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179
〈 179화 〉 서명하시오, 배틀 메이지!(5)
* * *
“선배님. 라니아 반 트리아스, 그 아가씨는 대체 정체가 뭡니까?”
대뜸 던진 질문에 칼트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 시선이 제법 날카로웠는지 질문을 던진 하운드가 움찔, 하고 어깨를 떨었다.
“아니, 조금 이상하잖습니까.”
이윽고 변명하듯이 그가 말을 늘어놓았다.
“아플리아의 교수고, 마법 쪽으로 특출난 아가씨란 건 알고 있습니다. 무려 그 잿빛 마법사님과 같은 가문이니··· 어느 정도 특별한 건 이해합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그렇게 중얼거리며 하운드가 제법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그 압박감 속에서 자유롭게 움직인단 말입니까?”
초인이 내뿜는 압박감.
공기 자체를 찍어누르던 마나다. 숱한 훈련을 거듭하고, 실전을 경험한 하운드들 조차 그 압박감 속에서는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못했다.
그런데, 아플리아의 교수가.
그 출신이 특출나다곤 하나, 고작 스무 살 남짓의 소녀가 그 압박감 속에서 움직인다니?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후우.”
하운드의 억울한 표정을 보며, 칼트는 제 미간을 짚었다. 확실히, 하운드들이 의심을 가질만 한 상황이긴 했다.
‘환장하겠군.’
칼트는 미리 만들어놨던 변명거리를 머릿속에 차례로 열거해보았다. 그 중, 그나마 쓸만한 것 몇 개를 추려내고선 칼트가 입을 열었다.
“잿빛 마법사님의 적전제자니까 그렇겠지.”
“···예?”
집무실에 모인 하운드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가운데, 칼트는 설명을 계속했다.
“내가 전장에서 그분 보좌관이었단 건 알지?”
하운드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알고 있다. 애초에, 칼트가 하운드에 들어올 수 있던 것 부터가 잿빛 마법사와 기사단장의 추천장의 역할이 컸으니까.
“전장이란 게, 원래 누구든 쓱쓱 갈려 나가는 곳이잖아. 그건 초인들도 예외가 아니고, 용사조차 예외가 아니지.”
칼트가 툭툭, 테이블을 건드렸다.
“라니엘 님도 마찬가지야. 만에 하나,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후계쯤은 만들어 둘 생각이었던 거겠지. 그게 라니아, 그 아가씨고.”
“···후계, 말입니까?”
“나는 잘 모르는데 마법사들은 그렇다더라. 아무리 전장에서 마왕군을 갈아드시기야 한다마는, 그분도 일단은 마탑 소속의 학자였잖아.”
잿빛 마탑의 차기 마탑주.
전장에서의 행보가 더 잘 알려지긴 했지만, 라니엘의 근본은 학자적 성격을 띤다. 그가 쌓아 올렸던 지식을 전수할만한 대상이 필요했단 뜻이다.
“그리고, 학자들은 제 지식이 소실되는 걸 두려워하지. 너희들도 금서나, 금기에 손대려 하는 마법사들을 여럿 처리해봐서 알 텐데?”
“예, 그거야 뭐···.”
알고 있었다.
금기를 범하는 마법을 연구하거나, 금서를 파헤친 마법사들을 청소하는 것도 하운드의 역할이었으니까.
“걔네가 연구해놓은 거 태울 때 반응이 어땠냐?”
“아주 발작을 했죠.”
“그래, 마법사들에게 쌓아 올린 지식이란 그런 거야. 라니엘 님도 크게 다를 바는 없단 소리지.”
칼트가 턱을 괸 채 말했다.
“쌓아 올린 지식, 개발한 주문, 그런 것들을 전수할 사람이 필요했고··· 그게 라니아 그 아가씨가 된 거야.”
“그런 아가씨를 어디서···.”
“그거야 나도 모르지. 나도 자세히는 모른다. 그냥 라니엘 님이 은퇴하기 전에 남긴 편지로 적당히 유추할 뿐이야.”
