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34
〈 34화 〉 하니까 되던데요?(2)
* * *
로셀 반 트리아스.
그에게는 요즘 한가지 고민이 있다.
그 고민은 잿빛 마탑의 원로이자, 현인으로서의 로셀이 하기에는 볼품없는 것이다. 이것은 한 아이의 스승이자, 교수 직함을 단 교육자로서의 고민이다.
‘이 못난 제자 놈을 어찌해야 하는가.’
또한, 새삼스럽기도 한 고민이었다.
“후우···.”
로셀은 한숨을 내쉬었다.
고개를 드니, 눈을 깜빡이고 있는 제자가 보인다. 그녀를 바라보며, 로셀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말이다.”
“네.”
“설명이란 건, 남에게 무언갈 가르친다는 건 말이다, 남이 이해할 수 있게끔 현상을 풀어서 서술하는 것이다.”
“어··· 풀어 쓰면, 이렇게요?”
라니엘이 손가락을 까딱인다.
대뜸 허공에 천칭이 떠오른다. 완성된 천칭에 마나가 담긴다. 천칭이 기운다.
휙.
그녀가 손가락을 당겼다. ‘제약’을 담은 언어가 저울의 맞은편에 놓인다. 그렇게, 저울은 다시 수평을 이룬다.
이윽고, 거래가 성립된다.
틱, 티딕.
소녀의 손끝에 완성된 주문이 일렁인다.
주문은 별빛을 품은 채 타올랐다.
‘···저게 맞긴 한데.’
과정 자체는 완벽하다. 흠잡을 곳이 없다.
문제는, 저걸 풀어 썼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저게 어딜 봐서 풀어 쓴거란 말인가?’
눈 한번 깜빡이니 완성된 결과가 반짝이고 있다.
그 풀이 과정이 얼마나 생략됐는지, 짐작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정답만을 대뜸 보여주는 꼴이다.
‘저걸 학생들 앞에서 보여줬다가는···.’
로셀은 그 모습을 한 번 상상해 보았다.
지난번 강연으로 기대감이 부푼 학생들, 그 학생들의 앞에서 라니엘이 저 과정을 보여주는 장면을.
눈 깜짝할 사이에, 순식간에 지나간 과정.
그 과정에 당황하며, 학생들은 질문할 것이다.
어떻게 하냐고요?
그리고, 그 질문에 이 제자 놈은 분명 ‘이런 식’으로 대답할 테지.
하면 되던데요?
왜 못해요?
놀랍게도, 이건 로셀이 방금 떠올린 대사가 아니었다. 라니엘은 실제로 과거에 저 대사를 뱉은 적이 있었다.
아니, 그렇게 물으셔도···.
어찌하여 그런 결론이 나왔는가.
어떻게 그 난제를 풀었는가.
그렇게 묻는 마탑의 마법사들을 상대로, 라니엘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이렇게 말했었다.
그냥 하니까 되던데.
···그 말에 악의는 없다.
기만하려는 의도도 없다. 정말, 놀랍게도 없다. 라니엘의 입장에선 그것이 당연한 것이었으니까.
물론, 로셀은 그것을 이해한다.
그러나, 그건 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라니엘을 가르친 로셀이니 이해하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마법사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 결과, 한동안 라니엘은 마탑에서 겉돌아야만 했다. 그 시기를 로셀은 기억한다.
‘학생들이 그 말을 들었다간···.’
겨우 만들어 놓은 유능하고 신비로운 교수라는 이미지가 박살날거다. 건방지고, 기만하는 교수로 취급될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그 오해를 푸는 게 몹시 귀찮고 번거로운 과정이란 걸 로셀은 뼈저리게 알고 있다. 마탑에서 그 오해를 푸는 데만 반년에 가까운 시간이 걸렸으니까.
“후우···.”
로셀은 벌써 몇 번째일지 모를 한숨을 내쉬며, 관자놀이를 짚었다.
“틀렸다. 그런 식으로 보여줘선 아무도 이해 하지 못한다.”
“예? 그럼 이렇게요?”
“아니, 그걸 말하는 게 아니지 않으냐.”
“틀렸나요? 맞게 한 거 같은데.”
“맞다, 맞긴 한데 지금 내가 말하는 게 그게 아닌··· 손! 그 손 좀 가만있거라!”
“네에···.”
라니엘이 시무룩해 하며 고개를 떨군다.
그 모습을 보며, 로셀은 고개를 뒤로 젖혔다. 자꾸만 한숨이 새어 나왔다. 눈앞이 깜깜해지는 것 같다.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지난번 공개 강연이야, 일종의 시범 형식의 강연이었기에 별다른 해설을 요구로 하지 않았다
그 덕에, 숨길 수 있었다.
