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203
〈 203화 〉 잿더미의 땅(3)
* * *
당연하게도, 잿더미의 땅으로 향하는 길은 순탄치 않다.
잿더미의 땅은 사지다.
이미 죽어버려 생명을 잉태할 수 없는 땅이란 의미에서 사지였고, 가까이 가면 죽음을 각오해야 한단 점에서 사지(死?)였다.
그렇기에 잿더미의 땅의 다른 이름은, 죽음의 땅이었다.
몇몇은 오염된 땅이란 이름으로 부르기도 했다.
죽음의 땅, 혹은 오염된 땅.
그런 이름을 가진 땅으로 향하는 길이 정상적일 리가 없다. 길은 끊겨있으며, 그 누구도 잿더미의 땅에 가까이 가지 않으려 한다.
「잿더미의 땅으로 간다고 말씀하신 겁니까?」
「손님, 혹시 미치셨습니까?」
마차는 그 근처로도 가려 하지 않으며.
「잿더미의 땅으로 가는 길?」
「앞길도 창창한 젊은이가 왜 벌써부터 죽으려 하는가? 얼굴도 반반한 처자가 에잉 쯔쯧···.」
길을 물어보면 미친놈 취급받기 일쑤다.
“어째 취급이 다 그렇네.”
“그래서 내가 말했잖나. 걸어서 가는 게 제일 빠를 거라고.”
잿더미의 땅, 아르카디아로 향한 지 나흘 차.
목적지와 가장 가까운 마을에서 수소문하던 라니엘은 어깨를 축 늘어트린 채 여관으로 돌아왔다. 그 모습을 보며 카르디가 끌끌 혀를 찼다.
“인근의 마을까지야 마차를 타고 오는 게 가능했지만, 잿더미의 땅으로 향하는 황야는 발로 직접 걸어서 가야 할 거다.”
“못해도 삼일은 걸릴 것 같은데.”
“빨리 걸으면 이틀이면 간다.”
“쩝···.”
라니엘은 괜스레 입맛을 다셨다.
잿더미의 땅으로 가려면 건너야 하는 황야는 여관의 창문을 통해서도 훤히 보인다. 지평선 너머까지 이어져 있는 황야는 꼭 마경(??)의 풍경을 연상케 한다.
‘···행군만 줄창 해댈 때 생각나네.’
그리 좋은 기억은 아니었다.
라니엘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눈에 띄게 실망한듯한 모습에 카르디는 어이 없다는 듯 라니엘을 바라보았다.
“···이미 한번 가봤다 하지 않았나?”
“차기 마탑주 시절에 원정을 오긴 했지. 그리고 그때는 황야도 마차 타고 건넜단 말야. 여기저기서 마부들이 우릴 태우려고 달려오고 그랬는데···.”
“호구 잡았다고 좋아했던 거겠지.”
어딜가나 돈에 목숨을 거는 이들은 있는 법이었다. 그리고, 색(色)을 가진 마탑의 차기 마탑주 정도라면··· 그 명성도 보장됐으니 해볼 만한 도전이라 생각했던 것이리라.
“···돈으로 후려쳐볼까?”
“그냥 걸어서 가라. 이틀이 뭐 대수라고.”
“이래서 엘프 들은.”
라니엘이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인간에겐 하루하루가 소중하거든? 시간을 1분 1초라도 단축할 수 있다면 다수의 재화를 소모하는 것 정도라면···.”
그렇게 라니엘은 ‘시간의 소중함’에 대해 일장연설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카르디의 시선에 실린 온도가 대번에 낮아졌다.
“허···.”
카르디는 헛웃음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그렇게 시간의 단축이 중요한 놈이, 로브 들고 한 시간 가까이를 나와 드잡이질 한 거냐?”
“······.”
라니엘이 침묵한다.
말없이 시선을 돌리는 라니엘을 바라보며, 카르디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머릿속에 맴도는 것은 라니엘과 드잡이했을 당시의 기억이다
「아, 도착할 때까지만 입겠다니까! 진짜, 좀만! 조금만···!」
로브를 내놓으라니까 극구 거부하던 라니엘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한시간의 드잡이질의 끝에 결국 뺏는 데는 성공했지만, 카르디는 그 대가로 온종일 라니엘의 궁시렁거림에 시달려야만 했다.
「째째하게 로브 가지고.」
「치사해서 안 입어.」
「좀 입으면 닳아지냐? 좀만 입겠다니까 진짜.」
흡사 글레리아를 연상케 하는 잔망스러움이었다.
그리고, 카르디는 과거의 글레리아와의 여행 경험에서 깨달음을 얻은 바가 있었다. 몇 날 며칠이고 시달리느니 그냥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 게 낫다는, 매우 귀중한 깨달음이었다.
「···그냥 나 입으라고?」
「···진짜?」
그래서 그냥 줘버렸다.
그 결과 여행길이 평탄하긴 했지만··· 이제 와서 시간의 소중함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라니엘을 보고 있자니 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그리고, 마부를 고용하지 않는 편이 좋을 거다. 황야에서부터 건드려 놔야 할 장치가 좀 있으니까.”
