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281
〈 281화 〉 별자리(2)
* * *
성창의 용사, 갈라할.
가장 용사다운 용사.
동화 속 영웅을 꿈꿨던 소년은 앞만을 바라보고 달려왔다. 소년은 자라서 청년이 됐고, 많은 것을 경험했다. 경험 끝에 소년은 자신이 영웅이 될 수 없음을 깨달았다.
동화 속 영웅은 찬란히 빛난다.
그들은 제 삶을 끝마치는 순간까지 아름답고도 찬란하다. 그렇기에 영웅이라 불리는 것이며, 수많은 아이에게 동경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허나, 현실에서 그런 삶은 불가능하다.
죽음이란 끔찍하며 잔인하다. 다가오는 끝 앞에 인간은 추해지기 마련이다. 갈라할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그 또한 공포를 느낀다.
자신의 삶에 의미가 있었는가.
내가 과연 바라던 것을 이루었는가.
나는 올바른 삶을 살았는가.
그 답을 얻을 수 없기에 갈라할은 끊임없이 고뇌했다. 남은 시간이 줄어들수록 갈라할의 마음은 병들어간다. 답을 얻지 못한 채 시간만이 흘러간다.
「영, 영광이에요! 갈라할 님!」
그러던 어느 날 갈라할은 저와 같은 길을 꿈꾸는 소녀를 만난다. 소녀는 갈라할을 영웅이라 불렀다. 그 눈동자에서 갈라할은 제 과거를 보았다.
영웅을 꿈꾸는 눈동자.
누군가를 동경해서, 누군가를 닮고 싶은 선망 어린 시선. 그 시선이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에 갈라할은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거면 된 거 아니야?」
「너는 이미 충분히 노력했고, 세상 모두가 너를 영웅이라 부르는데.」
그런가.
「어깨에 힘 좀 빼고 살아, 젊은 친구.」
「네 자리는 누구도 대체하지 못해. 네가 쌓아올린 업적은, 그런 것이다.」
그랬던 것인가.
“저는 이미 꿈을 이뤘던 거군요.”
갈라할은 앞을 바라본다.
왕국의 수백 년의 역사를 지켜온 수많은 영웅이 전시된 이곳에, 자신의 동상 또한 놓여있다. 그 동상에는 한 줄의 문장이 큼지막하게 각인되어 있다.
「가장 용사다운 용사.」
갈라할이 꿈꾸었던 용사.
그 문장을 마주한 채 갈라할은 미소 지었다.
“저도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저는 그런 큰 존재가 되어 있었군요.”
앞만을 보고 나아가던 용사는 처음으로 뒤를 돌아본다. 그렇게 펼쳐진 풍경은, 갈라할이란 한 명의 인간이 걸어온 길이다.
완벽한 길은 아니다.
어설프다. 때로는 흔들렸고, 때로는 멈춰선 채 좌절하기도 했다. 그러나 끊어지진 않는다. 힘겨이 일어서선 다시 걸어나간다.
마치, 동화 속의 영웅처럼.
갈라할은 제 발밑을 바라본다.
지금의 자신은 어느새 길의 끝을 향해 걷고 있다. 앞으로 남은 길은 그리 길지 않다. 어쩌면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고 말 찰나의 시간이다.
그 길은 지금까지의 길만큼 화려하지는 않으리라. 다가오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끔찍한 것이어서, 어쩌면 자신은 추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자신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노라면, 그런 건 아무래도 좋은 것이다. 갈라할은 제 삶을 돌아보며 무심코 중얼거렸다.
“제법 멋지게 살았군요, 저는.”
자신이 걸어온 길.
갈라할이 보기에 그 길은 아름다웠다.
그 무엇보다도 더.
* * *
갈라할은 제 동상 앞에 사인을 새겼다.
멋들어진 글씨체로 새겨진 갈라할의 사인을 보며 라니아는 오, 하고 짧게 감탄했다.
“뭐냐? 사인 엄청 멋지네.”
“연습을 했습니다. 제법 많이.”
“응? 뭐라고?”
“용사가 처음 됐을 때부터, 몰래 사인 연습을 했었습니다. 부끄럽게도.”
갈라할이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
“언젠가 이런 자리에서 제 이름을 남길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어떻게 하면 멋지게 글자를 쓸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거든요.”
“···그래?”
