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232
〈 232화 〉 성배의 시련(6)
* * *
검의 협곡, 갈라트릭.
지금은 모두에게 잊혀졌으나, 검의 협곡은 본디 한 명의 검사에 의해 탄생한 곳이다.
「이곳이 좋겠군.」
머나먼 과거, 지금은 고대라 불리는 시절.
당시 검을 수련할 장소를 찾아 헤매던 한 검사는 인계의 끝자락에 위치한 절벽에 도착했다. 깎아지른 절벽만이 놓인 그곳에서 그는 검을 들어 올렸다.
한번의 휘두름.
갈라져서 무너져 내리는 절벽.
그날 절벽은 협곡이 되었고, 그곳은 검사의 이름을 본떠 ‘갈라트릭’이란 지명으로 불리게 됐다.
『갈라트릭.』
그곳을 만들어낸 검사에 대한 이야기도, 지명의 유래도, 최초의 검성에 대한 전설조차 잊히고 말았으나 그곳은 여전히 갈라트릭이라 불린다.
검의 협곡이었고, 성지였으며.
이제는 무덤이 되어버린 곳.
그곳에 바로 선 채, 협곡의 주인은 자신에게 도전하는 전사를 바라본다. 땅을 박차고 달려드는 전사의 호흡은 거칠다. 걸음걸이는 불안정하다.
미숙하다.
‘하지만.’
미숙하나, 그 눈동자만큼은 완성되어 있다.
소년은 자신이 상대해야 할 이를 두 눈에 담고, 결코 고개를 돌리거나 눈을 감는 법이 없다. 전사로서의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미숙하지만 기본은 되어있다.
당장은 그것이면 족했다.
“그래.”
가니칼트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는 언젠가 자신에게 검을 배웠던 소년을 떠올리며, 달려드는 라크를 향해 입을 열었다.
“베일 각오로베어라.”
죽일 각오로 덤벼라.
“그것이 기본이니.”
그렇게 성배의 시련은 시작된다.
2.
“성배의 안에서 마주한 건 스스로를 벨리알이라 밝힌 분이셨습니다.”
벨노아의 말에 내가 눈을 깜빡였다. 한순간 벨노아가 뱉은 말을 이해하지 못한 까닭이었다.
‘아니, 애초에 대화가 가능해?’
머릿속이 복잡했다.
“···이름을 밝혔다고? 그러니까, 말을 했어?”
“예. 그림자 용의 주술사, 벨리알. 시련에 나타난 건 라니아 교수님이 아니라 그분이셨습니다.”
벨리알.
그 누구도 재앙과 같은 이름을 사용하려 들지 않았으므로, 벨리알이란 이름은 오직 흑룡을 부르는 데 쓰이는 이름이었다.
‘그런데, 주술사라고?’
짐작 가는 것은 있다.
있긴 하지만, 그건 벨노아가 알 수 있는 정보가 아니었다. 내가 눈을 가늘게 뜬 채 되물었다.
“흑룡이 아닌 주술사?”
“예, 건장한 체격에 주술을···.”
“팔뚝에 용의 문신을 새겼어?”
“···예? 아, 넵.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내가 머릿속에 떠올리는 인물과, 벨노아가 성배 속에서 마주한 인물은 같다. 그 사실이 확실해진 가운데 나는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리가 없을 텐데?
벨노아는 과거의 벨리알을 알 방법이 없다. 그것은 오직 북부의 탑에만 남아있는 기록이었고··· 그 기록을 보기 위해선 까다로운 조건이 필요했다.
‘카르디가 말해줬나? 아니면, 조건을···.’
둘다 아니었다.
나는 입을 열어 벨노아에게 ‘벨리알’에 대해 말하려 했으나 제약이 내 혀뿌리를 옭아맸다. 벨노아에겐 자격이 없다는 증거였다.
“···알고는 있어. 하지만, 그건 네가 만날 수 있는 인물이 아닐 텐데. 너, 이전에 그 사람을 본 적이 있어?”
“아뇨, 성배 속에서 처음 봤습니다.”
“성배는 네가 보고, 경험해 온 강자들을 토대로 시련을 만들어낼 텐데? 짐작가는 거라도···.”
