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230
〈 230화 〉 성배의 시련(4)
* * *
성배의 시련이 불러오는 것은 도전자가 떠올리는 이상에 닿은 강자다.
사람은 저마다의 이상을 가지고 있다. 저마다 바라는 이상의 모습이 다르니, 떠올리는 강자의 모습 또한 제각각인 것이 정상이다.
그게 정상이긴 하지만···.
“벨노아, 너도 라니아 교수님인가?”
“라니아 교수님 정체를 생각해보면, 주변에서 저분만 한 사람을 찾기가 힘드니까···.”
이상의 강자가 누구인가?
그 질문에 벨노아와 라크는 똑같은 답을 내놓았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라니아 교수님의 정체가 무엇인가.’
잿빛 마법사, 라니엘 반 트리아스다.
현자라 불리며 용사와 함께 숱한 위업을 이루어낸··· 살아있는 전설과도 같은 존재란 뜻이다.
‘재앙을 상대할 수 있는 인간.’
결국, 극한에 도달한 강자의 모습은 얼추 비슷하기 마련이다. 게다가 그 강함을 두 눈으로 목격한 라크와 벨노아에게 있어, 라니아 이상의 강자를 머릿속에 그려보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초인, 검귀(??)가 선보인 극한의 기술을 맨손으로 찢어발기던 모습.
저 자신의 몸을 불태워가며 재앙에게 대항한, 찬란한 별빛을 품은 모습.
각자가 보았던 라니아의 모습을 라크와 벨노아가 떠올리고 있을 무렵이다. 으음, 하고 미간을 꾹꾹 눌러대던 라니아가 입을 열었다.
“너희 있잖아.”
라니아가 툭툭 테이블을 두들겼다.
“날 상대로 한 방 먹일 수 있겠어?”
또 다시 영문 모를 질문이다.
벨노아가 눈을 깜빡이다가 되물었다.
“지난번 실습 시험처럼 진행하는 겁니까?”
“아니, 너희가 방금 말한 나를 기준으로.”
방금 말한 것이라면.
“그, 배교자를 상대하실 때 당시의···?”
“응. 딱 한방만. 유효한 타격.”
라니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진지하게 생각해봐.”
아니, 진지하게 생각하라 해도 그건 좀.
그래도, 일단 물어보셨으니 벨노아는 진지하게 머릿속으로 상황을 그려 보았다.
‘별빛을 품은 라니아 교수님.’
수명을 태움으로써 재앙에게 닿았던 마법사.
그 마법사를 상대로, 자신이 일격을 먹일 수 있는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벨노아는 고민해 본다.
‘유리한 환경, 온갖 꼼수와 잡기술··· 그리고 공양으로 다 갖다 바친다고 가정해봐도···.’
답이 보이질 않는다.
벨노아가 턱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눈 감았다가 뜨면, 목이 떨어져 있을 것 같습니다.”
빈말이 아니었다.
당시 밤의 도시에서 보았던 라니아의 모습과, 지금의 벨노아에겐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주한 순간 죽는다.
손가락 하나 까딱일 틈조차 없이.
“라크야 뭐, 공략을 세우면 삼 년 안에야 비벼볼 만 할 것 같은데··· 문제는 너네.”
라니아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걸 어떡해야 하나···.”
“그, 교수님?”
의문을 참다못한 벨노아가 손을 들고 질문했다.
“아까부터 이런 질문을 하시는 의도가···.”
“너희가 극복해야 할 시련이니까.”
라니아가 짧게 답했다.
“다음으로 나아가길 원한다면, 극복해야 할 시련.”
그녀가 테이블 위에 성배를 올려두었다.
성배를 바라보는 라크와 벨노아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경지에 닿지 못했다곤 하나, 둘 역시 회로를 학습한 마법사다.
‘이해할 수 없는 회로.’
척 보아도 보통의 물건은 아니다.
그것을 가리키며 라니아가 말을 계속했다.
“너희가 나한테 말했잖아.”
그녀가 벨노아를 가리켰다.
