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241
〈 241화 〉 마법사들의 밤(3)
* * *
“아무래도 직접 찾으러 가야겠군.”
흑색 마탑주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달려온 흑색 마탑 소속의 마법사에게 몇 가지 지시를 내린 후, 그는 로브를 어깨에 두른 채 짧게 숨을 내뱉었다.
“자네의 지인이라는 그 엘프, 성격이 조금 이상하긴 하나··· 믿을만한 인물이라 생각되더군.”
얼마전부터 교류하게 된 엘프.
스스로를 카르디라 밝힌 그 엘프에 대한 정보를 예투알은 수집했고, 그 과정에서 엘프의 정체에 대해 어렴풋이나마 짐작해 볼 수 있었다.
어디에도 기록이 남아있지 않는 엘프.
엘프들의 동화책에만 기록돼있는 존재.
그가 일찍이 고대라 불리던 시대를 살아온 엘프라고 예투알은 추측했다. 비약에 가까운 추측이긴 했으나, 그 엘프가 중간중간 경험했다는 듯 이야기하는 사건들은 최소 수백 년 전의 일이었다.
‘하물며 잿빛 마법사와 알고 지내는 인물이다.’
마냥 억측이라고만 할 수는 없으리라.
“자네와 알고 지내는 인물이 평범할 리가 없으니까. 그렇지 않나?”
예투알이 로브의 목깃을 잡고 가볍게 털었다.
“그렇다면 경고한 이유가 있을 테지.”
단순히 추파를 던지는 것만이 다가 아닐 거란 생각이 든다. 물론, 마법사들의 신께서 문제 될만한 일을 할거란 생각이 들지는 않지만···.
“대비해 둬서 나쁠 건 없다.”
이미 대비해 둔 방안이 박살 나서 문제긴 했지만, 아무쪼록 후속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신신당부했건만, 기어코 경비병을 제압하고 탈출했을 줄이야. 애 키우는 게 이다지도 어려운 일이로군.”
한숨을 푹푹 내쉬며 예투알이 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걸음을 옮기다 말고 예투알은 제 옆을 돌아보았다. 옆에는 어느새 로브를 두른 라니아가 서 있었다.
“···자네 뭐하나?”
“클로에 찾으러 가자는 거 아니었습니까?”
“그렇지. 하지만 자네는 마학연회를 준비해야 하지 않나. 곧 시작할 텐데···.”
라니아가 어깨를 으쓱였다.
“어차피 고룡의 마법사 없이는 시작 못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먼저 잡아다가 자리에 앉혀놔야죠.”
뚜둑, 하고 라니아가 손가락을 꺾었다.
“그리고.”
그녀가 제 눈가를 툭툭 건드렸다.
“고룡의 마법사와 약속한 것도 있고요.”
“···으음.”
자네가 가면 일이 더 꼬일 것 같다만.
예투알은 목구멍을 타고 넘어오는 말을 삼키느라 애를 써야만 했다.
“뭐에요? 무슨 일인데요? 나도 갈래요.”
“그냥 여기 있으십시오.”
“자네는 빠져 있게. 백색.”
“아니, 다들 나한테만 그래···.”
영문을 모르는 백색만이 입술을 삐죽 내밀 뿐이었다.
2.
클로에는 뒷골목 출신의 소녀다.
안개가 짙게 깔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어두컴컴한 뒷골목. 그런 곳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소녀는 몇 권의 책으로 세상살이를 이해하곤 했다.
누가 읽다 버린 소설책.
가끔 쓰레기더미 사이에 섞여 들어오는 전단지.
칙칙하고, 어둡기 짝이 없는 뒷골목에서 소녀는 그런 것들을 읽으며 바깥세상을 꿈꾸곤 했다. 그렇게 어렸을 적 품었던 동경은 나이가 든 지금까지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그렇기에, 클로에는 축제라면 환장을 하는 것이다.
“와하···!”
마법사들의 밤.
소설로만 읽어보았던 마법사들의 축제.