“예, 사실 모양도 제법 다양하답니다? 이런 식으로 글자를 꼬아 쓸 수도 있고···.”
그렇게 갈라할은 몇 개의 사인을 더 남겼다.
글자를 휘갈겨 쓰는 갈라할은 웃고 있었는데, 어느 때보다 편안한 웃음이었다. 마치 오랜 짐을 내려놓은 듯한 표정.
그 표정을 흘겨보던 라니아가 물었다.
“뭔가 좀, 분위기가 달라졌다?”
“그렇습니까?”
“응. 평소보다 좀 편안해 보인다고 해야 할까, 뭔가 좀···.”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갈라할이 웃었다.
“뭔가, 너무 어렵게 생각할 게 없다는 걸 깨달은 기분입니다. 너무 앞만 보고 살아왔던 걸까요.”
뜬구름을 잡는 소리다.
갈라할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라니아가 눈을 깜빡이는 가운데, 갈라할이 고개를 돌렸다. 그 시선이 향한 곳은 라니아다.
“라니아.”
갈라할이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
“비밀인데 말입니다, 제 원래 꿈은 작가였습니다.”
“···작가?”
“예, 영웅담을 동경했지만, 영웅이 될 힘은 없었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생각했던 게, 영웅들의 이야기를 한데 모아 영웅담을 써보는 것이었습니다.”
그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으며, 어느샌가 잊어버리고 말았던 자신의 어렸을 적 꿈.
“그래서 말입니다.”
그것을 이야기하는 갈라할은 즐거워 보인다.
마치 어린아이로 돌아간 것처럼.
“지금이라도 글을 써볼까 합니다.”
“그래?”
“예, 많은 것을 경험하고 왔으니 더 생생하게 글을 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 왜, 당신도 제게 말하지 않았습니까.”
“내가?”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만큼, 좋은 전달 수단은 없다고요.”
그리 중얼거리며 갈라할이 웃었다.
“어쩌면 제가 쓴 영웅담을 읽으며, 저와 같은 삶을 꿈꾸는 이가 나올지도 모르는 일 아니겠습니까.”
즐거워보이는 갈라할을 바라보며, 라니아도 무심코 웃음을 흘렸다. 꿈, 꿈이라. 이제는 너무 멀어져 버린 제 꿈을 떠올리며 라니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열심히 해 봐.”
꾹, 하고 갈라할의 옆구리를 찌르며 라니아가 갈라할에게 말했다.
“다 쓰면 제일 먼저 보여줘.”
“물론입니다. 당신의 이야기도 들어갈 테니.”
“위대한 이란 단어는 빼먹지 말고.”
갈라할이 웃음을 터뜨렸다.
라니아도 따라 웃었다.
가장 용사다운 용사의 동상 앞에서, 둘은 한동안 서로를 바라본 채 웃음을 흘렸다.
2.
열흘의 시간은 순식간에 흘렀다.
용사로 거듭나기 위한 시련을 치르기 위해 클로에는 마차에 올랐다. 마차는 왕도의 깊숙한 곳에 숨겨진 숲으로 나아간다.
마차에는 클로에의 두 스승 또한 함께한다.
외부인에게 공개하지 않는, 심지어는 클로에의 보호자인 흑색 마탑주 조차 접근하지 못하는 장소지만··· 클로에와 함께 탄 두 사람에겐 예외적으로 허가가 떨어졌다.
“오랜만이군요. 저도 이곳에 온 적이 있었는데.”
“난 소문으로만 들었던 것 같은데.”
한 명은 이곳에서 시련을 치른 용사 갈라할이요, 다른 하나는 잿빛 마법사의 후계라 불리는 라니아 반 트리아스다.
「라니아 반 트리아스의 출입을 허가한다.」
본래 라니아에게까지 허가는 떨어지지 않을 예정이었지만, 현 왕성의 실질적인 권력자나 다름없는 제 1 왕녀의 일갈 한 번에 허가는 떨어졌다.
「믿을만한 자, 라고 본녀는 말했다.」
「경들은 본녀의 안목을 의심하려는 건가?」
그 서늘한 눈동자를 마주한 채, 반대 의견을 내놓을 만큼 용감한 이는 없다. 그렇게 세 사람을 태운 마차는 숲의 깊은 곳을 향해 나아간다.
“······.”
