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32
〈 32화 〉 옛 인연(4)
* * *
딱!
손가락을 튕기는 경쾌한 소리가 울린다. 작은 불똥이 튀었다. 그게 끝이었다.
‘주문을 실패한 건가?’
벨노아는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무언가 일어날 기미가 없었으니까. 그 때, 벨노아의의 시야 한 편에 무언가 잡혔다.
‘···재?’
허공에 잿가루가 흩날리고 있다.
그녀의 머리칼과 같은 잿빛의 가루.바람이 불어오지 않음에도, 잿가루는 너울치며 허공을 맴돈다.
그리고.
그 흩날림에는 방향이 있다.
그워어어어억?
뭉쳐져 하나의 벽이 된 언데드.
재는 언데드를 향해 흩날린다. 그 속도는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다. 바람에 꽃잎이 흔들리는 것 같은 속도다.
틱.
그것이 언데드들에게 닿은 순간.
틱, 티딕.
작은 불똥이 튄다.
불길이 되기는 미약한, 아주 작은 불똥.
“눈 감아.”
“예?”
“싫음 말고.”
라니아가 눈을 감았다.
벨노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눈 아플 텐데.”
그 말의 뜻을 벨노아가 이해하기까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화앗!
일순, 섬광이 번뜩였다.
잠깐의 간격을 두고 열풍이 몰아친다.
“···읏!’
벨노아는 황급히 팔을 뻗어 얼굴을 가렸다.
뒤늦게나마 눈을 감았다. 눈을 감아도 빛무리가 어른거렸다.
‘이게, 무슨.’
열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섬광 또한 마찬가지다. 한번 번쩍였을 뿐, 그 뒤로는 잠잠하다.
그렇게 기다리기를 잠시.
열기가 가셨을 무렵, 벨노아는 천천히 눈을 떴다.
“어?”
벨노아는 눈을 깜빡였다.
‘···없어?’
그곳에 있어야 할 언데드가 없었다. 그 거대한 덩치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아니, 흔적은 있었다.
수로의 물길을 따라 잿가루가 흐르고 있었다. 그 잿가루가 본래 무엇이었을지 상상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콜록, 켁, 어우.”
라니아는 마른기침을 하며 손을 휘저었다. 그을린 바닥을 밟으며 수로 안으로 향한다.
“······.”
벨노아는 멍하니 제자리에 서 있었다.
‘무슨 주문이야, 저게?’
그 원리를 모르겠다. 몇 개의 주문이 섞인 것 같긴 한데, 그 구조를 짐작조차 하지 못하겠다.
‘···그냥 그러려니 하자.’
어디 이런 게 한둘이었던가.
마나의 샘부터 시작해서, 저 교수는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인 인물이었으니까.
“뭐해 빨리 안 오고?”
“···지금 가겠습니다.”
여전히 낯설고, 또 독특한 사람이다.
그냥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 * *
수로의 끝이 다가온다.
더이상 몰려드는 언데드는 없다.
‘뭔가 이상한데.’
라니아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가 생각하기에, 이 상황은 이상했다. 게다가 발걸음을 옮길수록 피부가 근질거린다.
그 감각이 낯설지가 않다.
익숙한, 아니 익숙해진 감각이다.
“······.”
라니아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녀의 감각은 아직 전장의 것과 같다. 그녀는 아직 평화로운 일상에 적응하지 못했다.
낯설었다.
평화로운 분위기가, 마기가 느껴지지 않는 왕도의 모든 게 그녀에겐 낯설었다.
그러나, 지금.
라니아는 익숙함을 느끼고 있다.
오랜만에 느껴지는 익숙함은 불온함으로 다가온다.
‘저 끝에 뭐가 있는진 몰라도···.’
이곳에 있을 만한 건 아닐 거다. 그렇게 판단을 내린 라니아는 조금 빠르게 걸었다.
탁.
이윽고, 수로의 끝에 도착한다.
