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212
〈 212화 〉 재회(7)
* * *
잿빛의 초대 마탑주, 아르미엘.
그가 쌓아올린 위업은 잿빛 마탑의 입구부터, 마탑의 최상층에 위치한 전시관에 이르기까지 빠짐없이 장식돼 있다.
가장 낮은 위치부터 가장 높은 위치까지.
잿빛 마탑에 발걸음을 들인 순간부터, 나오는 그 순간까지··· 마탑의 마법사들은 초대 마탑주가 쌓아올린 업적의 크기를 실감하게 된다.
그리고, 그건 라니엘 반 트리아스도 마찬가지다.
권력을 얻으면 얻을수록, 마탑의 높은 곳으로 향하면 향할수록, 초대 마탑주가 얼마나 대단한 인물이었는지를 깨닫고 만다.
‘깨지지 않는다.’
수백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초대 마탑주가 쌓아올린 금자탑은 깨질 것 같지가 않다. 그를 뛰어넘는 위업을 달성하는 게 가능하기는 한 걸까, 하는 의문이 들고 만다.
‘그렇기에 도전할 가치가 있다.’
어렸을적의 라니엘은 그렇게 생각했다.
차기 마탑주의 자리에 앉아있을 적, 라니엘은 한주의 마무리를 잿빛 마탑의 전시관에서 보내곤 했다. 그곳에 걸린 초대 마탑주의 로브를 바라보며, 라니엘은 각오를 다졌다.
‘초대 마탑주님을 뛰어넘는다.’
누구도 넘보지 못할 업적을 세운다.
전설이라 불리는 초대 마탑주가 세운 금자탑보다 더욱 높은 금자탑을 쌓아올린다. 후세에 길이길이 기억될 마법사가 된다.
그것이 라니엘의 목표였다.
전시관에 걸린 초대 마탑주의 로브는 라니엘에게 있어 동경의 상징이자, 머나먼 미래에 자신을 그려보는 일종의 거울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러니까.
몹시도 의미깊고.
몹시도 탐내는 것이었으며.
몹시도, 아주 몹시도 소중히 여기던 것.
훗날 초대 마탑주의 정체가 ‘꼰대 엘프’ 였단 사실에 조금 실망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 로브에 대한 열망만큼은 남아 있었다.
그리고, 라니엘은 우연찮게도 그 로브를 입어볼 기회를 얻게 됐다.
로브를 입었을 때 얼마나 기뻤던가?
자신이 옷에 욕심을 가진 게 얼마 만이었던가.
아마도, 처음이었으리라.
거울을 볼 때마다 헤실헤실 웃음이 새어나왔고, 걸을 때마다 팔락이는 옷소매를 볼 때마다 괜스레 기분이 좋아지곤 했다. 로브를 입은 제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꿈을 이룬 것 같았다.
그리고, 지금.
라니엘은 멍하니 눈을 깜빡이고 있다.
바라보는 것은 손에 쥔 천조각.
칼에 베인듯한, 새하얀 천조각을 바라보는 라니엘의 동공이 거세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 심하게.
“아.”
손을 뻗어 뒷목을 매만졌다.
목덜미에 뭉친 천을 쥐는 손에 무언가 허전한 감각이 느껴진다. 조금 더 손가락이 감기는 감각이 있어야 했는데, 그런 게 없다.
‘설마, 에이, 설마···.’
애써 현실을 부정해보지만, 어림도 없는 이야기다. 모자를 잡아당겨 머리에 꾹 눌러 써보니, 그 면적이 턱없이 부족한 게 눈에 보이곤 만다.
잘려나간 천조각.
허전한 로브의 모자.
라니엘의 입술이 벌어졌다 닫히기를 반복한다. 고개를 푹 숙인 그녀의 어깨가 부들부들 떨렸다. 이윽고, 라니엘이 고개를 휙 들어 올렸을 때··· 푸른 눈동자에 담긴 것은 깊고도 깊은 분노다.
“이 씨팔···.”
파르르 떨리는 목소리.
“너, 너, 너 이 개 같은···.”
음절의 틈새마다 느껴지는 거친 숨소리.
“———, ———!”
라니엘의 입을 통해 뱉어진 거친 언어에, 카일의 눈동자가 한순간 흔들리고 만다. 세상에 욕설이 이다지도 다양했음을 깨달으며, 카일은 무심코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돌려내! 돌려내라고 개새끼야!”
“뭐, 뭐를 말이냐.”
라니엘이 달려든다.
카일은 성검을 세우지도, 그렇다고 놓지도 못한 어중간한 자세로 뒷걸음질쳤다.
“로브. 로브, 개새끼야! 로브!”
몹시도 분노가 느껴지는 외침이었다.
