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231
〈 231화 〉 성배의 시련(5)
* * *
그림자 용의 주술사, 벨리알.
남자는 자신을 그렇게 소개했다.
벨노아는 눈을 가늘게 뜬 채 남자를 바라봤다. 용의 형상을 닮은 문신을 새긴 남자의 팔 위로 그림자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림자 주술?’
분명한 그림자 주술의 흔적이다.
하지만 벨노아가 알고 있는 그림자 주술과는 다르다. 전장에서 마왕군이 사용한다는 주술과도 방향성이 달랐다.
달라서이질적인 것.
벨노아의 눈매가 조금 더 가늘어졌다.
그 기이한 주술도 주술이지만, 조금 더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었다. 벨노아가 입을 열었다.
“···벨리알, 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그래. 내 이름을 알고 있나?”
모를리가 없다.
왕국 수백 년의 역사에 재앙으로서 군림했던 존재의 이름을 모르는 이는 없었으니까.
“당신을 이곳에서 처음 뵙지만, 벨리알이란 이름은 알고 있습니다.”
“좋은 방향으로 들은 이름은 아닌 것 같군.”
벨노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검은 폭풍, 흑룡 벨리알.”
날개짓 한 번에 전장을 뒤엎고, 뿜어낸 불길은 천혜의 요새조차 잿더미로 만드는 마룡(??).
“···예상은 했지만.”
벨노아의 말에 벨리알은 쓰게 웃었다.
“최악의 방향으로 흘러간 모양이군. 하기야, 내가 이곳에서 너와 마주한다는 것 자체가··· 일이 꼬일 대로 꼬였단 뜻일 테니까.”
중얼거리며 그가 걸음을 옮겼다.
사박, 하고 사막의 모래에 발자국이 찍혔다.
“소년, 흑룡 벨리알이라고 했나.”
“예. 역사에 재앙으로서 군림하는···.”
“재앙, 재앙이라.”
벨리알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 흑룡이란 녀석은 사람을 죽였나? 아니, 물어볼 필요도 없는 질문이겠군. 사람을 죽였으니 재앙이라 불린 것일 테니까.”
사람을 죽인 수준이 아니다.
나라를 불태우고, 수백 년의 세월 동안 셀 수 없이 많은 폐허를 만들어냈다. 그렇기에, 흑룡은 재앙으로서 군림한 것이다.
역사서에서 봤던 수많은 이야기가 떠올랐지만, 벨노아는 그것을 입 밖으로 내뱉진 않았다. 그래선 안될 것 같다는 직감을 느낀 탓이다.
그 대신 벨노아는 다른 말을 입에 담았다.
“당신께선, 흑룡과 관련이 있으십니까?”
“있겠지. 그게 ■■■■■■■■···.”
말을 하다 말고 벨리알이 눈살을 찌푸렸다.
“흐음?”
그가 제 목덜미를 몇 번 문지르고, 하늘을 올려다보더니 피식, 하고 웃음을 흘렸다.
“고약하기도 하여라.”
그리 중얼거린 벨리알이 시선을 내렸다.
“아무래도, 당장 네게 들려줄 수 없는 이야기 같군. 네가 나의 시련을 돌파한다면 또 몰라도 말야.”
“···시련?”
벨노아가 눈을 깜빡였다.
시련, 생각해보면 자신은 성배의 속에서 시련을 치르고 있었다. 당연히 라니아 교수님이 나올 거라 생각하며 긴장하고 있었지만···.
‘나온 건, 저 남자다.’
스스로를 벨리알이라 칭하는 정체를 모를 남자.
자신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이질적인 형태의 주술을 다루는 주술사.
“그래서.”
그가 입을 열었다.
“이곳은 성배의 안이겠지? ■■■ 녀석과는 그렇게 약속했으니 말야. 으음, 너는 그림자 주술을 ‘누군가’ 에게서 배웠을 테고?”
그가 가리킨 것은 벨노아가 팔에 두른 그림자 갑주다. 벨노아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림자 주술을 다루긴 합니다.”
“무던히도 사용했나 보군. 그림자를 몸에 두르는 영역까지 도달한 걸 보면··· 재능도 꽤나 있는 것 같고. 좋아, 아주 마음에 들어.”
터벅.
벨노아의 앞에 벨리알이 멈춰 선다.
벨노아는 눈앞에 선 남자를 올려다봤다. 멀리서 보았을 때도 느꼈지만, 가까이에서 마주하고 있자니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
강하다.
말도 안 되게 강한 존재다.
단지 그 자리에 서 있을 뿐인데도, 벨노아는 거대한 벽이 자신을 짓누르는듯한 압박감을 느꼈다. 숨이 막혀오고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소년.”
벽이 자신에게 질문을 던진다.
“성배의 시련에 도전했다는 것은, 네게는 다음으로 나아가야 할 이유가 있다는 것이겠지?”