“그건 저도 잘···.”
제 턱을 매만지던 벨노아가 아, 하고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나를 바라봤다.
“저를 후계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후계자?”
“예, 그림자 주술을 다루는 방법을 가르쳐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실제로 주술의 방향성을 알려주시기도 했고···.”
그림자 주술, 그리고 후계자.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정보가 하나 있었다.
“벨노아.”
내가 나지막이 벨노아의 이름을 불렀다.
“너, 주술을 처음 배운 게 어디서라고 했지?”
“카르디 영감입니다. 그 영감이 가게 구석에서 주술서를 꺼내다가 줬었거든요. 저한테 주술 쪽으로 재능이 있다던가···.”
과연.
머릿속에서 퍼즐 조각이 맞춰지는 감각이 들었다. 후계자, 주술, 그리고 성배를 만들었던 카르디. 조각이 모여드니 대략적인 답이 나왔다.
「성배는 도전자의 영혼에 담긴 기억에서 시련을 만들어 낸다. 단순히 머릿속에 남은 기억이 아닌, ‘영혼에 새겨진 기억’ 말이다.」
그때는 왜 그걸 강조하나 싶었는데···.
‘주술로 기억을 새긴 거구나.’
주술이든 주문이든, 비슷한 체계의 회로를 반복적으로 사용하다 보면 회로 그 자체가 체내에 녹아들곤 한다.
‘육체와 영혼에 회로가 녹아들어, 주문의 숙련도와 위력이 크게 상향되는 현상.’
마법사들이 ‘숙달’이라 부르는 현상이다.
‘내 강타나 분쇄도 그쪽이긴 한데···.’
그러나, 그것은 어쩌다 보면 일어나는 현상에 불과하다. 얼마만큼 주문을 써야 할지도 모르고, 영혼에 어떤 식으로 회로가 새겨질지도 확실하지 않다.
그저 우연의 산물이란 소리다.
그 누구도 밝히지 못해 마학계에선 우연의 산물로 취급하는 현상. 나조차도 숙달이란 현상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진 않았다.
“···그런데, 그걸 인위적으로 일으켰다고?”
내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언젠가 자신의 주술을 사용할 후계를 위해, 그 후계가 성배를 사용할 때를 대비해··· 주술의 회로 자체에 기억을 새겨넣는다. 그 기억은 주술을 사용하면 할수록 후계의 영혼에 흔적을 남긴다.
영혼에 잘게 흩어진 흔적.
그것을 이을 무언가가 없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을 흔적이다. 하지만, 흩어진 것들을 하나로 모아 의미를 부여할 물건이 지금 내 손에 쥐어져 있었다.
성배(??).
도전자의 영혼에서 ‘기억’을 읽어내, 시련의 형태로 완성시키는 기적의 성유물. 성배라는 물건의 존재가 흩어진 기억에 의미를 부여한다.
시련의 형태로서 쪼개진 기억을 완성시킨다.
“그게 뭔···.”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언제일지, 얼마만큼의 뒤일지도 모르는 후계를 위해 여기까지 안배를 해뒀다고?’
제정신으로 할 일이 아니었다.
나는 금이 간 성배를 멍하니 바라봤다. 성배의 구조 자체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으나, 이조차도 계획의 일환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고 만다.
“도대체, 뭘 어디까지 안배해둔 것인지···.”
헛웃음을 흘리며 내가 중얼거렸다.
“···금이 갈 만도 하네.”
금이 간 성배를 매만지며 내가 시선을 돌렸다. 벨노아가 아닌, 라크가 들어갔던 별 웅덩이를 향해.
‘벨노아는 벨리알과 연관이 있었다.’
별 웅덩이를 기점으로 만들어진 비틀림.
‘그렇다면, 라크는.’
얼핏보면 비틀어진 공간이나, 자세히 바라보면 그곳에는 한줄기의 참격이 새겨져 있다. 칼로 공간을 찢어낸 듯한 흔적이다.
그리고 내가 기억하기로.
한자루의 검(?)으로, 저런 정신 나간 짓이 가능한 존재는 한 명밖에 없었다.
‘가니칼트 반 갈라트릭.’
그레이스 가문의 성지에 놓여있던 검.
