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176
〈 176화 〉 서명하시오, 배틀 메이지!(2)
* * *
위자드(Wizard)를 척살하는 방법.
그것은 근본이요, 기원이자, 본질이다. 근본을 논함에 있어 나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위자드를 어떻게 죽일 것인가?’
그것은 달리 말해, 내게 고대의 해골바가지 스케발의 두개골을 어떻게 해야 잘 박살 낼 수 있는가, 하고 묻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 물음에 답하는 건 어렵지 않다.
이미 질리도록 정리했다. 몇 번이고 부딪쳐 가며 내 손으로 직접 증명해냈다. 내 방안의 깊은 곳에 모아둔 스케발의 두개골들이 그 증거였다.
“위자드(Wizard) 사냥.”
이미 알고 있는 것.
확신할 수 있는 것.
“마법사의 머리를 터뜨리는 방법.”
쭈욱, 하고 나는 장갑을 끌어당겼다.
“지금부터 강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잘 들어라, 이것들아.
내가 지금부터 근본(??)에 대해 논할 테니.
2.
전투 마학과 학생들을 위한 특강.
배틀 메이지의 이해.
해당 수업이 이루어지는 강의실에 앉은 학생들은 단상에 선 교수의 말에 귀 기울였다. 교수의 목소리에는 열기가 넘쳤다.
“우선, 배틀 메이지는 여러분도 알다시피 훌륭하신 잿빛 마법사님께서 개발한 클래스입니다. 전장에서 탄생한 클래스라, 이 말입니다.”
평소의 차분한 라니아 교수의 모습과는 상반된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차분히, 그리고 냉정하게 대응하던 악몽은 온데간데없다.
“그분이 머리를 쥐어짜 만든 클래스의 비밀을, 여러분은 이곳에서 듣게 될 겁니다. 제법 영광이지 않나요? 영광으로 아십시오.”
학생들은 조금 질린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그야 영광이긴 하다. 영광이긴 하다만···.
‘라니아 교수님이, 원래 저러셨나···?’
무언가 괴리감이 든다. 오늘따라 유난히 이를 악물고 수업을 하는 것 같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하던 학생들은 그럴싸한 추측을 세웠다.
‘라니아 교수님의 오빠가.’
‘응, 그러고 보니 일단 관계상으론.’
잿빛 마법사 라니엘 반 트리아스.
그와 같은 가문인, 라니아 반 트리아스.
그 순서를 따지면 라니엘이 오빠요, 라니아가 동생이다. 동생된 자로서 오빠를 존경하는 것일까? 학생들은 슬그머니 라니아를 흘겨봤다.
쿵!
칠판을 두들기며그녀가 두 눈을 부릅뜬다.
그 모습에 학생들은 살짝 몸을 뒤로 뺐다. 단순히 ‘존경심’이라고 부르기엔 몹시, 몹시··· 강렬한 의지가 그 푸른 눈동자에 서려 있었다.
조금 거리를 두고 싶었다. 정말로.
거리를 둔 채 학생들은 속으로 생각한다.
‘응, 많이 존경하시는구나···.’
‘잿빛 마법사님 정도면, 뭐···.’
잿빛 마법사가 어떤 존재인가?
온 마법사들의 우상이 된 인물이다. 그만한 인물을 오빠로 두었다면, 과연 저 정도 존경심은 싹트는 것일까?
‘아니, 이쯤 되면 존경심이 아니라···.’
집념이다.
증명해내고 말겠다는, 필사의 집념.
그 뜨거운 집념이 도대체 어디에서 왔는지, 학생들로선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단 두 명을 제외하고선.
“······.”
벨노아는 말없이 제 눈가를 쓸어내렸다.
그는 라니아 교수의 정체가 잿빛 마법사임을 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벨노아는 자신의 얼굴이 다 뜨거워지는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부끄럽다, 진짜 부끄럽다.’
라니아 교수님은 왜 저러시는 걸까.
본인의 입으로 ‘훌륭한’ 잿빛 마법사라 발음하는 대목에서, 벨노아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차마 눈을 마주칠 수가 없었다.
본인이 본인의 위업을 칭송한다.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그것도, 자기보다 어린 학생들의 앞에서.
‘추하다···!’
무심코 그런 생각이 튀어나온다.
참으로 불경스럽게도, 벨노아는 자신이 속한 클래스의 창시자를 ‘추하다’라고 느끼고 만다.