“···윽.”
그 넓은 공간에 도착하자마자, 벨노아는 코를 틀어막았다. 악취가 풍긴다.
‘저게 뭐야?’
수로의 끝에 놓인 것, 벨노아는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저 기괴하다고 느낄 뿐이다.
“하.”
그러나, 라니아는 아니다.
그녀는 저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럼 그렇지.”
그녀의 인상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벨노아가 무심코 뒤로 물러섰다.
사락.
옷깃이 스치는 소리가 들린다.
그녀가 소매를 걷어붙인다. 그리곤, 양팔을 앞으로 쭉 뻗었다. 그 움직임을 따라 마나가 요동쳤다.
“···교수님?”
그 기세가 심상치 않다.
벨노아는 조심스레 질문했지만.
“물러 서 있어.”
돌아오는 대답은 싸늘했다.
“끝에 뭐가 있는지 확인했잖아.”
“···그렇죠.”
짝, 그녀가 박수를 쳤다.
“이제 무너트려도 돼.”
“예?”
그게 무슨 소립니까? 라고, 벨노아가 물어볼 시간은 없다. 그가 입을 여는 것보다 한발 먼저 그녀가 움직인다.
이윽고.
쿠웅!
거대한 충격이 수로를 덮쳤다.
2.
“···나 간다, 영감.”
“오냐, 클로에는 분수대에서 기다린다더구나.”
“······.”
“분수대에 기다린다니까? 대답 안 하나?”
“아, 응.”
끼익. 벨노아가 문을 열고 나갔다.
그 발걸음에는 묘하게 힘이 없다.
툭.
그가 나가고 조금 뒤, 카르디가 테이블을 두들겼다. 노인의 모습이 흘러내리고 청년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나는 탐탁잖은 시선으로 카르디를 흘겨봤다.
“···숨기는 이유가 있냐?”
“젊은 엘프보단, 인자한 노인인 쪽이 더 친숙하게 느껴질 테니까.”
“음···.”
썩 인자해 보이진 않았던 것 같은데.
‘성격 사납고, 꼬장꼬장해 보이면 보였지.’
인자함과는 좀 거리가 멀었던 것 같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카르디가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라니엘. 너, 도대체 뭘 보여준 거냐?”
“응?”
“벨노아 저놈, 완전 넋이 나가 있지 않나. 도대체 뭘 보여줬음 저래?”
“좀 요란하게 처리하긴 했지.”
그냥 지우기는 좀 귀찮은 거였으니까.
‘더 좋은 방법은 카일이 성검으로 쓱, 긁어버리는 거긴 한데···.’
그 성검이 닿기만 해도 어지간한 건 해결이 된다. 그러나, 이곳엔 카일이 없다. 그래서 조금이나마 성검을 흉내 내보긴 했는데···.
‘요란스럽긴 했지.’
원래부터 성검이 요란한데, 뭐 어떻게 하라고.
“뭐가 있었길래?”
“이렇게 생긴 거.”
대충 그림을 그려 카르디에게 보여줬다.
그림을 본 카르디는 신음을 흘렸다.
“···뭔가 기어 다니는 느낌이 들 만도 하군.”
“적당한 비유긴 하네.”
“조만간 시끄러워지겠어.”
“그럴 것 같긴 해.”
나는 턱을 괸 채 중얼거렸다.
“경험상, 저런 건 하나만 있는 게 아니니까.”
“···뭐, 아무튼 간 잘 처리해줬군. 벨노아, 그 아이만으로는 힘들 수도 있었겠어.”
카르디는 선반 아래에서 상자를 꺼냈다. 상자 안에는 열두 개 남짓의 포션이 포장돼 있었다.
“한 달에 한 병씩, 일 년 치지.”
“흐응.”
나는 포션병 하나를 집어 들었다.
“지금 마셔봐도 돼?”
“안될 거 있나. 주는 건데.”
병을 까고 포션을 털어 넣었다.