“벨노아, 너는 성장을 바란다고 말했었지? 클로에를 지키려면, 그 애 곁에서 함께하려면, 지금으로는 턱없이 모자라다고.”
벨노아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이었다.
클로에가 납치 당했을 때, 벨노아는 무력감을 느꼈다. 자신이 갈고 닦아온 강함은, 그들의 앞에서 너무나도 무력했다.
‘···나중에, 용사가 될 클로에의 곁에 서서, 그 애를 지키려면.’
지금보단 훨씬 더 강해져야 했다.
세간에서 초인이라 불리는 이들의 수준에 이르는 것이 벨노아의 목표였다.
“그리고, 라크 너도 그랬고.”
라니아의 손가락이 라크를 향했다.
“너희 아버지, 북부 대공께 들었어. 네가 대공의 자리에 오르는 시대는 불이 꺼진 시대라고. 그 어두운 시대를 건너기 위해선···.”
그 험난한 시대를 건너려면.
“초인의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 그래야만 네가 이루고자 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 대공께선 그렇게 말씀하셨지. 네 생각은 어때?”
“같습니다.”
라크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북부의 대공에겐 북부의 땅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모든 이를 수호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레이스 가문의 초대부터 내려온 사명입니다.”
그렇기에.
“선조들께서 수백 년간 이어온 의무를 지키기 위해선, 저는 지금보다 강해져야 합니다. 더 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 성장해야만 합니다.”
벨노아와 라크 모두가 그렇다.
둘에겐 지금보다 강해져야 하는 이유가 있다. 강함을 바라는 열망도, 의욕도 충분히 있다.
라니아 또한 그것을 알고 있기에.
“그래서 너희를 먼저 고른 거야.”
둘을 다음 대상으로 선택한 것이다.
“설명하자면 복잡한데, 이 성배란 건 말야···.”
그녀가 성배에 대해 가볍게 설명했다.
믿기 어려운 말이나, 그녀의 설명을 듣는 라크와 벨노아는 라니아의 말을 의심치 않는다.
‘이런 걸로 거짓말을 하시는 분은 아니다.’
보내온 시간 동안 쌓인 신뢰는 두텁다.
“그래서.”
설명을 끝까지 마친 라니아가 성배를 툭, 하고 건드렸다.
“도전해 볼 생각, 있니?”
모든 전사의 궁극적인 지향점.
인간의 몸으로 도달할 수 있는 극한.
초인(?人).
그곳을 목적지로 두었을 때, 지금의 자신은 어디에 와있고··· 앞으로 얼마만큼을 가야 하는가.
그것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기회다.
그녀의 설명을 들은 순간, 대답은 이미 정해진 거나 마찬가지였다. 라크와 벨노아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도전하겠습니다.”
2.
아플리아 인근의 숲.
칼트가 시련을 진행했던 곳에 도착해 나는 성배를 꺼냈다. 벨노아와 라크가 나를 지켜보는 가운데, 나는 성배를 가볍게 흔들었다.
웅, 우웅.
성배가 공명하기 시작한다.
그 공명은 칼트의 경우에 비하면 무척이나 미약하지만, 약하게나마 울림이 손끝을 타고 느껴졌다.
라크는 북부의 설산에서.
벨노아는 밤의 도시에서.
잠깐이지만 둘은 내면의 벽을 마주한 경험이 있다. 그렇기에 성배는 둘에게 반응하는 것이리라.
‘하나, 둘, 셋···.’
속으로 수를 세며 내가 입을 열었다.
“오늘은 맛만 보는 거야. 일 년에 세 번 정도라니까, 지금은 가볍게 체험만 해보자.”
어차피 당장 깨는 건 불가능하다.
라크와 벨노아가 재능있는 아이들이긴 하지만, 아직 둘의 재능은 완전히 개화하지 않았다.
‘당장 초인의 경지에 도전하는 건 무리지.’
지금은 말 그대로 체험이었다.
방향성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 그리고 정말로 성배의 시련에서 내가 튀어나오는지 확인하기 위한 체험.
