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33
〈 33화 〉 하니까 되던데요?(1)
* * *
공개 강연 이후, 아플리아는 사흘의 안식일을 가졌다. 본래 한 달 뒤에 있을 정기 안식일을 끌고 와, 급하게 학사일정을 틀어 만들어낸 휴일이었다.
명목상으로는 외부인의 방문으로 흐트러진 결계를 정비한다는 이유였으나···.
대부분의 교수는 알고 있다.
그것이 달아오른 열기를 식히기 위해 필요한 휴식 기간이었음을.
그날, 대강당에서 진행된 공개강연.
라니아 반 트리아스.
그 소녀의 입을 통해 발음된 기본(??).
교수와 학생을 가릴 필요가 없다.
그 강연에서 깨달음을 얻지 않은 마법사는 없다.
마법사 또한 마학(??)의 길을 걷는 학자다.
학자들이 으레 그러하듯, 마법사들 또한 자신이 얻은 깨달음을 글로 남기려 한다. 연구 결과로서 박제하려 한다.
지난 사흘간.
그 학구열이 아플리아를 뜨겁게 달궜다.
학사 내의 연구실에 미친 듯이 예약이 쏟아졌고.
점잖은 교수들조차 앞다퉈 주문 연구실을 차지하고, 그 문을 걸어 잠글 정도였으니···.
그런 상황에, 정상적인 운영이 될 리가 없다.
사흘의 안식일은 필요한 조치였다.
그리고, 그 사흘의 안식일이 끝난 오늘.
학사에 모인 교수들의 관심사는 하나였다.
라니아 반 트리아스.
이른 아침부터 로셀 교수의 교수실을 찾아가 봤으나, 그 소녀는 없다. 이후 교수들은 곧장 카페로 향한다.
본래 들리지도 않던 카페.
그러나, 이 곳이 그 소녀가 자주 들린다는 카페라는 것쯤은, 소문으로 익히 들어 알고있다.
“여기 한잔 주시오.”
“나도 한잔…”
그 덕에 카페는 때아닌 손님들로 붐볐다.
그녀가 앉았다는 창가 자리에 앉은 교수들이 눈을 부릅뜨고 그녀가 찾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어, 뭐야 씨발.”
라니아 반 트리아스.
그 카페의 단골손님인 그녀는, 사람이 미어터지는 카페를 보며 신음했다.
“다음에 들려야겠네···.”
그녀는 입맛을 다시며 자리를 떴다.
그 모습을 본 교수는 없다.
카페의 주인장만이 영문도 모른 채, 한동안 때아닌 손님들로 곤욕을 치를 뿐이었다.
2.
레스티는 교수실 앞을 서성였다.
모두가 눈에 불을 켜고 카페로 떠난 탓에, 정작 이곳, 마나의 거래학 교수실 앞은 한산했다.
교수실 앞에 놓인 의자.
의자에 앉아 노트를 몇 번이나 확인하며, 레스티는 한 명의 교수를 기다렸다.
‘안에 들어가서 기다려도 되긴 하지만···.’
아직은 로셀 원로가 껄끄러웠기에, 레스티는 이렇게 교수실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사락.
불어오는 바람은 따뜻하다.
늘어지는 아침햇살에 레스티는 하품했다. 어젯밤 늦게까지 회로를 조금 더 깔끔하게 깎는 작업을 한 탓에, 잠이 조금 모자랐다.
“하암···.”
그렇게 하품을 하는데.
“여기서 뭐 해?”
“…!”
대뜸 들려온 목소리에, 레스티는 흠칫하고 어깨를 떨었다. 황급히 고개를 틀었다.
“응?”
바람에 흔들리는 잿빛 머리칼. 가느다란 속눈썹 사이로 비추는 푸른 눈동자.
라니아 반 트리아스.
레스티가 기다리던 인물이 그곳에 서 있었다. 레스티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안녕하세요, 라니아 교수님.”
“응, 안녕. 아침부터 무슨 일이야?”
그렇게 묻던 그녀의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처음 봤을 때는 무섭다고 느꼈던 눈동자였지만, 지금은 무섭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 눈동자가 향한 곳이, 바로 자신이 들고 있는 노트였으니까. 레스티는 묘하게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다 풀어서, 질문드리러 왔어요.”
“흐응.”
그녀가 흥미롭다는 듯 미소를 흘린다.
그리곤 교수실의 문을 가리켰다.
“들어가서 이야기할까?”
“네.”
교수실 안으로 들어간 그녀는 레스티에게 커피를 한 잔 타주고는,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스승님, 저 이 애가 질문할 게 있다 해서···.”
