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242
〈 242화 〉 마법사들의 밤(4)
* * *
라니엘은 언제나 장갑을 끼고 다닌다.
확장 회로를 새긴 그녀의 로브 안에는 똑같은 종류의 장갑이 수십 개씩 내장되어 있으며, 이는 잿빛 마법사 시절부터 이어져 온 그녀의 버릇이다.
「넌 왜 계속 장갑 끼고 다녀? 결벽증이야?」
언젠가 그 이유에 대해 레미아가 물어본 적이 있다. 결벽증이냐는 그 물음에 라니엘은 마수들의 피로 범벅된 장갑을 벗으며 답했다.
「결벽증까진 아닌데, 이게 좀 감촉이 그래. 넌 멀리서 화살만 쏴 재껴서 모를 텐데···.」
꽈득, 카드드득!
사자를 닮은 마수의 두개골을 라니엘이 맨손으로 으스러트렸다. 연분홍색의 점액질이 철퍽, 하고 바닥에 흩뿌려졌다.
「우욱.」
레미아가 눈살을 찌푸렸다.
라니엘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었다.
「가까이서 치고받다 보면 머리를 터뜨려야 할 때가 많은데, 장갑을 안 끼면 기분이 좀 더러워. 손이 끈적해져서 회로 그릴 때도 방해되고.」
「그럼 주문으로 요격하면 되는 거 아니야? 너 마법사잖아. 하는 짓만 보면 그냥 권투사 같은데.」
「마나를 아껴야 하니까. 그리고, 협소한 공간에서 싸울 때는 이쪽이 더 편해.」
라니엘이 손을 가볍게 털었다.
후두둑, 핏물이 바닥에 떨어졌다.
「뭐, 결벽증이란 것도 틀린 표현은 아니지. 사람 같지 않은 새끼들 팰 때는 장갑을 꼭 쓰니까.」
그리 말하며 라니엘이 레미아를 흘겨봤다.
「···왜 날 봐?」
「몰라서 묻냐?」
「하긴, 너 같은 인간이 보기에 우리 엘프들은 같은 사람으로 안 보이긴 하겠네.」
「미친년.」
사람이 아닌 것을 쥐어팰 때는 장갑을 낀다.
라니엘은 그렇게 말했고, 실제로도 그렇게 행동했다. 전장을 은퇴하고 나서도 줄곧.
“선 넘네.”
그러니까, 지금까지도.
꾸욱.
라니엘이 장갑을 쫙 잡아당겼다.
딱 달라붙는 갈색 장갑이 그녀의 가느다란 손가락의 형태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구부린 손가락 마디를 따라 주름진 장갑의 모양새가 심상치 않다.
“잠, 잠깐!”
고룡의 마법사는 해명을 시도한다.
그는 두 손을 앞으로 내저으며 자신의 무고함을 증명하고자 열변을 토했다.
“자네가 굉장히 오해를 하고 있다네. 내가 이 소녀를··· 주저앉게 한 건 맞지만! 맞긴 한데! 사실 여기엔 굉장히 숭고한···.”
그러나 말을 하면 할수록 어째 범죄자의 냄새가 물씬 풍겨오고 만다. 요르문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딸꾹.”
요르문은 제 앞에 주저앉은 소녀를 바라본다.
클로에라 이름을 밝힌 소녀는 딸꾹질을 하고 있다. 꼭 작은 설치류 동물을 연상케 하며, 누가 봐도 겁을 먹는듯한 모습이다.
누구에게 겁을 먹었는가?
요르문, 자신에게.
누구때문에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가?
그 또한 요르문 자신 때문이다.
요르문은 식은땀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아무튼 이는 오해이며, 나는 자네가 추측하는 음흉한 의도와는 전혀 무관한···.”
“오해가 아니다. 내가 봤다.”
팍, 하고 요르문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 시선이 향하는 곳은 팔짱을 낀 채 서 있는 카르디다. 카르디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저 노망난 도마뱀이 클로에를 넘어트린 것도 맞으며, 클로에에게 겁을 준 것도 사실이지. 오해고 나발이고 없다.”
그가 요르문을 흘겨보며 코웃음을 쳤다.
“이제 자기보다 수만 살은 어린 소녀에게까지 손을 대는군. 너답다면 너 다운 일이지. 요르문.”
“음해다···! 이는 철저히 왜곡된 음해다!”
