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238
〈 238화 〉 초대받지 않은 손님(6)
* * *
아플리아의 총학장, 아론 반 타일런트.
중년을 넘어 노년에 접어드는 아론의 삶은 마냥 순탄치만은 않았다. 이런저런 위기도 있었고, 명문가 출신인 만큼 권력 다툼에 휘말린 적도 종종 있다.
산전수전 다 겪었다고 표현하긴 힘들겠지만, 그래도 마냥 평범한 삶을 살아오진 않은 것이다.
어지간한 사건이 일어나더라도 그는 제 머리칼을 몇 올 쥐어뜯으며 웃어넘길 뿐이다. 웃어넘기지 못할 때도 있지만, 어찌 됐든 아론은 사건을 받아들이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게 해내곤 했다.
결국에 다 그런 것이다.
젊었을 적 일생일대의 위기라며 호들갑을 떨던 사건들도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사실 별일 아닌 경우가 태반이다.
‘그러니, 언제나 차분해야만 한다.’
그것이 아론이 늘상 되새기는 삶의 진리다.
“뭔 이딴 시발···.”
그리고, 지금.
“미쳤냐?”
아론은 차분함을 잃고 만다.
아론의 두 눈동자가 크게 뜨였다.
뻐억!
젊은 여교수의 단화가 손님의 정강이를 강타한다. 그 소리가 어찌나 요란한지, 수군대던 학생들이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어억!”
이어서 손님의 비명이 울려 퍼진다.
과장된 동작으로 손님이 바닥에 쓰러진 가운데, 아론 반 타일런트는 일생일대의 위기를 직감한다.
교수가 손님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단순한 손님이어도 크나큰 문제로 번질 수 있는 사안이지만, 아론은 지금 바닥에 엎어진 채 ‘과연, 소문대로 매콤한 레이디로군···.’ 같은 정신 나간 소리를 지껄이는 손님의 정체에 대해 알고 있다.
‘고, 고룡의 마법사님···!’
모든 마법사의 존경을 한몸에 받는 인물.
수만 년을 살아온, 이 땅에 살아 숨 쉬는 신과 같은 존재가 바로 이 손님의 정체다.
「오랜만이군, 아론!」
「그대는 나날이 이마가 훤칠해지는군! 시원하니 보기 좋구만!」
지금으로부터 한 시간쯤 전, 대뜸 머리숱을 지적하며 학장실로 쳐들어온 고룡의 마법사.
「축제에 앞서 며칠 일찍 왕도에 방문했는데, 딱히 할 일이 없더군. 그래서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불세출 천재의 얼굴도 볼 겸, 오랜만에 자네 머리숱 상태도 한번 볼까 해서 이곳에 들려봤다네.」
그는 아론에게 아플리아의 관광을 요구했다. 아론은 떨리는 심장으로 그 제안을 수락했다.
당황스럽긴 하지만 영광스러운 기회다.
자신이 세운 마학(??) 아카데미에 마법사들의 신께서 흥미를 가지신다. 그 사실이 아론은 당황스러우면서도 기꺼웠다.
‘혹, 고룡의 마법사께서 학생들에게 가르침이라도 주신다면···!’
그곳은 성역이 되리라.
학생들이 감격하는 얼굴을 떠올려 보는 것만으로, 아론은 제 마음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것이 지금으로부터 한시간 전의 이야기.
“와, 진짜 뭐지?”
그리고 시간은 흘러 지금에 이른다.
“이거 뭐하는 놈입니까? 학장님.”
바닥에 엎어진 고룡의 마법사를 가리키며, 라니아가 질문을 던진다. 제 앞머리를 쓸어올린 그녀의 얼굴에는 짜증이 가득하다.
“허, 허어억···.”
아론은 숨이 가빠짐을 느끼며, 제 머리칼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나 매끈해진 이마에는 잡을 머리칼은 한 줌조차 남아있지 않다.
저게 누구냐고?
마법사들의 신이다.