“오냐. 바깥에는 내가 나가보도록 하마.”
소란스러워진 바깥을 정리하러, 로셀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교수실에는 라니아와 레스티 뿐이었다.
홀짝.
레스티는 커피를 마시며, 라니아가 노트를 확인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되게 맛있다···.’
커피도 비싼 커피인지 향이 좋았다. 그러나, 정작 눈앞의 교수는 커피잔에 손도 안 대고 있었다.
‘집중하고 계신가 봐.’
그렇게 1분 정도 흘렀을까.
레스티가 적어둔 풀이를 모두 확인한 라니아가 입을 열었다.
“정답이네.”
짧은 한마디.
“풀이도 정확하고, 회로도 깔끔하네.”
담백한 칭찬.
“내준 문제는 회로의 해체작업이었는데, 회로가 어떤 식으로 쓰이는지 추측까지 해왔네?”
“그게, 조금 시간이 남아서···.”
“흐응.”
만족스럽다는 눈빛.
“이 풀이,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해볼래?”
“네, 네에.”
레스티는 자꾸만 들뜨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회로와 회로를 마찰시켜, 선과 선 사이에 마력 층을 형성. 그 마력 층에 마나를 순환, 가속해 주문의 위력을 증폭··· 시키는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아하.”
그녀가 미소지었다.
“맞아, 정답이야. 마찰시켜 발동시키는 회로지.”
그리곤 레스티가 볼 수 있도록 손을 쭉 뻗었다.
새하얗고 가느다란 손가락.
그 손가락 위로 마나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이렇게, 말이야.”
딱, 하고 그녀가 손가락을 튕겼다.
중지와 엄지에 스톡(Stock)되어 있던 회로가 마찰한다. 허공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튀어 오른 스파크가 불로 변한다. 번갯불이 튀기는 화염이 아주 잠깐 번쩍이더니, 이내 사그라든다.
순식간에 일어난 회로의 마찰.
“와···.”
그것을 본 레스티는 무심코 탄성을 내뱉었다.
시간으로 따지자면 2초 남짓.
그 2초 남짓에 일어난 마나 반응이 몇 개인지, 세는 것조차 어려웠다.
‘마찰, 가속, 과열, 증발, 순환···.’
레스티가 셀 수 있는 건 그 다섯 개 뿐이었다.
그렇게 감탄하고 있자니, 라니아가 종이 한장을 꺼내들었다.
“뭐, 잘 맞췄으니까··· 이것도 풀 수 있겠지.”
“네?”
“이것도 비슷한 문제야. 한번 이해했으니까, 이건 더 쉽게 풀걸?”
라니아가 펜을 들었다.
그리곤 빈 종이에 쓱쓱, 회로를 하나 그려 넣었다. 레스티는 그 과정을 유심히 살폈다.
푼 문제와 비슷한 형식으로 섞인 회로였다.
레스티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것을 살폈다.
그 회로가 완성 됐을 때.
레스티또한 계산을 끝냈다.
“그럼, 이건 내일까지···.”
“풀었어요.”
“···응?”
레스티는 펜을 하나 꺼내, 옆에 곧바로 답을 적어 넣었다. 한번 풀었던 문제와 같은 풀이 방식을 공유하는 문제다.
‘이렇게 하면···.’
탁.
레스티는 펜을 내려놓았다.
빈 종이에는 분리된 세개의 회로가 그려져 있다.
“···정답이야.”
이윽고 들려온 목소리에는 놀람이 느껴진다.
레스티는 문득 고개를 들어 올렸다. 맞은편의 교수와 눈을 마주했다.
언제나 가늘게 뜨고 있던 눈동자.
그 눈동자가, 지금은 동그랗게 뜨여 있었다.
마치 놀랐다는 것처럼.
“대단한데.”
그 놀람이 섞인 칭찬. 그 칭찬에, 레스티는 조금 들뜬 목소리로 질문했다.
“다른 문제도, 받아 갈 수 있을까요?”
3.
나는 레스티가 떠난 자리를 살폈다.
책상에 놓인 풀이 과정.
깔끔하고, 정갈한 필체로 쓰인 풀이를 다시 한번 읽어봤다. 그 과정에 오류는 없다.
“흐음···.”
솔직히, 조금 놀랐다.
과제로 내줬던 문제와 비슷한 유형이긴 하다. 하지만, 그 문제가 기초 이론이었다면··· 방금 풀라고 내준 문제는 활용 쪽이었다.