교육자로서, 라니엘이 가진 큰 결점.
그것을 들키지 않고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제대로 된 수업에 들어가게 된다면, 그 결점은 금방 들통나고 만다.
‘타인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라니엘은 타인의 수준을 이해하지 못한다.
기본적인 잣대가 자신을 중심으로 맞춰진 까닭이다.
‘내가 너무 성급했던 것인가?’
한편으론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머리가 좋은 아이니, 가르치다 보면 금방금방 이해하고 고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이게 아닌가···.”
저리 중얼거리고 있는 제자를 보고 있자니, 하루 이틀 사이에 고치기는 그른 것 같았다.
그 사실을 마냥 뭐라 할 수도 없다.
거기에는 마땅한 이유가 있는 까닭이다.
마왕군이 쓸어버린 마을의 생존자.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는 농노의 자식.
라니엘은 그런 태생을 가진 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니엘은 로셀을 만났을 때부터 그 재능이 완전히 개화(?花)된 상태였다.
‘이미 자신의 마도(??)를 확립한 상태였다.’
그 깨달음을 어디서 얻었는가.
그것을 추측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자기 자신에게서 찾았겠지.’
로셀이 라니엘을 발견했을 때, 라니엘의 기준은 이미 확고히 자리를 잡고 있었다.
너무나도 확고한 기준.
그 기준이 오히려 독이 됐다.
‘높다.’
높아도, 너무 높다.
자신을 기준으로 삼았기에, 라니엘이 타인에게 요구하는 기준치는 너무나도 높았다.
그나마 전장을 굴러다니며, 어느 정도 나아진 것 같긴 하지만··· 그 기준이 어디로 가진 않는다.
로셀이 생각하기에, 이대로 뒀다가는 학생들에게 최소 마탑의 마법사급의 기반 지식을 요구할듯 싶었다.
‘내 책임 이로군.’
아직 교육자로서 완성되지 않은 아이에게, 대뜸 교수 자리를 맡긴 건 로셀의 결정이었다. 비록 아론의 추천이 있었다곤 하나, 그것을 허락한 건 자신이었으니.
‘금방 배울 거라 생각하여 맡겼거늘.’
이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아직은 모자라단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후우.”
로셀은 한번 크게 숨을 내뱉었다.
머릿속을 한 번 정리하곤,상황을 차분히 바라보았다.
‘너무 급하게 생각하고 있다.’
급하게 가려 하면 쉽게 풀릴 문제도 풀리지 않는 법.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선인의 가르침을 떠올리며 로셀은 입을 열었다.
“라니엘.”
“네, 스승님.”
“방법을 바꾸도록 하지.”
그리곤,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조금 천천히 해보자꾸나.”
“천천히요?”
“그래, 천천히.”
로셀은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네가 내게 마법을 처음 배울 때, 이 거래 과정을 어떻게 했는지 그걸 떠올려 보란 소리다.”
경험, 그리고 경험에 기반한 가르침.
경험이 묻어나오는 가르침은 조잡하더라도 쉽게 공감을 살 수 있다.
‘옛이야기를 들려주듯 진행하는 수업방식은··· 나나 아론이 하면 늙은이, 꼰대라며 욕을 먹겠지만.’
이 제자 녀석은 젊지 않은가.
누가 봐도 꽃다운 20대의 소녀다.
‘학생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겠지.’
거리감이 너무 없어도 좋지는 않지만, 적당히 다가서는 건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음, 하고 로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슬쩍 라니엘의 얼굴을 살폈다.
무언가 고민하는듯한 모습이다.
“으음..”
라니엘은 아리송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스승님?”
“오냐.”
“생각을 해봤는데요···.”
한동안 침묵하던 그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냥 하니까 됐던 것 같은데요?”
탁.
로셀은 이마를 쳤다.
“네가 그럼 그렇지······.”
두번 째 수업을 앞둔, 어느 봄날의 이야기였다.
2.
내, 이 방법까진 쓰지 않으려 했거늘.
안 되겠다, 라니엘.
이해가 안 된다면 남은 건 주입식 암기뿐이다.
당장 다음 수업에 들어가야 하니, 이번 수업은 최대한 어물쩍 넘어가는 방향으로 잡자꾸나.
뭐? 어물쩍하게 넘어가도 되는 거냐고?
망치는 것보단 낫다.
백배 천배 낫다.
내가 수업했던 내용, 이 내용에 대해 공개 강연에서 했던 것처럼 예시를 보여라.
