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310
〈 310화 〉 별이 바라는 것(3)
* * *
광인, 켈르할름은 하늘을 올려다본다.
잿빛 눈동자에 비치는 것은 하늘을 날고 있는 용이다. 저주룡이라 이름 붙여야 할 그것은 인간의 시체를 긁어모아 만들어낸 끔찍한 생물체다.
‘죽은 짐승을 살려내서,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뭉개놓은 인간의 원념으로 현세에 묶어놨군.’
참으로 그 빌어먹을 년이 할법한 짓이다.
켈르할름은 제 심장을 옭아맨 사슬이 삐걱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저주룡의 날개를 이루고 있는 구정물은 켈르할름에게 과거를 떠올리게 했으므로.
살지도 죽지도 못하게 된 이들.
제 육신이 모두 뭉개지고, 비명을 지르는 무언가로 전락해버린 이들.
그렇게 변해버린 이들을 켈르할름은 안다.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백여 년 전, 그의 고국에서 수많은 이들이 저리 변하고 말았으니. 그때 지천으로 흐르던 구정물을 켈르할름은 결코 잊지 못한다.
지독한 악취.
울려 퍼지는 비명.
바닥을 기며 허물어지던 학생과, 동료들.
심장이 크게 뛰나 켈르할름은 짧게 숨을 내뱉은 것으로 감정을 갈무리했다. 광기에 휩싸인 채 살아온 지가 어언 백여 년이다. 감정을 절제하고 냉철하게 판단하는 것은 켈르할름의 특기다.
키잉.
켈르헬름이 회로를 띄운 순간 저주룡이 반응한다.
쩍 벌린 아가리에 맺힌 불꽃이 켈르할름을 조준한다. 그러나 켈르할름은 피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켈르할름이 허공에 손가락을 긋는다.
챠라라라라라락!
하나의 회로가 수십으로, 수십에서 다시 수백으로 분열한다. 잘게 쪼개진 수백의 회로가 일대를 환히 비춘다. 기사들과 피난민을 물어뜯던 구울의 미간에 십자의 표식이 떠오른다.
“주문에 반응하게 만들어졌나 본데.”
켈르할름이 손가락을 휙, 휘둘렀다.
“할 수 있으면 해 봐라.”
수백의 회로가 동시에 빛을 뿜는다.
저주룡이 열선을 쏘아 수십의 회로를 불태우나, 수백에서 수십을 지웠다 하여 유의미한 변화는 나타나지 않는다.
번쩍!
수백의 회로가 빛을 뿜는다.
적과 아군이 뒤섞인 난잡한 전장 속에서 켈르할름의 주문은 정확하게 구울의 머리만을 터뜨린다. 수백의 빛줄기가 전장을 휩쓸고 지나간다.
놀라우리만치 정교한 주문이다.
주문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남은 구울은 없다. 기사들이 경악하는 가운데, 켈르할름은 여전히 하늘을 나는 저주룡만을 보고 있다.
‘망가졌다 한들, 재앙의 새끼라는 건가.’
수백의 회로 중 절반은 구울을 노렸고, 남은 절반은 저주룡을 노렸다. 수백의 빛줄기에 꿰뚫리고도 하늘을 나는 저주룡은 멀쩡하다.
쯧, 하고 켈르할름이 짧게 혀를 찼다.
흑룡 벨리알의 비늘은 어지간한 주문은 모조리 튕겨내 버리곤 했다. 그 빌어먹을 저항력을 흑룡의 새끼는 고스란히 물려받은 듯싶다.
‘하지만···.’
켈르할름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효과가 아예 없는 건 아니군.’
얼핏 보기엔 멀쩡해 보이나, 저주룡의 날개에 크고 작은 구멍이 뚫려있다. 금새 수복되긴 하나 그것은 방금의 공격이 유의미했음을 의미한다. 그 사실에서 켈르할름은 한가지 정보를 이끌어낸다.
하늘을 나는 저주룡은 불완전하다.