클로에는 눈동자를 빛내며 고개를 휙휙 돌렸다. 평상시에 보았던 거리와는 분위기가 딴판이다. 거리는 평소보다 더욱 활기찼으며, 다소 이국적인 복장을 차려입은 사람들도 종종 시야에 들어온다.
하늘 위로 쏘아 올려지는 마법 폭죽.
마탑의 문양을 단 채 장사를 하고 있는 노점상들.
그 모든 것이 클로에의 눈에는 신기할 따름이다.
“벨노아, 저것 봐봐···!”
벨노아의 팔에 매달린 채 클로에가 손가락으로 노점상들을 가리킨다. 벨노아는 한숨을 쉬며 클로에의 로브를 푹 눌러 씌웠다.
“알겠어. 하나씩 다 들려볼 테니까, 얼굴이나 제대로 가려.”
“응, 알았어!”
클로에가 배시시 웃음을 흘린다.
벨노아는 피식, 하고 웃으며 클로에의 손을 잡은 채 축제가 한창인 거리를 걸었다.
클로에가 이러는 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온갖 소설들로 세상살이를 배웠기에, 클로에의 머릿속엔 꽃밭이 펼쳐져 있는 구역이 몇 존재했다.
‘축제, 아카데미, 무도회, 그리고 또 뭐였더라.’
아무튼 로맨스 소설과 관련된 것들.
그런 장르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개념에 대해 클로에는 지나치리만치 환상을 가지곤 했다.
‘생각해보면 신기하긴 하네.’
벨노아는 제 뒤를 졸졸 따라오는 클로에를 흘겨봤다. 저 애도 자신과 같은 슬럼가 출신이다. 못볼꼴이란 못볼꼴은 죄다 보고자란 소녀란 소리다.
사람이 죽는 것도.
시체가 버려지는 곳도.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모습도.
그 전부 보았을 텐데, 클로에는 여전히 새하얀 도화지로 남아있다. 딱히 자신처럼 염세적이고 무뚝뚝해지지도 않았다. 처음 봤을 때의 모습 그대로다.
벨노아만 그렇게 느끼는 건 아니었다.
아플리아의 학생들 사이에 클로에는 쉽게 녹아들었다. 그 누구도 그녀가 슬럼가 출신이리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와아···!”
이렇게 축제를 보며 감탄을 내지르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세상 물정 모르는 귀족가의 아가씨로 비춰 보이기도 한다.
‘어쩌면 근본부터가 다른지도 모르겠네.’
어떠한 환경에도 흔들리지 않는 인물.
그런 인물들은 무언가 특별함을 타고 난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벨노아는 한다.
“즐겁냐?”
“응!”
클로에가 해맑게 웃었다.
벨노아는 클로에의 머리를 툭툭 건드리며 마저 걸음을 옮겼다. 어찌 됐든, 클로에가 웃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았다.
“그래도 손 놓지 말고 잘 따라와. 사람이 많으니까 휩쓸리면···.”
거기까지 말했을 때다.
손안에 느껴지던 감각이 갑작스레 사라졌다. 분명 클로에의 손을 잡고 있었을 텐데, 지금 손이 움켜쥐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허공이다.
“···클로에?”
벨노아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 클로에는 없다.
거리를 오가는 인파는 그대로이나, 그곳에 있어야 할 클로에만이 없었다.
3.
“···벨노아?”
클로에는 눈을 깜빡였다.
분명 손을 잡고 있었을 텐데. 손을 놓은 적도 없었을 텐데, 벨노아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건 벨노아 뿐만이 아니다.
거리에 가득하던 인파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가게를 차린 노점상도, 마법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거리를 걷던 마법사들도, 축제를 즐기던 평범한 사람들도··· 전부 사라졌다.
아무도 없는 거리가 쭉 펼쳐져 있다.
축제를 위해 한껏 꾸며둔 한낮의 거리.
오가는 사람만이 사라졌을 뿐인데, 한낮의 거리에선 한산함마저 느껴진다.