다음으로 나아가야 할 이유.
“신념을 위해서, 구원하기 위해서, 위업을 이루기 위해서···.”
그 모두가 아니라면.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서.”
마지막으로 뱉어진 문장에 벨노아가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강해져야 할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클로에를 지키기 위해서였으니까.
“좋군. 아주 마음에 들어.”
그 대답이 만족스럽다는 듯, 벨리알이 호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두꺼운 손으로 그가 벨노아의 어깨를 두어 번 툭툭 두들겼다.
‘무슨 힘이···!’
벨리알의 입장에선 가볍게 두들긴 것일 테지만, 벨노아는 어깨가 떨어져 나갈 것 같은 충격을 느꼈다.
‘뭔가··· 이상한데.’
제 어깨를 두들기는 벨리알을 바라보며, 벨노아는 위화감을 느꼈다. 마주한 상대는 분명한 강자다. 눈앞에 선 저 남자는 가볍게 손을 까딱이는 것만으로 자신을 죽일 수 있는 거대한 존재다.
그런데 어째서인가.
‘두렵지는 않다.’
본능적인 공포는 있다.
강자를 마주한 순간 느끼는 위압감은 있다.
그러나, 눈앞의 남자에게서 벨노아는 심리적인 공포를 느끼진 않았다. 저 남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에게 위해를 가하진 않을 것 같다는 강한 확신이 든 까닭이었다.
근거 없는 확신.
그러나, 의심이 들지 않는 확신.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었다.
머릿속으로 벨노아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벨리알이 입을 열었다.
“소년, 이름은?”
“벨노아입니다.”
“그래, 벨노아.”
벨리알이 짧게 숨을 뱉었다.
“그림자 갑주까지 도달한 걸 보아 하면, 제법 높은 경지에 닿은 모양이야. 그 나이에 그 정도 수준이면, 재능에 의존하지 않고 충분한 노력도 한 모양이고. 하지만···.”
벨리알의 눈매가 가늘어진다. 가늘게 뜬 눈동자는 짐승의 눈동자를 연상케 했다.
“고착상태로군.”
고착상태.
그 말에 벨노아가 숨을 헛삼켰다.
사실이었다.
그림자 갑주의 다음 형태로 벨노아는 나아가질 못하고 있었다. 카르디 영감에게 물어도, 그다음 형태는 ‘계기’가 필요하다고 말할 뿐이었다.
“다음으로 가기 위해선 계기가 필요하겠지. 그리고, 그 부분은 내가 도움을 줄 수 있겠군.”
벨리알이 주변을 쓱 둘러봤다. 드넓게 펼쳐진 사막을 보며 그가 제 턱을 매만졌다. 사막에는 이미 균열이 내달려 있었다.
“나를 재현한 시점에서 한계가 온 건가? 음, 이래서야 한번 견디는 게 고작이겠어.”
중얼거리며 그가 두 팔을 들어 올렸다.
“공양(Offering).”
그가 짧게 중얼거렸다.
언어에 깃든 마력이 해방되는 순간 티딕, 하고 벨리알의 살갗이 벗겨지기 시작했다. 두 팔의 피부가 벗겨지고, 그 자리를 무언가가 대신한다.
‘···비늘?’
검은색으로 번들거리는 무언가.
그림자로 이루어진 비늘은 벨노아가 손에 두른 그림자 갑주보다 훨씬 안정된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쫙 뻗은 팔.
팔을 두르고 있는 그림자 비늘.
그것의 위로 그림자가 피어오른다. 벨노아의 것과 같은 질척한 그림자가 아닌, 짐승의 발톱과 같은 날카롭게 갈아진 그림자가.
“너는 그림자 주술을 잘못 쓰고 있다.”
사막에 바람이 불어온다.
“사고의 한계를 깨라. 육신의 한계를 무너트려라. 주술은 그것을 위한 도구다. 제 육신을 공양함으로써, 육체를 벗어난 강함을 손에 넣는 수단.”
모래가 흩날린다.
“주술은 바라는 것이다. 그림자는, 네가 바라는 것을 형태로서 고착화하는 것이지.”
바람은 조금씩 거세진다.
“떠올리는 것은, 완벽한 형태의 존재.”
일찍이 이 땅에 존재했던 고룡(古?).
“한 번의 날갯짓으로 일대를 휩쓸고, 한 번의 숨결로 땅과 하늘을 불태웠던··· 완전한 존재들.”
뿌득, 뿌드득.
요란한 소리를 내며 벨리알의 팔이 팽창한다. 그림자에 감긴 팔은 한순간이지만 용의 형상을 띈다.
“잘 봐둬라, 소년.”
그가 웃음을 흘린다.
“보여주마.”
짐승의 팔.
일찍이 하늘을 할퀴던 용의 손톱.