배교자 토벌전 당시, 잿빛 마법사는 저주룡이 완성될 시 흑룡에 준하는 재앙이 될 거라 예측했다. 그 예측에는 켈르할름 또한 동의한다. 하지만, 눈앞에 떠있는 저주룡은 흑룡에는 한참 못 미치는 존재다.
저것은, 완성되지 못했다.
배교자의 방식으로 만들어진 사역마임은 분명하나, 충분한 시간을 걸쳐 완성한 사역마는 아니다. 마치 급하게 내놓은듯한 느낌이 든다.
“어지간히도 급했나 보군.”
켈르할름이 짧게 숨을 내뱉었다.
배교자, 글레투스.
그녀가 갈라할에 의해 토벌 직전까지 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심장에 성창을 박아넣었다고 했던가. 과연, 갈라할의 희생이 무의미하진 않았던 모양이다.
그럼에도 상대하기 까다롭긴 마찬가지나···.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지.’
켈르할름은 말없이 제 뒤를 돌아봤다.
그곳에는 용사, 갈라할이 남긴 가능성이 있다. 저주룡을 상대하기 위해선 반드시 필요한 존재. 하지만 그 소녀를 바라보는 켈르할름의 표정은 썩 좋지는 못하다.
그녀가 배교자를 닮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클로에라고 했었나.”
켈르할름이 눈살을 찌푸린 채 입을 열었다.
“자살이라도 할 생각이냐?”
2.
“자살이라도 할 생각이냐?”
켈르할름의 한 마디에 클로에가 움찔, 제 몸을 떨었다. 클로에가 무언갈 말하려던 찰나다.
“용사의 책무, 희생에 답해야 할 의무, 비명에 답해야 할 책임. 그딴 말을 지껄일 생각이면 집어치워라.”
할 말을 빼앗긴 클로에가 입을 다물었다.
켈르할름이 손가락을 휘둘러, 주변에 수십의 회로를 띄웠다. 저주룡이 공양하려는 순간 그 거래에 끼어들어 켈르할름은 주술의 완성을 방해한다.
그리 저주룡을 막아 세우며 켈르할름은 말을 계속한다.
“숭고한 것은 좋다. 희생에 답하려는 자세도 좋다. 그것은 용사로서의 마음가짐이고, 그 자체를 꼬집을 생각은 없다. 훌륭한 마음가짐이니.”
단, 하고 켈르할름이 말했다.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판단해라.”
그가 클로에를 똑바로 바라본다.
“불가능에 도전해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너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무언가를 남길 수 있을 때 해야 하는 일이지. 주변을 보아라.”
클로에가 주변을 보았다.
수많은 이들이 도망치고 있다.
“여기서 네가 희생한다 해서 저들이 살 수 있을 것 같나? 저 용을 떨어트릴 수 있을 것 같아? 제대로 보고, 제대로 판단해라. 마법사는 언제나 냉철해야 하는 존재이니.”
그가 손을 휘둘렀다.
다시 한번 수십의 회로가 빛을 발한다.
“무책임하고 무가치 한 희생은 자살행위에 불과하다. 널 살리고자 희생한 이들을 욕보이는 행위지. 네가 이곳에서 죽는다면···.”
“···알아요.”
클로에가 켈르할름의 말을 끊었다.
“알고, 있어요.”
자신을 위해 희생한 용사를 클로에는 안다.
이곳에서 자신이 죽는다면, 갈라할의 희생이 빛바래고 만다는 것 또한 안다. 하지만, 클로에는 동시에 용사로서의 책무를 외면할 수도 없다.
“그럼 어떻게···.”
“고뇌해라.”
켈르할름이 말했다.
“가능함과 불가능함을 저울질해라. 판단해라. 사고해라. 불가능하다고 포기하란 소리가 아니다. 다른 방법을 찾으라는 거지.”
도망치고, 다른 길을 고르고, 수많은 수단을 동원해 가능성을 찾아라. 그것은 백 년을 살아온 켈르할름이 건네는 조언이자 경험담이다.