칼트가 말끝을 흐렸다.
말이 길어지고, 설명이 늘어질수록 거짓말은 허점이 드러나는 법이다. 칼트는 말끝을 뭉개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럼 대외적으로 로셀경의 제자라 알려진 사실은, 거짓이란 겁니까?”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지. 라니엘 님의 적전제자라고 알려졌다간, 여기저기서 속박하려 들 거 아니야.”
칼트가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아가씨한테도, 그 아가씨의 삶이 있지 않겠냐? 라니엘 님의 그늘 아래서 평생을 살아가는 건 좀 그렇잖아. 그걸 경계하신 거겠지.”
오오···.
‘제가 이렇게 포장을 잘합니다, 선배님.’
하운드들이 감탄하는 가운데, 칼트는 제 미간을 짚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나중에 선배님하고 다시 말을 맞춰야겠군.’
하운드들을 통해 왕가에 보고될만한 내용이다. 칼트야 여러 특권을 받은 채 하운드가 되어, 모든 사실을 보고할 필요가 없을 테지만··· 다른 하운드들은 아닐 테니까.
‘어느 정도 왕가에서 말이 나오긴 하겠지만···.’
하운드들이 의심을 가진 채 보고하는 것보단 낫다. 그랬다간 감시가 따라 붙을 게 분명했으니까.
그리고, 그것만큼은 막아야 했다.
칼트는 눈을 부릅뜨고 의지를 다졌다.
하운드들이 라니아의 미행을 시작하게 된다면, 그 과정에서 아주 조금이라도 그녀의 심기를 거스르게 된다면···.
‘그날이 하운드 멸망의 날이 될 것이다.’
분명 그리 될 것이다.
“후우···.”
칼트는 몇 번째인지 모를 한숨을 내뱉었다.
복잡한 칼트의 속내도 모른 채, 하운드들은 칼트의 앞에서 연신 라니아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그 아가씨가 초인의 압박감에도 움직일 수 있었던 거군요? 잿빛 마법사님께서 전수하신, 무언가 방법을 가지고 있었을 테니까···.”
“그래, 그렇겠지.”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며 칼트는 창밖을 바라본다. 학사 내를 오가는 학생들. 노랗게, 빨갛게 물든 가로수들 사이로 학생들의 말소리가 메아리친다. 이처럼 아플리아의 정경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하하···.”
칼트가 메마른 웃음을 흘렸다.
설마, 이 평화로운 아카데미 안에 마왕군을 갈아 마시는 초인이 둘씩이나 머무르고 있으리라곤,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 하리라.
‘선배님, 제발.’
칼트는 속으로 기도를 올렸다.
‘여기서 더 이상은 안 됩니다. 더 둘러대기도 힘듭니다. 하운드들이 의심을 가질만 한 행동은, 제발, 제발 조심 좀 해주셨으면 합니다. 제발···!’
그 간절한 기도가 제 선배에게 닿았을까.
칼트는 닿았기를 바랐다. 정말로.
2.
“진짜 지기 싫은데, 자존심 상하는데···.”
쿵, 쿵, 쿵.
나는 소파에 몸을 파묻은 채, 뒤통수로 벽을 연신 쳐댔다. 좀처럼 생각이 정리되질 않았다.
‘아니, 까놓고 말하면 정리할 만큼 복잡한 상황이 아니긴 한데···.’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내가 패배하는 게 옳다. 적당히 제약만 읽어낸 다음, 깔끔하게 패배한다면 그림이 참 좋다. 좋기는 한데 말이다.···.
‘패배.’
패배(?).
상대에게 눌려서, 비참하게 지는 것.
패배를 인정하고 고개를 숙이는 것.
‘내가, 마법사한테, 패배.’
극상성인 소환사(Summoner)한테 진 거라면, 변명거리라도 있다. 근데 켈르할름의 클래스는 무엇인가? 그놈은 위자드(Wizard)였다. 위자드!
