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174
〈 174화 〉 광인, 그리고 악몽(4)
* * *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하겠다.”
두 시간 동안 이어진 강의가 끝이 났다.
처음 몇 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몰입 상태로 보낸 학생들이 숨을 토했다. 여기저기서 탄식이 쏟아져 나오는 가운데, 켈르할름은 유유히 단상에서 내려왔다.
그 뒷모습을 보는 학생들의 눈빛 또한, 강의의 초반부와는 사뭇 달라져 있다.
원소 마학계의 난제에 대해 ‘아니다’ 라고 단정 지을 때만 해도 오만하고, 자기 잘난 맛에 사는 마법사라고 생각했으나··· 그 평가도 뒤집힌 지 오래다. 학생들의 눈빛에 존경심이 묻어나온다.
그만한 강의였다.
두 시간 동안 이어진 강의는 위자드(Wizard)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더없이 완벽한 강의였다. 한 번쯤은 생각해봤을 문제. 그러나, 답이 나오지 않은 문제에 저 교수는 가이드 라인을 제시해 주었다.
방향이 보인다.
어떤 식으로 접근해야 할지 깨달았다.
“뭔가, 응···.”
“이런 방법도 있구나. 이걸 이렇게···.”
켈르할름이 제시한 새로운 회로의 활용법.
그것을 노트에 끄적이는 학생들이 많다. 획기적인 방법이었다. 낯선 방법 속에서 학생들은 왠지 모를 익숙함을 느낀다.
“이거, 왠지···.”
“라니아 교수님 강의 같다.”
1학기 말에 들었던 강의.
라니아 교수의 기초 주문의 활용.
그녀의 강의 또한, 지금 막 끝이 난 이 수업과 같은 맥락을 가지고 있었다.
익숙함 속에서 낯섦을 찾아내는 것.
하나의 주문이 수십 갈래로 찢어지는 과정.
낯섦 속에서 깨달음을 찾는 것.
다루는 주제는 다르다. 회로를 다루는 방식 또한 다르다. 그러나, 주제를 관통하는 핵심만큼은 공유하고 있다. 학생들은 묘한 기시감을 느낀다.
“···있잖아, 나만 그런 건가 싶긴 한데.”
“뭐가?”
“방금 강의 말야, 라니아 교수님 것보다 이해가 잘되는 것 같지 않아···?”
누군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저들끼리 작게 속삭인 말이나, 귀가 무척이나 밝은 어느 교수의 귀에는 그 말소리가 들리고 만다. 라니아의 눈동자가 부릅떠졌다.
“에이, 라니아 교수님 강의를 먼저 들어서 그런 거 아냐? 한번 들어본 것 같은 주제라서, 더 이해가 잘되는 거겠지.”
“그런가? 응, 그런 것 같긴 하다.”
“그래도 과제 없는 건 좋지 않아?”
“그건 인정.”
하하, 학생들의 가벼운 웃음소리가 맴돈다.
“저분도 아플리아에 머물러 주심 좋겠다.”
“그러게. 되게 실력 있는 마법사 같지 않으셔? 위자드 클래스인 게, 저분 말대로 근본 있달까···.”
그저 가볍게 오가는 이야기다.
주제는 금세 바뀌고, 학생들의 잡담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지만··· 옹졸한 어느 마법사는 차마 그 대화를 흘려 넘길 수가 없다.
파르르.
라니아의 어깨가 떨렸다.
“···교수님?”
그녀의 곁에 앉은 레스티만이 영문을 모르겠단 표정으로 라니아를 흘겨볼 뿐이었다. 때마침 라니아가 휙, 하고 고개를 돌렸다.
“레스티.”
“네?”
“배틀 메이지(Battlemage).”
라니아가 또박또박, 한 글자 한 글자에 힘을 주어 발음했다.
“배틀 메이지 클래스, 어떻게 생각해?”
“···네?”
레스티가 눈을 깜빡였다.
무척이나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레스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떻게 생각햐나구 물어봐도···.’
사실 별생각이 없다.
레스티는 서머너와 위자드, 총 두 가지 계열의 클래스를 동시에 전공하고 있었다. 클래스의 분류라 해봐야 그녀에겐 큰 의미가 있지 않았다.
“음···.”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말하면 되는 걸까.
레스티는 일단 생각나는 대로 말을 이었다.
“스톡(Stock)을 활용해 주문의 발현 속도를 올리고, 다양한 주문을 스톡해둠으로써··· 실전에서 많은 변수를 만들 수 있는 클래스···아닐까요?”
“응, 그렇지.”
“거기에 체술, 타격계 주문을 섞어서 상성도 타지 않는다고 들었어요. 잿빛 마탑에 관련 서적이 많거든요. 아무래도, 전대 차기 마탑주님이 만드신 클래스다 보니···.”
사실이었다.
배틀 메이지 클래스에 관한 서적이 잿빛 마탑에는 유난히도 많았다. 당장 마탑의 1층, 방문자들의 대기실에만 해도 수십 권씩 꽂혀있을 정도니까.