가니칼트가 살아생전 사용했던 성검.
그것과 지금 저 현상이 관련이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추측을 할 뿐이었다.
“야, 벨노아.”
“예? 교수님.”
“말을 바꿔야겠다.”
벨노아가 눈을 깜빡였다.
나는 라크가 들어간 웅덩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문제는 네가 아니라 라크였구나.”
내가 관자놀이를 꾸욱, 눌렀다.
“쟤 어떡하냐 진짜···.”
이건 깨라고 만든 수준이 아니었다.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게 분명했다.
3.
죽었다 깨도 이기지 못한다.
가니칼트를 마주한 순간 라크의 머리에 떠오른 확신이었다. 자신이 무슨 수를 쓰던, 눈앞의 상대에게 승리는 커녕 일격조차 먹일 수 없다.
‘아니, 닿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단지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그런 확신이 든다.
라크의 직감이 경종을 울리고, 당장 뒤를 돌아 도망치라고 본능이 경고한다. 그러나, 라크는 결코 뒤를 돌아보는 법이 없다.
시선은 정면으로.
무기를 쥔 손에는 더 강한 힘을.
망설임을 떨쳐내며 라크는 앞으로 나아간다.
그 걸음이 향하는 곳에는 가니칼트가 서 있다. 그는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으나, 라크의 눈에 가니칼트는 하나의 벽으로 비춰 보인다.
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이다.
수백번을 내려친다 하여 금이 갈거란 생각조차 들지 않는 견고한 벽. 각오를 다진 채 벽의 앞에 라크가 다가선 순간이다.
“······.”
라크는 가니칼트와 시선을 마주한다.
투구의 안에서 가니칼트의 눈동자가 빛난다. 차갑게 가라앉은 검은 눈동자를 마주하는 순간, 라크의 두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커흑!”
온몸이 갈기갈기 찢겨나가는 환상이 찾아온다.
한순간에 목이 떨어지고, 팔다리가 떨어져 나가며 심장이 쪼개지는 환상을 본 라크의 걸음이 멈춘다.
처음처럼 바닥에 엎어지지도, 무기를 놓치지도 않았지만··· 거기까지가 한계다.
단 한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
몸을 사슬로 옭아맨 듯한 느낌이다.
‘환상임을 이해하고 있다.’
이해하고 있으나, 그것은 단순한 환술이 아니다.
눈앞의 기사에게는 환상을 한순간에 현실로 옮겨올 힘과 기술이 있으며, 고작 의지만으로 그것을 라크의 뇌리에 때려 박은 것이다.
느껴지는 것은 죽음의 공포.
공포 앞에 의지가 또다시 꺾이려 한다.
시선을 마주한 것만으로 사고를 강탈당한다.
다리가 떨린다. 무기를 쥔 손끝이 파르르 떨려온다. 눈꼬리가 저리고 딱, 따닥하고 윗니와 아랫니가 꼴사납게 맞부딪친다.
하지만.
“후윽, 후우우욱···!”
끝끝내시선을 돌리진 않는다.
눈꼬리에 힘을 주고 자꾸만 돌아가려는 시선을 정면에 고정한다. 눈동자에 핏발이 서고, 이를 꽉 깨문 탓에 턱이 저려왔다.
시선을 고정함으로써 시야에 담는 것은 일대의 풍경. 자신이 앞으로 가야 할 길.
가니칼트에게 닿기까지는 다섯 걸음이 필요하다.
마음만 먹으면 한번에 건널 수 있는 거리이나, 지금의 라크에게 저 다섯 걸음의 간격은 그 무엇보다 멀게만 느껴진다.
“그래. 두눈으로 똑바로 보아라.”
기사의 목소리가 메아리친다.
“다섯 걸음.”
그가 라크에게 말한다.
“다섯 걸음의 간격을 좁혀라. 내가 지금의 네게 알려줄 수 있는 거라곤, 이 감각이 고작이겠지.”
라크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기사는 말한다.
“넘어와라.”
라크는 이를 악문 채 몸에 힘을 준다.
끼긱, 끼기기긱.
라크의 눈에는 일대의 공간이 짓눌리는 것처럼 보였는데, 라크는 이것이 환상인지 아닌지 분간할 수 없었다. 실제로 기이한 압박이 라크의 몸을 찍어누르고 있었으므로.