* * *
달려드는 소녀의 모습에, 카일은 적잖은 혼란을 느낀다. 정체를 모를 때야 닥치는 대로 성검을 휘두르고 봤지만··· 지금은 상황이 좀 달랐다.
라니아 반 트리아스.
카일은 소녀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
그 첫 만남부터 워낙에 인상 깊었던 소녀이며, 녀석과 같은 가문에 속해있는 소녀. 그녀에게서 카일은 옛 동료의 흔적을 느낀다.
‘정말, 녀석이 아니란 말인가.’
얼굴을 마주한 것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으나, 카일은 소녀에게서 익숙함을 느낀다. 무척이나 오랫동안 함께한 동료와 마주한 기분이다.
라니엘과, 라니아.
별은 여전히 그 둘이 별개의 인물이라 카일의 귓가에 속삭인다. 카일은 별의 목소리를 의심할 생각을 하진 못한다. 달려드는 소녀를 미간을 좁힌 채 바라볼 뿐이다.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얼굴을 확인한 지금, 카일은 차마 소녀에게 성검을 휘두르지 못한다. 왜인지 모를 거부감이 드는 탓이다
콱.
결국 카일은 다소의 부상을 각오하고 소녀의 손목을 붙잡는다. 가느다란 손목이지만, 그 손목을 붙잡다가 얻어맞은 갈비뼈가 몹시도 아팠다.
“놔.”
“······.”
“놓으라 했다.”
소녀가 그르렁거렸다. 눈을 부릅뜬 채, 당장에라도 물어뜯을 것처럼 이를 갈고 있다. 그녀가 다리를 뒤로 들었다가, 카일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우득!
카일의 정강이에서 요란한 소리가 났다. 생긴 건 여리여리한 주제에, 발차기가 제법 매콤했다. 카일이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우선, 대화를···.”
“좆 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양 손목을 붙잡고 있자니 소녀의 입술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카일이 보기에 그것은 ‘평범한 언어’를 읊기 위한 움직임은 결코 아니었다.
“■···.”
응축된 언어.
주문 언어라 불리우는 것.
소녀를 중심으로 거친 마나가 몰아치기 시작한다. 당장 손목을 놓지 않으면 자폭이라도 하겠다는 듯한 모습이다. 몰려드는 마나의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텁.
다행이도, 그 주문 언어가 끝까지 발음되는 일은 없었다. 누군가 소녀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은 까닭이었다. 카일의 양손은 소녀의 손목을 붙잡는 데 쓰이고 있다. 그렇다면 누가?
“그만해라.”
여태껏 잠자코 상황을 지켜보던 은발의 엘프였다.
“기둥을 다 부숴야 속이 후련하겠나? 이 기둥들도 유물이다. 유물이란 말이다, 이 애송아···.”
서른 일곱 개의 기둥.
이제는 열댓 개밖에 남지 않은 기둥을 가리키며 엘프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만 좀 해라···.”
제 고향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불한당들의 폭거에 참다못한 집주인이 제지에 나섰다.
2.
어지간하면 내버려 둘 생각이었다.
둘다 진심으로 서로를 죽이겠다고 싸우는 것은 아니었고, 라니엘이 옛 동료와 감정의 골이 깊다는 것은 카르디 또한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적당히 속 풀릴 때까지 싸우라고 내버려 둘 생각이었거늘···.’
도저히 적당히가 없다.
애초에, 저 녀석에게 적당히를 기대한 자신이 잘못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고 만다.
교회의 지하는 엉망진창이다.
글레리아가 자랑스러워하던 서른일곱의 기둥은 이젠 열댓개 밖에 남지 않았다.
“돌겠군···.”
카르디는 한숨을 내쉬며 주변을 둘러봤다.
“그러니까, 저분이···.”
“···엘프의 구원자?”
“응, 고대의 엘프. 저분은 신뢰할만한···.”
주변을 둘러보면, 용사에게 열심히 상황을 설명하고 있는 신궁의 모습이 보인다. 그러다가 자신과 눈을 마주치자, 신궁은 고개를 살짝 숙인다.
끄덕.
맡겨 달라는 듯한 눈동자다.
수십 분에 걸친 설교의 효과가 제법 확실해 보였다. 카르디는 상황이 그리 복잡하게 꼬이지는 않으리라 예상하며 시선을 옮긴다.
‘문제는···.’
시야의 한구석.
‘저 녀석 이겠지.’
쪼그려 앉아 바닥에 로브를 펼쳐놓은 라니엘의 모습이 카르디의 시야에 들어온다. 그녀는 잘려나간 로브의 모자 부분을 계속해서 더듬고 있다.
“···후우.”
말없이 한숨을 내쉬며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들어서는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용사를 째려보기를 반복한다. 그러기를 한참이다.
‘정작 찢어진 로브는 내 것인데.’
왜 저 녀석이 더 화를 내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군.’