“그림자 용의 주술이 무엇인지.”
그가 팔을 휘두른다.
인간의 육신에 깃든 용의 손톱이 하늘을 할퀸다. 손톱이 그리는 길을 따라 바람이 밀려들었다. 밀려들고, 회오리치는 바람이 만들어내는 것은 폭풍이다.
카가가가가가각!
폭풍이 몰아친다.
용의 손톱이 만들어낸 바람이 일대를 집어삼킨다. 바람에 섞인 그림자는 폭풍을 검게 물들인다.
모래가 사방으로 흩날리고, 몰아치는 바람에 휘감겨 잘게 바스러진다. 모래마저 갈아버리는 검은 폭풍은, 마치 닿는 모든 것을 무(無)로 되돌리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바람 한점 불어오지 않는 곳에,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폭풍이 한순간에 나타났다.
“···아.”
벨노아는 눈을 크게 뜬 채 몰아치는 폭풍을 바라본다. 이어서, 한 번의 휘두름으로 폭풍을 만들어낸 벨리알을 바라본다.
“지금 본 것을 잘 기억해둬라, 소년.”
벨리알은 미소 짓는다.
“다음에 만났을 때는, 네가 온전한 시련을 경험할 수 있기를 바라마. 네가 경지에 오르면 오를수록, 시련이 감당할 수 있는 정도도 늘어나니까.”
쩌적.
성배가 만들어낸 공간이 박살 나기 시작한다. 감당할 수 없는 것을 마주한 성배는, 스스로의 보호를 위해 공간을 무너트리는 것을 선택한다.
그렇게 시련이 무너지는 와중에도, 벨노아는 사막에 홀로 선 벨리알을 바라봤다.
몰아치는 폭풍의 중심에 선 채, 미소 짓는 그 주술사의 모습을 바라보며 벨노아는 무의식적으로 떠올린다.
——흑룡, 벨리알에게 붙은 이명.
‘검은 폭풍.’
그 이명의 의미를 벨노아가 깨달은 순간이었다.
2.
파삭!
공간이 박살 나는 소리와 함께 벨노아가 시련에서 튕겨 나왔다. 바닥을 구르며 일어선 벨노아는 황급히 고개를 들었다.
“헉, 허억···!”
어느샌가 참고 있었던 숨을 한 번에 몰아쉬며, 벨노아가 제 가슴팍에 손을 댔다. 심장이 거세게 뛰고 있었다.
‘방금··· 내가 뭘 본거지?’
자신이 본 것은 그림자 주술이다.
그러나, 자신이 알던 것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주술이었다. 애초에, 주술로 그런 행위가 가능하다는 것조차 벨노아는 모르고 있었다.
육체의 일부를 공양하여 그림자를 불러내고, 강화시키며, 형태를 고착화한다.
그것이 벨노아가 알고 있는 주술이다.
‘하지만, 조금 전 그 사람이 사용한 건···.’
육체를 공양한다.
공양한 육체를 그림자로서 대신한다.
‘망가진 육체를 그 즉시 그림자가 수복한다.’
그 과정은 매끄러웠으며 어떠한 손실도 발생하지 않았다. 마치, 그것이 옳은 방법이라는 것처럼.
「너는, 그림자 주술을 잘못 쓰고 있다.」
그 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자신이 가야 할 방향이 보인 느낌이었다.
한번 본 것만으로도 눈이 뜨인 것 같다.
두근.
벨노아가 조금 전 자신이 보았던 것을 되새기려는 순간이었다. 누군가 벨노아의 어깨를 붙잡았다.
“벨노아.”
라니아 교수였다.
벨노아는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너, 도대체 안에서 뭘 한 거냐?”
“···예?”
“아니, 너도 너인데.”
그녀가 숲의 한구석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라크가 들어갔던 물웅덩이가 있다.
“라크, 저 녀석은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라크가 뛰어들었던 물웅덩이.
별빛이 고인 그곳을 기점으로 공간이 비틀어져 있었다. 끼긱, 끼기긱 소리를 내며 공간은 계속해서 비틀리고 있었다.
마치, 억지로 공간을 붙들어 둔 모양새였다.
“너네, 나 만난 거 아니야? 아니, 수명을 갈았다고 해도 나는 저런 거 못하는데···?”
라니아가 대단히 착각하는 와중에도, 라크의 시련은 계속되고 있었다.
3.
“시련에 도전할 때를 잘못 잡았군.”
기사의 목소리가 협곡에 울린다.
“벽을 마주했음은 맞다. 허나, 그 깊이가 얕군. 이제 막 초입에 들었을 뿐이다. 네게 시련은 아직은 이른 것 같군.”
바닥에 쓰러진 채 라크는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몸에 남은 상처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라크는 좀처럼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대체···뭐였지?’
무기를 들고 덤비라는 기사의 말.