“오.”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벨노아가 고개를 돌렸다. 옆에 앉은 학생이 하나 있다. 생각 없이, 그저 향하는 대로 살 것처럼 생긴 학생이다.
“과연.”
라크 반 그레이스.
그가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꼭 감명 받은 듯한 눈치다. 벨노아는 라크를 바라보며 딱하다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정체를 모르니까 저럴 수 있는 거겠지.’
착각이었다.
라크 또한 라니아의 정체를 안다. 알고있음에도, 라크는 별생각이 없다. 대부분의 사람은 타인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화자의 존재를 의식하고, 말에 숨은 뜻을 찾으려 한다.
‘과연, 교수님은 훌륭하신 분이군.’
그러나 라크는 아니다.
라크는 들리는 대로 받아들인다. 하물며, 그것이 자신이 신뢰하는 교수님이라면 더욱더. 라크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라니아의 강의에 귀 기울였다.
“···후우.”
“오오···.”
두 학생이 서로 다른 생각으로 한숨과 감탄을 뱉는 가운데, 라니아의 수업은 계속 이어졌다.
* * *
“누군가를 깔아뭉개기 위해선, 상대에 대해 잘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배틀 메이지는 위자드를 상대하기 위해 특화된 클래스입니다.”
위자드(Wizard).
최초의 클래스.
“위자드 클래스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라니아가 손가락을 쫙 펼쳤다.
“모든 주문 중, 위력만을 본다면 원소 계열 주문만 한 게 없습니다. 위자드 클래스는 바로 그 원소 주문을 다루며, 다양한 주문으로 그를 보조하는 느낌의 클래스죠.”
묵직한 한 방을 때려 박는다.
그 한방을 위해 함정을 깔고, 잡다한 주문들로 시간을 번다. 그것이 위자드 클래스의 기본적인 전투법이었다.
“그러니 거리를 벌리면 성가셔집니다. 시간을 주면 줄수록, 거리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강해지는 게 바로 위자드란 클래스입니다.”
그렇기에, 전열의 뒤에 숨는다.
전열이 시간을 벌어준 만큼의 효율을 내고도 남는 것이 위자드란 클래스였다.
“또한, 그들은 회로에 대한 이해가 높습니다. 주문의 극한을 추구하는 이들답게, 전반적인 주문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편이죠. 회로의 끄트머리만 봐도 다음에 나올 수를 예측합니다.”
예측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대응하겠지요. 상성인 주문을 발현하던, 방어 주문을 짜내는 식으로요. 물론, 상당한 수준에 이른 위자드들은 이런 것도 가능합니다.”
라니아가 앞줄에 앉은 학생 하나를 가리켰다.
“아무거나 회로 하나를 그려 보시겠습니까?”
학생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회로 하나를 그린다. 허공에 새겨지는 회로를 보며 라니아가 팔을 뻗었다.
“중급 주문, 충격파(Shockwave).”
주문을 간파한다.
그리곤, 학생이 그리던 회로에 제 손가락을 끼워 넣었다. 선과 선의 틈새에 그녀의 손가락이 결렸다. 회로를 그리던 학생의 눈동자가 커졌다.
끼리리릭!
회로에 건 손가락을 까딱인다.
그것만으로 회로의 주도권은 뒤바뀐다. 라니아의 손 위에 완성된 회로가 떠올랐다.
“회로의 강탈입니다. 상대가 그리는 회로가 무엇인지 알고, 그 중심을 이해하니 부릴 수 있는 기교입니다. 쉬운 일은 아닙니다.”
일획(一?)만을 보고 그것이 무슨 글자인지, 무슨 의미를 지닐 단어로 바뀔지 예측하는 것에 가까운 기교이다.
“쉽지는 않지만, 성공만 한다면 싸움의 방향이 한순간에 뒤바뀌죠. 최전선의 위자드들의 태반은 회로의 강탈을 할 줄 압니다. 물론, 자신보다 높은 수준의 상대에겐 먹히지 않지만요.”
라니아가 손을 휘적여 회로를 없앴다.
“이처럼, 위자드의 특징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하나, 원소 주문을 주로 다룬다.
둘, 거리가 벌어지거나 시간을 줄수록 강해진다.
셋, 회로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마법전에서의 우위를 점한다.
“이를 차례로 공략해봅시다.”
라니아가 짝, 하고 박수를 쳤다.