요르문이 언성을 높여보았으나 효과는 없었다.
상황 판단을 마친 라니엘이 땅을 박찼다.
“허, 허어어어어억!”
요르문이 비명을 내질렀다.
뻐억!
돌벽도 때려 부수는 매콤한 주먹이 요르문의 안면을 강타했다.
2.
상황이 정리된 건 그로부터 십 분이 지난 시점이다.
클로에는 바깥에 서 있던 벨노아와 흑마탑주가 데리고 갔다. 그 과정에서 예투알의 기나긴 설교가 동반됐으며, 벨노아는 묵묵히 그를 받아들였다.
명백한 자신의 잘못이었으므로.
아직까지도 얼이 빠져있는 클로에와 벨노아는 예투알에게 끌려가다시피 사건 현장을 이탈했다. 그리고, 현장에 남은 것은 세 사람이다.
대현자, 카르디 반 아르미엘.
고룡의 마법사, 요르문 반 드라고닉.
현자, 라니엘 반 트리아스.
역사에 거대한 획(?)을 새겨넣은 세 마법사가 한자리에 모였으나,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는 참으로 시답잖다.
“매콤하군. 너무나도 매콤해. 자네 정말로 마법사가 맞나? 무슨 주먹질 위력이···!”
요르문은 밤탱이가 된 제 오른눈을 얼음으로 찜질하며 몹시도 억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내가 오해라 말하지 않았나. 나도 사리 분별은 하는 사람일세. 거 참···.”
“딱히 오해도 아닌 것 같군. 잘했다. 내 속이 다 시원하더군.”
요르문이 카르디를 째려보았으나, 카르디는 코웃음 치며 시선을 흘려넘길 뿐이다.
“오해고 아니고를 떠나 맞을만한 행동을 한 것은 맞지. 그렇지 않나?”
“···그렇게 말하면 또 할 말이 없군.”
요르문이 한숨을 내쉬었다.
쪼그려 앉아 눈두덩이에 얼음찜질을 하는 요르문의 모습을 흘겨보던 라니엘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이유가 뭡니까?”
결국에는 이유가 의문이다.
“장난스럽고, 경박하긴 해도 생각이 없는 분은 아니시잖아요. 대체 왜 그러셨습니까?”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고룡의 마법사가 어째서 클로에를 앞에 두고 별에게 분노를 표했는가. 글레투스라는 이름의 기원은 무엇이며, 고룡의 마법사는 왜 그 존재를 역린처럼 느끼는가.
알 수가 없었기에 라니엘은 질문했고.
“······.”
고룡의 마법사는 침묵했다.
입을 연 것은 곁에 서 있던 카르디였다.
“제 첫사랑을 닮았다더군.”
“···첫사랑?”
“그래. 글레리아에게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었다. 아르카디아를 방문했던 저 도마뱀은 글레리아를 따로 불러내 지금과 같은 상황을 만들었었지.”
이름을 묻고.
분노를 표출했으며.
“다음으론 손을 대려 했지. 나와 가니칼트가 제때 도착했기에 망정이지···.”
“···다시 말하지만, 그것도 오해라네. 영혼의 형태를 확인하려 했을 뿐이야.”
“지랄이 짜군.”
카르디가 한숨을 내뱉었다.
“···글레리아 때는 노망난 도마뱀이 헛소리를 한다고 생각했지만, 클로에를 보니 나도 생각이 조금 바뀌는군.”
그가 눈을 가늘게 떴다.
“목소리도, 외형도, 그 영혼의 형태마저 유사하지. 단순히 우연이라 치기엔 힘든 일이야. 무언가 알고 있나? 요르문.”
요르문에게 날카로운 시선이 꽂힌다.
결국 요르문은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우연은 아니다.”
그가 제 곁을 떠도는 별빛을 보았다.
“글레투스, 그녀만이 그랬던 것은 아니야. 유사한 형태의 영혼을 가진 이들이 가끔 세상에는 태어난다. 표정을 보아하니 라니엘, 자네 또한 이미 몇 정도 마주친 모양이로군.”
요르문이 라니엘을 본다.
라니엘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그들은 별과 관련된 재능을 받았을 테고?”
“···예.”
“그래. 별에게 재능을 받은 이들일수록 그런 경향이 크지. 결국에 완벽한 그릇이란 형태가 어느 정도 잡혀 있으니까.”
별을 담아내기에 적합한 형태의 영혼.