거기까지 말하곤 레스티는 라니아의 반응을 살폈다.
“그렇지, 그게 맞지.”
교수님께선 만족스레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마치 제 자식의 칭찬을 듣는 부모와 같은 모습이었다. 그 모습에, 레스티는 라니아가 수업 내내 어깨를 떨어댄 이유에 대해 얼추 알 것 같았다.
‘···하긴, 오빠분께서 만든 클래스니까.’
라니엘 반 트리아스.
배틀 메이지는 바로 그 잿빛 마법사가 만든 클래스다. 그 클래스가 무근본이라고 욕을 먹으니 기분이 썩 좋지 않았던 것일까.
‘저번에도 느꼈는데···.’
잿빛 마법사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면 민감하게 반응하시는구나. 오빠분하고 사이가 좋은 걸까? 레스티로선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 이게 맞지. 근본이 좀 없으면 어때. 얼마나 효율적인 클래스인데.”
레스티가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라니아는 턱을 매만지며 뭔갈 계속 중얼거렸다.
달그락.
그런 라니아에게서 시선을 떼고, 레스티는 짐을 챙겨 일어날 준비를 마쳤다. 다음 수업을 들으러 강의실을 이동할 시간이었다.
“그럼, 라니아 교수님 저는···.”
이만 가볼게요.
그렇게 인사를 하고 레스티가 일어나려는 순간이다. 라니아가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증명한다.”
무척이나 음산한 목소리였다.
레스티는 흠칫, 어깨를 떨었다.
‘증명? 뭐를?’
증명이란 단어가 이다지도 불길한 단어였던가?
왠지 모를 섬뜩함에 레스티의 움직임이 뚝, 하고 멈췄다. 어정쩡한 자세로 멈춰선 레스티가 라니아를 쳐다봤다.
“증명, 증명···.”
강의는 진작에 끝났거늘, 저 교수님은 무언가 다른 주제에 몰입하고 있었다.
“응? 아, 미안.”
레스티의 시선을 느낀 라니아가 아, 하고 탄식을 뱉으며 레스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녀가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그래, 가보렴. 다음 수업 늦겠다.”
언제나와 같은 부드러운 목소리다.
그러나, 그 부드러움 속에는 서슬 퍼런 칼날이 감춰져 있다. 그것을 가늠한 레스티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생각을 하시는진 몰라도···.’
깊게 관여하고 싶진 않다.
레스티는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2.
광인, 켈르할름이 아플리아에 도착한 지 며칠의 시간이 흘렀다. 그 며칠 동안, 교대로 켈르할름을 감시하던 하운드들은 얼이 빠질 지경이었다.
“그러니까.”
이번 작전의 총괄 책임자이자··· 하운드 중 가장 뛰어난 실력을 지닌 인물. 추적자(Tracker) 칼트가 입을 열었다.
“지난 나흘간 켈르할름의 일과를 관찰하고, 정리한 결과가 이게 끝이라고?”
그가 어이없다는 듯 보고서를 들어 올렸다.
지나치게 단순한 보고서였다. 하운드가 보고서를 작성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업무에 필요한 모든 것을 학습하는 그들답게, 하운드의 실무 능력은 우습게 볼 게 못 된다.
그러나, 어째서인가.
“진짜 이게 끝?”
어째서, 이렇게도 부실한 것인가.
칼트는 팔랑팔랑 종이를 하운드들의 눈앞에 흔들며, 보고서에 적힌 글자를 읽었다.
“수업. 명상. 산책. 명상. 수업.”
“······.”
“수업, 그리고 잠깐 산책. 다시 명상. 아플리아 정원 구획의 벤치에서 세 시간 동안 멍을 때림.”
“···어, 그거 진짭니다. 제가 봤습니다.”
눈치 없게 한 하운드가 손을 들었으나, 칼트의 날카로운 시선에 그는 슬그머니 다시 손을 내렸다.
“진짜 이게 다야?”
“정말 그게 다입니다. 선배님.”
자신들도 어이가 없다는 듯, 하운드들은 어깨를 축 늘어트린 채 한숨을 내쉬었다.
“뭐 마법진을 만드는 것 같지도 않고, 함정을 짜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심지어 다음 수업의 준비랍시고 연구실을 빌리길래··· 드디어 뭔갈 하는가 봤더니, 그냥 평범하게 학습지를 만들고 있지 뭡니까.”
혹시 싶어서, 연구실에 남은 걸 하나 주워 왔습니다. 그렇게 말한 하운드가 종이 한 장을 건넸다. 칼트는 종이를 확인했다.
“······.”
정말로 그냥 학습지였다.
거창한 암호가 숨겨져 있는 것 같지도 않다. 세로로 읽으나, 가로로 읽으나 그냥 학습지다. 빈칸이 들어가 있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학습지.
“···대체 뭔데?”
칼트의 한마디가 하운드들의 심정을 대변했다.
켈르할름이 누구인가?
무려, 광인(?人)이라 불리며 가장 주의해야 할 초인으로 취급받는 인물이다. 미치광이 마법사. 그게 세간에서 켈르할름의 취급이었다.