꿀꺽.
클로에는 마른침을 삼키며 걸음을 옮겼다.
아무도 없는 거리를 빠져나가고자 한다.
그렇게, 그녀가 한 걸음 앞으로 내디딘 순간.
“어···?”
클로에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한 걸음도 뗄 수가 없다. 클로에는 삐걱거리는 고개를 들어 정면을 바라보았다. 아무도 없는 거리에 갑작스레 인기척이 느껴진다.
탁.
가벼운 걸음 소리가 들려온다.
소리는 가벼우나, 소리를 만들어내는 존재는 결코 가볍지 않다. 공기가 한순간에 무거워진 착각마저 든다.
탁.
클로에의 눈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탁.
일정한 주기로 들려오던 걸음이 멈췄다.
클로에는 소리가 멈춘 곳을 바라보았다.
“······.”
그곳에 한 남자가 서 있다.
등허리까지 흘러내리는 푸르스름한 머리칼과, 쫙 갈라진 금빛의 눈동자를 가진 남자다.
“아아.”
그가 입을 열었다.
“내가 분명 경고했지 않나.”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서늘한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클로에가 흠칫, 하고 어깨를 떨었다. 그러나, 남자의 말이 향하는 것은 클로에가 아니다.
“글레투스의 육체를 쓰지 말라고, 내가 자네에게 분명 경고했을 텐데.”
남자의 시선도, 말도 모두 하늘을 향해 있다.
“글레리아가 내가 인내할 수 있는 마지막 선이었다. 그에 대해선 자네가 알아듣게끔 충분한 시간을 들여 설명했던 걸로 기억하네만.”
대낮의 하늘임에도 그 시선의 끝에는 별이 떠있다.
“하늘 위에 못 박혀 있다 보니 이젠 제 길잡이도 몰라보는군. 내 말이 말 같지 않나?”
서늘한 목소리가 메아치린다.
클로에는 한순간 심장이 멎는듯한 착각을 느낀다. 자신의 육체를 순환하는 별빛이 거세게 요동쳤다.
탁.
남자가 한 걸음 앞으로 움직인다.
둘 사이의 거리차이는 열 걸음이 넘으나, 남자가 가볍게 내디딘 한걸음은 물리적 거리에 구애받지 않는다.
“너.”
클로에의 앞에 선 남자가 클로에를 내려다본다.
보이는 모습은 스무 살 남짓의 청년이나, 클로에는 인간의 껍데기에 감싸진 무언가를 느낀다.
형용할 수 없는 거대한 존재.
그 존재가 자신을 향해 질문을 던진다.
“이름이 무엇이지.”
“으, 으읏···.”
딱, 따닥 하고 클로에의 윗니와 아랫니가 맞부딪친다. 다리에 힘이 풀린 클로에가 털썩, 하고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남자는 여전히 클로에를 내려다본다.
그 눈동자에 백금색의 빛 고리가 드러난다. 세 개의 고리가 맞물리며 기이한 문양을 그린다.
“그렇게 겁박하면 퍽이나 대답을 하겠군.”
그 문양이 빛나려는 순간이다.
“그렇지 않나? 요르문.”
아무도 없는 거리에 누군가 발을 들인다.
그곳에 서 있는 건 잿빛 머리칼의 엘프다. 허름한 로브 차림의 그가 제 옷깃을 잡고 가볍게 털어낸다.
사락.
그것만으로 로브의 형태가 뒤바뀐다.
허름한 로브는 기이한 문양이 그려진 백금색의 로브로 변모한다. 로브의 소매를 걷어붙인 엘프, 카르디 반 아르미엘이 눈을 가늘게 떴다.
“요르문 반 드라고닉.”
그가 남자의 이름을 입에 담는다.
고룡의 마법사가 카르디를 돌아보았다
“네가 별과 무슨 계약을 맺었는지는 모르지만, 나 또한 네게 경고했을 텐데.”
카르디가 손목을 가볍게 풀었다.