카르디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그래도 녀석이 저런 상태여서야, 이야기가 진행되질 않을 것 같았다.
터벅.
라니엘의 곁으로 다가간 카르디가 툭툭, 하고 라니엘의 어깨를 두들겼다. 라니엘이 고개를 들어 카르디를 올려다봤다.
“···왜?”
“옷감만 챙겨놔라. 나중에 수선해줄 테니까.”
“수선이··· 돼?”
“그럼 안 되겠나? 애초에 그 로브, 여행 중에 몇 번이고 찢어먹었던 로브다. 깔끔하게 수선해놔서 흔적이 안 남았을 뿐이지.”
라니엘의 눈동자에 조금 생기가 돌았다.
“···진짜 해주게?”
“해주겠다. 안 해줬다간 내가 또 무슨 수고로움을 겪을 줄 알고···.”
그제서야 툭툭, 제 무릎을 털며 라니엘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곤 무척이나 자연스럽게 로브를 제 어깨에 둘러멨다.
‘···돌려받기는 글렀군.’
카르디는 한숨을 쉬며 라니엘을 데리고 앞으로 걸어갔다. 보다 정확하겐, 신궁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용사에게로.
“······.”
카일 토벤.
당대에서 가장 강한 별빛을 받은 용사이자, 가장 뛰어난 재능을 지닌 용사. 그가 카르디를 바라본다. 카르디 또한 카일을 바라봤다.
“···엘프의 구원자, 카르디라고 했습니까.”
“거창한 이름이지. 카르디라고 불러라.”
“하나,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카일이 질문을 던진다.
“우리, 어디선가 만난 적이 있지 않습니까? 정확하겐, 제가 좀··· 어렸을 때.”
카르디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기억이 날아갔음에도, 기시감 정도는 느끼는듯하군. 아니면, 감이 좋은 건가.’
카일이 아직 용사로 각성하기 전에, 카르디는 카일과 마주한 적이 있었다. 광장에서 동냥질을 하던 카일과 라니엘을 가게로 데려온 적이 있었으니까.
라니엘은 자립하기를 선택했다.
카일은 가게에 남기를 선택했다.
그리고, 카일은 카르디의 가게에서 일하던 도중 잘못된 방향으로 진실에 접근하고 말았다. 규칙에 어긋난, 꼼수와도 같은 방식으로.
‘그 결과 기억이 전부 날아갔지.’
자신과 관련된 모든 것.
카르디란 엘프와, 그가 얽힌 모든 사건.
그 사건에 대한 기억은 카일의 머릿속에서 완벽하게 지워져 있다. 카르디는 그것을 구태여 자극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래 봐야 망가질 뿐이니까.
“글쎄. 나는 초면이로군.”
“···잊힌 이, 라고 별은 예언합니다.”
“역사에서 잊힌 존재임은 맞으니까. 그래서, 본론으로 넘어가지. 너희는 왜 이곳에 있는 거지?”
카르디가 팔짱을 낀 채 말했다.
“이곳은 옛 왕국의 유적이다. 그리고, 내 고국의 유적이기도 하지. 보아하니 별빛을 이용해 억지로 길을 뚫어낸 모양인데···.”
카르디의 눈동자는 카일의 목에 걸린 뼛조각으로 향한다. 그것은, 글레리아의 손가락이다. 카르디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도굴이라도 할 생각이었나?”
“···인류를 위한 일입니다.”
“설명이 짧군. 용사라 해서 모든 행위가 용서되진 않지. 목적을 정확하게 설명해라.”
카일이 곁에선 레미아를 바라본다.
레미아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성배의 탐색입니다.”
성배(??).
그 단어에 카르디의 미간이 좁아졌다. 그는 자신에게 걸린 제약을 확인했다. 제약은 눈앞의 용사에겐 아무런 자격도 없다고 판단한다.
‘계약에 접근하지 못했을 텐데, 어찌?’
한 초인이 집념으로 계약의 틈새를 비집어 냈음을 카르디로선 알 길이 없었다.
“성배를 회수해 가겠다고?”
“예. 아마도, 당신의 일행이 지니고 있는 그것이겠죠. 저희에겐 그것이 필요합니다.”
카일이 성검의 칼자루를 매만졌다.
“초인의 부재로 하여금, 현재 전장은 새로운 초인을 필요로 합니다. 인류는 계속해서 밀리고 있고, 전선은 나날이 뒤로 후퇴하고 있습니다. 흐름을 뒤바꿀 초인의 존재가··· 저희에겐 필요합니다.”
그러니, 우리에겐 그 성배가 필요하다.
대의를 입에 담는 용사의 목소리는 경건하기까지 하다. 연설로 단련된 카일의 목소리에 흔들림은 없었다.
“그러니.”
카일이 손을 뻗었다.