‘이건, 뭐···.’
그런데, 정작 까보니 어떠한가.
별것 없다. 정말 평범하기 짝이 없다. 심지어 건전하기까지 하다. 아플리아에 방문해서 학생들을 위해 ‘특별 강의’를 해주고 있댄다.
“왜··· 이렇게 정상적이냐?”
광인인데 정상적이다.
건전하게 수업을 준비하고 있다. 눈에 불을 켜고 봐도 흠 잡을만한 곳이 없다. 얼빠진 얼굴로 칼트가 학습지를 바라보고 있자니, 하운드 하나가 입을 열었다.
“그, 켈르할름 말입니다. 진짜 그냥 아플리아에 수업하러 온 것 아닙니까?”
“그럴 리는 없을 거다.”
칼트가 딱 잘라 말했다.
아플리아에 이렇게까지 인력을 밀어 넣은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대부분의 하운드는 단순히 상부의 명령을 따를 뿐이지만, 칼트는 아니었다.
그는 전장의 병사다.
상관의 명령을 따르는 게 병사의 덕목이긴 하나, 마경(??)에선 다르다.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스스로의 판단으로 움직여야 할 때가 더욱 많았다. 칼트는 그런 마경을 건너온 병사다.
그렇기에, 칼트는 알고 있다.
이번 작전에 이상한 것이 한둘이 아님을. 제 1 왕녀 르뤼엘의 경고가 빈말이 아님을. 칼트만큼은 알고 있다. 칼트는 눈살을 찌푸린 채 입을 열었다.
“계속 교대로 따라붙어라. 지금까지 별일이 없었다고, 앞으로도 없으리란 법은 없다. 방심하지 말고 지금대로만 해라.”
하운드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전장에서 숱한 공을 쌓아 올린, 그 이름 높은 추적자 칼트의 명령이다. 그 명령을 가볍게 여기는 하운드는 이 자리에 없었다.
하운드들이 각자의 위치로 향한다.
그들이 사라지고 나서야, 칼트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선배님도 뭔갈 준비하고 계시겠지.”
아플리아에 몸을 담고 있는 인물.
잿빛 마법사, 라니엘 반 트리아스.
제 선배의 모습을 떠올리며 칼트는 속으로 숨을 돌렸다. 확실히, 잿빛 마법사만큼이나 아군으로 든든한 인물이 또 없다.
‘초인을 ‘안전하게’ 제압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선배님 말고 더 있겠어.’
생각 없이, 무척이나 즉흥적으로 사는 것 같아 보이긴 하지만··· 보기와는 달리 생각이 깊으신 분이다. 분명 지금의 상황에도 무언가 대비를 하고 있을테지.
필시 그럴 것이다.
대놓고 드러내진 않지만, 칼트는 제 선배를 제법 존경하는 편이었다.
“다 생각이 있으시겠지.”
칼트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3.
“배틀 메이지의 우월함을 증명한다.”
마나 거래학 교수실.
그곳에 홀로 앉은 라니아는 제 테이블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테이블에 놓인 것은 한 장의 종이다.
“천칭 하나 제대로 못 다뤄서, 반병신이 된 머저리에게··· 배틀 메이지의 실전성과 우월함을 증명한다. 내게는 그래야 할 의무가 있다···.”
특강 신청서.
“증명한다, 증명한다···.”
강의 주제.
아직은 빈칸인 그곳에 라니아는 글자를 새긴다.
사각.
종이 위로 펜이 미끄러진다.
글자를 써 내려가며 라니아는 생각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배틀 메이지 클래스에 대해 착각하곤 한다. 애초에, 잘못 알려졌으니 그게 당연한 거다.
실전성, 실용성, 유동적인 전술성.
전부 다 인정한다.
인정하긴 하는데, 배틀 메이지의 근본은 그런 있어 보이는 것들이 아니었다. 조금 더 말초적인 단어로 표현돼야만 했다. 클래스의 창시자인 그녀가 생각하기에, 배틀 메이지의 근본은 이것이었다.
위자드(Wizard) 클래스의 카운터.
위자드 클래스의 극한에 이른 고대의 해골바가지, 스케발을 사냥하기 위한 전투법을 고안하다 탄생한 게 바로 배틀 메이지 클래스다. 그러니, 그 근본은 위자드를 조지는 데 있다.
근본 있는 놈들을 조진다.
기깔나게 조져대서 인정받은 클래스다.
“어딜 근본도 모르는 새끼가···.”
누가 누구의 앞에서 근본을 논하는가.
승리하는 자가 근본 있는 것이다.
근본이란, 부여받는 게 아닌 쟁취하는 것이다.
‘쟁취한다.’
그 논리는 모순덩어리이나, 안타깝게도 그것을 지적해 줄 인물은 그곳에 없었다. 그녀의 클래스가 일단은, 배틀 메이지가 아닌 위자드로 등록돼 있다는 사실을 지적해 줄 인물 또한··· 그곳에는 없었다.
사각.
종이 위로 펜이 미끄러지는 소리만이 한동안 울려퍼졌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