걸음이 무겁다.
몸이 움직이질 않는다.
뿌득, 하고 이를 갈며 라크가 억지로 몸을 움직였다. 공포에 지배당한 몸을 의지 하나로 라크는 움직이기 시작한다.
우득, 우드득.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라크가 간신히 걸음을 내디딘다. 겨우 한걸음 내디뎠을 뿐인데 온몸에서 땀이 흐른다. 높은 절벽을 오른 것처럼 호흡이 가쁘다.
내디딘 한 걸음을 디딤발 삼아 다시 한걸음.
비명을 지르는 육체를 움직여 라크는 가니칼트에게 다가선다. 이를 악물고 네 걸음째를 내디딘 순간 라크는 참았던 숨을 토해냈다.
“커흑···!”
한 걸음만이 남았지만, 육신은 한계에 이르렀다.
더는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온몸이 비명을 지른다.
네 걸음이면 충분하다고, 여기까지 했으면 그만해도 좋지 않겠냐고 속삭인다. 하지만 라크는 이루어낸 것에 안주하지 않는다.
다시 다음으로.
남은 한 걸음을 내디딘다.
한계가 온 육체를 채찍질 해 내디딘 한 걸음.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걸음을 내디디며, 라크가 팔을 움직였다. 뿌득, 소리를 내며 라크의 팔이 움직인다.
가니칼트가 요구한 것은 다섯 걸음을 내디디는 것.
다만, 라크는 다섯 걸음에 멈출 생각이 없었다.
단순하고 올곧으나, 그렇기에 라크는 자신이 정한 것을 어기는 법이 없다. 라크는 눈앞의 기사에게 전사의 긍지를 보인다.
카앙!
라크의 도끼가 가니칼트의 흉갑을 찍는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라크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쓰러졌다.
“······.”
막을 수 있음에도 그 공격을 막지 않은 가니칼트는, 천천히 손을 뻗어 제 흉갑을 매만졌다.
“훌륭하군.”
그가 눈을 감았다 뜬다.
그것만으로 주변을 집어삼키던 압박감이 사라졌다. 라크는 고개만을 살짝 들어 올려 가니칼트를 바라봤다.
“지금의 감각을 기억하라.”
가니칼트가 말한다.
“인간의 육신은 의지를 따른다. 그 의지가 또렷하다면 육신은 한계를 넘어 움직인다.”
그 목소리는 조금 전 까지와는 다르다.
날카롭지도 서늘하지도 않다.
“한계를 넘어설 가능성. 극복하여 다음으로 나아갈 가능성. 모든 인간은 그것을 가지고 있다.”
꼭, 제자를 가르치는 스승과도 같은 목소리다.
“타고난 육신이 약하기에, 수명이 짧기에, 짧은 생애 동안 무언가를 이루려 하기에.”
그렇기에.
“인간은 언제나 한계를 극복해왔다. 그로서 이어진 것이 인류의 역사이며··· 그것이 내가 살아갔던 과거이자, 네가 살아가는 현재일 테지.”
인간에겐 가능성이 있다.
“훌륭했다. 라크 반 그레이스.”
그 가능성을 믿고 자신의 생애를 바친 한 명의 검사는, 눈앞의 소년을 향해 미소 지었다.
“정진하도록.”
그가 검을 들어 올렸다.
스릉.
검사는 들어 올린 검을 하늘을 향해 휘두른다.
하늘 아래 땅에 발을 디딘 인간이, 하늘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칼끝이 가르는 것은 기껏해야 허공일 뿐.
그러나, 인간이 쥔 검의 끝은 분명히 하늘에 닿았다.
서걱, 하는 소리와 함께 하늘이 고요히 갈라진다. 갈라지고 드러난 것은 벗겨진 공간이다. 성배의 시련이 완전히 무너져 내리며 라크는 튕겨져나간다.
“다음에 만날 날을 기대하도록 하지.”
무너지는 성배의 시련.
파묻히는 검의 협곡.
협곡의 주인은 땅에 칼을 꽂은 채, 언제나처럼 그곳에 고고히 존재할 뿐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