향의 은근한 타박에 앞에 앉은 이들은 순간 움찔했다. 하지만, 이들도 할 말은 있었다.
‘이미 할 일이 태산인데, 닷새 안에 그 많은 내용을 언제 다 이해하라고!’
‘황제가 만기친람을 포기하고 읽었음에도 엿새가 넘게 걸렸는데!’
많은 이의 소리 없는 아우성과 울부짖음을 모른 체하며 향은 말을 이었다.
“인정(認定)이 왜 중요하냐 하면…”
-무릇 백성들이 하는 일은 참으로 많아 그 종류를 헤아릴 수 없다.
-이렇게 많은 일에 귀천(貴賤)을 따지는 것은 백해무익이라는 말로도 모자라다.
-그 사람이 업으로 하는 일이 도리에 어긋나지 않고 다른 이들에게 이익이 된다면 이는 귀한 일이다.
-그리고, 평생 자신의 업을 성실하게 행한 자는 ‘군자’라고 인정해도 무방하다.
-그리고 백성들은 이런 이들에게 존경을 표함이 당연한 일이다.
순간, 받아 적던 모든 이들의 손이 그대로 멈췄다.
“‘당연한 일일 것이다.’가 아니라 ‘당연한 일이다’라고?”
지금까지 향이 이런저런 주장을 내놓았지만, 이 정도로 강력하게 단정을 내린 적은 없었다.
순간, 앞에 앉아 있던 이들은 모두 같은 판단을 내렸다.
‘이것은 권도(勸導, 타일러서 이끎)이자 권도(權道, 강제로 행함)이다!’
관리들의 반응을 살피며 잠시 말을 끊었던 향은 다시 말을 이었다.
-평생에 걸쳐 하나의 업을 일로매진하는 이를 군자로 대우해야 함은 제국의 발전을 계속 잇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무릇 부모 된 자는 자식들이 자신들보다 더욱 잘되기를 바라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만약, 업에 귀천이 있다면, 천업을 행하는 부모들은 자식들이 자신의 업을 잇기를 원치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자식들의 교육에 더욱 힘을 쏟을 것이다.
-자식들의 교육에 힘을 쏟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하지만, 단지 자식들이 좀 더 귀한 일을 하기 원하는 바람 하나로 교육이 힘을 쏟는 것은 본말전도다.
-당장 지금 제국의 상황을 보자.
사민학당은 나라에서 무료로 학비를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중학당과 기학당부터는 부모가 학비를 내야 한다.
-그 윗줄의 배움터 인공학원, 군학원, 의학원, 산학원, 어학원 역시 마찬가지다. 군학원만 나라에서 학비가 나오고 나머지는 만만치 않은 학비를 내야 한다.
-그럼에도 중학당과 기학당은 물론이고 여러 학원에 진학하는 이들이 점점 늘고 있다.
-이렇게 윗줄의 교육기관으로 진학하는 이들의 학비는 대부분 그 부모들이 감당한다. 그리고, 이 학비는 부모들에게 상당한 부담을 준다.
-학비만이 아니다. 자식들이 경제적으로 자립하는 것도 늦어지면서 부모들이 자식들의 의식주를 지원하게 되어 부담은 커져만 갈 것이다.
-이런 일이 대를 이어 가면서 반복된다면 과중한부담에 부모들은 자식을 많이 보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학비를 비롯해 많은 것을 지원해 주느라 부모들의 노후는 불안해질 것이고,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자신의 노후를 책임져 줄 것을 바라게 될 것이다.
-물론, 자식이라면 부모를 봉양하는 것이 당연한 도리이기는 하다. 자식이 많다면, 또는, 일찌감치 기반을 잡았다면 자식들의 부담은 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자식이 적거나 혼자라면 그 모든 부담을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하니 쉬운 일이 아니다.
-부모를 봉양하는 것이 도리이기는 하지만 현실은 현실인 법이니까.
-결국, 이런 상황이 길어지면 백성들은 가정을 꾸리는 것을 피하게 될 것이고, 제국은 점점 늙은이만 늘어 가면서 인구도 줄어 갈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제국은 멈춰 설 것이며 결국은 망국으로 갈 것이다.
