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175
〈 175화 〉 서명하시오, 배틀 메이지!(1)
* * *
근본(??)이란 게 있다.
무엇인가 시작될 때의 처음, 무언가의 뿌리와 기초를 가리켜 근본이라 부른다. 발음될 때는 일견 가벼우나, 근본이란 두 음절의 단어가 품은 뜻은 결코 가볍지 않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근본을 운운하는 욕설은 사람을 확 돌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 인성을 욕하는 건 흘려 넘기면 된다. 실력 부족? 업적으로 찍어 누르면 그만이다.
하지만, 근본을 끌고 온다면.
이를테면, 아래와 같은 언어를 입에 담는다면.
「근본이 천한 새끼.」
「이런 근본도 없는 새끼.」
「기본기도 모르는 새끼가 어딜?」
어디 눈이 안 돌아가고 배기겠는가?
위와 같은 문장으로 수년간 뒷담화를 들어봤다면, 내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잿빛 마탑에서 머물렀던 시기.
내가 아직 마탑주들의 아가리를 싸물게 할 업적을 쌓지 못했던 시기, 나는 저런 문장들을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어야 했다.
그 뒤로 근본이란 단어는 내게 있어 역린이 됐다. 내 앞에서 근본을 운운한다는 건, 내게 곧 싸움을 거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배틀 메이지는 근본 없는 것들이다.」
그리고, 누군가 싸움을 걸어왔다.
내게 대뜸 주먹을 날린 것이다. 내 자존심이 오목하게 파였다. 조금, 아니, 많이 아팠다.
‘근본(??).’
다른 건 다 참아도 근본 없다는 소리를 참기란, 내겐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네가 뭔데 근본을 논해, 씹새야.’
나는 근본이 있다.
그러니, 내가 만든 클래스도 근본이 있을 것이다. 비록 내가 한때 실언(??)했다곤 하나···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아무튼 아니었다.
‘아무튼!’
근본이란 쟁취하는 것이다.
클래스의 창시자로서, 내겐 켈르할름의 명치를 오목하게 만들어야 할 의무가 있었다.
“걸어온 싸움을 마다할 이유는 없지.”
나는 학사 게시판을 향해 걷는다.
내 손에는 몇 장의 종이가 들려있었으며, 이는 아론 학장과 전투 마학과의 맥하트 교수에게 허가를 받아온 특강의 공지였다.
‘위자드를 척살하는 방법이란 주제는, 너무 언어 선택이 자극적이라며 반려 당하긴 했지만···.’
배틀 메이지의 이해.
이 주제로는 다시 허가가 떨어졌다.
「그, 라니아 교수? 일단 허가를 내려주긴 하겠다마는, 자네 일단은 위자드(Wizard) 클래스가 아니었던가?」
비록, 아론 학장이 무척이나 미심쩍은 눈길로 나를 바라보긴 했지만.
「라니아 교수는 배틀 메이지 클래스에 대한 조예가 깊소, 아론 학장. 실력으로는 흠잡을 데 없는 교수이긴 하나··· 내 조금 염려가 되는군.」
맥하트 교수가 ‘또 무슨 일을 치려고?’ 하는 시선으로 나를 흘겨보긴 했지만, 어쨌든 간 허가는 떨어졌다. 낙장불입이었다.
탁.
나는 학사 게시판 앞에 멈춰섰다.
복도를 돌아다니던 학생들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그들은 내 얼굴을 한번 보고, 내 손에 들린 종이 뭉치를 보고 숨을 헛삼켰다.
착!
내가 힘차게 종이를 게시판에 붙였다.
게시판에 붙은 공지들이 펄럭, 하고 흔들렸다. 공지를 붙인 위치는 켈르할름의 특강 공지 바로 옆이었다. 나는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덤벼라, 켈르할름.’
보여주겠다.
진정한 근본이 무엇인지.
2.
젊지만 실력 있는 교수란 흔치 않다.
마학(??) 아카데미인 아플리아에는 더욱더.
아플리아의 교수진들의 평균 나이는 제법 높은 편이다. 젊은 교수가 한둘 있긴 하지만, 그들의 외견은 사실상 늙은 교수들과 별반 차이가 없다.
마학이란 탐구의 항목이다.
시간을 들인 만큼 성과가 나오고, 그 성과가 곧 실적으로 이어진다. 그런 마학계에서 젊은 인재란, 밤잠을 줄여가며 시간을 갈아 넣은 인물들을 가리키곤 했다. 그런 인물들을 부르는 단어가 있다.