“위대한 라니아 교수님이 나오는 건가. 없던 일이 된다고 해도 조금 두렵군···.”
“전사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며.”
“두려움을 느낌에도 극복하는 것이지. 하지만, 극복할 수 없는 악몽을 어떻게 맞이해야 할지···.”
벨노아와 라크는 잡담을 나누고 있다.
여전히 위대한 이란 단어를 빼먹지 않는 라크를 노려보다가, 내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라크, 너는 그나마 나은 편이야.”
한숨을 내쉬며 내가 벨노아를 가리켰다.
“문제는 벨노아 너지.”
벨노아의 말대로라면, 벨노아의 시련에 등장하는 건 배교자 격퇴전 당시의 내 모습이다.
‘수명으로 별빛을 불러온 상태의 나.’
그 상태의 나라면.
수명을 갈아서라도, 눈앞의 ‘적’을 섬멸하기 위해 각오를 다진 나라면.
‘적으로 인식한 상대에게 어떻게 나올까.’
그 답을 떠올려 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 벨노아?”
“예?”
“일단 들어가자마자 섬광이 번쩍일 거거든? 괜히 눈부시다고 눈감지 말고 끝까지 봐야 해. 자칫했다간 넌 확인도 못 하고 퇴장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섬광이요? 아, 혹시 상위주문인 광원폭발을 말씀하시는···.”
내가 가만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눈멀게 하는 거고. 내가 쓸건 내 시그니쳐 주문이겠지. 열기로 일대를 지져버리는.”
내가 동정 어린 시선으로 벨노아를 바라봤다.
“힘내라. 진짜로.”
거기까지 말한 시점이다.
서른일곱 번째 울림이 손안에 맴돌았고, 나는 성배를 가볍게 기울였다. 동시에 두 개의 웅덩이가 바닥에 만들어졌다.
한번에 만들 수 있는 시련은 둘.
만들어지 두 웅덩이를 가리키며 내가 말했다.
“저 웅덩이로 들어가면 시련은 시작돼. 오래 걸리진 않을 테니까 다녀와. 기다리고 있을게.”
라크는 도낏자루를 꽉 쥔 채로.
벨노아는 그림자 갑주를 손에 두른 채로.
둘은 긴장하면서도 웅덩이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렇게 빛 무리가 둘을 삼킨 순간이다.
———구웅.
한순간, 손에 쥔 성배가 크게 흔들렸다.
손가락이 저릴 정도로 거친 울림이다. 내가 눈살을 찌푸린 채 성배를 들어 올렸다. 성배가 요란스레 흔들리고 있었다.
“···뭐야?”
둘 까지는 가능하다고 들었는데?
무언가 이상했다. 일단 흔들림을 억누르고자, 내가 흔들리는 성배를 두 손으로 감싼 순간···.
쩌적, 하고.
성배에 금이 내달렸다.
마치, 담을 수 없는 무언가를 담은 것처럼.
3.
도전자의 영혼에 새겨진 기억. 세상을 순환하는 별빛에 아로새겨진 숱한 인간들의 기록. 기억과 기록이 겹쳐지는 순간 성배의 시련은 완성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도전자의 기억이다.
단순한 기억이 아닌, 영혼에 새겨진 기억.
기억에 가장 강렬하게 남는 것은, 대체로 도전자가 직접 경험한 것들이다. 두 눈으로 보고, 두 손으로 느끼며, 제 몸으로 체감(??)한 것들.
하지만, 언제나 예외란 존재하는 법이다.
영혼에 새겨진 기억.
모종의 수단으로 심어진 기억.
영혼에 무언가를 새기는 방법은 쉽지 않으며, 그것은 금기의 영역에 해당하나···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한없이 낮은 가능성을 믿고, 불가능의 영역에 도전하는 이들은 어느 시대에든 존재했다.
시대를 넘어 주술이 이어지도록, 그 시대를 누군가는 기억해 주기를 바라며 주술에 자신의 기억을 담은 주술사가 있다.
하나뿐인 제자를 위해, 자신의 검(?)에 영혼을 새겨 넣은 이가 있다.