-물론, 지난 역사를 돌이켜 볼 때, 국가의 흥망성쇠 역시 자연스러운 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사람들이 무병장수를 꿈꾸듯이 나라 역시 오래도록 흥하기를 바라는 것은 자연스러운 바람 아닌가?
향의 이 말에 대신들은 물론이고 경복궁 입구에서 전해 듣고 있던 백성들까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기는 하지. 다들 ‘저 먹을 복은 제가 가지고 태어난다.’라고 말은 하지만, 막상 자기 자식은 좀 더 호의호식하기를 바라는 법이니까.”
“솔직히 요즘 사민학당만 마치고 ‘들돌’ 잔치하는 집이 얼마나 있어? 다들 기를 쓰고 중학당에 보내네, 기학당에 보내네 하고 있잖어?”
일반적으로 제국에서는 자식의 나이가 14살이 되면 성인으로 인정 받았다. 사대부 가문에서는 관례를 치렀고, 평민 소년들은 ‘들돌’을 들어 한사람 몫을 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잔치를 열었다.
제국 초기만 해도 사민학당을 마치는 나이가 대략 성인으로 인정받는 나이였고, 이에 학당을 졸업하면 성인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사민학당에서 배우는 지식으로 어지간한 일들은 다 할 수 있었기에 제국 초기 평민들은 빠르게 경제적으로 자립할 기반을 갖추게 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좀 더 고등 교육 기관으로 진학하는 아이들이 늘어나면서 부모들의 부담도 서서히 늘어 가는 상황이었다. 때문에, 경복궁 밖에서 향의 말을 듣는 백성들 대부분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한 것이었다.
잠시 목을 축인 향은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일에 귀천을 가르지 않고 평생동안 자신의 일을 천직으로 삼아 매진한 이를 군자로 인정한다면 이런 폐단의 상당 부분을 줄일 수 있다.
-뿐이랴? 사민학당을 졸업하자마자 자신의 업을 정해 시작한 이도 그 일한 시간을 인정해 줘야 한다.
“응?”
이에 많은 이들이 의미를 이해하지 못해 의문을 표하는 모습을 보이자, 향은 좀 더 자세하게 풀었다.
“예를 들어 사민학당을 졸업하자마자 장인의 길로 들어선 한 아이가 있소. 그리고, 동갑이지만 기학당까지 마치고 장인의 길로 들어선 아이가 있다고 칩시다. 요즘 돌아가는 형편을 듣자 하니 기학당을 마친 아이를 좀 더 높게 쳐 준다고 하오. 이건 옳지 않소. 기학당에 들어간 아이가 기학당에서 배운 시간만큼 사민학당만 마친 아이도 현장에서 배우고 익혔기 때문이오. 때문에, 현장에서 배운 시간 역시 기학당에서 배운 시간과 같은 무게로 쳐 줘야 하오.”
“아!”
순간, 사람들이 뱉어낸 감탄사로 근정전과 경복궁 전체가 울렸다.
소란이 가라앉을 때까지 잠시 말을 멈춘 향은 말을 이었다.
“그리고 여기서 다시 중요해지는 것은 공정함이오. 이제 두 아이는 같은 곳에서 동시에 출발한 셈이니 공정한 평가가 이어져야 두아이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오.”
“아아.”
그 뒤로도 향의 강론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 * *
향이 강론에서 가장 중요하게 강조한 것은 백성들이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었다.
“원황제께서 ‘폭정’이라는 말을 들으셨음에도 왕토 사상을 고집하셨음은 백성들이 편한 생활을 이어 가기를 바라셨기 때문이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안으로는 도리가 지켜져야 하고, 밖으로는 의식주가 지켜져야 하오. 이 의식주 가운데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주, 바로 집이오.”
-문제는 이렇게 백성들이 거주할 집은 공짜가 아니라는 것이다.
-집을 지을 때 가장 많은 돈이 나가는 부분은 바로 땅, 토지다.
-토지의 사유(私有)를 인정한다면 지주는 그 땅을 팔거나 세를 놓으면서 많은 재물을 요구할 것이고, 이는 곧 집을 짓는 자에게 부담으로 돌아가게 된다.