효과는 곧바로 나타났다. 저주를 억누르느라 요란스레 돌아가던 회로가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오.”
성능 확실하구만.
“너도 진짜 대단하다.”
“글쎄, 대단한 게 누군지 모르겠군.”
“나도 연금술이나 배워볼까? 연금술을 극한까지 단련하면 이런 것도 만들 수 있냐?”
내 말에 카르디는 쓰게 웃었다.
“순서가 틀렸다 라니엘.”
“응?”
“연금술이 극에 달아 이 포션을 만든 게 아니다. 이건 내가 연금술사이기 이전에, 아직은 내 왕국이 건재할 때 만들어 낸 것이지.”
그는 아련한 눈빛으로 포션병을 바라봤다.
“연금술사가 된 건, 이것의 다음을 찾기 위함이었어.”
“다음?”
“완전하게 저주를 몰아낼 방법. 그러나, 아직까지도 찾지 못했지.”
그렇게 말하며, 카르디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곤, 내게 손을 내밀었다.
“고맙다, 라니엘.”
“···갑자기? 수로 청소한 건 의뢰였잖아.”
“그걸 말하는 게 아니다.”
나는 그가 내민 손을 잡고 일어섰다.
그 누런빛 눈동자를 마주 바라본다. 언제봐도 묘한 느낌이 드는 눈동자. 오늘은, 그 눈매가 조금 쳐진 탓일까.
‘젊은데도 늙은이 같아 보이네.’
그가 오랜 기간을 살아온 엘프라는 걸, 새삼스레 체감하게 된다. 그렇게 한동안 마주 바라보고 있자니, 먼저 입을 연 건 카르디였다.
“네가, 마왕을 마주하고도···.”
그가 천천히 운을 뗐다.
“여전히, 너 인채로 남아있어서.”
엷은 미소를 흘렸다.
“그게 고맙단 이야기다.”
“뭔 소리래.”
피식, 나는 웃음을 흘렸다.
5년이 지나 다시 보아도, 여전히 알 수 없는 이야기만 늘어놓은 별난 녀석이었다.
“다음에 보자, 카르디.”
“그래, 다음에.”
그가 중얼거렸다.
“반드시.”
그 목소리는,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말하는 것 같은 목소리였다.
3.
“아.”
레스티는 무심코 탄식을 내뱉었다.
책상 가득 쌓여있던 종이를 한쪽으로 쭉 밀어냈다. 그리곤 중앙에 한 장의 종이만을 내려놓았다.
그 종이에 마나를 불어넣는다.
이윽고 공중에 회로가 떠오른다.
“됐다.”
허공에서 맴도는 두 개의 회로.
그 회로를 바라보며, 레스티는 중얼거렸다.
“···풀었다.”
아플리아의 정기 안식일.
그 사흘 가까이 되는 휴일의 태반을, 레스티는 이 문제를 푸는데 보냈다.
풀 수 있지?
그 한마디가 계속 머릿속에 맴도는 바람에, 풀기 전까지는 다른 일을 할 수가 없었으니까.
“겨우, 풀었다.”
그렇게 내뱉는 목소리는 흥분에 차 있다.
레스티는 심장이 두근거리는 걸 느꼈다. 비록, 푸는데 오래 걸린 데다가, 엄청 힘들기는 했지만···.
‘결국, 풀었어.’
어떻게든 풀어냈다.
그 사실이, 레스티는 순수하게 기뻤다.
“흐읏!”
늘어져라 기지개를 편 뒤, 레스티는 해답을 정리했다. 새 종이에 회로를 옮겨 그렸다.
곱씹을수록 신기한 회로였다.
보통 회로를 섞는 경우는 있어도, 이 회로처럼 독특한 융합방식을 가지는 회로는 처음 봤다.
‘조합이 아닌, 마찰.’
선과 선을 잇고, 덧씌우는 게 아니다.