“뭐야, 그런 거였어?”
“그래. 그러니 걸어가는 편이 편할 거고.”
그렇게 말하며 카르디가 라니엘에게 손짓했다.
“물건은 다 사왔나?”
“바람초랑, 밤하늘 꽃, 와이번의 발톱에, 뭐에··· 사오라는 건 일단 다 사오긴 했지. 야영하는데 쓸 거야 그렇다 치고, 이 영문 모를 재료들은 어디에 쓰는 거냐?”
“연금술 재료다. 나중에 보면 알 거다.”
물건들이 담긴 주머니를 건네받으며, 카르디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준비는 끝났으니 슬슬 출발하자는 신호였다.
“잠깐 있어봐.”
출발을 앞두고 라니엘은 거울의 앞에 섰다.
여관의 한편에 놓여있는 거울. 그 앞에 선 라니엘은 이리저리 몸을 비틀며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요 며칠 자주 보이는 행동이기에 카르디는 별 대수롭지 않게 그 모습을 지켜봤다.
빙글.
이윽고 그녀는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돌며 로브를 고쳐 입더니, 마냥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입고 있는 로브가 몹시 마음에 든 눈치였다.
‘···돌려받기는 힘들겠군.’
그 로브의 실질적 주인은 카르디였지만, 지금에 와서 카르디는 로브에 대한 소유권을 반쯤은 포기한 상태였다. 확실히, 지금의 저 모습을 보아하니 돌려받기는 힘들 것 같았다.
“하여간···.”
참으로 별난 녀석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카르디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2.
잿더미 땅의 인근에 펼쳐진 황야는 평범한 인간에겐 지나치리만치 가혹하다. 마기만 없다 뿐이지 환경 자체가 마경(??)과 크게 다를 바가 없는 탓이다.
밤과 낮의 온도 차가 크다.
사막과 깎아지른듯한 협곡이 공존한다.
마치 여러 지형이 이리저리 꼬여버린 듯한 모습이다. 그것을 가리켜 카르디는 ‘실제로 꼬인 게 맞다. 인근 영지 열댓 개가 통째로 휘말렸으니까.’ 라고 답했다. 그 설명에 나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었다.
그렇게 나와 카르디는 황야를 건넜다.
평범한 인간에게는 가혹한 환경이나, 나나 카르디 모두 ‘평범’과는 제법 거리가 있는 편이었다.
“생각해보니까 신기하네.”
“뭐가 말이냐.”
“나는 일단 현자잖아?”
“믿을 수 없지만··· 일단은 그리 불리더군.”
“뭐 시발아?”
나는 전장에서 현자라 불리던 마법사였고.
“아무튼, 너는 대현자잖아. 그것도 최초의 용사와 함께했던 대현자.”
“그렇게 불리던 시절이 있지.”
카르디는 대현자라 불리는 마법사였다.
“그럼 현자 파티 아니야 우리? 사실 마법사만 둘 있어도 무적인 게 아닐까?”
“무척이나 저렴해 보이는 이름이군.”
“맞는 말이잖아.”
“그래. 네가 때때로 저렴해 보이긴 하지.”
“아니, 그거 말고.”
나눈 대화야 어쨌든 간, 현자와 대현자를 일반인의 범주에 넣기는 힘들었으므로··· 우리는 별 어려움 없이 황야를 건넜다.
“근데, 너 생각보다 잘 걷는다?”
“마나가 사라진 거지, 육체 능력이 사라진 건 아니니까. 현역 때는 가니칼트 그놈의 속도에 맞춰 걷기도 했다. 심지어 여행 초반에는 글레리아를 업고 다녔지. 생긴 것에 비해 무겁더군.”
“오우···.”
걷는데 어려움은 없었지만, 황야는 꽤 넓었고 잿더미의 땅까지는 한참을 걸어야만 했다. 그렇다 보니 우리는 시답잖은 잡담을 나누며 걸음을 옮겼다.
“그러고 보니, 네 동료 중에 엘프와 성녀가 있었다고 했었지.”
그걸 과연 ‘동료’ 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까?
내가 오묘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일단은··· 있긴 했지.”
“그들은 어땠나? 네가 종종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썩 좋은 동료는 아닌듯싶다만.”
“좋은 동료이기 이전에, 나는 그년들이 동료인지부터가 의심스러운데···.”
사라와 레미아.
좋은 추억이라곤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가 없는 그 둘을 나는 머릿속으로 그려봤다. 그 창녀 같은 분홍빛 머리칼과 노랑머리를 떠올리는 순간, 자연스레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굉장한 좆같음을 가진 년들이었지.”
“그 정도인가?”
“그 정도이지.”
“내가 엘프라 그러는 것은 아니다만, 엘프들의 성격이 그리 문제가 많지는 않을 텐데.”
엘프가 성격에 문제가 없어?