그렇게 시련의 장소가 가까워지는 가운데 클로에는 말이 없다.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파르르 떨리는 제 손끝을 보았다.
시련을 치르고 나면 자신은 견습 용사가 된다.
자신이 용사라는 사실이 세상에 공표되며, 상황에 따라 전장에 불려 가야 할지도 모른다. 그 사실이 두렵지는 않다. 지금의 클로에가 두려워하는 것은, 다름 아닌 그녀 자신의 자질이다.
‘할 수 있을까.’
지난 몇 달간 그 어느 때보다 바삐 살았다.
쉬지 않고 수련했으며, 몇 달 전의 자신과 비교해봤을 때 놀라울 정도의 성취를 거뒀다. 이제는 그 노력의 결과를 증명할 시간이었다.
문제는, 그 성취가 과연 충분하냐는 것.
그리 클로에가 고민하고 있자니, 클로에의 맞은편에 앉은 갈라할이 입을 열었다.
“클로에.”
목소리에 클로에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눈을 마주친 갈라할은 미소 짓고 있다. 부드러운 미소다. 짧은 시간 동안 클로에의 스승이 되었던 갈라할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자신을 가지십시오.”
짧은 한마디.
“당신은 충분한 자격을 가졌습니다. 시련 정도는 가볍게 통과할 수 있을 테지요.”
“그래. 내가 보기에도 그 정도면 충분해.”
갈라할과 함께 라니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까운 곳에서 클로에를 지켜보았던 둘은 확신한다. 지금의 클로에라면 가볍게 시련을 통과할 수 있으리라고.
“······.”
클로에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마차는 목적지에 도착해 있다. 클로에가 주먹을 꽉 쥔 채 마차에서 내렸다.
“이쪽입니다.”
별을 헤아리는 점성술사들이 클로에를 비롯한 세 사람을 숲의 깊은 곳으로 안내한다. 한참을 걷다 보면 거대한 나무가 자리 잡은 공터가 있다.
해가 뜨고, 여명이 찾아오기 전.
한밤중의 숲이나 마냥 어둡지만은 않다. 밤하늘에 빛나는 별이 숲을 밝히고 있는 까닭이다.
“이곳에.”
점성술사의 안내에 따라 클로에가 나무의 아래에 바로 선다. 나뭇가지 사이로 클로에가 선 곳을 향해 백금색의 별빛이 쏟아진다.
그렇게 클로에가 중심이 된다.
그녀가 선 곳에 모여든 별빛이 하나의 점이 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일점(一?). 뒤이어 밤하늘의 별자리들이 차례로 빛나기 시작한다.
나뭇가지 사이로 별빛이 새어 들어온다.
하나, 둘, 셋, 다섯, 그리고 여섯.
여섯 개의 점이 클로에의 주변에 찍힌다. 점과 점이 이어지며 선을 만들고, 이어진 선은 하나의 문양이 된다. 그 중심에 클로에가 있다.
사락.
클로에가 밟고 선 백금색의 점은 아직 찬란한 빛을 얻지 못했다. 은은히 빛날 뿐이다. 완전하지 않은 점을 향해, 여섯 개의 점에서 선이 이어진다.
점과 선이 마주한다.
그곳에 거대한 빛의 우물이 나타난다.
빛의 우물이 밤하늘에 뜬 별자리를 비춘다. 비친 별자리와, 하늘 위의 별자리가 공명하기 시작한다.
불완전한 여섯에서 완전한 일곱이 되기 위해.
별은 자신이 선택한 인간에게 시련을 내린다. 백금색의 우물 위로 하나의 문이 나타난다. 별자리가 새겨진 문이 열리고, 시련으로 향하는 길이 나타난다.
끄덕.
몇걸음 떨어진 곳에 있는 갈라할과 라니아를 바라보며 클로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각오를 다진 그녀가 빛나는 통로를 향해 걸음을 내디디려는 순간이다.
끼긱.
무언가 비틀리기 시작한다.
땅 아래 찍힌 여섯 개의 점이 뒤흔들린다. 찬란한 백금색을 띠던 별자리가 점멸하며, 그 색이 뒤바뀐다. 뒤바뀐 색은 검은색이다. 구정물과 같은 검은색.
그리고, 쩌억.
“어?”
무언가 별의 통로를 집어삼켰다.
