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173
〈 173화 〉 광인, 그리고 악몽(3)
* * *
신학기가 밝았다.
학생들은 사전에 짜둔 시간표에 맞춰 발을 움직인다. 지난 두어 달간 쥐 죽은 듯 조용했던 학사 내에 활기가 감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는 인물이 하나 있다.
“······.”
제 4 왕녀, 아일라.
기숙사의 방 안에서 창밖을 내려다보며, 그녀는 며칠 전 들은 정보에 대해 떠올린다.
「광인, 켈르할름이 아플리아에 도착했습니다.」
아플리아에 잠복 중인 하운드(Hound)를 통해 들은 정보였다. 올 것이 왔구나, 아일라는 그리 중얼거리며 제 입술을 꾸욱 깨물었다.
별이 속삭인 예언의 의미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그 예언이 필요한 상황이 시시각각 다가옴은 확실했다. 그것이 내일이 될지, 모래가 될지 모르지만··· 언제나 긴장을 풀어서는 안 된다.
‘···그 무엇도 믿어서는 안 된다.’
모든 걸 경계해야 한다.
아일라는 제 신경을 날카롭게 세웠다. 별은 여전히 침묵하고, 아일라는 홀로 자립해야 했다. 그녀는 마음을 다잡고 기숙사를 나선다.
별이 없는 하루가 다시 시작된다.
낯섦 속에서 아일라는 숨을 가다듬었다.
2.
아플리아에 손님 하나가 찾아왔다.
머나먼 이국에서 온 유능한 마법사라고 학사 측에선 그를 소개했다. 어지간하면, 그의 곁에 다가가지 말라는 경고도 함께.
‘생각과 명상, 고뇌하는 시간을 방해받는 것을 그 무엇보다도 싫어하는 분이시다. 되도록 말을 걸지도, 곁에 가서 알짱대지도 말라.’
아론 학장이 내린 권고사항이었다.
‘아무튼, 가까이 가지 마라!’
언제나 부드러운 학장이 그렇게까지 강하게 언급하는 일은 처음이었으므로, 학생들을 포함한 학사진들은 별다른 일이 없으면 외부에서 찾아온 손님의 곁에 다가서지 않았다.
그저 목격담만이 간간이 들려올 뿐이다.
학사 내에 조성된 정원을 거니는 모습을 보았다, 벤치에 앉아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는 모습을 보았다··· 개중에는 자신에게 말을 걸어 무언가를 물어봤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 이야기에 학생들은 귀를 기울인다. 이국에서 찾아왔다는 손님에게, 학생들은 흥미를 느낀다.
그 신분도, 이름도 알지 못하지만, 아론 학장이 깍듯이 대하는 손님이다. 아론 학장이 식은땀을 흘리며 연신 그를 향해 고개 숙였다는 목격담도 학생들 사이를 떠돈다.
흥미와 호기심.
그리고, 그것은 크기를 계속해서 불려 나간다.
2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젊은 마법사.
아론 학장이 깍듯이 대하는 마법사.
이국에서 찾아왔다는 정체불명의 출신.
그 신비로움에 학생들이 눈독을 들일 무렵이다. 학사 게시판에 공지 하나가 붙었다. 학기 초에 진행되는 짧은 특강에 대한 공지였다.
위자드(Wizard) 클래스 학생들이 전공하는, 원소 마법에 대한 특강. 그 강의에 관한 정보는 자세히 나와있지 않다. 심지어 담당 교수에 대해서는 한 줄의 문장만 찍혀있을 뿐이다.
출신 불명. 이름도 불명.
오직 ‘외부 초청 강사’라는 한 줄의 문장만이 적혀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 한 줄이면 충분했다.
‘분명 그 사람이다!’
떠도는 소문으로 접한 손님.
그 손님에 대한 호기심과 흥미에 이끌려, 위자드 클래스 학생의 태반이 특강을 신청하기에 이른다.
“오.”
그리고, 수강을 신청한 건 학생뿐이 아니다.
학사 게시판 앞에 선 어느 교수는 짧게 감탄사를 뱉으며 제 턱을 매만졌다.
“근본 있네.”
잿빛 머리칼의 교수.
라니아 반 트리아스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곤, 공지 옆에 붙은 강의 신청서 한 장을 뜯어 들었다.