그러니까, 완벽한 형태의 그릇.
“별은 그 형태를 알고 있다. 알고 있기에 인간의 탄생과 순환에 관여하려 했지. 내가 경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몇 번이고.”
물론, 하고 요르문이 말했다.
“별에게도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 무척이나 까다로운 조건이 필요하거든. 날 때부터 완벽한 것이 아닌, 삶을 인내함으로써 완벽에 가까워진 영혼은 흉내 낼 수조차 없고.”
이를테면 초인 같은 이들이 그렇지.
그리 중얼거리며 요르문이 말을 이었다.
“그래도 별은 언제나 완벽한 그릇을 바라. 어쩌면, 너희가 적대하는 마왕과도 같이 말야.”
라니엘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건.”
“의도는 다르지. 그냥 그렇다는 걸세. 그리고, 글레투스의 영혼은 완벽에 가까웠지. 그렇기에 별은 글레투스의 영혼을 흉내 내려 하는 것일 테고.”
요르문이 눈을 가늘게 떴다.
라니엘이 그에게 질문했다.
“···그것이 불쾌하십니까?”
“불쾌할 수밖에.”
벌어진 잇새 사이로 노기가 흘러나온다.
응축된 분노가 요르문의 목소리에 담겼다.
“글레투스의 삶은 종결됐다. 그녀의 이야기는 완벽하게 끝이 났어. 그녀는 제 삶에 만족했고, 나 또한 슬프지만 그녀를 보내주었다.”
세로로 갈라진 눈동자에 핏발이 섰다.
“나는 그녀를 살릴 수 있음에도 살리지 않았고, 그녀의 영혼을 붙잡을 수 있음에도 붙잡지 않았다. 그녀가 그렇게 해주기를 바랐으니까. 그날, 그 장소, 그 순간 그녀의 이야기는 끝이 났다.”
뿌득, 하고 요르문이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 영혼의 형태를 재현해, 그녀와 닮은 존재를 만들어내는 것은··· 그저 모독일 뿐이지. 그렇지 않나? 내 오랜 친우.”
고룡의 마법사.
별의 가장 오랜 친우.
그는 제 곁을 맴도는 별빛을 노려본다. 세로로 찢어진 동공에 백금색의 빛 고리가 나타났다.
사락.
시선을 받은 순간, 요르문의 곁을 맴돌던 별빛이 한순간 흐트러졌다. 마치, 고룡의 노기를 두려워하듯이.
“그렇게 생각하는 건 나만이 아닐 텐데.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카르디.”
너라면 나를 이해할 거다.
그런 시선으로 요르문은 카르디를 보았고, 카르디는 제 두 눈을 감았다.
“···글쎄.”
감았던 두 눈을 뜨며 카르디는 말했다.
“재현했을 뿐 다른 존재이지. 클로에는 글레리아가 아니다. 네가 말하는 글레투스는 더더욱. 그저 별개의 존재이지.”
“별의 농간이 있었음에도?”
“있었음에도.”
카르디가 단호히 답했다.
“그 아이는 별개의 존재다.”
“···그런가.”
요르문이 쓰게웃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할 수 없었다네.”
그는 제 고집을 굽히지 않는다.
고룡의 마법사는 남의 의견에 공감할지언정, 감화되진 못한다. 수만 년의 세월 간 확립된 가치관은 쉽게 변하지 않는 법이었으므로.
“후우···.”
고룡의 마법사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그렇다는 걸세. 그냥, 기분이 안 좋았어. 그래서 민감하게 반응한 것이고. 앞으로 주의하지.”
그가 말을 마무리 지으려 한다. 고룡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던 라니엘이 입을 열었다.
“그게 다입니까?”
그녀가 눈을 가늘게 뜬 채 묻는다.
“그게 다는 아닐 것 같은데요.”
“깊게 파고들지 말게. 나는 자네에게 이해를 바라는 존재가 아니니.”
고룡의 마법사가 선을 긋는다.
그 이상 넘어오지 말라는 반응에, 라니엘은 의심 어린 시선을 거두었다. 그 대신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럼 저도 누굴 닮은 겁니까?”
이야기를 들으며 줄곧 들었던 의문.
자신이 가진 특별함도, 어쩌면 별이 간섭한 결과가 아닐까 하는 의문이다.
“···인간의 탄생에 관여하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네. 지난 수만 년간 기껏 해봐야 삼십하고도 일곱 명이 채 되지 않으니 말일세.”