‘그걸, 회로를 그리는 것만 보고 맞췄단 말이지.’
한 번밖에 안 풀어본 유형의 문제일 텐데.
그걸, 곧바로 활용까지 맞췄다, 라.
“···이건 기대 이상인데.”
재능이 있을 거란 생각은 했다.
잿빛 마탑의 장로(??). 그분께서 고른 아이니 그 자질은 충분할 거라 생각은 했지만···.
이건, 정말 기대 이상이었다.
“그렇게 무시당할만한 애가 아닌데?”
아무리 봐도, 그런 취급을 받을 만한 애가 아니었다. 이 정도면, 차고 넘치는 재능이다.
주어진 것 이상을 발견해냈다.
내 준 문제의 정답만 찾는 게 아니라, 더 나아가 정답으로 나온 회로의 활용법까지 얼추 맞췄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이목을 끈 것은.
마나를 쫓고, 회로를 읽던 눈동자에 깃들어 있던 엷은 빛무리. 아직 개화(?花)하지 못한 재능의 편린이었다.
그 빛은.
내가 가지지 못한 ‘다른’ 부류의 재능이었다.
‘그러고 보니, 직업이 서머너(Summoner)였지?’
나는 쓰게 웃었다.
서머너, 그 소환사란 직업이 얼마나 상대하기 까다로운지는 뼈저리게 알고 있었으니까.
마왕군 사천왕 중 하나.
연금술사겸 소환사.
‘배교자, 글레투스.’
마수를 양산해내고, 키메라들로 이루어진 대군을 부리던 그 미친 소환사의 모습을 떠올리자니, 괜스레 목덜미가 욱신거렸다.
‘그때는 진짜 죽을 뻔했으니까.’
극의에 다다른 소환사.
그 악몽을 상대했던 나로서는, 소환사란 이름을 절대로 가볍게 여길 수는 없었다.
‘아까보였던 그 빛.’
문득, 나는 그 빛과, 소환사로서의 재능이 맞물린다면 만들어질 결과물을 한번 상상해 보았다.
결론은 금방 나왔다.
나온 결론에, 나는 쓰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비빌만 하겠네.”
그 악몽하고 말야.
“후우···.”
나는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 몸을 깊게 기댔다.
“척후병, 벨노아.”
그리곤.
“전열, 라크.”
한 명씩, 한 명씩, 눈여겨 보았던 학생들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마법사 겸, 전열 보조로 레스티··· 그리고, 가능하다면 아일라 왕녀까지.”
그렇게 넷으로 이루어진 파티.
“아하.”
문득, 웃음이 흘러나왔다.
“하나같이 키울 맛 나는 애들이네.”
4.
“이만 돌아가시오.”
“아니,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내가 굳이 언성을 높여야 하겠소?”
그 싸늘한 음성에, 교수들은 입을 다문다. 그들로서도 로셀 교수는 조금 어려운 인물이었다.
잿빛 마탑의 원로이자.
왕국의 몇 안 되는 현인 중 하나.
아플리아 안에서야 같은 교수로서 묶이지만, 바깥으로 나간다면 말 한번 붙이기 어려운 존재다.
“알, 알겠소.”
“그럼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결국 교수들은 아쉬움을 남긴 채 자리를 떴다.
“후우···.”
로셀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너무 잘난 제자를 둬도 고생이군.’
확실히, 일주일 내리 준비한 그 강연은 로셀이 보아도 성공적이었다. 가히 합격점을 줄 만했다.
‘아직 완벽해지려면 멀었지만···.’
그래도, 워낙에 머리가 좋은 아이니 금방금방 배우겠지. 로셀은 그리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교수실로 돌아가는 복도.
복도를 따라 걷던 로셀은, 문득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학생을 바라보았다. 알고 있는 아이다. 학생이기 이전에, 잿빛 마탑의 원로로서.
제자의 뒤를 이은 차기 마탑주.
레스티.
그녀는 노트를 바라보며 복도를 걷고 있다. 로셀이 다가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한다.
‘거, 위험하게···.’
위험하니 앞을 보고 걸어라.
그렇게 경고라도 줄까 하여, 입을 열려던 로셀은 레스티의 표정을 보곤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의 곁을 레스티가 스쳐 지나간다.
로셀은 고개를 돌려 그 아이의 뒷모습을 흘겨봤다.
‘···웃었어?’
분명, 웃고 있었다.
즐겁다는 듯이, 기쁘다는 듯이.
언제나 무표정으로 다니던 아이였다. 그 아이가 웃는 모습이, 로셀에겐 무척 생소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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