선과 선끼리 마찰시킨다. 그렇게 만들어진 뒤틀림을 주문의 원동력으로 삼는 회로다.
그 각각의 주문을 어떻게 읽는지는 모른다.
회로를 풀었을 뿐, 어떤 식으로 마나를 흘려보내야 할지는 아직 모르겠으니까.
‘빨리 안식일이 끝나면 좋겠다.’
그래야 질문할 수 있을 테니까.
레스티는 은은한 미소를 흘리며, 노트를 자꾸만 매만졌다. 노트를 줍고, 여기에 회로를 그려주던 라니아의 모습이 떠오른 까닭이다.
‘여기에 끼워야겠다.’
답을 다 옮겨 적은 종이를, 레스티는 조심스레 노트에 끼웠다. 혹여라도 구겨지지 않도록 몇 번씩이나 확인하면서.
그 작업을 마친 레스티는 문득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3시, 아직 아플리아 내 편의 시설들이 문을 닫기에는 이른 시간이었다.
‘카페.’
문득, 그곳이 생각났다.
라니아 교수가 자주 들린다는 카페.
‘안식일이니, 없을 것 같긴 하지만···.’
혹시 모르는 마음에, 레스티는 노트를 들고 카페로 향했다. 카페는 중앙학관 근처에 있었기에,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짤랑.
“어서 오세요.”
주인장의 목소리에 레스티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리곤 재빨리 가게 안을 살폈다.
‘역시, 없네.’
아깝긴 했지만, 그렇게 기대하진 않았으므로 실망이 크진 않았다. 그렇다고 그냥 나가기도 그래서 레스티는 커피를 한잔 시키고 창가의 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창밖을 보고 있는데.
“으엡.”
문득, 옆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
옆을 바라보니 한 남자애가 앉아 있었다.
그 얼굴이 낯에 익었다.
“···라크?”
같은 마나 거래학 고급반에 속한 학생.
그것이 아니더라도 레스티는 라크를 알고 있었다. 차기 마탑주인 그녀는, 각 마탑주들의 제자와 인사를 나눈 적이 있었으니까.
“음.”
혀를 앞으로 쭉 내뺀, 라크가 레스티를 돌아봤다. 그리곤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레스티인가. 반갑다.”
“···너 뭐해?”
“검은 물을 마시고 있다.”
···검은 물?
“커피 말하는 거야?”
“그렇게 부르는 것 같더군.”
“혀는 왜 그렇게 하고 있는데?”
“으음···.”
라크가 짧게 신음했다.
“쓰다.”
“···뭐?”
“쓰고, 뜨겁다. 맛이 없다.”
“···그럼 왜 마시는데?”
“그 강연을 듣고 지성인으로 거듭난 나라면 도전해 볼만 하다고 생각했다···.”
무슨 말을 하는지 당최 이해할 수가 없었다.
“···쓰면 시럽이라도 타 먹지 그래?”
“시럽?”
“줘봐.”
레스티는 라크의 커피에 시럽을 몇 방울 떨어트렸다. 그리곤 다시 라크쪽으로 커피잔을 밀었다.
“자.”
“으음.”
라크는 마치 독극물을 보는듯한 시선으로 커피잔을 흘겨봤다. 영 못 미덥다는 눈치였다.
“···쓰고, 뜨겁다.”
“그래서 시럽 탔잖아.”
“여전히 새까맣다···.”
“그럼 커피가 새까맣지, 하얗겠니?”
“그것도 그렇군···.”
한참을 머뭇거리던 라크는 이내 커피잔을 조심스레 들어 올렸다. 입을 살짝 벌리고 커피잔을 천천히 기울였다.
“오!”
그리곤, 눈을 동그랗게 떴다.
“덜 쓰다!”
소리쳤다.
“조금 단 것 같기도 하다!”
“응, 그래.”
‘처음 봤을 땐 몰랐는데···.’
조금 모자란 애구나.
레스티는 라크와 조금 거리를 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