-하지만, 토지를 황제, 즉, 나라의 것으로 정한다면 가장 큰 부담을 줄이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집을 지어 세를 놓는 이들도 시세에 비해 과하게 비용을 책정하기 힘들게 될 것이오. 그러면 백성들은 좀 더 평안하게 생활할 수 있을 것이오.”
향의 말에 대신들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대신들의 모습을 보며 향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여기까지가 부동산의 희망편, 시간이 지나면 온갖 편법이 날뛸 것이고 그것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 부동산의 절망편이 되겠지. 그 부분은 그때 담당자들이 해결할 일이겠지. 내가 지금 말하면 당장 옳다구나 하면서 궁리할 녀석들이 나올 테니까.’
* * *
시간이 지나면서 향의 강론도 서서히 막바지로 향하고 있었다.
막바지에서 향이 강조한 것은 ‘관리’였다.
“제국의 관리란 백성들에게 갈 길을 알려 주는 이정표와 같아야 한다고 보오.”
-세상은 계속 변하고 있고, 그 변화 속에서 올바른 길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조금이라도 방향을 잘못 잡으면 도리는 사라질 것이고 약육강식만이 남을 것이다.
-때문에, 관리들은 백성들보다 앞서서 이 변화를 살피고 올바른 길을 찾아야 한다.
-아니, 백성들보다 앞서기 힘들다면 최소한 같이 움직여야 한다.
-‘전례(典例)에도 없고, 전례(前例)도 없다.’라는 말을 하며 게으름을 피우는 것은 반역으로 봐도 무방하다.
-자신의 직무를 게을리하여 나라에 망조가 들게 만들었으니, 반역과 다를 것이 무엇이랴?
-스스로 앞서 살피기 힘들다면 백성들의 청원(請願)에 귀를 기울이고 이를 해결함에 최선을 다하라. 그리하면, 백성들의 충실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
-무엇보다 변화에 중심에 선 이들이 백성이기 때문이다. 백성들의 청원을 귀 기울여 듣고, 살피고, 궁리해 답을 찾아낸다면 그 몇 배의 백성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임시방편일 뿐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백성들보다 앞서 이 변화를 살피고 올바른 길을 찾아야 한다.
이것이 관리의 업(業)이고 황제를 향한 충(忠)이다.
“…쉬운 일은 아니오. 하지만, 이를 충실히 한다면 황제와 백성들은 그대들을 존경할 것이고, 청사(靑史)에 이름이 남을 것이오. 이것이야말로 군자의 가장 큰 복 아니겠소?”
향의 말에 대신들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쫓아가기도 버거운데 앞서라니….. 살려 주세요!’
* * *
강론회가 끝낸 향이 수강궁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을 때, 우가 다가와 공손히 예를 올렸다.
“참으로 금과옥조와 같은 강론이셨습니다. 침침했던 눈이 한 번에 맑아지고, 막혔던 귀가 한 번에 뚫린 느낌입니다.”
우의 감사에 향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과찬이시오. 나 역시 미뤘던 일을 끝낸 느낌이라 아주 후련하외다. 이제 좀 쉬어야겠소.”
“편히 쉬십시오.”
향이 몸을 누인 가마가 수강궁으로 향하는 모습을 바라보던 우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느낌이 좀 안좋은데….. 어의에게 명을 내려야겠군.”
그런 우의 느낌은 그대로 들어맞았다.
계절이 바뀔 무렵, 향은 급속하게 쇠약해지기 시작했다.
이에 급보를 실은 순양함이 바로 신지로 급파되었다. 신지의 항구에 도착한 순양함에서 내려진 급보는 바로 전신을 통해 현에게 전달 되었다.
이에 현은 바로 신지를 떠나 본지로 돌아왔다.
“소손이 왔습니다!”
현이 자신의 도착을 알리자, 향은 미소를 지으며 환영했다.
“우리 손자 왔소? 늦기 전에 손자 얼굴을 봐서 다행이오.”
“곧 기운을 찾으실 것입니다.”
현의 말에 향은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