모두의 존경을 받는 고룡의 마법사시다.
그런 대답을 입에 담아야 하지만, 차마 아론은 그렇게 답할 수 없었다. 자리에 앉은 학생들의 호기심 가득한 시선이 시야에 들어온 탓이다.
‘···고룡의 마법사를 동경하는 아이들.’
아론은 교육자이며, 아카데미의 책임자다.
그 말은 즉 아이들을 보호할 의무가 있단 뜻이다.
‘아이들의 동심은 지켜져야만 한다.’
아론은 아득해지는 정신을 간신히 붙잡은 채, 천천히··· 아주 천천히 입을 열었다.
“외국에서 아플리아로 방문하신, 위대한 마법사분이시라네. 음, 아주 위대한.”
‘위대한’이란 단어에 라니아의 눈썹이 움찔, 하고 떨렸다.
“······.”
떨떠름한 표정으로 라니아는 한걸음 뒤로 물러섰고, 바닥에 엎어져 있던 고룡의 마법사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치명적인 일격이었어, 레이디.”
그리곤 윙크를 날리며 집게손가락으로 라니아를 가리킨다. 라니아의 표정이 잔뜩 구겨졌다.
뻐억!
결국 라니아의 주먹이 고룡의 마법사의 복부를 강타했다.
“커헉!”
학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라니아의 주먹을 얻어맞고 강의실 문을 넘어 복도에 처박힌 고룡의 마법사가 고개를 픽, 하고 숙였다.
아론은 정신이 아득해짐을 느꼈다.
2.
당연하게도 고작 이딴 공격에 수만 년을 살아온 마법사가 쓰러질 리가 없다. 나는 연기를 하는 고룡의 마법사를 멱살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사람 좀 없는 데로 갑시다.”
“오, 데이트 신청이라면 환영···.”
“진짜 뒤지고 싶으세요?”
뿌득, 하고 내 손가락이 요란스러운 소리를 냈다. 고룡의 마법사는 쓰게 웃더니 시선을 돌려 아론 총장을 바라봤다.
“이 아가씨와는 내 따로 나눌 이야기가 있어서 이만 가보겠네. 안내해줘서 고맙군, 아론.”
“어, 어어어어어···.”
“당황하지 말게. 몇 올 남지 않은 머리칼은 소중히 여기도록 하고.”
고룡의 마법사가 툭툭, 제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냈다. 양복 차림이었던 복장은 어느새 고룡(古?)의 로브로 뒤바껴 있었다.
사락.
푸르스름한 머리칼이 흘러내린다.
본래 내가 알고 있는 모습으로 되돌아온 고룡의 마법사가 허공에 손을 뻗었다. 움켜쥔 것은 허공이나, 그 손에 들린 것은 고목 지팡이다.
쿵!
지팡이가 바닥을 때렸다.
그것만으로 수십 개의 회로가 허공에 펼쳐지고, 백금색의 별빛이 피어올랐다. 별빛을 향해 고룡의 마법사가 말을 걸었다.
“문 좀 열어주시게, 친구.”
【거래는 성립됐다.】
지불한 대가는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별은 고룡의 마법사 앞에 백금색으로 빛나는 문을 열어주었다.
“들어가도록 하지.”
몇번을 보아도 이해하고 싶지 않은 풍경이다.
나는 불쾌함마저 느끼며 고룡의 마법사를 따라 문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화앗!
몸을 감싼 별빛이 걷혔을 때, 뒤바뀐 풍경은 드넓게 펼쳐진 정원이었다. 정원 위에는 티 테이블이 하나 놓여있었다.
이계와 현계의 중간지점에 위치한 장소.
오직 고룡의 마법사만이 드나들 수 있는 특수한 공간은 현계와 이계의 특성이 공존하고 있었다. 햇볕이 내리쬐는 정원을 걸어간 고룡의 마법사가 의자 하나를 잡아 뺐다.
“레이디 퍼스트.”
저 양반이 진짜 미쳤나.