칠판에 적힌 세 개의 특징 중 첫째를 가리키며 그녀가 말을 이었다.
“원소 주문의 상대법은 본래 ‘상성’을 이용하는 겁니다. 하지만 이는 모든 위자드들에게 통용되지 않는 일입니다. 수준 높은 위자드일수록 상성을 극복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습니다.”
켈르할름처럼 주문을 활용하거나.
그게 아니라면···.
“대표적으로 고대 리치, 스케발의 경우는 모든 속성의 원소 주문을 극한까지 다룰 줄 압니다. 같은 속성계열 주문으로 상성을 점하기란 어렵습니다.”
모든 속성을 다루거나.
초인의 반열에 이른 위자드들은 저마다의 약점을 극복할 수단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하루 이틀 사이에 만들어진 게 아니다.
그들의 삶.
견고하게 쌓아 올린 성벽.
그것을 뚫어내기 위해선, 다른 수단을 갈구해야 함을 라니아는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접근 방식을 바꿉니다.”
라니아가 그렇게 말하며 손가락을 튕겼다.
“그 방법은 여러분도 알고 있습니다.”
강타(Smite).
한줄기의 빛줄기가 번뜩인다.
허공을 찢어발긴 타격계 주문의 잔상을 가리키며 라니아가 말했다.
“상성이 존재하지 않는 타격계 주문을 씁니다. 타격계 주문은 물리적인 충격을 입힙니다. 그렇기에 여러분이 체술을 활용하는 겁니다.”
육체에 강화를 건다.
접근해서 타격계 주문을 때려 박는다.
모두가 알고 있는 배틀 메이지 클래스의 기본이, 어째서 그런 형태를 띠는지 라니아는 설명했다.
“이는 곧 두 번째 특성의 공략과도 같죠. 위자드들은 시간을 줄수록 강해집니다. 거리를 벌릴수록 번거로워집니다. 그러니 줄입니다. 육체에 강화를 걸어 접근전으로 끌고 갑니다.”
그녀가 잠시 말을 멈췄다.
“물론, 이에 근간이 되는 주문이 하나 있긴 하지만··· 현재 여러분들로선 어려운 일이겠군요. 이는 졸업반 커리큘럼에서 다룰 예정입니다.”
천칭을 통한 대가의 전환.
그것에 대한 설명을 뒤로 미룬 채, 그녀가 마저 설명을 이었다.
“두 가지를 공략했으니, 마지막 하나가 남군요.”
마법전에서의 우위.
주문의 강탈과 반격.
“이건 여러분이 더 잘 알고 있을 거라 봅니다.”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제 손등을 바라본다. 손등에 스톡(Stock)된 주문들이 그 파훼법이었다.
“이미 발현상태에서 저장된 주문. 한순간의 틈도 없이 곧장 발동되는 주문은 강탈할 수 없습니다. 변수가 만들어지고, 틈이 만들어집니다.”
그녀가 손가락으로 제 옆머리를 툭툭, 건드렸다.
“그리고 틈이 만들어지면 끝이죠. 한순간의 틈에서 승패가 갈립니다. 틈을 만들고 머리에 바람구멍을 내주십시오. 주문을 짜내는 건 머리입니다. 머리가 터지면 주문을 못 쓸 거 아닙니까?”
학생들이 질겁한다.
언어 선택이 제법 과격했음을 깨달은 라니아가 큼큼, 하고 몇 번 목을 가다듬었다.
“아무튼 간, 이제는 이해하셨으리라 봅니다.”
그녀가 칠판을 손등으로 가볍게 쳤다.
“이것이 배틀 메이지의 근본입니다.”
실용성과 유연함.
그런 건 부차적인 것에 불과하다.
“배틀 메이지의 모든 것은 위자드를 사냥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여러분이 배워왔던 모든 것들이, 마법사를 죽이기 위한 수단입니다.”
기원(??).
“위자드가 견고한 성벽 속에 숨은 대포라면, 배틀 메이지는 창입니다. 성벽을 뚫어버리고 그 안에 숨은 대포를 꿰뚫을 창.”
용사, 카일 토벤.
그와 비슷한 싸움법을 지닌 클래스.
“오늘부터 2주간, 여러분의 창날은 보다 날카로워질 것입니다. 모든 걸 뚫을 수 있게끔.”
어떻게 그를 가능케 할 것인가?