숙원을 이루기 위한 인간의 집념은, 때때로 별조차 예상하지 못하는 곳에 도달하곤 한다.
* * *
“어서 와라, 소년.”
드넓게 펼쳐진 사막.
벨노아는 제 앞에 서 있는 남자를 바라본다. 황량한 사막 위에 서 있는 남자는 호탕한 미소를 짓는다.
마주한 적도, 본적도 없는 남자.
그 남자가 벨노아를 향해 말을 걸어온다.
“네가 내 계보를 잇는 주술사인가?”
성배의 시련은 재현된 인격에 불과하다.
기억과 기록에서 모방된 인간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실존하지 않는 존재다.
「자아가 없는 인형에 가까워. 생각할 수도 없고, 기록된 당시의 전투 습관대로 움직이는 존재에 불과해.」
시련에 앞서 라니엘은 분명 그렇게 말했다.
그 말을 벨노아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눈앞의 남자는 분명한 자아를 가지고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고 있다.
“···대화가 가능합니까?”
“말이 오고 가면 그게 대화지. 달리 특별한 게 필요했나? 시대가 많이 바뀐 모양이로군.”
벨노아는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남자의 주변에서 흘러나오는 마나가 심상치 않다. 남자는 그저 그 자리에 서 있을 뿐인데, 새어 나오는 위압감에 벨노아는 제 호흡이 가빠짐을 느꼈다.
“···이름.”
벨노아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질문에 남자가 답한다.
“그림자 용의 주술사.”
남자의 팔에서 그림자가 피어오른다.
“벨리알.”
피어오른 그림자는 용의 형상을 띄고 있었다.
* * *
라크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협곡을 닮은 지형이었고, 이곳저곳에 칼자루가 어지러이 꽂혀 있었다. 바닥에는 칼로 난도질 한듯한 검흔이 길게 이어져 있다.
제법 독특한 풍경을 가진 지형이었는데··· 라크는 이곳을 본 적이 있었다.
제 눈이 아닌 역사책에서.
‘검의 성지, 갈라트릭.’
지금은 접근할 수 없는 마경이 되어버린 그곳.
그곳의 풍경이 지금의 이것과 닮았다고 라크는 보았던 것 같았다.
‘이곳이 왜?’
역사책에서 잠깐 그림으로 보았을 뿐인 곳.
그곳이 왜 눈앞에 펼쳐져 있는가.
그 사실에 라크가 의문을 가진 순간이다.
절그럭.
어디선가 갑옷이 울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절그럭, 절그럭 하는 소리가 조금씩 가까워졌다. 라크는 도끼를 꾹 쥔 채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바라보았다.
철컥.
이윽고 소리가 멈춘다.
그곳에 서 있는 것은 거대한 대검을 쥔 기사다.
스릉.
그가 천천히 검을 들어 올린다.
거대한 대검은 얼핏 보면 무게로 찍어 누르기 위한 검으로 보이나, 기사의 손에 들린 순간부터 그것은 예리한 한 자루의 칼로 느껴질 뿐이다.
“이름이 무엇이지.”
기사의 물음에 라크는 답한다.
“라크 반 그레이스.”
“그레이스의 아이로군.”
기사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곤, 그는 라크를 향해 검을 겨눈다.
“무기를 들어라.”
더할나위없이 서늘한 목소리.
검(?)에 있어서, 전투에 있어서는 그 누구보다도 매몰된 삶을 살아온 기사가 자신의 이름을 밝힌다.
“나의 이름은 가니칼트 반 갈라트릭.”
아르카디아의 기사단장.
최초의 검성(??).
인류를 지키는 검.
그에게 붙은 이명은 셀 수 없이 많으나, 그는 언제나 자신을 소개할 때 화려한 이명을 밝히지 않았다. 담백하게 하나의 단어만을 입에 담아왔다.
“검사다.”
검으로 삶을 이야기하는 이.
은은히 빛나는 별빛 아래, 가니칼트의 검이 찬란히 빛났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