“글레리아에게, 혹은 내 지인에게 함부로 접근했다간 좋은 꼴 못 볼 거라고.”
“글레리아가 아니다. 글레투스이지.”
“노망난 도마뱀 새끼가 아주 지랄을 하는군.”
카르디가 비웃음을 흘렸다.
“별이여.”
과거의 대현자가 고룡의 마법사를 가리킨다.
“천칭은 기울었다. 예외를 인정하라.”
움직여선 안 될 태초의 존재가 움직이려 한다.
그것은 균형이 깨지려 함을 의미한다.
별은 균형을 수호하려 하기에, 현재의 상황을 예외로 인정한다. 기울어진 천칭에 수평을 맞추기 위해 별은 일시적으로 계약을 허물어트린다.
틱, 티디딕.
카르디가 뻗은 손가락 끝에 불똥이 튄다.
사라졌던 카르디의 마나가 일시적으로 돌아온다.
“별께선 그렇다는군. 어떡할 거지? 요르문.”
카르디가 손가락을 움직인다.
허공에 그린 것은 일 획(一?).
한줄기의 선에서 수십의 주문이 요동친다.
“해볼 텐가?”
“···내가 자네를 제압하지 못하리라 생각하나?”
“아니. 너라면 가능하겠지. 하물며 가니칼트가 없는 지금이라면 더더욱.”
하지만, 하고 카르디가 말했다.
“너도 대가를 지불해야 할 거다. 네가 가장 싫어하는 일을 해야만 하겠지.”
요르문은 침묵한다.
침묵하던 고룡은 결국 한숨을 내쉬며 손을 가볍게 내저었다. 그것만으로 주변을 찍어누르던 공기가 한순간에 가벼워졌다.
기울어졌던 천칭이 단숨에 수평을 이룬다. 카르디의 손끝에 맺혔던 마나가 증발하듯 사라졌다.
“됐군, 됐어. 자네와 치고받는 건 사양일세. 자네가 좀 피곤하게 굴어야지···.”
요르문이 질린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제 곁을 맴도는 별빛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새를 못 참고 약삭빠르게 달라붙긴. 수만 년을 함께한 친우를 손바닥 뒤집듯이 버리는 걸 보니, 자네는 여전히 지랄맞군 그래.”
“보는 눈이 있는 거겠지. 노망난 도마뱀 새끼보단 내가 더 낫지 않겠나?”
“자네는 내 신경 좀 그만 긁게. 안 그래도 기분이 썩 좋진 않으니.”
신경질적이게 답한 고룡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바닥에 주저앉은 클로에가 있다.
“···미안하군. 자네 개인에겐 원한이 없어. 하지만, 그 얼굴은 내게 역린과도 같은 것이라.”
요르문이 쓰게 웃었다.
“이름이 무엇이지?”
“클, 클로에에요.”
“그래. 클로에 양. 내가 실례를 범했군. 이 사안에 대해선 내 따로···.”
보상하리라.
그렇게 요르문이 말하려는 순간이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굉음과 함께 공간이 뒤흔들렸다.
요르문이 만들어두었던 인위적 공간에 금이 쩍, 쩌적 하고 내달린다. 요르문이 눈을 크게 뜨고, 카르디는 오, 하고 짧게 감탄을 내뱉었다.
“찾았다.”
바스라지는 공간의 너머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라니엘 반 트리아스다. 라니엘은 공간의 중앙에 서있는 요르문을 똑바로 바라본다.
“하라는 심사위원은 안 하고 여기서 뭐 하십니까? 거, 진짜 사람 귀찮게···.”
그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한다.
라니엘의 시선에 들어온 건 제자리에 주저앉아있는 클로에와··· 그런 그녀를 내려다보는 고룡의 마법사의 모습이다.
누가 봐도 겁에 질린 소녀.
누가봐도 범인인 고룡의 마법사.
시야에 들어온 상황은 명료했다. 그러니, 라니엘이 선택해야 할 행동도 분명했다.
콱.
라니엘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