‘폐인.’
퀭한 눈동자.
언데드를 방불케 하는 초췌함.
긴 연구 시간으로 인해 굽은 허리.
아플리아에 상주 중인 젊은 교수들은 대게 사람 같지 않은 몰골을 하고 다니는 경우가 많았다. 젊은 조교들이라 해도 그리 다르지 않다. 교수의 노예와 마찬가지인 그들은 꽃다운 청춘을 연구실에 처박힌 채 보내고 있었으니까.
물론 모두가 그렇지는 않다.
세상만사가 그러하듯, 예외란 있는 법이니까.
예를 들자면, 라니아 반 트리아스가 그렇다. 올해 초에 아플리아에 교수로서 발을 들인 그녀의 나이는 젊다. 스물하나라는 나이에 교수라는 직함을 단것도 모자라, 그 외견 또한 나이에 걸맞다.
폐인 같지가 않다.
허리는 올곧게 폈으며, 발걸음은 가볍다.
자주 미소 지으며 언제나 당당하다. 학기 초에는 그녀에 대해 로망을 가진 학생들이 제법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젊고, 화사하고, 실력 있으며, 그 외모마저 출중하다.
학생들의 호감을 사기에 완벽한 요소를 지닌 그녀지만··· 그녀는 현재 아플리아에 악몽으로서 군림하고 있다. 그 파멸적인 행보에도, 그녀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에는 그녀의 외모가 한몫했으리라.
교수진에 대한 기대는 한계까지 떨어졌다.
하기야, 어차피 잘 가르치면 그만이지, 교수의 외모가 뭐 대수란 말인가? 그런 기조가 아플리아에 맴도는 와중에 새로운 손님이 아플리아에 찾아왔다.
머나먼 이국에서 찾아왔다는 마법사.
젊지만, 실력 있는 인물.
날카롭고 차가운 인상을 지닌 미남.
스스로를 르티아라 소개한 교수.
순식간에 위자드(Wizard) 계열 학생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그의 위상은 시간이 흐를수록 드높아진다. 그 정체를 아는 아론 총장은 식은땀을 흘릴 분이지만, 그 점은 학생들이 신경 쓸 부분이 아니다.
「르티아 교수님 이번 수업 봤어? 회로의 활용 두 번째 파트 들어갔는데, 진짜 장난 아니야!」
「진짜 신선해. 하나의 주문을 쪼개서 활용하는 거. 이거 하나로도 이만큼의···.」
강의는 호평 일색이다.
「거기에 과제도 없어. 수업 시간에 다 끝난다니까? 라니아 교수님하곤 달리···.」
「확실히, 과제가 없다는 거하고, 알아듣기 쉬운 강의라는 점은···.」
그리고, 르티아 교수는 자연스레 비슷한 특징을 가진 어느 교수와 비교되기 시작한다. 그 강의 방식이 비슷할뿐더러, 분위기마저 닮은 탓이다.
「자꾸 라니아 교수님하고 비교할래? 너 그러다 큰일 나. 진짜, 장난 아니고.」
「샤를릿, 너 왜 그래?」
「아무튼 그런 게 있어, 진짜 조심해. 그분의 이름을 함부로 불러서는 안 돼. 정말로.」
누군가는 악몽의 귓가에 소문이 들릴까 걱정하지만, 그것은 너무나도 늦은 걱정이다. 르티아 교수를 중심으로 한 소문이 아플리아를 한 바퀴 돌 때 쯤··· 학사 게시판에는 새로운 공지 하나가 올라온다.
[배틀 메이지의 이해] 담당 교수 : 라니아 반 트리아스.
전투 마학과 학생들은 참여를 권장함.
라니아 반 트리아스.
그 이름을 확인한 전투 마학과 학생들은 비명을 내지른다. 여름이 다가오던 어느 날, 깊은 숲속에서 사흘 밤낮으로 치렀던 실습 시험을 그들은 아직 잊지 않았다.
숲의 끝.
그곳에서 자신들을 기다리던 아플리아의 악몽.
분명 위자드 클래스라고 들었건만, 주문 하나 안 쓰고 맨손으로 도전자를 때려눕히던 그 모습은··· 전투 마학과 학생들의 뇌리에 악몽으로 각인되어 있다.