“무작정 달려든다고 답을 찾을 수 있을 리가 없지. 나처럼 백 년을 후회하고 싶지 않다면, 제대로 생각하고 행동해라.”
후회하지 않도록.
켈르할름이 다시 앞을 바라본다. 아가리를 벌린 채 거대한 주술을 준비하는 저주룡을 본다.
“알아들었으면 움직여라.”
그가 등을 보인 채 말한다.
“시간은 벌어 줄 테니 답을 찾아봐라. 책무를 다하고 싶다면, 네 자신을 증명해라.”
이런 상황임에도 마치 수업을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켈르할름의 뒷모습에서 익숙한 교수의 모습을 느끼며 클로에가 일어섰다. 그녀가 문득 제 옆을 바라봤다.
“···할 말이 많았는데.”
그곳에는 비틀거리며 일어서는 벨노아가 있다.
“저 사람이 다 말해줬네.”
한숨을 내쉰 벨노아가 피에 젖은 제 머리칼을 쓸어넘긴다. 그리하여 드러난 눈동자는 선명하다. 벨노아가 클로에를 보았다.
“도망칠 생각은 없지?”
“응. 벨노아라도···.”
“내가 도망가겠냐? 널 놔두고?”
벨노아가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넌 나 죽기 전까진 못 죽어.”
* * *
라니엘은 라크에게 포션을 들이부었다.
정신을 잃었다 뿐이지 목숨에 지장은 없어 보였다. 부러진 뼈야 나중에 천천히 맞추면 될 일이다.
“수고했다, 라크.”
라니엘이 엷은 웃음을 흘렸다.
공포에 떨면서도 죽음에게 칼을 휘두른 라크에게 라니엘은 진심 어린 찬사를 보낸다. 그 일격이 있었기에, 자신의 주문이 죽음에게 통했으며··· 카일의 일격이 죽음에게 닿을 수 있었다.
라니엘은 고개를 돌려 뒤를 보았다.
그곳에는 설원에 꽂힌 대검이 있다.
최초의 성검이자, 가니칼트가 용사 시절 사용했던 대검. 라크는 성지의 중심에서 저것을 뽑아왔다. 그에 관한 이야기는 나중에 들어봐야겠지.
‘···저걸 어떻게 한담.’
라크가 정신을 차릴 때까지 이곳에 두어야 하나?
그렇게 라니엘이 고민하고 있을 무렵이다.
최초의 성검이 별 무리로 변했다. 변한 별 무리가 라크의 왼손을 부드럽게 감쌌다. 마치, 용사들이 별의 무구를 불러들이듯이.
“···허어.”
라니엘이 짧게 숨을 내뱉었다.
아무래도, 최초의 성검은 라크를 제 주인으로 인정한 모양이다. 그렇게 라니엘이 라크를 등에 업으려는 순간, 라니엘의 로브가 요란스레 떨렸다.
울리는 것은 성배(??).
마치, 다음 시련에 도전할 기회가 주어졌단 것처럼 성배가 요란스레 울리고 있다. 라니엘은 제자의 성장에 엷은 웃음을 흘린다.
“돌아가면 할 일 많겠네.”
그리 중얼거리며 라니엘이 걸음을 옮긴다.
그렇게 몇 걸음이나 걸었을까. 불어오는 바람에 라니엘이 걸음을 멈췄다. 불어오는 바람의 결에서 라니엘은 익숙함을 느낀다.
서늘한 눈바람 사이로 불어오는, 메마른 바람.
그 이질적인 바람은 라니엘에겐 익숙한 것이다. 흑룡과의 전투에서 질리도록 느껴야 했던 바람이었으니까. 라니엘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
그녀가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본다.
바람은 아주 먼 곳에서부터 불어오고 있었다.
3.
켈르할름이 가세했지만, 전황은 여전히도 불리하다. 광인은 내색하지 않지만 벨노아는 그 사실을 눈치챈 지 오래다.