내가 허허, 하고 헛웃음을 흘렸다.
“네가 레미아, 그 시팔년을 안 만나봐서 그래.”
“신궁이라 불리는 그 엘프?”
“어. 내가 가진 엘프 혐오의 9할은 레미아 그 십년이 만들어 낸 거야. 내로 남불, 징징거림, 선택적 자연 애호가, 또···.”
“알았다. 알았으니까 진정해라.”
카르디가 기겁하며 내게서 몇 걸음 떨어졌다.
질린듯한 표정을 지은 카르디를 바라보며 내가 해탈에 가까운 미소를 지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레미아 그년이랑 만나보면 이런 생각이 들걸?”
뭐를 말이냐.
카르디는 그렇게 물었고, 나는 이렇게 답했다.
“와, 사람 새끼가 어떻게 저렇지? 귀쟁이 새끼들은 시팔 사람 새끼가 아닌 건가?”
“···심히 종족 차별적인 발언이군.”
“내가 레미아를 부를 때 쓰는 ‘귀쟁이 새끼’는 엘프가 아닌 오직 레미아만을 가리키는 말이야.”
엘프도, 사람도 아닌 무언가.
내가 기억하는 레미아는, 정말로 그런 무언가에 가까운··· 그 자체로 연구가치가 있는 놀라운 인성의 소유자였다.
“어우, 생각했더니 소름 끼치네.”
내가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진짜, 다시는 만나기 싫다. 얼굴도 보기 싫어. 진짜로. 만나면 토할지도 몰라.”
3.
“잿더미의 땅으로 가야 한다 했지?”
바닥에 어지러이 널브러진 옷가지를 주워 들며, 레미아가 입을 열었다. 새하얀 피부위로 금발의 머리칼이 흘러내렸다.
“대충 들렸다고 말하고, 한 달간 밤의 도시로 놀러 가면 안돼? 나, 퍼레이드 보고 싶은데.”
귀찮음이 묻어나오는 목소리였다.
이미 잿더미의 땅으로 향하는 길임에도 불구하고, 레미아는 당장에라도 돌아가고 싶은 눈치였다.
“굳이 우리가 가야 해? 카일?”
그 질문에, 잠이 든 사라의 머리칼을 쓸어넘기던 카일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기사단장이 부탁한 일이니까.”
“다른 용사들도 있잖아.”
“다들 실패했다고 하더군.”
“비굴한 찌질이는 그렇다 치고, 그 갈라할이? 그럼 가망이 없는 거 아니야?”
“갈라할은 별빛이 부족하니까.”
카일이 짧게 숨을 뱉었다.
길게 설명하기는 싫은 문제였다. 카일은 언제나 진지한 고민이나 문제 따위를 레미아나 사라와는 공유하지 않았다. 그닥 도움이 안 됐기 때문이다.
“아무튼,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다.”
“위험한 거 아니야?”
“축복과 함께라면 건너는데 어려움은 없다더군. 사라는 좋아하던데. 최초의 성교회라면, 분명 온갖 성물(?物)들이 가득할 거라면서.”
카일은 주제를 돌린다.
그 주제에 레미아가 눈을 가늘게 떴다. 화장대 앞에서 머리칼을 빗어 내리던 그녀가, 흥미로운 눈동자로 카일을 돌아보았다.
“···성물이면, 보물인 거지?”
“그렇겠지.”
“가져가도 상관 없는거야?”
“우리 말고는 들리지 못하는 곳이니까.”
레미아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녀가 카일을 향해 다가온다. 촛불에 비춘 레미아의 그림자가 일렁였다.
“고대의 보물이라면, 탐나긴 하네.”
불그림자에 비춘 엘프의 살결은 붉으면서도 새하얗다. 예술품에 가까운 육체이나, 그녀를 앞에 두고도 카일은 별다른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잊힌 이와, 놓친 이와의 만남.』
별의 속삭임만이 카일의 뇌리를 맴돈다.
두 가지 만남이 그곳에 기다리고 있다고 별은 속삭인다. 별이 가리키는 인물이 누구인지 카일로서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신뢰할 뿐이다.
별의 속삭임은 언제나 옳다.
그렇기에, 별은 완벽하다.
완벽하기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라니엘이 이곳에 있었더라면 조금 더 신중해질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을 테지만, 더이상 그 녀석은 이곳에 없다. 카일은 눈을 감았다.
“···밤이 깊었군.”
“어차피 잠, 안 오잖아?”
밤은 깊었지만 엘프와 용사는 잠에 들지 않는다.
그렇게 둘의 그림자가 천막에서 어지러이 얽히는 가운데, 별빛은 다른 곳을 향한다.
“엣취.”
밤이 깊은 황야의 한가운데.
쪼그려 앉아 불쏘시개를 건드리던 라니엘은 재채기를 했다. 그녀가 코를 훌쩍이며 중얼거렸다.
“와, 이러고 있으니까 옛 생각 난다.”
그때 파이어 볼을 집어 던져버리는 건데.
황야에 그녀의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