“···라니아 교수가?”
그 모습을 본 교수들이 마른침을 삼킨다.
그들이 떠올리는 건 지난 학기의 일이다.
[참관 목적 : 교육 방식의 참고.]그 한 줄의 문장만이 적힌 수업 참관 신청서를, 마치 도전장처럼 온갖 수업에 내밀었던 사건. 그 사건을 기억하는 이들은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또 무슨 짓을 벌이려고.’
그녀의 도전장을 받았다가, 그대로 마음이 박살 나 며칠간 휴강을 했던 교수들이 있다. 아주 많았다. 그들은 미심쩍은 눈길로 라니아를 흘겨본다.
잿빛 머리칼.
이제는 악몽을 상징하게 된 색(色).
정작 교수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그녀는, 언제나처럼 가벼운 걸음으로 복도를 걸을 뿐이었다.
* * *
잿빛의 차기 마탑주, 레스티 엘레노아.
그녀는 몹시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서머너(Summoner)와 위자드(Wizard) 클래스를 동시에 전공하는 그녀의 시간표는 다른 학생들에 비해 배는 빡빡한 편이었다.
두 개의 전공.
거기에 더불어 라니아 교수의 특강.
그리고, 마탑의 자잘한 업무와 개인 연구까지.
그 모든 것을 레스티는 동시에 진행 중이다. 밤잠 줄여가며 사는 조교들마저 혀를 내두를 살인적인 스케쥴이나··· 정작 레스티 본인은 힘든 기색을 비치지 않는다.
‘이 정도는 원래도 했던 거니까.’
심지어 최근에는 특강 하나를 더 신청했다.
그 강의를 듣고자 레스티는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소란스러운 복도를 따라 걷다 보면, 인파가 모여있는 강의실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저분이 그···.
응, 외부에서 왔다는···.
강의실의 자그마한 창문에 붙어 안을 구경하는 학생들이 많다. 그들을 슬쩍 밀어내며 레스티는 강의실 안으로 들어갔다.
드르륵.
문을 열고 들어서자, 단상 위에는 말끔한 로브를 차려입은 남자가 서 있었다. 레스티는 그와 눈을 마주쳤다. 생각보다 더 젊은 마법사였다.
‘이 사람이, 소문의 그···.’
잿빛의 눈동자와 짙은 흑발.
그 첫인상은, 어째서인지 라니아 교수님을 떠올리게 했다. 젊은 교수, 그리고 어딘가 신비함을 풍긴다는 부분이 닮아 있었다.
“······.”
레스티는 말없이 고개를 살짝 숙였다.
숙였던 고개를 들어 올렸지만, 여전히 단상에 선 교수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동자에선 왠지 모를 불쾌함이 느껴졌다.
“오, 레스티.”
그때였다.
“너도 신청했구나?”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레스티가 고개를 뒤로 돌렸다. 등 뒤에는 예상했던 인물이 서 있었다.
“라니아 교수님?”
“응. 왜 여기 서 있어? 자리에 가서 앉아.”
라니아가 반쯤 떠밀듯이 레스티를 데리고 뒷좌석으로 걸음을 옮겼다. 단상에 선 교수를 스쳐 지나가며 그녀가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주의하지.”
남자는 중얼거림을 들은 듯 짧게 답했다.
소리를 듣지 못한 레스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라 말씀하셨어요?”
“응? 아냐. 자리에 가서 앉자.”
둘이 자리에 앉고, 오 분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야 종소리가 울렸다. 울리는 종소리 사이로 단상에 선 교수가 입을 열었다.
“반갑다.”
높낮이가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였다.
“우선 개요를 설명하겠다.”
수업은 종소리가 끝남과 동시에 시작됐다. 단 일각의 오차도 없이, 그가 수업의 개시를 알렸다.
“나는 원소 주문에 대해 너희가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모른다. 너희의 수준을 전부 파악하기엔 내가 아플리아에 머무를 시간이 길지 않다. 길지 않은 시간이므로, 효율적으로 사용하겠다.”
그러므로, 하고 그가 말했다.
“위자드 클래스를 선택했다면, 원소 주문의 한계에 대해선 알고 있을 테지. 그 한계에 대해 극복하는 법을 다루겠다.”