내가 눈살을 찌푸린 채 비꼬듯이 말했다.
“늙으셔서 허리 아프실 텐데, 먼저 앉으시는 게 어떠세요?”
“하하. 수만 년을 살아왔지만 나는 언제나 청년의 몸과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네. 노인이란 말은 삼가줬으면 좋겠어.”
너털웃음을 흘린 그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리고, 죽을 날만을 기다리는 노인조차 그대보다는 건강한 육체를 가지고 있겠지.”
금빛의 눈동자가 번들거렸다.
“그렇지 않나? 라니엘 반 트리아스.”
고룡이 웃었다.
“금기를 어긴 마법사여.”
3.
내가 기억하는 고룡의 마법사는 장난스럽긴 해도, 진중하고 존경할만한 인물이었다.
「로셀이 훌륭한 제자를 길러 냈군.」
고룡의 마법사와 마주한 것은 두 번.
차기 마탑주일 시절에도 한 번 정도 마주한 적이 있었지만, 제대로 고룡의 마법사란 존재를 이해한 건 흑룡 토벌의 직후였다.
「이 땅에 수백 년간 군림한 재앙을 그대들은 토벌하는 데 성공했어. 이는 찬사 받아야 마땅할 업적이지. 나는 그대들에게 경의를 표하네.」
옥좌에서 내려와 그는 나와 카일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가장 위대한 마법사가 무릎을 꿇고, 우리에게 고개 숙이는 모습은 잊지 못할 기억이다.
「용과, 용을 신앙하는 이들은 모두 나의 동포이지. 그릇된 길로 접어든 동포를 구원하는 것은 나의 역할이어야 하지만, 나는 하지 못할 일이었다.」
그는 고개 숙인 채 우리에게 말했었다.
「위업을 이룬 위대한 용사들에게 찬사를.」
그 뒤에는 몇 번의 농담을 던지며 만찬회를 열어줬었다. 그리고, 적어도 그때까지 나는 고룡의 마법사에게서 이상한 점은 발견하지 못했다.
그래서였을까.
“아니, 다 아는 분께서 왜 그러셨습니까?”
“뭐를 말인가?”
“제 정체 아시잖습니까. 아는 분께서 아까는 무슨 레이디니 뭐니 버터를 처바른 목소리로···.”
“허허, 뭘 모르는군 잿빛 마법사.”
나는 전혀 상상치 못했다.
“과거는 중요치 않다네. 현재가 중요하지. 현재의 자네는 아름다운 레이디라네. 내가 수만 년간 봐왔던 여인들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진짜 미치셨습니까?”
“난 언제나 제정신이라네.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상식에 구애받지 않으며, 현재만을 바라보고 사는 무척이나 깨어있는 사람이지.”
그 고룡의 마법사께서 이렇게 가볍고, 여자를 밝히며, 노망난 노인네일 거라곤··· 정말 꿈에도 상상해보지 못한 일이었다.
“젊게 살려고 노력한단 뜻이지.”
“늙었으면 늙은 대로 사는 게 세상에 이롭습니다.”
“쩝, 그렇게 말하면 내 또 할 말이 없군.”
고룡의 마법사가 쓰게 웃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그에게 질문했다.
“역시, 알아보시는군요.”
“모를 수가 없지.”
“···별과 연관 있는 사람들은 다들 저를 못 알아 보던데요? 별이 아니라고 속삭인다면서.”
“그들은 별의 노예이지만, 나는 별의 친우이기 때문이지.”
그가 차를 홀짝였다.
“나와 별은 수직적인 관계가 아니야. 수평적인 관계이지. 때로 친우의 말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필요도 있는 법이지.”
그가 눈을 가늘게 떴다.
금색의 눈동자가 고요히 빛났다.
“하지만, 흘려들을 수 없는 말도 있더군.”
툭, 하고 그가 테이블을 두들겼다.
“수명을 천칭에 올렸다고 들었다. 잿빛 마법사.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지.”