‘···시간을 끌 뿐이야.’
켈르할름이 말했던 그대로다.
그는 어디까지나 시간을 끌 뿐이다. 저주룡이 흩뿌리는 구울에게서 피난민을 지키고, 저주룡의 주술을 막아내는 것.
그것이 켈르할름이 자처한 역할이며, 그는 실제로 그것을 훌륭히 이루어내고 있다. 켈르할름이 가세한 이후로 그 누구도 죽지 않았다.
구울은 쓸려나가고, 저주룡의 주술은 켈르할름의 방해로 제 위력을 내지 못한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그럴 수는 없다.
켈르할름 또한 인간이다. 마나의 한계량은 정해져 있고, 아무리 효율 좋게 그것을 다룬다 한들 끝은 오기 마련이다.
그 전에 답을 찾아야 한다.
벨노아는 제 옆을 본다.
클로에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답을 찾고 있다. 그녀가 그리는 회로는 조금 전과는 다르다. 그녀는 식은땀을 흘리며 회로를 새기고 있다. 또다시 앞으로 나아가려고 한다.
‘···나도.’
벨노아가 부러진 제 손가락을 본다.
쓸 수 있는 건 모조리 썼다.
여기서 더 한다면, 손가락이 아예 뽑혀버릴 것이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벨노아는 부러진 제 손가락을 콱 물어뜯었다.
우득, 우드득.
손가락이 뽑혀나간다.
시야가 점멸하는 고통 속에서, 벨노아는 눈을 부릅뜬다. 너덜너덜한 검지가 축 늘어졌다. 당장에라도 뜯어질 것 같은 검지에서 그림자가 꾸물거리며 흘러내린다.
공양(Offering).
고통을 저울에 올리려는 순간이다. 벨노아는 무심코 제 눈앞에 떠오른 천칭을 보았다. 마법사들이 사용하는 천칭과는 다른 것.
···주술사들이 쓰는 천칭은, 마법사들이 쓰는 천칭을 흉내 낸 것에 불과하다고 세간은 말한다.
마법사의 천칭처럼 깔끔하지도, 별과 직접 연결이 되지도 않는 아류의 것. 그러니까 진정한 천칭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것. 주술사의 천칭은 수백 년간 그렇게 표현되곤 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벨노아는 의문을 가진다.
‘···그날 내가 보았던 건.’
그날 성배 속에서 보았던 것.
벨리알이라 스스로를 밝힌 한 주술사가 벨노아에게 보였던 것은··· 결코 아류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법사의 천칭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 극한에 이른 천칭이었다.
본질적으로 다른 것.
다른 방향을 추구하는 것.
『주술사의 천칭은 마법사의 천칭을 흉내낸 것에 불과하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머리에 박혀있던 그릇된 상식을 벨노아는 쳐낸다. 극한에 몰려 흐릿해진 의식 속에서 벨노아는 자신이 한평생 쌓아온 탑을 허물어트린다. 그리곤, 처음부터 다시 쌓기 시작한다.
주술은 마법과 추구하는 것이 다르다.
마법은 별에게 기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술은 무엇에게 기원하는 것인가?
「답은 이미 알고 있지 않나, 소년.」
귀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렸다.
시련 속에서 들었던 목소리.
그림자 주술을 극한까지 추구했던, 고대의 주술사가 벨노아의 귀에 속삭였다.
「일찍히 이 땅에 존재했던 가장 완벽한 생물.」
「별보다 더 오래전의 시대에 살았던 태초의 생물.」
그림자 용.
그림자 용의 주술.
벨노아가 언제부턴가 감고 있던 눈을 떴다.
끼긱.
눈앞의 천칭이 제멋대로 기울어진다.
그곳에 담긴 것은 별빛이 아니다.
꾸물거리는 그림자가 천칭을 휘감고 있다.
【아이야, 바라는 것을 말하라.】
벨노아의 귀에 목소리가 울렸다.
그것은 처음 듣는 이의 목소리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