그가 분필을 들고 칠판에 글자를 적었다.
완성된 글자를 가리키며 그가 말했다.
“원소 주문의 한계를 나는 이렇게 정의한다.”
상성(??).
“상성이야말로 원소 주문의 한계다. 아무리 위력적인 주문이라 한들 원소 주문에는 반드시, 필연적으로 상성이 존재한다.”
오른손으로는 원을.
왼손으로는 삼각형을 그린다.
그가 양손에 하나씩 주문을 발현했다. 물 흐르듯 이어지는 더블 캐스팅에, 학생들이 숨을 죽였다.
“화염구와, 수구. 가장 대표적인 예시다.”
그가 손가락을 휘둘렀다.
허공에서 화염과 물이 맞부딪친다. 동일한 양의 마력을 부여했지만 남은 것은 물이다. 당연한 결과였다. 단상에 선 그는 그 당연함에 주목한다.
“불은 물에게, 물은 얼음에게, 얼음은 다시 불에게. 가장 기본적인 삼 순환의 상성이다. 주문의 급이 낮더라도 상성을 맞춘다면 얼마든지 대응할 수 있다.”
다시 주문이 발현된다.
이번에는 크기가 작은 수구이지만, 여전히 화염구를 집어삼킨다.
“이것이 원소 주문의 맹점이다. 대부분의 위자드(Wizard)들은 한가지 속성을 전공한다. 하나의 속성을 탐구하는 데만 해도 상당한 시간이 투자되는 까닭이다.”
위자드 클래스가 효율적인 측면에서 지적받는 이유다. 온갖 속성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위자드는 정말로 손에 꼽는다.
“하나의 속성을 극한까지 다룬 일류의 마법사가, 두 가지 속성을 적당히 다룰 줄 아는 삼류 마법사에게 패배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렇다면, 무조건적으로 다양한 속성을 익히는 게 좋은가?”
그가 질문을 던진다.
그것은 오래된 질문이다. 위자드 클래스를 전공하는 이들 사이에서 결론이 나지 않는 주제였다.
‘한 속성을 극한까지 다루는 게 옳은가.’
혹은.
‘극한이 아닌,다양한 속성을 골고루 다루는 게 좋은가.’
“답은 아니다.”
결론이 나지 않은 주제에, 그가 결론을 낸다.
그 결론에 학생들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수업을 참관하는 교수 중 몇몇 또한 불편한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설명을 이어갔다.
“하나의 원소를 극한까지 탐구한다. 다만, 단순한 위력만을 생각할 게 아닌 그 활용법 또한 탐구한다면··· 상성은 얼마든지 무시할 수 있다.”
활용법을 탐구하라.
그렇게 말하며 그가 손가락을 휘둘렀다.
“활용이야말로 한계를 극복할 수단이다.”
한쪽 손에는 아까와 같은 수구가, 다른 손에는 화염구의 회로가 새겨진다.
“생각해라.”
그러나 그 모양은 이전과는 다르다.
“오직 한가지 주문만을 다룰 수 있어도 좋다. 그것을 극한까지 활용할 줄 안다면, 그자는 수백 개의 주문을 외우기만 한 마법사보다 우월하다.”
일획(一?).
화염구의 회로를 반으로 가른다.
“주문의 활용은 회로를 추가하고, 고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획(二?).
반으로 가른 회로를 다시 반으로 나눈다.
“고치고, 추가하는 일은 누구나 한다. 누구나 하지 못하는 것에 답이 있다.”
하나의 회로가 네 개가 된다.
“쪼개라.”
네 개의 회로에 마나가 스며든다.
“하나의 주문을 나누어라.”
회로는 사분할 됐으나 주문은 여전히 하나다.
“그리고 묶어라.”
회로를 나눈 두 개의 획.
그 중심에 손가락을 건 그가, 쪼개진 회로를 잡아당겼다. 손가락에 건 채로 돌팔매를 돌리듯 회전시켰다. 마나가 스며든 회로에 변화가 일어난다.
화륵.
불씨가 타올랐다.
하나의 점을 중심으로 작은 네 개의 화염구가 회전한다. 회전하는 화염구를 그가 가볍게 던졌다.
수구와 화염구가 맞부딪친다.