라니엘의 질문에 요르문은 쓰게 웃었다.
“그리고, 그 의심은 자네보다 내가 먼저 했다네.”
“···예?”
“자네의 비범함이 그냥 나왔으리란 생각이 들진 않았으니까.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요르문이 카르디를 바라본다.
카르디는 침묵함으로써 긍정했다.
“하나의 인간이 닿을 수 있는 영역을 월등히 넘어섰지. 타고났다, 그 한마디로는 설명이 불가능해. 자네도, 가니칼트도, 벨리알도.”
특별할 것 없는 인간이었음에도, 신에게 닿을 업적을 세운 이들이 있다.
“우습게도.”
요르문이 웃음을 흘렸다.
“그런 이들은 그 무엇에도 간섭받지 않았더군. 그 누구의 시선도 받지 않고 태어나, 모두의 시선을 가로채는 업적을 세우곤 해.”
그가 단언했다.
“자네는 그 누구와도 닮지 않았어.”
그렇기에.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
3.
축제를 지연하게 하고 말았군.
마학연회에서 보도록 하지.
그 말만을 남기고 고룡의 마법사는 자리를 떴다. 나는 한동안 그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는 무언가 숨기고 있었고, 중요한 이야기를 뺀 채 이야기했다.
「별은 언제나 완벽한 그릇을 바라. 어쩌면, 너희가 적대하는 마왕과도 같이 말야.」
별에게 목적이 있다.
「의도는 다르지. 그냥, 그렇다는 걸세.」
그 목적을 그는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선을 긋는듯한 말투였지.’
마치 너희와 나는 다르다는 것처럼.
“넌 어떻게 생각하냐?”
“나도 모른다. 저 도마뱀의 말마따나 나는 별과 수직적인 관계이니까.”
“너도 모르는 게 있네.”
“모든 걸 다 알고 있으면 내가 이러고 있진 않겠지. 당장 별부터 부수러 갔을 거다.”
너스레를 떨듯 카르디가 말했다.
그 말에 나는 무심코 웃음을 흘렸다.
“켈르할름 심정이 이해가 가네.”
별에 대해 이해하면 이해할수록.
별에 대해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없는 편이 낫다는 생각만 든다.”
별의 존재 가치에 의문이 든다.
내가 중얼거린 말에 카르디는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그 또한 비슷한 생각을 했으리라고 나는 짐작할 뿐이었다.
“어디 가서 입에 담지는 마라.”
“그 정도 사리분별은 해.”
한동안 우리는 자리에 서 있었다.
고룡의 마법사가 쳐놓은 결계는 허공에 녹아들듯 사라지고 있었고, 머지않아 이곳에도 사람이 밀려들어 오리라.
그렇게 멍하니 거리를 바라보다가.
“아, 맞다.”
나는 짝하고 박수를 치며 카르디를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카르디에게 보여주고 싶은 물건이 있었다. 나는 로브 안에서 마도구를 꺼내 들었다.
“이거 만들어봤는데 어때?”
카르디가 마도구를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놀랍다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
“아르카디아의 마공학이군. 이걸 어떻게 재현했지? 백마석이 없으면 새길 수 없는 회로고, 순수 상태의 백마석이 지금 시대에는 남아있지 않았을 텐데?”
“청마석으로 땜빵 쳤지.”
“···놀랍군. 현대에서 아르카디아의 기술을 다시 볼 수 있게 될줄이야.”
“나 혼자 만든건 아니야.”
내가 미소 지었다.
“잿빛의 현 차기 마탑주, 레스티 엘레노아. 그 애하고 같이 만든 거지.”
“그런가.”
카르디 또한 엷은 미소를 지었다.
“잿빛 마탑을 세운 건 옳은 판단이었나 보군.”
잿빛의 초대 마탑주, 아르미엘.
어렸을 적 내가 동경했던 마법사.
“훌륭하다.”
종종 끔찍한 꼰대로서의 행보만을 보다 보니 종종 까먹곤 하지만, 카르디의 정체가 바로 그 아르미엘이다.
위대한 초대 마탑주께 칭찬을 듣자니, 썩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그렇게 말해주니 영광이네. 아르미엘.”
“아르미엘이라 부르지 마라.”
초대 마탑주의 인정도 받았다. 마학연회에 제출할 완성품으로선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