그렇게 빨리하라는 게 아니다! 최대한 천천히, 모두가 확인할 수 있게 느릿느릿하게 보이란 소리다.
이번 수업을 넘기고, 다음 시간부터는, 최대한 여러 교수의 수업에 참관하고, 그들이 가르치는 방식을 보고 오거라.
아무래도, 보고 배우는 게 제일 빠를 것 같구나.
그래, 우리 조금 천천히 해보자꾸나 라니엘···.
그리고 말이다.
내, 부디 당부하건대.
절대로, 무슨 일이 있어도 ‘하니까 되던데요?’ 같은 대사는 뱉지 말거라, 제발!
“으음.”
스승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나는 복도를 걸었다.
‘그렇게까지 잘못했나?’
그렇게 나쁘게 했던 것 같진 않은데.
스승님께서야 외워서 어물쩍 수업을 넘기라고 말씀은 하셨지만, 나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어떻게 그래.’
이건 내가 맡은 일이다.
일을 대충대충 처리하고 넘긴다? 그건 내 자존심이 용납하지 못했다.
‘그래도, 스승님 말을 무시할 순 없지.’
그래서, 조금 다른 방식을 선택했다.
딱 한 번이지만, 내가 성공적으로 누군가를 가르친 적이 있었으니까.
“···이거면 되겠지?”
양손으로 받쳐 들고 있는 유인물.
이건 보고서를 쓰던 경험을 살려 내가 직접 제작한, 일종의 ‘학습지’ 였다.
‘말로 설명 못 하면 글로 하면 되니까.’
내가 생각한 거지만, 꽤 좋은 방법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은 내 두 번째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공개 강연으로부터 대략 일주일 정도 지난 수업. 이번에는 학생들 만을 대상으로 하는 수업이었다.
‘스승님이 수업한 걸 보충하는 것뿐이긴 하지만···.’
그래도, 눈 여겨뒀던 학생들을 가까이서 확인할 기회다. 묘하게 발걸음이 들떴다. 나도 몰랐는데, 이 교수라는 직업, 은근히 나랑 잘 맞는 것 같았다.
거 왜, 벨노아나 레스티도 내 강연 덕에 깨달은 게 많다고 하지 않았던가.
‘나 은근 재능 있을지도.’
그런 실 없는 생각을 하며 복도를 걷고 있자니, 문득 익숙한 뒤통수가 시야에 들어왔다.
찰랑거리는 백금색의 머리칼.
그 상징과도 같은 독특한 머리칼 덕에, 내가 그녀의 이름을 떠올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아일라 왕녀님?”
“응? 라니아 교수님?”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흐응.”
그리곤 환히 웃어 보였다.
그것이 꼭 먹잇감을 발견한 맹수의 웃음 같아서, 나는 무심코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그녀가 눈웃음을 흘리며 내게 다가왔다.
통통 튀듯 가벼운 발걸음이다.
“수업 가시나요? 저도 교수님 수업 들으러 가는 길인데.”
“여기는 학생용 통로가 아닌데요?”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가 머무르는 중앙학관에서 바로 강의실로 통하는 복도가 있을 텐데.
‘게다가, 여긴 교수실 뿐이고.’
사실상 교수들을 위한 복도였다.
그녀가 이쪽 복도에 있을 이유가 없을 텐데.
“음···.”
내 질문에, 그녀는 자신의 손끝을 바라보았다.
“조금 이상해서요.”
“예?”
“그냥, 감이 팍! 하구 왔다고 해야 할까요? 여기서 뭔가 안 좋은 느낌이 든단 말이에요?”
그게 웬 뜬구름 잡는 소린가.
“감…이요?”
“제가 감이 좋거든요.”
아일라가 대뜸 내게 손가락을 내밀었다.
“교수님을 볼 때마다 검지가 막 찌릿찌릿하긴 한데, 이건 좋은 직감이거든요? 그런데···.”
그녀가 손가락으로, 창가를 훑었다.
그녀의 손끝에 꽂가루가 묻어나왔다.
“지금, 이 복도에서 느껴지는 감은··· 되게 불길해요? 막 뭐가 터질 것처럼.”
“···불길?”
“뭔가 안 좋은 느낌적인 느낌.”
그렇게 말하며 그녀가 엷은 웃음을 흘렸다.
장난기가 뚝뚝 묻어나오는, 그런 웃음이었다.
“라니아 교수님.”
“뭡니까?”
“수업 끝나고, 저랑 같이 이 복도 좀 봐주실래요?”
“···예?”
아일라가 눈을 가늘게 떴다.
“혼자서는 위험하다.”
“별이 그렇게 속삭이고 있거든요.”
* * *