내가 절대 져서는 안 되는 클래스.
무슨 일이 있어도 져서는 안 되는 클래스.
이건 자존심의 문제요, 근본의 문제였다.
같은 위자드로서의 자존심이 있다.
심지어, 나는 위자드를 족치고자 전투법마저 개발했다. 그 전투법의 실전성이 인정받아 클래스까지 창설된 마당에, 내가 위자드한테 진다?
‘심지어, 그걸 학생들이 다 보는 앞에서? 위자드를 때려죽이는 강의를 하고 있는데, 이런 와중에 위자드한테 져야 한다고?’
심지어 강의를 시작한 계기를 만든 놈한테?
“씨파알···.”
내가 양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패배. 학생들의 비웃음 소리. 기가 죽어서 어깨를 숙이고 다닐 전투 마학과 학생들. 근미래에 다가올 상황들이 눈앞을 스쳐 지나간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학생들의 앞에서 결투를 신청했고, 결투의 일정이 잡혔다.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다.
“져야 한다.”
패배해야 한다.
그 한 줄의 문장이 뇌리를 맴돌았다. 나는 고개를 뒤로 젖힌 채 머리를 굴렸다. 복잡한 문제를 마주한 지금, 나는 과거의 경험을 떠올린다.
‘이길 수 있는 싸움이지만, 패배해야 하는 상황이 있었던가?’
있었다, 제법.
이길 수는 있지만, 이기더라도 이득보다 손해가 앞서는 상황. 그런 상황에서 굴욕을 감내하며 물러선 경험이 내게는 있었다. 나는 그때의 상황을 머릿속에서 떠올려보았다.
모험에 나선 초창기에 그랬다.
스케발을 마주했을 때, 내가 아직 그 해골을 때려잡을 방법을 개발하지 못했을 때.
‘카일이 죽자고 달려들면 잡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전열이 붕괴한다.
마왕을 마주하기 직전의 카일이라면 몰라도, 그때의 카일은 약했다. 목숨을 걸어야 스케발을 잡을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스케발은 죽여도 죽지 않는다.
그러나 이쪽에선 목숨을 걸어야 한다.
이득보다 손해가 앞선다. 그렇기에 우리는 물러서야 했다. 그때, 이를 가는 카일의 어깨를 두들기며 내가 어떤 식으로 말을 했었지.
「어깨 펴, 새끼야. 진 거 아니야.」
아마도, 분명히.
「진 게 아니야. 이길 수 있는데, 져 준 거라고. 다음에, 다음에 같은 상황이 오면 무조건 이겨.」
이런 식으로··· 말했었던 것··· 같은데···.
‘아니, 너무 추한데 이건.’
지금 상황에 도움이 되는 방법은 아니었다.
나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머리를 굴려봤다.
‘그래, 관중.’
지켜보는 사람.
지금이야 학생이지만, 그때는 수백의 기사들이었다. 그들에게 우리는 승리의 상징이다. 그럼에도 패배해야 할 때··· 나는 어떻게 했지?
“아.”
내가 짧게 탄식을 뱉었다.
“최대한 그럴싸하게 진다.”
너무나도 당연한 답이지만,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떠올리며 내가 박수를 쳤다.
“아슬아슬하게··· 진짜 이길 수 있는데, 약간의 실수, 약간··· 아주 약간의 차이로 진다.”
나중에 변명할 수 있게끔.
기사들이 ‘우리가 진 게 아니라, 상황이 이번에는 좋지 못했다’라고 생각할 수 있게끔. 그들에게 우리가 여전히 승리의 상징으로 남을 수 있게끔.
‘이거다!’
그때에 비하면 상황이 한없이 가볍긴 하지만, 아무렴 어떠한가. 가볍다고 한들 결투는 결투다. 승리는 승리고, 패배는 다만 패배다.
“최대한 아슬아슬하게 진다···!”
내가 각오를 다졌다.