라니아는 환히 웃으며 단상에서 내려왔다. 드르륵, 강의실의 문을 열며 그녀가 학생들을 향해 따라오라는 듯 손짓했다.
“따라오십시오.”
학생들은 불길함을 느낀다.
그들은 머뭇거리면서도 라니아의 뒤를 따라 움직인다. 복도를 걷고 계단을 내려간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 보면 어느 곳에 도착한다.
[단련실]전투 마학과를 위해 마련된 체육관이다.
맥하트 교수와 수업할 때 자주 들렸던 곳이다. 그러나, 굳게 닫힌 체육관의 문이 열렸을 때··· 학생들의 동공이 거세게 흔들렸다.
“검의 초인, 쿤텔께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열린 체육관의 문.
그 너머로 보이는 마경(??).
지옥으로 가는 문의 앞에 선 교수가 해맑게도 웃는다. 그 미소는 무척이나 아름답다.
“실전만 한 게 없다.”
그녀가 체육관 안을 가리켰다.
“합시다. 실전.”
학생들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맥하트 교수님과 제가 최선을 다해 여러분의 성장을 돕겠습니다.”
어째서 라니아 교수님이 활동복을 입고, 머리칼을 가지런히 정리해 두었는가. 그 의문이 풀린 순간이다. 벌벌 떠는 학생들에게 라니아가 말했다.
“2주일이 지났을 때, 여러분은 어엿한 배틀 메이지가 되어 있을 겁니다.”
그녀의 웃음은 티 한 점 없이 맑다.
악의 따위는 찾아볼 수도 없다. 진정으로 학생들의 성장을 바라는 그녀의 모습에··· 학생들은 무심코 하나의 속담을 떠올리고 만다.
『지옥으로 향하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
학생들은 지옥으로 향한다.
라니아의 아름다운 미소와 함께.
3.
전투 마학과 특별 강화 주간.
전투 마학과 학생들의 곡소리가 울려 퍼지긴 하나, 아플리아는 언제나와 다를 바 없는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
평화로이 일상이 이어지는 가운데, 하운드를 비롯한 켈르할름의 방문을 알고 있는 이들은 한 가지 의문을 품는다.
‘도대체, 켈르할름은 아플리아에 왜 방문했는가?’
당연한 의문이었으며, 풀리지 않는 의문이다.
켈르할름은 얌전히 수업을 할 뿐이다. 그를 감시하는 하운드들의 경계심마저 느슨해질 지경이다.
“무언가 있을 텐데.”
칼트는 툭툭, 테이블을 두들긴다.
테이블 위에는 켈르할름에 대한 온갖 자료가 늘어져 있다. 광인의 과거. 광인의 행적에 대해 모아둔 자료들을 바라보며 칼트는 중얼거렸다.
“켈르할름은, 학술도시 아르티아의 총학장이었다. 존경받는 인물이었으며, 유능한 교육자였다.”
툭.
“그는 수많은 실력 있는 마법사를 배출했으나, 그중에서도 으뜸을 뽑자면 그녀가 거론된다.”
툭.
“셀레스티아 폰 아르타님.”
툭, 하고 테이블을 건드린 칼트의 손가락이 정지했다. 그는 한 인물에 대한 기록을 보았다.
“최상위 정령 다섯을 동시에 부리던, 역대 최고의 재능을 타고난 소환사.”
그러나 칼트는 그 마법사의 이름을 여태까지 알지 못했다. 백 년 전 인물이라곤 하나, 그 정도 재능을 타고난 인물이라면 무언가 업적을 남겼을 텐데?
어째서 그 이름을 처음 듣는 것인가.
그 이유가 바로 기록의 끝에 적혀 있었다.
“졸업식 당일 사망.”
그녀의 죽음과 함께 아르티아는 멸망했다.
그 이유는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았다.
어떤 식으로 멸망했는지, 그녀의 죽음과 아르티아의 멸망이 무슨 연관이 있는지··· 어느 기록에도 나와 있지 않았다.
‘그저, 배교자와 연관이 있다고 나왔을 뿐이다.’
칼트는 제 입가를 매만졌다.
“근데, 이 얼굴 어디에서 봤는데.”
연보랏빛의 머리칼.
연보랏빛의 눈동자.
기록에 남은 그녀의 초상화에서 칼트는 왠지 모를 기시감을 느낀다. 칼트가 무심코 아, 하고 탄식을 내뱉었다.
“레스티 엘레노아.”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