* * *
지도에 찍어둔 여섯 개의 점을 노려보다 말고, 데스텔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보아도 답이 나오질 않는다. 수많은 서적을 뒤져봤으나, 여섯 개의 점이 이어진 문양을 찾아볼 수는 없었다.
“후우···.”
한숨을 내쉬며 데스텔이 막사의 바깥으로 나왔다.
해는 져문지 오래다. 어둠에 잠긴 초원을 걷다 말고 데스텔이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들이 찬란히 빛나고 있다.
별을 썩 좋아하지 않는 데스텔이다. 별자리를 보는 취미는 없으나, 왜인지 모르게 데스텔은 밤하늘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
데스텔이 눈을 가늘게 떴다.
무언가, 낯이 익는다.
황급히 막사로 뛰어들어간 데스텔이 지도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지도에 새겨진 여섯 개의 점, 그리고 밤하늘에 빛나는 별자리.
그 모양이 겹쳐진다.
데스텔이 눈을 크게 뜬 가운데, 쿠웅 하고 땅이 뒤흔들리기 시작한다. 하나둘 일어나기 시작한 기사들 사이로, 누군가 달려온다.
“데, 데스텔님!”
기사가 데스텔에게 외친다.
“이상 현상이, 이상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그가 위치를 입에 담는다.
카테론 고성.
델타온 고성.
카르마트 협곡.
하텔 평야.
온펠슈타인 임시거점.
키멜트 거점.
직후, 데스텔이 가장 높은 곳으로 뛰어 올라갔다. 그 어깨에는 어느샌가 성의가 둘러져있다. 별빛으로 시야를 강화한 채, 데스텔은 저 멀리 떨어진 카테론 고성이 있는 쪽을 바라본다.
기사는 말했다.
땅 아래서 하늘 위로 핏물이 솟구쳤다고.
솟구친 핏물이 하늘을 가렸다고.
그 기이한 풍경은 과연,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도 보인다. 카테론 고성의 위에 원반 형태의 검붉은 핏물이 떠있다.
마치, 거울과도 같은 모양새다.
거울이 비추는 것은 하늘 위에 떠있는 별이다.
데스텔은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봤다.
별이 검게 물들고 있었다.
* * *
솟구친 구정물이 통로를 집어삼켰다.
그것은 그늘이 아니다. 그늘을 닮은 무언가다. 꺼림칙한 그것이 통로를 집어삼킴과 동시에, 라니엘이 땅을 박차고 클로에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늦어있다.
“클로에!”
검게 물든 통로의 너머에서 누군가의 손이 뻗어 나온다. 새하얀 여인의 손. 그 손이 클로에의 팔을 움켜쥐곤, 흑색의 통로 안으로 끌고 들어간다.
통로의 너머에서 모습을 드러낸 존재가 있다.
그 존재가 내뿜는 기척에 라니엘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이 존재감을 라니엘은 잘 알고 있다. 모를 수가 없다.
일대를 찍어누르는 질척한 마기(??).
그것을 견디지 못한 채 점성술사들은 피를 토하며 쓰러지고, 갈라할은 눈을 부릅뜬다. 부릅뜬 갈라할의 눈에 핏발이 선다.
그리고.
“아하.”
통로 너머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또 만났네, 잿빛.”
연인의 이름을 부르듯 달콤하게 속삭이는 목소리.
그 목소리에 묻어나오는 것은 광기다.
라니엘이 짓씹듯이 존재의 이름을 입에 담는다.
“배교자.”
배교자(?者), 글레투스.
이름 불린 재앙이 미소 짓는다.
“오랜만이지만 미안한걸. 오늘 용건이 있는 건 네가 아니라, 이 아이라서.”
통로의 너머에서 배교자는 자신의 닮은 소녀의 얼굴을 쓰다듬는다. 그 무엇보다 소중한 재료를 다루듯이, 가느다란 손가락이 클로에의 뺨을 쓰다듬는다.
“조금만 기다려 줄래, 잿빛?”
배교자가 웃었다.
“새로운 몸으로 곧 만나러 갈 테니까.”
너도.
그리고, 최초의 잿빛도.
배교자의 시선에는 세상에 병든 채 구원을 바라는 인간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곧 구원해줄게.”
최초의 성녀는 구원을 바란다.
인간의 구원을 위해서라면, 성녀 글레리아 벨 아르미아스는 어떠한 수도 마다치 않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