반드시 패배 해야 하고, 또 그것을 또 감내해야만 한다지만··· 그것이 반드시 쓰디쓴 패배라는 법은 없었다. 지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
“최대한 아슬아슬하게!”
3.
『라니아 교수님과 르티아 교수님이 결투를 한다.』
하나의 소문이 아플리아를 맴돈다.
얼마 전 벌어졌던 사건에 대한 소문이다. 이유는 모르지만, 라니아 교수님과 르티아 교수님 간의 마찰이 생겼고··· 라니아 교수님이 장갑을 집어 던지며 결투를 신청한 사건.
『르티아 교수님이 학생을 건드렸다?』
『라니아 교수님의 앞에서, 잿빛 마법사를 모욕했다. 배틀 메이지란 클래스를 모욕···.』
『그냥 질투심?』
『아무튼, 뭔가 이유가 있다···.』
여러 추측이 나돌지만, 확실한 건 없다. 그곳에 함께 있었던 학생인 레스티는, 학생들의 물음에 적당히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었다. 결국, 소문은 상황에 맞춰 모여들게 된다.
『배틀 메이지와 위자드.』
너무나도 다른 두 클래스.
각각 클래스에 속한 학생들 사이에 은근한 대립 구도가 만들어진 지는 제법 됐다. 이번 학기에 개설된 두 개의 특강을 거치며, 클래스 간의 갈등은 조금 더 심화된 마당이다.
그런 와중 치러지게 된 결투다.
라니아교수가 강의 도중 입버릇처럼 뱉었던 언어들을 생각해보자면, 결투의 목적도 대강 짐작이 간다. 결국 상황을 짜 맞춰 보자면 이런 것이다.
『배틀 메이지의 실전성.』
『위자드의 효율에 대한 의문.』
요컨대.
『맞붙었을 때, 둘 중 무엇이 더 강한가?』
가장 자극적인 논제다.
으레 자극적인 것들이 시선을 끌듯, 학생들의 이목이 쏠린다. 학생들의 관심이 집중된 가운데, 결투에 대한 상세한 공지사항이 붙는다.
* * *
“······.”
광인, 켈르할름은 하운드가 넘겨주고 간 주의사항을 확인했다. 그 내용은 이미 전해 들은 것과 같다. 결투의 직전, 미리 제약을 건다는 것이다.
목숨을 위협하는 것은 금지.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은 기초까지.
그 외에도 다양한 제약들이 붙어있다.
제한적이라곤 하나, 켈르할름에게 아플리아 내에서 마법의 사용을 허락하는 것은··· 하운드들로서도 굉장히 조심스러운 상황이다. 그들의 염려를 나타내듯 제약의 항목은 끝이 보이질 않았다.
번거롭게 됐군.
그런 생각을 하며 켈르할름은 제 팔을 들어 올렸다. 손목에는 붉은 손자국이 남아있다. 며칠 전의 사건이다. 켈르할름은 눈을 감았다.
사락.
눈앞에서 흩날리던 잿빛 머리칼.
흘러나온 마나를 단숨에 걷어내며 손목을 움켜쥐던 그 모습은··· 분명, 누군가와 닮아 있었다.
「광인, 켈르할름.」
눈을 감고 그 인물을 떠올린다.
「풀어. 뒷감당은 전부 내가 할 테니까.」
잿빛 마법사, 라니엘 반 트리아스.
「지금은, 그것밖에 방법이 없는 것 같다.」
당당히 자신에게 제약을 풀라고 말한 마법사.
정말로 말한 것을 지켜냄으로써 실력을 증명한 그 마법사를 떠올리며, 켈르할름이 두 눈을 떴다.
···아직은 의심일 뿐이다.
확신할 수는 없으며,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이 추측이 들어맞는다면.
“정말로, 번거로워지겠군.”
켈르할름이 제 목덜미를 매만졌다.
찰캉, 하고 제약이 요란스러운 소리를 냈다. 켈르할름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