“성배의 양도를 부탁하겠습니다.”
“글쎄.”
카르디는 심드렁한 눈치로 카일을 바라봤다.
“너, 거짓말을 하고 있군.”
“···그게 무슨 소립니까?”
“초인의 부재라고 했나?”
카르디가 팔을 뻗어 카일의 성검을 가리켰다.
“초인의 부재가 아니지. 용사의 부재겠지.”
짐승을 닮은 눈동자가 누런빛으로 번들거린다.
“너, 별과 계약을 맺었군.”
그 목소리에 카일의 손가락이 움찔, 하고 떨렸다. 카르디의 뒤에 서 있던 라니엘의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카르디, 그게 무슨 소리···.”
“가만히 있어봐라.”
라니엘의 말을 자르며, 카르디는 카일을 바라본다. 별과 계약을 맺어본 적이 있기에, 카르디는 용사의 몸에 나타난 이상을 알아차린다.
자신과는 다른 종류의 계약이다.
하지만, 그 본질은 닮아있음을 느낀다.
“너, 별과 무슨 계약을 맺었지? 무슨 계약을 맺었기에···.”
성검을 향했던 카르디의 손끝이, 카일의 심장으로 향한다. 별빛이 고여있어야 할 심장을 가리키며 카르디가 말했다.
“왜, 별빛이 네 심장이 아닌···.”
“거기까지.”
카일이 카르디의 말을 끊었다.
“제가 맺은 계약이야 아무래도 좋습니다. 성배를 주실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다면 저는 억지로라도 당신에게서 성배를 뺐을 생각입니다.”
카일의 손가락이 성검에 얽힌다.
당장에라도 성검을 뽑아들려는 카일을 바라보며, 카르디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곳의 성배는 아무나 쥘 수 있는 게 아니다. 가져가려 해도 불가능한 일이지.”
라니엘에게서 카르디가 성배를 건네받는다.
그것을 카일의 앞에 내밀었다.
“가져갈 수 있으면 가져가 봐라.”
카일이 말없이 손을 뻗었다.
그러나, 성배는 흩어지고 만다. 흩어졌던 성배는 카일의 손이 완전히 성배를 지나가고 나서야 본 모습으로 돌아왔다.
“쥘 수 없을 거다.”
카르디가 말한다.
카일은 다시 한번 성배를 쥐고자 한다. 그러나, 결과는 똑같다. 손끝이 닿은 것 만으로 성배는 흩어져 버리고 만다. 레미아가 시도해 보아도 그 결과는 다를 바가 없었다.
“네게는 자격이 부족하다. 진실에 근접하지 않았다면, 이것을 쥐는 것 조차 불가능하겠지.”
“···그렇다면.”
카일이 손을 뻗었다.
그 손가락은 카르디의 곁에 선 라니아를 가리켰다.
“저 소녀는 왜 쥘 수 있는 겁니까?”
“너랑 나랑 같겠냐?”
자신을 가리킨 손가락을 당장에라도 물어뜯을 것처럼 라니엘이 그르렁거렸다.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카일은 말을 이었다.
“그리고, 왜 당신과 저 소녀는 이곳에 있는 겁니까? 저 소녀는 대체 뭐기에···.”
카일은 자신의 팔뚝에 묻은 그을음을 문질러 지웠다. 오직 라니엘만이 사용할 수 있는 주문인, 재는 재로(Ashes to Ashes)에 당한 흔적이었다.
“라니엘, 그 녀석과 같은 주문을 사용하는 겁니까.”
카르디가 라니엘을 돌아봤다.
라니엘은 올게 왔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녀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나섰다.카일과 라니엘은 서로를 바라본다.
“너, 정체가 대체 뭐지?”
그 질문을 앞에 두고, 라니엘이 입을 열려는 찰나다.
카일, 상황 다 끝난 거죠?!
반파된 계단의 위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빼꼼 내밀고 이곳을 바라보고 있는 인물이 하나 있었다. 모두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저 내려갈게요? 내려가요?
성녀, 사라.
카일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그녀가 공동을 향해 뛰어내렸다. 공중에서 성법술을 발현한 그녀가 느린 속도로 지상을 향해 떨어졌다.
“읏챠.”
카일의 곁에 착지한 그녀가 짧게 숨을 뱉었다.
“휴, 끝났으면 빨리빨리 불러줘야···.”
제 옷깃을 툭툭, 털다 말고 사라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녀의 시선은 카일과 마주 서 있는 한 소녀를 향해있다.
“···어?”
사라의 눈동자가 크게 뜨였다.
“당, 당신은!”
그녀가 라니엘을 삿대질했다.
“아플리아의 미친년!”
카일과 카르디는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풀려가던 상황이 어째, 더 꼬여가는 듯한 느낌을 강하게 받은 탓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