‘참여를 권장.’
그 문구가 필참하라는 협박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모르는 학생은 없다. 전투 마학과 학생들이 거품을 무는 가운데, 싸움은 조용히 막을 울린다.
광인(?人), 켈르할름 벨 아르티아.
아플리아의 악몽, 라니아 반 트리아스.
초인간의 분쟁이라기엔, 지나치리만치 멋없는 싸움이었다.
3.
배틀 메이지의 이해.
전투 마학과의 태반이 듣게 된 수업.
“제가 이 강의를 개설한 이유부터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여기 모인 여러분은 전부 배틀 메이지 클래스가 맞으시죠?”
단상에 선 교수가 있다.
모두가 잘 알고 있는 교수이며, 아플리아의 악몽으로 군림하고 있는 라니아 반 트리아스다. 특강에 앞서 그녀가 수업의 개설 목적을 설명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평소와는 조금 달랐다.
머리 뒤로 깔끔하게 묶어 내린 잿빛 머리칼.
언제나와 같은 양복 차림이 아닌, 활동복에 가까운 차림. 그리고 무엇보다··· 잔잔한 호수와도 같던 푸르른 눈동자가 지금은 열기로 들끓고 있다.
“여러분, 언제까지 놀림만 받을 겁니까?”
그녀가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학생들은 그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놀림이라니, 무엇이?
“배틀 메이지는 신설 클래스입니다. 그 명성 높은 잿빛 마법사님의 전투법을 기반하여 만들어진 파격적인 클래스 아닙니까?”
그렇다. 파격적이고 신선한 클래스.
“파격적이고 신선한 것. 그러니까, 낯선 것. 그런 것들이 으레 그러하듯··· 배틀 메이지 클래스는 저열한 마법사들에 의해 평가절하 받는 마당입니다. 저는 이 사실에 몹시 슬픔을 느낍니다.”
그···런가?
평가절하된 적이 있던가?
‘아, 그러고 보니 특별 방문한 교수님이 그런 말을 했다고 하던가.’
학생들로선 별 관심이 없는 이야기였다.
몇몇 늙은 교수들이 전투 마학과를 깐다곤 하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배틀 메이지는 이미 그 실용성이 전장을 통해 증명된 직업군이다. 그런 놀림 정도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만한 인내심이 전투 마학과 학생들에겐 있었다.
“무근본이라니, 이런 말을 듣고 참을 마법사가 세상에 몇이나 있을까요?”
물론 라니아에겐 없었다.
“말도 안 되는 처사입니다.”
그녀가 목소리를 높였다.
“여러분은 조금 더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다닐 자격이 있습니다. 어디가서 무근본이란 소리를 들을 만큼 한심한 마법사가 아니란 뜻입니다.”
단상에 선 교수는 열기로 들끓지만, 정작 자리에 앉은 학생들은 그 열기에 따라가지 못했다.
“배틀 메이지.”
그녀가 칠판에 멋들어진 글자로 ‘배틀 메이지(BattleMage)’를 적어 내렸다. 그리곤 칠판을 손바닥으로 치며 그녀가 말을 이었다.
“배틀 메이지는 마법사이면서도, 마법사를 사냥하기에 최적화된 클래스입니다.”
알려지지 않았던 근본.
흔히들 착각하던, 배틀 메이지의 기원.
“마법사를 때려잡는다. 마법사를 어떻게 해야 사냥할 수 있는가. 그 점에 착안하여 체계화된 전투법이야말로, 배틀 메이지의 기원이죠.”
그것이 클래스 창시자의 입으로 발음된다.
그녀의 정체를 알고 있는 두 학생만이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는 가운데, 그녀가 숨을 가다듬었다.
“오늘부터 14일.”
라니아가 짝, 하고 박수를 쳤다.
“저는 여러분께 위자드를 척··· 아니, 사냥하는 방법에 대해 알려드릴 생각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 의지로 가득 찬 눈빛이다.
그녀의 뜨거운 시선에 학생들은 부담을 느낀다.
『위자드(Wizard) 사냥.』
칠판에 멋들어지게 쓰인 문장.
그 문장을 보며 학생들은 한 가지 의문을 품는다.
‘···라니아 교수님도 위자드 아니던가?’
그건 무척이나 당연한 의문이다.
그러나, 차마 그것을 입 밖으로 내뱉을 만큼 용기 있는 학생은 그곳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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