그 말에 따라, 도끼를 들고 전력으로 달려들었던 순간이다. 기사는 검을 휘두르지조차 않았다. 그저, 투구 너머로 그 안광이 번뜩인 순간이다.
라크는 도끼를 놓쳤다.
꼴사납게 바닥에 고꾸라졌다.
눈을 마주한 순간, 라크는 제 온몸이 잘게 쪼개지는 환상을 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의지가 완전히 꺾여버렸다. 도전할 엄두조차 나질 않았다.
몸을 일으켜 세울 수가 없다.
상처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지만, 마치 힘줄이 끊어진 것처럼 몸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그런 라크를 내려다보던 기사가 짧게 숨을 뱉었다.
“네게는 의지가 부족하다.”
기사는 검을 내린 채 말한다.
“그레이스의 아이라면, 의지에 대해 배운 적이 있을 텐데? 네게는 의지가 부족하군. 각오가 부족하다.”
그 목소리에는 옅은 실망이 묻어 나온다.
“무기를 놓친 전사에게 검을 휘두를 생각은 없다. 아직 네게는 너무나도 이른 모양이군.”
검을 갈무리 한 기사가 몸을 돌린다.
라크는 멀어지는 기사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기사는 걸음을 옮기며 중얼거렸다.
“전사의 각오를 다지고 나서 도전하도록 해라. 지금의 네게는 검을 휘두를 가치가 없다.”
검을 휘두를 가치조차 없다.
전사의 각오가 없는 이.
전사의 긍지를 모욕하는 말에 라크가 눈살을 찌푸린다. 라크는 뿌득, 하고 이를 악물었다. 눈을 부릅뜬 채 멀어지는 기사의 뒷모습을 노려본다.
「모욕을 감내하지 마십시오.」
「전사의 긍지를 모욕하는 것이라면 더더욱.」
전사들에게 들었던 말이 라크의 귓가에 맴돈다.
라크는 이를 악문 채 팔을 뻗는다. 부들거리는 손 끝이 놓쳐버렸던 도끼의 자루에 닿는다. 도낏자루를 쥔 채 라크가 온몸에 힘을 줬다.
뿌득, 뿌드드득.
꺽여버린 의지, 멈춰버린 육체.
그것을 억지로 일으켜 세운다. 눈에는 핏줄이 터져 시야가 붉게 번지고, 어느새 흘러내린 코피가 바닥에 후두둑, 붉은 점을 찍는다.
“끄으으윽···!”
멈춰있으려 하는 육체를 채찍질한다.
바스라진 의지를 긁어모아 불사른다.
콱.
도끼를 움켜쥔 채 라크가 몸을 일으켜 세운다. 제 두 발로 땅을 디디고 선 채, 멀어지는 기사를 향해 온 힘을 다해 도끼를 내던졌다.
후웅!
바람을 가르고 날아든 도끼를, 기사는 뒤를 돌아보지도 않은 채 가볍게 붙잡아낸다. 도끼를 붙잡은 기사가 걸음을 멈추곤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과연.”
기사가 엷은 웃음을 흘린다.
“긍지조차 모르는 이는 아니로군.”
그가 다시 한 번 검을 들어 올린다.
그 순간, 그를 기점으로 균열이 번져간다.
시련은 가니칼트라는 존재를 불러낸 것만으로 한계를 맞이했다. 한계에 다다른 성배가 공간을 무너트리려고 하는 흔적이 협곡 곳곳에 드러나기 시작한다.
갈라져가는 땅.
쪼개지려는 하늘.
그렇게, 성배가 시련을 강제로 종료하려는 순간이다. 가니칼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미숙한 전사가 긍지를 보이고 있다. 두려움을 떨쳐낸 인간이 스스로의 각오를 드러내고 있다.”
그가 가볍게 검을 휘두른다.
휘두른 검이 공간을 일그러트려, 벌어지려는 균열을 억지로 이어붙인다.
“그러므로, 시련은 계속되어야 한다.”
공간을 붙들어 둔 채, 가니칼트가 몸을 돌려 라크를 바라본다. 투구에 가려져 그 입가는 드러나지 않지만, 라크는 왜인지 모르게 기사가 웃고 있을것 같다고 느꼈다.
“미숙하지만 긍지를 아는 아이야.”
기사가 왼손을 뻗어 라크를 가리킨다.
“묻겠다.”
가니칼트 반 갈라트릭.
긍지를 아는 검사는, 이제야 시작점에 선 소년에게 질문한다.
“너는 전사인가?”
전사로 남고자 하는가.
라크는 땅을 박차는 것으로 답을 대신한다.
그 모습에 가니칼트는 웃음을 흘린다.
“훌륭하군.”
긍지를 아는 이에게, 두려움 앞에 다시 무기를 들어올린 전사에게 가니칼트는 경의를 표한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