“필요했으니까요.”
“그것은 금기일 텐데.”
금기(??), 금기라.
내 입가를 비집고 비웃음이 새어나왔다.
“금기를 어기고, 섭리도 어긴 놈들을 맨몸으로 상대 할 순 없으니까 벌인 일이죠. 쓸 수 있는 건 다 써야 했으니까요.”
“금기가 어째서 금기라 불리는지 모르는 건가?”
“알고 한 겁니다.”
그것밖에 답이 없었으니까.
“그 대가도 온전히 제가 감당해야 하는 거고요. 대신 감당해줄 것이 아니라면 간섭하지 마십시오. 솔직히 말해 불쾌합니다.”
내가 눈을 가늘게 떴다.
“아무런 대가도 지불하지 않는 당신께 듣고 싶은 말은 아닙니다.”
“···역시나 닮았군.”
고룡의 마법사가 한숨을 내쉬었다.
“수백년 전에 금기를 어긴 대현자도, 내게 똑같은 대답을 들려주었지.”
“카르디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카르디 반 아르미엘. 내게 도전할 수 있었던 유일한 마법사.”
그가 자신의 눈가를 매만졌다.
왼쪽 눈에는 그을린 흉터가 남아있었다. 그렇게 잠깐동안 침묵하던 고룡의 마법사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말을 하려 온건 아니었다네. 사실, 이건 의무적인 질문에 가깝지.”
고룡의 마법사가 쓰게 웃었다.
“금기를 깬 이가 있다면, 그들의 정신 상태를 확인해야 할 의무가 내겐 있으니까. 다행히도 그대의 정신은 아주 건강한 것 같군.”
깨끗하고, 올바르고, 언제나처럼 올곧지.
그렇게 중얼거린 고룡이 나를 보았다.
“자네 같은 미인(美人)은 드물어. 아름다운 인간이란 뜻이라네. 물론 미녀라는 뜻도 포함하고 있지만 말일세!”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지은 채 고룡은 말했다.
“그렇기에, 나는 이번 마법사들의 밤을 틈타 그대에게 살짝 작업을 걸어 볼 생각일세.”
···작업?
“라니엘 반 트리아스가 아닌, 라니아 반 트리아스로 나는 그대가 정착하길 바라.”
말 뜻을 이해하지 못한 내가 눈을 깜빡였다.
“그게 무슨···?”
“그대에게 내가 하사한 칭호가 있지 않은가?”
있긴 있었다. 고룡의 마법사가 인정한 마법사, 그리고 현자라는 칭호.
“비슷한 걸 그대에게 다시 내려줄 생각이야.”
“···다시 내려준다면?”
“현인(?人). 그리고, 다른 칭호 하나는 마법사들의 밤 당일에 알려주도록 하지. 기대해도 좋다네.”
찡긋, 하고 그가 내게 윙크를 날렸다.
그 얼굴을 보고 있자니, 속에서 뭔가 올라오는 것만 같아 내가 헛구역질을 했다.
“이런, 꽤 상처로군.”
“지랄하지 마십쇼. 진짜로.”
“입담마저 걸걸한 게 내 취향이로군. 마법사들의 밤에 무도회가 있을 터인데, 어디 나랑 한번···.”
내가 손가락을 뻗었다.
손가락 끝은 고룡의 오른 눈을 가리키고 있었다.
“오른쪽 눈에도 흉터 하나 새기고 싶으십니까?”
“오우.”
고룡이 혀를 내둘렀다.
질색했다는 듯 몸을 살짝 뒤로 빼는 시늉을 하는 걸 보니, 확실히 효과가 있는 협박인듯싶었다.
“아니?”
그러나, 그것도 잠시.
제 턱을 매만지며 무언갈 생각하던 고룡의 마법사가 금빛 눈동자를 빛내며 덧붙였다.
“오히려 좋아.”
진짜 미친 건가?
초대 받지 않은 손님, 정말로 불청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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