이전과 같은 실험이나, 그 결과는 전과는 다르다. 수구를 뚫고 화염구가 튀어나왔다.
치이익.
두 개의 화염구는 사라졌지만, 남은 두 개의 화염구가 회전하고 있다. 상성을 뚫어낸 주문이다. 생전 처음 보는 활용법에 학생들의 눈동자가 커졌다.
“주어진 격식에 얽매이지 마라. 마법은 가장 자유로운 학문이다.”
그가 가볍게 손을 털었다.
화염구가 허공으로 녹아든다.
“원소 주문의 활용이라 강의 소개를 적긴 했지만, 회로의 활용법이라 보아도 무관하겠지. 어쨌든, 내가 너희에게 가르칠 건 이와 같은 것이다.”
학생들이 침묵하는 가운데 그가 입을 열었다.
“···최근 들어 우스운 소리가 들리더군.”
무표정이, 여전히 고저 없는 목소리로 그가 말한다.
“원소 주문에는 한계가 분명하다. 그 한계는 극복할 수 없는 것이니, 배틀 메이지 클래스로 전직하는 편이 옳다. 그런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배틀 메이지.
그 단어에 자리에 앉아있던 어느 교수가 흠칫, 하고 어깨를 떨었다. 그러든 말든 그는 마저 말을 이었다.
“배틀 메이지가 효율적인 클래스임은 인정한다. 허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해 다른 클래스로 도망친다? 그런 근성 없는 이들은 금방 벽을 마주한다. 상종하지 못할 이들이다.”
탁, 칠판을 두들기며 그가 단언했다.
“배틀 메이지의 태반은 근본 없는 것들이다. 근본을 잊지 마라.”
알게 모르게 배틀 메이지 클래스와 비교당하며, 자존심에 상처를 입어왔던 위자드 클래스의 학생들이다. 그들은 단상에 선 교수의 말에 눈을 빛낸다.
“누가 뭐라 한들 마법사의 근본은 위자드다.”
끄덕, 하고 몇몇 교수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위자드 클래스의 학생들은 단상에 선 교수에게 호감을 느낀다. 또한, 유능한 마법사에게 자신의 클래스가 인정받았음에 그들은 뿌듯함을 느낀다.
“계속하겠다.”
한결 부드러워진 분위기 속에 강의가 이어졌다.
3.
“보아라. 활용법에는 여럿이 있다. 오늘 내가 다룰 활용법들은 크게 세 가지로···.”
강의는 이어진다.
그 수준은 높고, 설명은 매끄러우나··· 라니아의 귀에는 그것이 들어오지 않는다.
「근본 없는 것들이다.」
하나의 문장이 그녀의 귓가를 맴돈다.
라니아는 고개를 숙인 채 어깨를 부들부들 떨었다.비록 몰랐다곤 하나, 일단은 자신이 만든 클래스다. 마치 자기 자식이 까이는 듯한 느낌이 든다.
‘네가 뭔데 근본을 논해, 씨발아. 너가 나보다 잘싸워? 니가 사천왕 모가지 따봤어? 어? 따봤냐고 개새끼야!’
그런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한다. 주변에 학생이 많아서가 아니었다. 마음만 먹으면 수업이 끝나고도 말할 수 있었으니까.
‘시발, 시발!’
하지만, 차마 그럴 마음이 들진 않는다.
「배틀 메이지요? 그 근본 없는 클래스?」
그녀에게도 양심이란 게 있다.
본인 스스로가 입에 담았던 말들을 떠올리자니, 라니아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물론, 그 자초지종을 모를 때 했던 말이라곤 하나··· 자신이 그런 발언을 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뭔 병신같은 놈이 만든 클래스래요?」
병신.
라니아의 어깨가 파르르 떨렸다.
그녀가 고개를 살짝 들어 단상에 선 남자를 노려보았다. 라니아의 살생부에 ‘켈르할름’이란 넉 자의 이름이 새겨지는 순간이었다.
···사실에 기반한 지적을 받았을 때, 옹졸한 사람들은 종종 그 사실을 입에 담은 인물을 까 내리곤 한다.
‘넌, 넌 언젠가 내가 쥐어팬다.’
옹졸한 마법사가 이를 갈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